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의 조사 대상자 현황을 눈여겨보면 ‘국정화 과거 청산’의 모순과 한계가 드러난다. 실패한 ‘역사 쿠데타’로 기록된 국정화가 결정되고 추진된 시기 교육부 장·차관과 고위 공무원이 면책받을 여지가 없음에도, 조사 대상자 명단에 황우여·이준식 전 교육부 장관과 김재춘·이영 전 교육부 차관 등 당시 교육부 수장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의 국정화 추진 지시를 교육부에 내려보낸 장본인들이지만 공직을 떠났다는 이유로 조사도 아닌 ‘면담 대상’ 명단에 마치 ‘단역’쯤 되듯 빼꼼히 이름을 내밀고 있다.
장·차관 지시로, 때론 장·차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소통하며 국정화를 추진한 고위 공직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김관복 전 교육부 기조실장·청와대 비서관, 김동원 전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장 겸 학교정책실장 등 교육부 책임자들은 퇴직으로 민간인 신분이 된 덕에 행정처분을 받지 않는 ‘퇴직불문’에 부쳐졌다.
“책임지는 간부가 없다”심지어 국정화 추진 당시 홍보비 부당 집행 등 심각한 위법 사항에 대해 이들이 지시만 하고 결재를 거부한 탓에 실무자인 주무관·사무관·과장이 ‘독박’을 쓸 처지에 놓였다. 최승복 진상조사팀장(현 목포대 사무국장)은 “불법행위와 관련된 간부 중에 책임지는 간부는 없었다. 교육부 국·실장 중 ‘내가 시켰다, 내 책임이다, 내가 책임진다고 시행하라고 지시했다’는 분이 없었다”며 “시킬 때는 조직과 상사의 권위를 내세우지만 책임질 때는 그런 호언장담은 온데간데없었다”고 비판했다. 교육부 장·차관과 고위 공직자가 국정화 책임자라는 점은 따로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지당한 사실인데도 굳이 ‘국정화 주연급 조연 열전’이 필요했던 이유다.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백서)와 진상조사위원·팀원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퇴직불문’으로 구사일생 면책을 받은 고위 공직자들이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결론적으론 ‘위로는 청와대에, 아래로는 실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화 결정 당시 교육부를 이끌었던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서면 답변 내용이 대표적이다.
황 전 부총리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청와대 입장은 완강했고, 황교안 총리에게 (반대 여론) 실정을 보고하고 함께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마지막으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총리가 직접 국정화 확정고시 대국민담화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정화를 결정한 정치적 책임이 청와대와 황교안 전 총리한테 있다는 얘기다.
황 전 부총리는 서면 답변에서 “직원들이 법령을 어겼을 리 만무하고 혹시라도 다른 허물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본인의 부덕의 소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낱 수사에 불과한 ‘도의적 책임’을 질지언정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안에는 철저히 ‘결재권자가 아니었다’는 논리로 책임을 아래로 떠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화가 확정고시된 2015년 11월3일 기준으로, 박 전 대통령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딱 한 명’이었다. 바로 황 전 부총리 자신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3조는 “교육부 장관은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다”고 돼 있다. 황 전 부총리는 진상조사위 서면 답변에서 “내부적으로는 차관 전결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차관을 법적 책임자로 지목했다. 청와대의 부당한 압력을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대선을 치른 당대표를 지낸 연상의 장관이라는 점에서 교문수석이 구체적인 지시를 장관에게 직접 하지는 않는 분위기였고, 대통령께서 구체적인 지시를 직접 하시지는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자신은 ‘지시 라인’에서 비껴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차관 ‘전결’이었다니…황 전 부총리는 ‘불법 비밀 티에프(TF)’ 혐의를 받는 역사교육지원티에프 구성은 “학교정책실장의 전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연석 전 역사교육지원티에프팀장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부총리가 우리 팀에 점심을 사면서 ‘정책 결정되기 전에는 좌고우면할 수 있지만, 결정 뒤에는 그걸 따라야 하는 게 공무원의 숙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황 전 부총리는 새누리당 대표 시절부터 국정화 지지자였다. 2014년 8월 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국가가 책임지고 한 가지로 가르쳐야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지 않을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진상조사위 서면 답변에서는 “장관으로 취임한 뒤 각계각층의 자문을 거치면서 전문가는 물론 국민 여론도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거기엔 타당하고 합리적인 논리가 있음을 인지했다”며 입장 변화가 있었음을 주장했다. 결정적으로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 국정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고, 가급적 검인정 체제 안에서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타당하고 현실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 전 청와대 교육비서관
김연석 전 역사교육지원티에프팀장은 ‘교육부 내에서 국정화를 주도하던 사람은 누구였느냐’는 진상조사위의 질문에 “김재춘 차관, 이기봉 교육비서관 등이 주도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전 팀장은 교육부 내에서 국정화 실무를 총괄한 책임자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가 김 전 차관을 ‘주도자’로 지목한다는 얘기다.
