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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호명해야 하는 이유

윗사람 불법행위 대리한 국정화 조연 열전…

피해자였다 주장하지만 역사의 법정에 서야
등록 2018-07-24 16:07 수정 2020-05-03 04:28

국정화 찬성 언론 기고 대필하고, 찬성 의견서도 ‘차떼기’… 위법에도 복종한 공무원들의 민낯


공무원이 위법만 안 했어도…


“대통령령으로 교과서 발행체제를 결정하는 것이 현행 법령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실무에 깊숙이 관여한 교육부 정아무개 연구사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국정화가 “합법적인 행정행위”였음을 강조했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에 “일부 국정화 가담자는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합법적 정책인데 공무원 처벌은 너무한 것 아니냐, 정권이 바뀌면 국정화 진상조사에 대해 또 진상조사를 받아야 하냐’고 반발한다”고 교육부 분위기를 전했다. 6월 30일자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마친 최승복 조사팀장(현 목포대 사무국장)은 7월18일 인터뷰에서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진상조사를 한 것이 아니다. 일상 사무를 감사하듯 국정화 추진과정에서 의사결정이나 예산 집행 등에서 불법이나 규정 위반이 있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화가 합법적 행정행위였다는 가담자들의 주장과 달리 법률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확인한 ‘주요 위법행위’가 최근 발간된 230여 쪽 안에 빼곡히 담겼다. △청와대 지시를 받은 여론조성·조작 행위 △위법적인 여론조사 △국정화 찬성 언론기고문 기획·대필 △국정화 지지 102인 교수 성명 기획 △‘국정화 비밀 티에프(TF)’로 불리는 역사교육지원티에프 부당 설치와 운영 △국정화 행정예고 의견서 조작(차떼기 의견서) △국정화 홍보 부당 집행 △법적 권한이 없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를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관으로 부당 지정 △국편의 국정교과서 편찬 과정에 청와대 위법·부당 개입 △국편 편사부장으로 특정인 채용 △위법·부당 집필진 선정 △집필계약 체결과 집필료 위법·부당 집행 △집필과정 부당 개입 △국정화 반대 학자 학술연구지원 불법 배제 등 ‘정상 국가’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위법적인 행정행위가 수없이 확인된다.
교육부 공무원이기도 한 최 팀장은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일수록 법령과 규정을 더욱 철저히 준수하면서 추진해야 하는데, 수의계약으로 말도 안 되는 홍보비를 집행하고 역사학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학술연구비 지원에서 배제하는 등 ‘공무원 에이비시(ABC·기본)’도 지키지 않은 법령·규정 위반 행위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진상조사위는 2013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국정화 과정에서 있었던 주요 위헌·위법·부당행위의 진상조사 결과를 지난 3월28일 발표한 바 있다. 교육부 직원 500여 명 중 100여 명이 국정화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29명(국편·유관기관 포함 47명)이 진상조사위의 면담·서면 조사 대상이었다. 진상조사위는 청와대와 교육부 관련자 30여명에 대해 수사 의뢰와 신분상 조처를 요청했으나, 교육부는 이 중 17명만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내부적으론 중징계 2명·경징계 3명(+국편 1명)·경고 4명 선에서 ‘국정화 사건’을 일단락하려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최팀장은 “지난해 10월 수사 의뢰한 ‘차떼기 의견서’ 수사도 검찰이 진척시키지 않고 있다”며 국정화 과정에서 일어난 위법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2015년 11월3일 황우여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5년 11월3일 황우여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렇게 반대가 많은데 설마 국정화로 가겠나’ 생각했고, 저항했으나 어쩔 수 없이 밀려갔다.”(권성연 전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장)

