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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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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절리나 졸리

등록 2009-10-15 14:46 수정 2020-05-03 04:25
앤절리나 졸리, 그녀만의 도덕
미덕·악덕 상관없이 개별자의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더 높은 사회적 윤리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다

■ 진중권 자유기고가

브래드 피트가 아내를 위해 프랑스에 있는 저택 근처에 사설 비행장을 지어준단다. 아무리 경비행기라도 활주로가 최소한 1km는 되어야 할 텐데, 역시 할리우드 갑부라 그런지 통이 크다. 앤절리나 졸리는 개인조종면장(PPL)을 갖고 있다. 남편 브래드 피트와 함께 아프리카의 모로코로 직접 비행기를 몰고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비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무슨 비행기를 모는지 궁금하기 마련.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녀가 소유한 비행기는 시러스 SR22. 디자인이 고혹적일 정도로 섹시한 고익기로, 내가 평소에 갖고 싶어하는 바로 그 기종이다.

앤절리나 졸리

앤절리나 졸리

두 극단의 묘한 결합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란 걸 알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이를 돕는 손이란 것을.” 오드리 헵번이 죽기 전 해의 성탄 전야에 자녀들에게 유언처럼 남겼다는 샘 레빈슨의 시 마지막 구절이다.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헵번은 말년에 자신의 한 손을 다른 이를 돕는 데 썼다. 그녀를 ‘아름다운 사람’이라 부를 때, 그 ‘아름다운’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칼로카가티아’(善美)에 가까울 게다. 그것은 윤리와 미학의 통일, 즉 아름다운 ‘외모’와 유덕한 ‘행위’의 통합을 가리킨다.

그와 대극을 이루는 이가 있다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에서 본 찰턴 헤스턴일 것이다. 청소년들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온 사회가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이 노배우는 꿋꿋하게 ‘전미총기연합회’를 위해 총기 소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강연을 하고 다닌다. 화면 속의 그는 젊은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볼품없었다. 그것은 신체의 노쇠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는 부덕한 삶이라는 인위적 행위의 결과로 보였다. 선미(善美)를 뒤집으면 추악(醜惡)이 되던가?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외모와 행위의 아름다움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주관적으로, 행위에 대한 윤리적 평가가 외모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행위가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은 깊게 팬 주름마저도 순결한 번뇌의 흔적으로 느껴지고, 행위가 너저분한 사람의 얼굴은 매끈한 피부조차도 뺀질거리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던가. 아름다운 행위는 그것을 하는 사람의 얼굴에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부여한다.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가 순결한 천사이고, (적어도 내게) 찰턴 헤스턴의 이미지가 타락한 악마에 가깝다면, 앤절리나 졸리의 매력은 이 두 가지 극단의 묘한 결합에서 나오는 듯하다. 내 머릿속의 앤절리나 졸리는 헵번과는 다른 의미의 천사, 즉 악마 같은 천사다. 그의 전기 중에서 나의 흥미를 끈 부분은 어린 시절 종종 자기 신체에 칼을 대어 자해를 했다는 대목이었다. 신체를 파괴하라는 것은 악마의 충동이다. 그녀는 그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을 외려 자기혐오나 자기경멸의 늪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긍정에 이르는 치유의 제의(祭儀)로 승화시켰다.

엽기적 사생활, 모범적 대외활동
앤절리나 졸리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툼레이더>에서의 역할처럼 ‘독립적인 여전사’다. 사진 한겨레 자료

앤절리나 졸리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툼레이더>에서의 역할처럼 ‘독립적인 여전사’다. 사진 한겨레 자료

헵번이 이슬만 먹고 사는 순결한 여인의 이미지라면, 졸리는 메건 폭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섹스 심벌이다. 의 관객 중에는 비록 컴퓨터그래픽(CG)으로나마 졸리의 벗은 몸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극장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언동도 파격적이다. 두 명의 섹스 파트너를 동시에 사귀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와도 잠을 자는 양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졸리는 이른바 ‘도덕’이라는 것을 우습게 여긴다. 미국의 극성스런 청교도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아마도 이런 졸리가 악녀로 보일 것이다.

마약을 복용하거나, 두 번의 이혼을 하거나, 이름에서 아버지의 성을 떼어버리거나, 파트너의 피를 담은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엽기적 취향 역시 ‘모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바로 그 악덕(?)이야말로 졸리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만약 졸리가 모범적인 배우로 모범적인 사생활을 하면서 난민구호라는 모범적 활동만 했다면, 아마 그녀가 가진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졸리의 존재미학은 도덕을 우습게 아는 개별자의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더 높은 사회적 윤리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데에 그 요체가 있다.

