범죄를 미리 막는 범죄예방학·병을 미리 아는 예방의학… 그 예측과 예방이 새로운 ‘나비’인 것을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20세기 사회와 문화, 예술, 그리고 과학을 접두사 ‘포스트(Post)의 시대’라고 표현한다면, 21세기는 예상컨대 ‘프리(Pre)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난 100년간은 지구상에 정치사상적으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뒤를 잇는 이데올로기들이 수없이 등장했다가 제대로 검증도 받기 전에 사라진 ‘포스트 사회주의’ ‘포스트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예측’으로 그 유용성을 증명받았던 과학은 ‘결정론’에 대한 회의와 예측 가능성에 대한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면서, 사후 벌어진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연구들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예술 분야에서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포스트’파들이 미학적 실험을 감행했다. ‘예술에서 더 이상 새로운 시도는 없다’며 예술가들의 모든 미학적 시도는 이제 우열의 잣대가 아닌 다양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의 ‘예술 종말론’이 맞다면, 20세기는 가히 ‘종말의 세기’라 불릴 만큼 ‘포스트가 난무하는 시대’였다(혹시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 ‘지구의 종말’이 20세기의 이러한 사회적 징후를 예언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Minority Report)가 개봉했을 때, 신문사 기자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 영화의 현실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초능력자들이 실제로 나올 수 있는지, 나보고 미래를 예측하라니. 게다가 영화적 설정은 2054년. 아무리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나비효과‘(‘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에드워드 로렌츠의 이론)로 인해 먼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복잡계 과학‘을 전공한 내게 50년 뒤를 예측하라니. 이 얼마나 아이로니컬한 상황인가. 나는 초능력자나 돌연변이가 아니다(필립 K. 딕의 원작소설에서는 돌연변이들이 예지 능력을 얻게 된 것으로 설정돼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의 는 ‘21세기 예방과학에 대한 우화’다. 컴퓨터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테크놀로지의 사회 흡수가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되면서(그리고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이슈와 맞물리면서), 이미 우리는 ‘예측’과 ‘예방’이 새롭게 위용을 떨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는 생명을 다루는 의학과 범죄학 분야다.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면서 사건 후 인과관계를 추적해 범인을 잡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자, 범죄를 저지를 만한 사람들을 미리 색출하거나 재범률을 줄이겠다는 논리로 전자발찌를 채우는 ‘범죄예방학’이 사회적 지지를 얻고 있다. 여기에 발맞춰, 과학자들은 요즘 ‘범죄 유전자’를 찾는 데 조심스럽게(?) 열을 올리고 있으며, 아동심리학자들은 ‘결손가정의 청소년들’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아로 자랄 예비 범죄자인 양 취급하기도 한다.
‘예방’이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단연 ‘의학’이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완수되어 질병을 일으킬 유전자를 찾아내는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발병 뒤 고치는 ‘치료의학’에서 발병하기 전에 막는 ‘예방의학’이 의학적 화두로 떠올랐다. “당신은 25~35살 사이에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확률이 56%입니다” 같은 메시지를 쏟아내는 의학형 예측 시스템이 를 방불케 한다.
치매를 미리 알아도 치매를 고칠 수 없다이런 예측·예방 시스템이 우울한 이유는 그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 잠재적 환자라는 데 있다. 치료해주고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 얌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대신 우리는 ‘발병 확률 50~60%’ ‘범죄 확률 70%’라는 낙인이 찍힌 채, 항상 감시받아야 하고, 미리 약을 먹기 위해 ‘치료 기간보다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예방약과 정기검진에 돈을 지불해야 하며, 하지도 않은 범죄, 앓지도 않은 병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된다(‘간질 발병률 30%’인 비행사가 항공기 기장으로 취직할 확률은 그 비행기에 타겠다는 승객 수만큼 희박하다).
영화에선 범죄예방국(PreCrime Department)의 형사들이 범죄 현장을 덮쳐 살인을 막고 살인자를 ‘살인미수자’로 바꿔 감옥에 넣는다. 미수 사건들의 범죄률은 늘지만 살인사건과 같은 중범죄의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에 위안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살인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결정된 운명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어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란 말 아닌가? 그렇다면 살인을 저지른 자의 도덕적 죄는 과연 무엇일까?