반은 참이고 반은 거짓이다. 권 전 팀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 추진 준비 단계 때 실무 총괄 역할을 맡았다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의 조사를 받은 인물이다. 역사학계·역사교육계·여론이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정책인데 누군들 ‘설마 국정화’를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는 점에서 쉼표 앞말은 맞다. 당시 김신호 차관·박백범 기조실장·전우홍 학생복지정책관처럼 국정화에 반대하다가 퇴직당하거나 좌천된 교육부 공무원도 있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권 전 팀장의 쉼표 뒷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진상조사위가 펴낸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와 조사팀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국정화 조연들의 역사’를 재구성해보니, 진상조사 대상자였던 교육부 공무원 29명(국사편찬위원회·유관기관 포함 47명)의 진술이 권 전 팀장과 비슷한 취지였다. 국민처럼 교육부 공무원도 잘못된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인 박근혜 전 대통령 탓에 ‘고생’한 정황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고 위법행위까지 불사하며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라는 유신시대 퇴물을 불러낸 담당자들이 이제 와 “부역자라고 얘기하는데, 강제징용자였다”(정아무개 연구사)며 가담자가 아닌 피해자로 역사의 법정에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역 아니라 강제징용이었다”

진상조사위는 ‘국정화 사건’을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민주적 절차를 어겨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정부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 농단 사건”으로 규정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직권남용 소지가 있는 부당한 지시에 침묵으로 동조했고, 때로 민주적 절차를 적극적으로 위배했으며, 위법행위까지 서슴지 않으며 ‘윗선의 의중’을 유능하게 수행했다. 오죽하면 본인도 교육부 공무원인 최승복 진상조사팀장(현 목포대 사무국장)이 7월18일 인터뷰에서 “공무원이 조폭 조직도 아니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불법행위를 대신 해주는 방식으로 상사를 모시는 문화가 주류가 된다면 그런 조직은 해체해야 한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국정화 주연’들은 의지와 힘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머리와 손발이 되어준 건 전적으로 교육부와 유관기관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정무적 배려’로 교육부 직원 가운데 과장급 이하 중·하위 공직자 15명은 실명 공개 대상에서조차 제외됐다. 그 결과 백서에는 중·하위 공무원들이 “김○○ 팀장, 권○○ 팀장, 신○○ 과장, 유○○ 연구관, 정○○ 연구사, 신○○ 연구사…” 등 ‘성’과 ‘직책’ 만으로 기록됐다. 모두 역사교육지원팀(2014년 1월13일~2015년 10월4일), 역사교육지원티에프(2015년 10월5일~11월12일),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2015년 11월13일~2017년 5월31일)으로 이어진 국정화 실무 담당 세 부서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이들이다.

“어찌 김연석을, 권성연과 신광수 등의 이름을 넣지 않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말할 수 있습니까?” ‘○○’으로 기록된 그들을 ‘호명’한 건 두 명의 진상조사팀원이었다. 송민희·김선옥 조사팀원은 지난 3월26일 두 장짜리 성명서를 통해 실무자 중에서도 책임자인 과장급 3명의 이름을 부른 뒤 사퇴했다. 국가직 공무원 16만여 명 가운데 과장급 이상 서기관은 5~6%로 추산된다. 교육부 등 중앙부처 과장은 더 적어서, 전체 국가공무원에서 중·하위가 아니라 ‘상위 3~4%’ 수준이다. 이 국정화 조연을 주인공으로 한 소략한 ‘열전’을 기획하면서 핵심 역할을 한 과장급 공무원의 이름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성연 전 역사교육지원팀장

권 전 팀장의 이름이 ‘어쩔 수 없이’ 맨 앞줄에 등장한 건, 이 열전이 일종의 편년체로 서술돼서다. 권 전 팀장은 국정화 추진 준비 단계인 2014년 내내, 1월부터 12월까지 국정화 로드맵과 국정화 핵심 논리를 개발하고,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성·조작한 실무 책임자였다.

권 전 팀장은 조사 과정에서 “2014년 상반기에 국정화 추진이 무리이고 검정 강화가 대안이라는 검토 보고서를 당시 김재춘 교육비서관에게 제출했으나, 결국 VIP(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국정화 저지 노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1년간 팀장을 맡은 역사교육지원팀은 역사과목 교육과정,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편과 교과서 개발 등 역사과목 관련 모든 업무를 담당한 부서다.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지시로 이 팀 소속 신아무개 연구사가 ‘한국사 교과서는 왜 국정화돼야 하는가? 12문12답’(이하 12문12답)을 작성한 시기도 권 전 팀장 때다. 국정화가 추진된 4년 내내 새누리당과 보수단체 등이 국정화 핵심 논거로 널리 활용한, 국정화 반대자들에겐 악명 높은 자료다.

