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진정한’ 난민인지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기보다는, 보호가 필요한 이들이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채현영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법무담당관은 ‘진짜 난민’ ‘난민 남용’ 등 유엔 난민협약 취지를 거스르는 언어를 아주 경계하는 사람이다. 채 담당관이 제주도 예멘 난민들을 두고 한국 사회에 “가짜 난민” 논란이 일어난 것을 더 참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는 6월18일 법무부 주최로 열린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난민’ 포럼에서 “한국 사회가 난민과 이주민을 이 정도로 모르는가. 그동안 내 활동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떤 걸 이뤘을까” 하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포럼 사흘 뒤인 6월2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채 담당관은 한결 차분한 태도였지만, 제주도 사태를 우려하면서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정부가 난민 보호 일관된 메시지 보내야한국 정부는 출도 제한 조처로 예멘 난민의 거주지를 제주도로 제한했고, 예멘을 ‘무사증 입국 제외 국가’(비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할 수 없는 국가)로도 지정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는지요?대한민국은 하나의 국가고 한 나라 안에 있는 난민신청자에게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일단 본토에 들어오면 이동의 제한이 전혀 없는데, 제주도로 들어와 난민을 신청했다고 제주도에 묶어놓으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법무부 쪽에 출도 제한은 안 된다고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예멘 출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난민신청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제주도는 그동안 난민 수용 경험이 없고 제주도로 들어온 난민도 육지로 이동했던 터라,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흡수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원칙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여러 어려움이 예상돼, 비차별 원칙과 사회 통합 우려를 법무부에 전달했습니다.
예멘을 무사증 입국 제한 국가에 포함시킨 부분은 조심스럽습니다. 모든 국가가 비자(사증) 정책을 가지고 있고, 누구를 입국 허용할지는 해당 국가의 권한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 입국을 안 시켜주면 난민들은 갈 곳이 없고 국내 실향민으로 떠돌 수 있어요. 난민협약은 기본적으로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한국은 난민협약 가입국이며 난민을 수용할 여력도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한국은 난민을 수용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주도 예멘 난민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대책은 무엇입니까?지난 몇 주간 6개월 취업 제한 해제 등 정부 정책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현시점에서는 ‘불안감 해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멘 난민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안내가 없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도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삶, 앞으로의 절차,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게 난민과 한국인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비록 이상적일지라도 국제 기준에 비춰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일까요?기존 시스템으론 (549명에 이르는) 예멘 난민신청자를 1차 심사할 인력도 부족하고 독립적인 심사도 어렵습니다. 인력 충원과 시스템 강화 없이 심사가 불가능합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예멘처럼 내전 상황인) 시리아 국적이 확인되면 개별 난민을 심사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해주기도 합니다. 한국은 시리아 출신 사람 대부분에게 인도적 체류 자격을 줬지만 개별 난민 심사는 다 했습니다. 예멘처럼 보호가 필요한 국가 출신들을 위한 빠른 심사 조처가 필요합니다.
인권 역사가 짧아서 생기는 문제 다른 나라에서는 예멘 난민을 어떻게 처우하고 보호합니까?정확한 자료는 없고, 유엔과 비정부기구(NGO) 등을 통해 수집한 자료가 있습니다. 2017년 10월 말 기준 대략 소말리아에 4만44명, 사우디아라비아 3만9880명, 지부티 3만7428명, 에티오피아 1만4602명, 수단 7398명, 오만에 1천 명이 있는 수준입니다. 인접국 외에 말레이시아가 있는데, 난민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유엔난민기구가 대신 난민 심사를 합니다. 저희에게 등록·접수된 예멘 난민신청자만 2800명입니다.
캐나다는 지난해 예멘 난민신청자 심사 종결 400건 중 (집계에서 제외해야 하는) 철회 126건, 난민 인정 262건, 불허 12건입니다. 미국은 심사 종결 115건 중 철회 28건, 난민 인정 48건, 불허 39건인데 한국과 달리 불허가 되더라도 (예멘 등 인도적 위기국) 리스트에 오른 나라 국민들은 강제송환하지 않습니다.
난민과 모슬렘(이슬람교도)을 테러리스트나 잠재적 성범죄자 등으로 간주하는 혐오 정서가 한국 사회에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퍼져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시민단체·유엔난민기구 등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있을까요?한국에만 있는 분위기는 아니고, 전세계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반면 한국적인 상황도 있는데, 아무래도 민주화나 인권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난민 보호의 역사도 짧아 난민이 어떤 존재인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난민 혐오 주장에 사실 확인을 한다든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유엔난민기구나 시민단체 활동만으론 부족합니다. 또 한국의 주류 종교계는 해외 선교활동에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국내에서도 종교적 덕목 차원에서라도 신자들이 난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있도록 캠페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2013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습니다. 난민법 시행 성과와 한계를 짚어주세요.절차적 권리 부분이 난민법 시행 전보다 많이 강화됐지만 난민과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처우에 개선할 부분이 여전히 많습니다. 사실 법무부에서 난민 보호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난민과는 법무부에서도 소수 중 소수고,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설득해도 예산 확보와 인력 충원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난민법을 시행하면서 인력과 자원을 충분히 확보해주지 못한 부분에는 저도 통감합니다.
난민 문제, 실리적으로 접근할 수도 끝으로, 보편적 인권이나 국제법적 당위성 만으로는 난민 보호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한국사회가 난민을 보호해야 할 다른 이유를 더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그 위상에 맞는 권한을 요구하려면 우리도 그만큼 참여해야 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최근 일반인들도 유엔 등 국제기구 자원봉사, 인턴십, 취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국제기구에서 한국 사람을 더 많이 받아주길 원하실 거구요. 그런데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걸 우리가 왜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요?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은 바라는데, 국제기구가 추구하는 보편적 인권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국제적인 인권기준, 보편적 인권에 대해서 좀 더 동의해주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국제’에만 관심 있고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면, 국제사회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겠죠.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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