졸리와 더불어 섹스 심벌로 통하는 메건 폭스는 졸리에게 공개적으로 구애를 하는 가운데 “졸리는 모두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지 않”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아주 솔직한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의 비난이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거나, 사회의 호감을 사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의 눈에 악덕으로 보이는 것이든, 사회가 흔히 미덕이라 부르는 것이든, 졸리의 행동은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졸리는 형해화한 기존 도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도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바로 여기서 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졸리 특유의 도덕이 탄생한다. 가령 졸리는 이혼을 두 번 할 정도로 인습에서 자유로우나, 그렇다고 가족의 가치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 그녀는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하고, 스스로 세 명의 아이를 낳을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다. (사진을 보니 자녀의 구성도 다양하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코카서스계.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덕분에 여전사와 팜므파탈은 동시에 모성의 상징,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동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리무진 좌파의 워싱턴행?

그녀는 세계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난민구호 활동을 벌이면서 해마다 구호단체에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난민의 구호를 위해 부부 이름으로 된 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둘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배우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이 두 극단을 오가는 삶이 ‘허위의식’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나, 졸리는 그런 비난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모든 것을 혼자 소유하는 속된 탐욕의 쾌락주의도 아니고, 모든 것을 헌납하고 빈자의 삶을 살아가는 답답한 금욕주의도 아니다. 그녀는 이런 상투성의 경계에서 스틱을 당겨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졸리는 2006년 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1위로 뽑혔고, 2009년 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뽑혔다. 아마도 세계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있다면, 거기서도 1위를 했을 것이다. 어느 보도에 따르면, 최근 그녀는 할리우드보다 워싱턴에 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제까지 당신이 한 사회활동이 그럼 워싱턴에 가기 위한 행보였느냐?’는 비난이 나올 게다. 하지만 졸리는 그런 비난에 아마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졸리와 같은 성격은 대중의 오해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권력욕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이나, 그것이 싫어 아예 정치를 피하는 것으로 순결을 지키려는 것이나, 모두 ‘노예의 도덕’일 뿐이다. 졸리의 욕망은 그런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난민구호 활동을 벌이는 세계 여러 곳에서 미국이 비난을 받는 것을 보고, 그녀는 “부시만은 안 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듣자 하니 오바마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라고도 한다. 유럽과 다른 보수적인 미국의 맥락에서 그녀는 나름대로 좌파인 셈이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 이 리무진 좌파가 대선 후보로 나서는 것을 보게 될까?

<hr>뻔한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
‘허리 대 엉덩이 비율’ 0.7의 배우가 선택한 ‘여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 전략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남들에게 들려주길 좋아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길 좋아한다. 이야기에 웃고 울고 공감하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한다. 우리의 뇌는 기억을 이야기의 형태로 저장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디자인돼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동료를 평가하고 세상을 판단한다. 이야기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드물다.

이야기는 옛것이니 캐릭터는 새것으로

졸리는 배우로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난민 구호를 위해 부부 이름으로 된 재단을 만들었다. 케냐-소말리아 국경의 난민촌을 방문한 졸리. 사진 연합 AP

졸리는 배우로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난민 구호를 위해 부부 이름으로 된 재단을 만들었다. 케냐-소말리아 국경의 난민촌을 방문한 졸리. 사진 연합 AP

의 작가인 김영하는 이것을 ‘설동설’로 표현한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것(지동설)이 아니라,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생각해보라.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에세이 형태로 기술돼 있었다면, 그것을 읽고 이집트를 탈출하거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누군가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이 이야기 형태로 쓰여 있었기에 영향력도 컸을 거라는 얘기다.

20세기에 쏟아진 이야기는 그 전 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들보다 더 많았다. 영화와 TV, 언론, 인터넷, 게임 등의 발달로 우리는 유례없이 많이 이야기들을 즐기다 못해 시달리고 있다. 때론 20세기에 나온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이미 등장했던 ‘고전들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포화 시대에 살고 있는 21세기 우리에게 점점 필요한 건 ‘새로운 캐릭터’가 돼버렸다. 21세기라는 무대에 더 어울릴 만한 캐릭터, 현대인들의 욕망을 충족해줄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해진 것이다. 멜로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나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의 등장을 무엇보다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할리우드나 충무로에서 남성 배우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신성일이나 정우성’으로 대표되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에서 벗어나, 송강호·설경구·박중훈·안성기·하정우 등 여성들의 ‘성적 이상형’에서 벗어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당연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여성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캐릭터가 다양하지 못한 실정인데, 그것은 ‘꿈의 영화 공장’이라고 불리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미국 여배우들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메리칸 스위트하트’(American Sweetheart). ‘온 국민의 연인’으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남성들이 꿈꾸는 연인’을 의미하는데, 미국 여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전략이 된 지 오래다. 오드리 헵번이나 줄리아 로버츠가 취한 바로 그 전략 말이다.