국정화 찬성 여론 조작 기획

2014년 당시 전국역사교사모임 설문조사 결과 역사교사 97%가 국정화에 반대했을 정도로 이미 여론이 나빴다. 청와대는 지지 세력 결집과 국정화 강행을 위해 교육부에 여론 조성과 조작을 지시했고, 교육부는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권 전 팀장과 팀원들이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과 조작 계획을 구체화한 증거가 여럿 확인됐다.

당시 보수언론 독자들이 읽었던 국정화 찬성 칼럼·기고문과 기획기사 상당수가 사실 이 팀의 ‘기획’이었다. 2014년 8월27일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9월 홍보계획(안)’의 ‘9월 집중 홍보 계획(안)’ 등인데, 문건에 등장한 홍후조 고려대 교수(교육학)와 이재범 경기대 교수(사학) 등 국정화 지지 교수의 기고문이 와 에 실린 것으로 파악됐다. 시청자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믿고 본 국정화 지지 인사와 새누리당 의원들이 ‘설마’ 교육부가 써준 대로 읽는 ‘앵무새’는 아니었길 바라지만, 이들의 토론회 출연과 인터뷰를 기획한 것도 역사교육지원팀이었다. 권 전 팀장 시절 작성된 문건 내용대로 2014년 8월30일 KBS 에 홍후조 교수와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출연했다. 권 전 팀장은 “ 패널로 출연한 강은희 의원에게 토론 자료를 제공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화 찬성 인사만 토론회에 불러 여론을 조작한 것도 권 전 팀장이다. 2014년 8월26일 교육부가 주최한 1차 토론회에서 토론자 대부분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자, 같은 해 9월25일 2차 토론회 때는 찬성 인사만 토론자로 불렀다. 권 전 팀장은 “1차 토론회에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인사를 많이 참석시켜 황우여 장관에게 질책받아서 토론회를 한 번 더 했다”고 설명했다.

권 전 팀장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품위유지 의무와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도 받고 있다. 청와대 지시를 받고 신아무개 연구사를 통해 정책과제를 공모가 아닌 지정연구로 부당 지원한 탓이다. 국정화를 지지한 보수 성향 청년지식포럼 스토리K의 대표가 ‘남·북한 역사교과서 비교연구’라는 정책연구 과제를 지원받도록 했는데, 권 전 팀장은 “청와대 최원기 행정관의 지시를 받고 실무적 뒷받침을 했다”고 인정했다.

김연석 전 역사교육지원팀장·역사교육지원티에프(TF) 기획팀장·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기획팀장

권 전 팀장의 후임자인 김연석 전 역사교육지원팀장은 사퇴한 두 진상조사팀원이 맨 처음 이름을 호명할 정도로 명실상부 ‘국정화 내용 관련 실무 총괄 책임자’였다. 편년체가 아니라 혐의의 경중에 기대 조연 열전을 써내려갔다면 맨 앞줄에 나왔어야 할 국정화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스스로 “국정화 내용 관련한 것은 주로 우리 팀에서 만들었다”며 “내가 최종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라며 체념한 듯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중·하위 관리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경징계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업무 주관 부서의 장으로서 청와대 회의시 관련 회의에 직간접적으로 참석했기 때문에 본인 소속 부서의 업무가 청와대나 외부인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상부 지시를 여과 없이 그대로 추진했다”며 그의 책임만큼은 무겁게 인정했다.