의 압권은 ‘운명을 알게 된 자의 고통과 몸부림’에 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존 앤더튼은 자신이 2~3일 내에 어느 호텔방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다(실제로 소설에서 존 앤더튼은 ‘톰 크루즈가 연기하기엔 버거운’ 머리가 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중년 신사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살인의 운명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는 캐릭터! 영화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과관계의 ‘뫼비우스의 띠’에 정면 도전한다.
1990년대 말 무렵, 내가 준비하고 있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뇌파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데이터를 통해 중년의 남녀가 10~20년 뒤에 치매에 걸릴 확률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미국신경과학회에서 내가 만든 시스템의 원리와 성능을 발표하고 나자,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의 신경과 교수가 내게 질문을 했다. “아직 치매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치매 발병 가능성을 우리가 미리 알아서 얻게 되는 득은 무엇인가요? 환자에겐 그 순간부터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될 텐데.” 나는 그날 그분에게 두루뭉술하게 둘러대긴 했지만, 그 뒤로도 몇 년간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치매 발병 예정자’들에게 미리 그 사실을 통보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그 자체로 ‘범죄’였다. 톰 크루즈도 살인의 순간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눈까지 뽑으면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가! (지금은 치매 증세 경감제도 나와 있어 조기 치료로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어 겨우 변명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궁색하다.)
머저리 같은 ‘머저리티 리포트’예측과 예방은 그것이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다. 질병과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노력이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범죄, 새로운 의료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과연 에셔의 ‘자신을 그리는 손’과 같은 인과관계의 ‘교묘한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를 보호해주겠다고 나선 테크놀로지의 아킬레스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즉 소수의견에 있다. ‘머저리티 리포트’에 의지해 세상의 모든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머저리들의 세상’을 극복하는 것. ‘소수의견’이라고 해서 함부로 삭제되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영화를 두고두고 봐야 하는 이유다.
<hr>현실적인 상상, 기술과 예술의 융합영화 속 공상이 이미 기술적 일상으로, 실제의 연구·개발에 뿌리를 둔 ‘기술적 상상’이었으니 그러했거늘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독어독문과
((Minority Report·2002)의 매력 중 하나는 이 영화의 감독인 스필버그가 ‘미래 현실’(future reality)이라 부른 측면에서 나온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의 미국 워싱턴. 내가 살아서 보기에는 머나먼 미래의 일이다. 공상과학(SF) 영화는 미래상을 그릴 때 대개 터무니없는 공상을 사용하곤 하나, 는 다르다. 거기에 묘사된 미래의 테크놀로지는 매우 현실적이어서, 그중 몇몇은 이미 실현됐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 계획자·기술 혁신자가 모인 3일간의 회의가령 구슬에 아직 벌어지지 않은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이 새겨져나오는 장면. 캐드(CAD·컴퓨터이용설계)로 디자인한 형태를 컴퓨터수치제어(CNC) 밀링으로 조각하는 것은 오늘날 산업과 예술의 일상에 속한다.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신문 역시 당장이라도 시연이 가능하다. 이미 종이처럼 마는 디스플레이와 무선 인터넷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행인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며 유혹하는 광고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법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센서와 음성 합성 장치를 이용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택수색에 사용되는 스파이더 역시 곤충 모양의 첩보로봇 형태로 이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앤더튼(톰 크루즈)이 홀로그램으로 된 그의 아내를 마주 보는 장면은 ‘원격현전’(telepresence)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현실이 되었다. 미국의 어느 정보기술(IT) 기업은 2007년 10월 인도의 벵갈루루에서 열린 신기술 발표회에서 사회자 바로 옆에 멀리 미국 본토에 있는 다른 임원들의 홀로그램을 띄워 객석의 관객을 놀라게 했다. 과거의 아바타는 유저가 사이버 공간 속에 입장하기 위해 입는 가상의 육체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프로젝션과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해 사이버 공간 속에 들어 있던 가상의 육체를 현실 공간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 영화가 나오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영화 속 공상의 몇 가지는 이미 기술적 일상이 됐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아마도 ‘인터페이스’일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더튼은 모니터나 키보드나 마우스도 없이 센서가 달린 검은 글러브만으로 영상을 열고, 닫고, 확대하고, 축소한다. 이 인터페이스에서는 유저가 좌석에 앉으면 바로 앞의 빈 공간에 가상의 작업대가 나타났다가 작업을 마치면 곧바로 사라져버린다. 이런 인터페이스가 가정이나 사무실에 들어올 때까지는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기술 자체는 이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허황되지 않은 매우 현실적인 상상. 이것이 바로 스필버그가 에 구현하려 한 ‘미래 현실’이라는 것이다.