이 전략으로부터 벗어나 성공한 여배우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조디 포스터(의 클라리스 스털링)나 린다 해밀턴(의 세라 코너), 시고니 위버(의 엘런 리플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공상과학(SF)에서 ‘여전사’가 필요하게 되자 등장한 이 캐릭터들은 대부분 레즈비언이거나 남성적 이미지를 가진 여배우들이 차지해왔다(개인적으론 이런 배우들을 선호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어필하는 캐릭터로 보긴 어렵다).

‘남성 옆의 여성’을 거부해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 21세기 가장 주목해야 할 배우는 단연 ‘앤절리나 졸리’다. 30대 중반이 갓 넘은 이 배우(1974년생)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다. 미국 이 해마다 선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 할리 베리나 줄리아 로버츠,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 드루 배리모어, 미셸 파이퍼 등과 함께 단골로 선정돼왔으며, 올해에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세상에는 두 가지 타입의 미녀가 있다’고 주장한다. 드루 배리모어와 앤절리나 졸리. 귀여운 타입과 섹시한 타입의 여성으로 분류되는 이 ‘매력녀 이분법’에서 앤절리나 졸리는 섹시한 타입의 전형을 보여준다(우리나라로 따지자면, 김혜수와 문근영으로 대표될 수 있을까?). 동그란 눈과 도톰한 입술, 큰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잘록한 허리. 그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은 0.7. 진화적으로 앤절리나 졸리는 이성에게 가장 선택받기 좋은 ‘완벽한 몸’을 가진 것이다.

그런 그는 놀랍게도 자신의 타고난 신체적 장점을 세상이 원하는 대로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가 취한 방식은 ‘독립적인 여성’ 또는 ‘여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 전략이다. 그는 시고니 위버의 뒤를 이어 여전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매우 독립적이며, 자신의 여성성을 한껏 드러내면서도 ‘남성 옆의 여성’이길 거부해왔다. 에서 ‘섹시한 암살자’로 나온 그녀의 캐릭터를 보시라. 남자를 교육하고 남자보다 더 멋있는 킬러, 여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가 아닌가! (그가 ‘아메리칸 스위트하트’인 제니퍼 애니스턴으로부터 브래드 피트를 뺏은 것도, 그의 이런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고, 어려운 형편의 나라들을 돕고, 홍수나 쓰나미 같은 대재난 피해를 외면하지 않고,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며, 다양한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도 여느 여배우들과는 다른 행보다. 그는 얼마 전 U2의 보노와 함께 ‘평화를 사랑하는 스타’로 선정됐으며, 유엔에서 ‘세계인도주의상’(2005)을 받았다(미국의 연예전문 사이트 팝이터닷컴(PopEater.com)과 비보닷컴(Bebo.com)이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9월21일 동시에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노가 33%, 앤절리나 졸리가 32%의 지지를 받아 ‘평화 지킴이’로 선정됐다고 한다). 2008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로스의 연인’ 제니퍼 애니스턴을 슬프게 만든 앤절리나 졸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주목할 만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가 남자 배우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안달난 연기를 하지 않고, ‘세상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악당들을 때려눕히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성을 비판하며 그늘을 보살피다

그가 풍기는 독특한 매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는 아직도 의 섹시한 여전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최근 읽은 한 책에서 찾게 됐다. 캐서린 스푸너의 (2009)에 따르면, 앤절리나 졸리는 고딕 시대에서 튀어나온 여신이다. 그가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로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그는 새까만 붙임머리, 고딕풍의 베르사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으며, 할리우드 정상에 오른 순간 고딕풍의 옷과 스타일을 고집해오면서, 주류 스타이면서 동시에 ‘전위적인 아웃사이더’라는 자신의 상반된 이미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고딕이란 르네상스 사람들이 중세 건축을 야만적인 북유럽의 고트족이 가져온 양식이라 비난했던 데서 시작된 표현이다. 말끔한 고전주의 양식 대신 뾰족한 아치, 기괴한 각도의 조형, 괴물 모양의 장식물 등으로 꾸며진 사트르트 대성당은 이성 대신 야성과 환상을 고취했다.) 그는 ‘여전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미국을 비판하고 이성의 시대를 조롱하며 테크놀로지의 그늘을 보살펴온 것이다.

현대 진화심리학은 앤절리나 졸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도 ‘뻔한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배우의 등장을 조심스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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