김 전 차관은 박 전 대통령의 교육 공약을 만든 장본인이다. 이런 인연으로 2013년 3월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학자로서 검정을 넘어 자유발행제를 주장하는 보고서도 썼으나, 2015년 2월 국정화 추진 총대를 메고 교육부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김 전 차관은 청와대에 있을 때 “국정교과서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그쪽으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권성연 전 팀장은 조사 과정에서 “2014년 상반기에 현재로서는 국정화가 무리이고 검정 강화가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검토 보고서를 김재춘 교육비서관에게 제출했고, 김 비서관도 동의했으나 결국 VIP(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교육부에 들어온 뒤에도 “국정화 관련해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교육부 차관 시절) 신기할 정도로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이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교육부 담당과장, 실장에게서 역으로 보고를 받았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김관복 전 기조실장은 “핵심 지시 사항은 장관, 차관을 통해서 지시된다. 중요한 사항은 대통령 또는 수석이 장·차관에게 바로 지시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동숭동 비밀 티에프(TF)’로 불리는 역사교육지원티에프 시절 한국사 검정교과서의 편향성을 주장하고 국정화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집중적으로 제작됐다. 한 티에프 관계자는 ‘국정화 논리 개발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김재춘) 차관 아니면 청와대”라며 “차관이 검정교과서에 독재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어보라고 시켰다. 동숭동에 있을 때 교육적으로 부적절한 구성 사례를 검토해보라고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은 “언론이나 민원에 독재 관련 개수 이야기가 나오길래 확인 차원에서 세어서 자료로 만들라고 했고, 부정적 용어도 언급된 횟수를 조사하라고 했다. 궁금해서, 확인 차원에서 했다”고 해명했다.
이준식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황 전 부총리와 김 전 차관이 국정화를 결정할 당시 책임자라면, 이준식 전 부총리와 이영 전 차관은 국정교과서를 버려야 할 때 버리지 않은 책임자였다. 다만 기계공학 교수인 이 전 부총리와 경제학 교수인 이 전 차관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전임자들과 달리 주로 ‘역사 문외한’임을 내세워 책임을 청와대와 실무자에게로 돌리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황교안 거수기 노릇한 교육부총리이 전 부총리 시절 교육부는 청와대로부터 국정교과서 원고본·개고본·현장검토본과 관련한 부당한 수정·보완 지시를 받아 이행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 전 부총리는 “청와대로부터 어떤 부분에 대해 수정·보완 지시를 받았는지는 담당자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에서 직접 본인에게 교과서 내용과 관련된 어떠한 의견도 전달한 적이 없고,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담당자가 청와대에 보고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본인이 청와대에 보고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며 실무자 탓을 했다.