김 전 팀장은 △국정교과서 홍보 동영상 제작과 송출비 10억여원을 지출하면서 적정성 확인도 없이 청와대에서 요청하는 대로 ‘사후(방송 송출 뒤) 계약’을 추진해 국고 손실을 초래하고 △황우여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국정도서 편찬을 수행할 법적 근거가 없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에 국정교과서 편찬 업무를 수행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위법 사항’만으로 김 전 팀장의 활약을 이루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진상조사위가 “국정화의 구체적 실행 계획안”이라 평가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추진 계획(안)’(2015년 7월27일) 등 국정화 추진 전략 문서가 김 전 팀장 시절 만들어졌다.

“이건 정말 아니다” 생각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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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색깔론 보고서’로 불리는 검정교과서 편향 사례 분석 자료 등 국정화 뒷받침 자료를 당시 여당과 보수세력에 전달한 것도 김 전 과장이다. 새누리당은 물론 ‘국정화 전사’인 전희경 당시 자유경제원 사무총장과 정경희 영산대 교수 등에게도 제공했다. 교육부는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국정화 자료를 새누리당에만 제공해 당시 야당의 반발을 크게 샀다. 김 전 팀장은 “김재춘 차관님 지시로 ‘여의도 연구소 발행 책자’ ‘8종 교과서 비교·분석 자료’ ‘12문12답’ 등 3개의 문서를 국회에 수십 부 가져갔고, 강은희 의원 등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팀장과 팀원들은 2015년 10월 김무성·김을동·이정현 등 여당 의원의 연설문을 작성해 전달했다. 강은희 의원 등 텔레비전 토론자들에게 사전 정보와 답변지, 시나리오를 작성해 전달하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 등에 게재된 기고문은 교육부가 원고를 작성해 제공하면서 기고자를 섭외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 전 팀장은 국정화가 발표된 뒤 제작 과정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역사교육지원팀장 시절 이른바 ‘동숭동 국정화 비밀 티에프(TF)’로 알려진 역사교육지원티에프 구성을 계획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이 티에프에서 기획 실무를 총괄했다. 티에프가 외부에 알려져 말썽이 생긴 뒤 구성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서도 기획팀장을 했다. 김 전 팀장은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주재로 열린 회의에 “본인은 한 번 간 것으로 기억하고, 우리 팀 유아무개 연구관이 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교육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비서관을 서로 맞바꿔 역임한 김관복·이기봉은 조사 과정에서 김 전 팀장을 청와대 교문수석회의 ‘고정 멤버’로 기억했다고 한다. 국정교과서 편찬 과정에서도 김 전 팀장이 박성민 추진단 부단장, 진재관 국편 편사부장·박덕호 편수실장 등과 ‘국편-교육부 상호 협의’를 담당했다. 그는 “내용이나 편찬기본계획을 만들고, 편향자료 정리, 국편 편찬 기준 챙기기 등을 우리 연구사들이 했다”며 “나는 연구사들이 하는 일을 봐주고 대국회 업무를 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실무 총괄한 국정교과서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정말 아니다”였단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2015 교육과정 취지와 맞지 않는 국정교과서가 나왔다’고 평가하며,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아무개 연구관

유아무개 연구관은 김 전 과장처럼 △국정교과서 홍보 동영상 제작·송출 비용 부당 지출 △법적 권한이 없는 국편에 편찬 업무를 위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위법 사항’은 두 가지에 그쳤지만, 진상조사위는 유 연구관에 대해 “역사 전공자로서 국정화 추진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하면서 역사 비전공자인 부서장 김연석 과장 등 부서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국정화 추진과 관련된 논리 등의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유 연구관은 정아무개·신아무개 연구사와 함께 국정화 논리 개발과 편찬 기준 제작, 국정교과서 집필 등 주요 업무를 담당했다.

유 연구관은 △2014년 1월27일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공론화 로드맵’ △2014년 3월4일 ‘역사교육 개선 추진 계획(안)’ △2014년 10월17일자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추진 현황 보고’ △2015년 10월14일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홍보계획(안)’ 등 국정화 관련 굵직굵직한 교육부 계획을 작성한 장본인이다. 역사교육지원티에프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서 국정교과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국정교과서 편찬심의회를 구성하고, 황 전 장관의 국정화 고시 발표를 준비하고, 각종 국회 제출 자료를 준비한 것도 그였다. 당시 새로 발령받아 업무를 잘 몰랐던 김아무개 사무관이 국정화 반대자를 배제하고 찬성자를 지원하는 이른바 ‘역사학자 화이트·블랙 리스트’(‘역사 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공모결과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으로도 확인됐다.