제작에 들어가기 몇 년 전에 스필버그 감독은 2054년의 사회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위해 3일에 걸친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도시 계획자, 기술 혁신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랩의 연구원들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대됐다. 이 미래 예측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2054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를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했던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필버그의 스태프들은 영화에 사용할 만한 기술을 찾기 위해 직접 MIT 미디어랩을 방문하기도 했다. 에 묘사된 2054년 사회의 놀라운 사실성은 이렇듯 철저한 과학적 예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스처 인풋, MIT 미디어랩의 연구가 기초특히 ‘과학기술자문’으로 일한 존 언더코플러라는 이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는데, 그는 MIT 미디어랩에서 10여 년간 홀로그램에서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경험을 쌓은 바 있다. 미국에서도 영화의 과학기술자문은 생소한 직업이었던 모양이다. 언더코플러는 후에 “내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이 직업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발견하고는 놀랐다”고 술회했다. “1930~40년대의 SF는 과학자들의 캐리커처만 그리느라 그 안에 진짜 과학적 정보는 들어 있지 않았다”면, 는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현실적 예측에 기초한 ‘기술적 상상’(techno-imagination)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언더코플러의 말에 따르면, 스필버그 감독은 처음부터 그에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잊어버리고, 음성 인터랙션도 잊어버리라”고 주문했다 한다. “그런 것은 지난 30년간 SF에서 너무나 많이 봐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하여 언더코플러는 새로이 제스처로 인풋을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그것이 영화에 구현돼 관객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이 제스처 인풋 방식 역시 순수한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MIT 미디어랩에서 이미 수년 동안 이루어져왔던 연구들에 기초한 것이고, 그 연구 중 몇몇은 언더코플러 자신이 수행했던 것이다.
MIT 미디어랩 ‘탠저블 미디어랩’의 멤버로서 언더코플러는 ‘반짝이는 방’(The Luminous Room)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데스크톱이 아닌 일종의 방을 건축하는 작업으로 간주하는 데 있다. 이 경우 사용자는 책상 ‘앞에’ 앉는 게 아니라, 가상공간 ‘속에’ 들어가 작업하게 된다. 의 인터페이스는 물론 어느 정도는 언더코플러의 상상력의 산물이었지만, 동시에 이처럼 실제로 연구·개발되고 있는 진짜 기술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처럼 기술이 예술로 흘러 들어가는 흐름이 있다면, 반대로 예술이 기술로 흘러 들어가는 흐름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디어아티스트 제프리 쇼는 “그동안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오래전부터 미디어아티스트들은 -가령 인터넷이 연결된 케이브(CAVE) 안에서 퍼포머가 가상현실 안으로 데이터를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식으로- 이런 몰입형 컴퓨팅의 실험을 해왔다. 오늘날 대중화된 인터페이스의 상당수가 실은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실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다. 문학의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언더코플러는 말한다. “지난 10년간의 ‘사이버’ 연구는 그보다 10년 앞서 유행했던 사이버펑크 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창의적이지 못한 기술은 기능얼마 전 대통령 각하께서 “우리도 닌텐도 같은 것 좀 개발하라”는 교시를 내렸다가 빈축을 산 일이 있다. 닌텐도도 삽질로 뚝딱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공구리’ 두뇌의 단단함은 기어이 ‘2MB(확장 불가)짜리 명텐도’의 패러디로 대중의 비웃음을 사고야 말았다. 오락기야 물리적으로 뚝딱 만든다 치더라도, 거기 채워넣어야 할 게임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닌텐도 Wii의 경우, 그보다 10여 년 앞서 이뤄진 미디어아트의 수많은 실험들이 있었다. 그것도 ‘닌텐도 체어(Chair)’와 ‘닌텐도 글러브(Glove)’의 실패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성공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2MB’ 용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창의적이지 못한 기술은 기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술도 이제는 예술과 문학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예술학교에서 그런 일 좀 해보려고 했더니, 양촌리 김회장 댁 둘째아드님이 각하께서 하사하신 좌파 척결의 숭고한 완장을 차고 나타나셔서 예산을 전액 삭감해버리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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