교육부는 2016년 12월27일로 예정된 국정교과서 현장 적용 방안 발표일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국정 1년 유예안’을 상정했다. 사실상 국정교과서의 최종 사용 여부를 다음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이다. 교육부 실무자가 진상조사위에 진술한 내용을 보면, 이 전 부총리는 현장 적용 발표 며칠 전 교육부 내부 방침과는 달리 ‘2017년부터 국·검정 혼용안’을 제안했다. 이 전 부총리는 ‘국정 1년 유예, 2017년 시범학교 적용안’에 대해 “황교안 총리가 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 수가 적어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학교가 국정교과서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검정 혼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교육부는 ‘2017년 연구학교를 선정해 국정교과서를 적용하고, 2018년에 국·검정을 혼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어찌됐건 황 전 총리의 의지대로 2017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기로 한 셈이다. 이 계획은 학교 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아 무산됐다. 전국 5249개 중·고교 중 경북의 사립학교 세 곳이 신청했으나, 학생·학부모의 반발과 소송 끝에 세 곳 모두 연구학교 신청을 철회됐다. 무용지물이 된 국정교과서는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 업무지시 2호에 따라 5월31일 공식 폐기됐다.
이영 전 교육부 차관이영 전 교육부 차관은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인 2015년 10월21일부터 국정교과서가 공식 폐기된 2017년 5월31일까지 재직했다. 그는 “교과서가 큰 업무인 것은 알았지만, 평생교육·교실수업·장학금 제도 개선과 관련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수락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차관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재임 기간에 활동했던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과 관련해 “역사 관련해서는 청와대 지시를 추진단에서 먼저 듣고 나에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교과서 쪽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선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과 관련해서도 “이 사안은 개입이 많았지만 내 전문 영역도 아니고, 내가 행정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규정과 절차를 지키는 것 이상의 주도 등은 하지 않는 것이었다. 탄핵 정국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추진 과정에서는 직접적으로 차관의 의견 전달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전 차관은 취임 뒤 보수 성향 관계자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국정화 찬성 협조를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차관은 행정예고 기간 국정화 홍보를 위해 보수 학부모 단체를 만났으나 “추진단에서 자리를 조성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또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직전인 2016년 10월26일 를 만나 홍보와 지지 여론에 대해 상의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이후 유독 만 국정화 찬성 기고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전 차관은 이 역시 “추진단에서 주선해서 만났다”고 해명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소회그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방법론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차관으로서는 해야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규정과 절차를 지키고 행정적으로 하라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수준에서 일했다”는, 규정과 절차를 지키는 사람이라 방법론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소회를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김관복 전 교육부 기조실장 및 청와대 교육비서관각 부처 기조실장은 예산·국정과제·홍보 등을 총괄하고, 청와대와 장·차관의 지시를 받고 실국장에게 이를 하달하는 자리다. 청와대 교육비서관은 청와대에서 교육 업무를 총괄하고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보좌하는 일이다. 김관복 전 실장은 국정화 추진이 한창일 때 두 자리를 모두 거쳤다. 청와대와 교육부가 긴밀하게 협업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역사교육지원티에프나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 ‘청와대 지시’를 전달하고 업무 수행을 감독하고 결과를 보고받는 역할을 했다.
김 전 실장은 동숭동 역사교육지원티에프가 시작된 무렵부터 김상률 교문수석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2015년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교문수석 주재 회의에 참석했고, 이 회의에서 청와대 지시를 받았다. 김 전 실장은 “장·차관 지시에 의해서 회의에 갔다. 교문수석 주재 회의를 하면 비서관들이 참석한다. 교육·홍보·소통 비서관이 참석했고, 교육부 국장이 참석하면 격이 안 맞는다고 차관을 오라고 한다. 차관이 가기 곤란하니까 ‘교육부 1급 2명 중 실국 업무를 많이 아는 기조실장이 계속 회의에 참석하라’고 해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역할을 “공직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의 철학, 기조 전체가 바뀌고 정책도 많이 바뀐다. 공무원으로서 주어진 직책과 사명에 따라 성실하게 일했다”는 얘기다. 김 전 실장과 같은 시기 같은 공무원이었어도 김신호 차관·박백범 기조실장·전우홍 학생복지정책관은 ‘올바르지 않은 역사교과서’에 반대하다가 퇴직당하거나 좌천됐다. “공직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는 김 전 실장의 말 가운데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전제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청와대 심부름꾼 고위 간부들
공무원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박성민 대한민국학술원 사무국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 ‘공무원 인생=운명×선택’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경기도교육청이 ‘국정화 반대 조례’를 만들 당시 경기교육청에 파견돼 8개월간 ‘넘버3’ 기조실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역사교과서정상화추진단 부단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1년4개월간 일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로부터 “교육부 국정화 추진 업무에 대한 실질적 총괄 책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기조실장이 주책임자일 수밖에 없는 경기교육청 국정감사 전날 느닷없이 추진단 부단장 발령을 받았다. 진상조사위에 체념하듯 “사학과를 나와서 그랬다고 들었다”고 했다는 박 전 부단장의 말에서 짙은 ‘운명의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앞선) 동숭동 비밀 티에프(역사교육지원티에프) 건도 있고 해서, 아무도 못한다고 해서,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아서” 자신이 추진단 부단장으로 갔다는 그의 말에는, 공무원도 민간인과 똑같이 ‘다른 선택’으로 ‘다른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힌트가 담겨 있다.