위법한 지시에 한탄만 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진보 쪽에서 보면 우리가 국정 부역자지만, 집필진은 우리를 좌파로 몰았고 청와대에서 보면 골칫거리였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단다. 국정화 추진 과정과 관련해 “연구사들이 동숭동 티에프와 추진단에서 한 달 이상 새벽 4시에 자서 8시에 출근하고, 숙소에서 자며 고생했는데, 우리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항변했다. 유 연구관은 ‘부당하다거나 위법한 지시라 생각한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있었다”고 했단다. 그러나 ‘문제제기를 하거나 의견을 제시한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공식적으로 그럴 수는 없고, 개인적으로 김연석 과장과 많이 얘기했다”고 답했다. 바꿔 말하면, 부당한 지시에 침묵으로 동조했다는 얘기다.

정아무개 연구사

“국정 역사교과서 내용에는 문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교과서로서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교육과정이 준수되지 않았습니다. 비문도 많고 문장 완성도도 낮았습니다. 고려시대사는 너무 어려웠고 조선시대사는 재미없었고 근현대사는 친일과 독재 미화 등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서술은 예상했고, 우편향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도 예상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그대로 공개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정아무개 연구사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국정교과서를 “너무 부끄러워”하면서 사실상 ‘낙제점’을 줬다고 한다. 2014년 국정화 추진 조짐이 보일 때부터, 대다수 역사학자와 역사교육자와 시민단체와 언론이 줄기차게 우려했던 부분을 그대로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한 듯한 평가다. 그는 2013년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사태 때 ‘검정 8종 교과서 분석 자료’를 만드는 일부터 국정교과서 실물이 나올 때까지 깊숙이 개입한 실무 담당자였다. 국정화 실무 담당자가 정권이 바뀐 뒤에야 그 모든 문제를 ‘마치 몰랐던 일처럼’ 시인한 셈이다.

정 연구사는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 및 국가공무원법 제59조 공정의무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2014년 6월 이강국 교과서기획과장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게서 국정화에 대한 일반인 여론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과장은 이 업무를 정 연구사에게 맡겼다. 정 연구사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을 여론조사 대행 단체로 임의 지정한 뒤, 재단이 자체 여론조사를 하는 것처럼 가장해 여론조사를 하라고 요구했다. 교육부의 여론조사 요청이 드러날까봐 여론조사에 든 비용 3750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같은 해 9월엔 “공신력 있는 기관에 다시 의뢰하라”는 서 전 장관의 지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여론조사 대행을 요청했다. 교육부가 설문 문항까지 직접 작성·검토한 여론조사였으나, 정 연구사는 교육부의 요청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공문을 꾸몄고 조사비 3600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교육부가 국편을 역사교과서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하고, 국정화 사전정지 작업으로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을 개발하고, 청와대의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 수정 요구를 검토할 때도 정 연구사의 손을 거쳤다. 국정화 역사 곳곳에 그의 ‘지문’이 묻어 있지만 그는 당당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결정하고 추진한 정책이었습니다. 역사교육계와 학계는 우리를 박근혜의 주구라고 하지만, 유아무개 연구관과 본인은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공인한 중도파라고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회피하지 못한 죄, 도망가지 못한 죄입니다. 동료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신광수 전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대외협력팀장 및 기획팀장과 김아무개 사무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서 대외협력팀장과 기획팀장으로 일했던 신광수 과장은 국정화 홍보비 사후 처리와 인터넷 배너 홍보비 부당 처리 등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 지시로 이른바 ‘역사학자 화이트·블랙 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것도 신 전 팀장이다. 둘 다 최승복 진상조사팀장이 인터뷰에서 “공무원 에이비시(ABC·기본)도 지키지 않았다”며 참담해한 위법 사례다.

역사학자 블랙리스트 작성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이미 폐지됐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린 지난 3월29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선고 결과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이미 폐지됐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린 지난 3월29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선고 결과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청와대는 2016년 7월 교육부에 ‘국정화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학술연구지원사업에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특정인을 지원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 신 전 팀장은 같은 팀 김아무개 사무관에게 찬성 정도에 따라 ‘○’(지원), ‘◎’(적극 지원)으로 표기하고 반대자는 지원 여부를 공백으로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이 지시 사항이 ‘역사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공모결과 검토’ 보고서로 구체화됐다. “순수 역사학 분야의 경우 ‘올바른 역사교과서’(국정교과서) 개발에 우호적인 역사 전공 교수로부터 연구 어젠다를 수합하고, 기타 분야는 102명 지지 성명 참여 교수 중 주도적으로 역할을 담당한 교수 중심으로 개별 연락을 통해 어젠다를 수합한다”는 내용 등이다.

교육부는 같은 해 8월9일 한국연구재단에 이 ‘역사학자 화이트·블랙 리스트’를 전달했다. 두 달 뒤인 10월31일 연구자 최종 선정 결과, 국정화 찬성자는 전원 선정되고, 반대자는 공동연구 분야에서 선정된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탈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육부에서 ‘12문12답’ 등을 만든 뒤 수도권 대학교수로 간 신아무개 연구사도 이때 신진연구자지원사업에 선정됐다. 특정 정책 찬반 여부에 따라 학술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인문사회분야 학술지원사업 처리규정’ 및 국가공무원법상 공정의무 위반이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법으로 보장받는 한국연구재단에 특정인 선정과 배제 여부를 지시하는 것 역시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신 전 과장과 박성민 전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 등의 지시로 화이트·블랙 리스트를 작성한 김 사무관은 국정화 홍보영상 제작과 송출 비용을 위법하게 지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상파 홍보영상 방송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광고’를 ‘협찬’인 듯 꾸몄다. 그는 “BH(청와대)에서 협찬으로 하라고 한 것이고, 김성근 과장(티에프 홍보팀장) 혹은 오석환 국장(티에프 단장)의 지시를 받았고, 빨리하라는 지시만 인식했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최승복 진상조사팀장은 “나는 공무원에게 두 가지의 방패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무원 방패론’을 설명했다.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함부로 배제할 수 없는 ‘직업공무원제’가 하나요, 불법적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법과 규정’이 다른 하나다. 공무원은 ‘기안권’이 있는데, 자신의 의지가 아니면 기안을 하면 안 되고 기안을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가 아님을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최 팀장은 “국정화 관련 장·차관부터 실국장·과장·실무자까지 대부분 자신은 국정화에 반대했다고 말하는데, 이를 명시적으로 남겨두거나 기안을 거부한 실무자는 없었다”고 전했다.

역사교육지원티에프 홍보팀장을 맡았다가 진상조사를 받은 김성근 과장은 “당시 홍보팀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발령을 내려고 했다가 그분이 강하게 반대해 일주일 정도 공석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교육부 안에서도 무비판적인 복종 외에 ‘다른 선택’이 가능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다른 방패를 쓴 사람들이 있다

같은 교육 전문가 집단이지만 교육부 밖에서는 국정화 반대 서명을 한 교사(1차 2만1천여 명·2차 1만6천여 명)와 교수·학자(170여 개 대학 2700여 명)가 징계와 훈포상 제외, 학술지원 배제 등 각종 불이익을 감내하며 국정화라는 비극을 적폐 청산이라는 희망의 서사로 바꿔내기도 했다.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육훈 서울독산고 교사는 국정화의 1차적 책임이 박근혜의 청와대와 새누리당 등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교육부 담당자들도 전문가적 정체성이나 공익을 앞세우기보다 권력에 순응하고 ‘승진이나 영전 혹은 손해 보지 않기’ 등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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