박 전 부단장은 추진단에서 청와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역사교육 업무 전반을 담당했다. 특히 신광수 추진단 대외협력팀장·기획팀장과 함께 ‘역사 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공모 결과 검토’(이른바 ‘역사학자 화이트·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부단장은 국사편찬위원회 진재관 편사부장 등과 함께 국편과 교육부의 상호 협의를 진행한 주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외부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에 간섭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국정화 추진 당시 교육부 고위 공직자로서 ‘현직’에 남은 인사 중에는 이기봉 전남교육청 부교육감(전 청와대비서관·기조실장)도 있다. 교육부의 국정화 내용 관련 실무를 총괄한 김연석 전 역사교육지원티에프팀장이 김재춘 차관과 함께 국정화를 주도한 인물로 꼽았으며, 청와대의 부당한 개입을 교육부에 내리꽂은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김 전 팀장은 “편찬심의위원을 구성할 때 청와대에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을 넣으라고 얘기하고, 이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명단에 올랐는지도 몰랐다. 대부분 청와대 김한글 행정관이 이기봉 비서관을 통해서 넣었다”고 설명했단다. 정아무개 연구사는 조사팀에 “역사교육지원티에프 교문수석 회의에서 이기봉 비서관이 오석환 국장에게 강압적인 지시를 하는 것(그냥 해라)을 목격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때 김관복 전 기조실장과 서로 청와대 비서관과 교육부 기조실장 자리를 맞바꾸는 ‘회전문 인사 이동’을 했다. 진상조사위는 “교육부에서 국정화 추진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던 자들과 소통하며 청와대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며 “교육부 업무 담당자들이 법령을 위반해 홍보 업무를 집행하고 이를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청와대의 불법적 업무 추진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거나 추진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고 평가했다.
오석환 전 단장은 2015년 10월5일부터 2015년 11월12일까지 역사교육지원티에프 단장직을 수행했다. 당시 이 티에프는 정식 직제로 편성되지 않은 비공식 조직이었다. 직무상 관리·감독권이 없음에도 비밀 티에프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해 직제 규정과 인사규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겨우 ‘한 달 일주일’ 일했지만 오 전 단장의 혐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 전 단장 시절 티에프 김아무개 사무관이 국정화 광고 업무를 협찬으로 진행하고 1억원 이상 과도한 제작비를 지출하는 업무상 배임 행위를 했다. 김연석 전 팀장은 1억원 이상 지출시 실장급 이상의 결재를 받아야 함에도 10억원의 협찬 계약을 전결 처리하기도 했다. 티에프는 기존 검정교과서 편향성 논리를 개발·배포해 공정의무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오 전 단장은 티에프 최고책임자로서 해당 혐의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를 방조·묵인해 국가공무원법 제59조 성실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 전 단장은 진상조사팀 면담에서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며 “국정화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건 기준을 정해서 (진상조사위가) 평가해달라”는 전형적인 ‘공무원식 답변’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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