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이재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페이스북에 올린 ‘#미투 #위드유’ 글이 주목받았다. 언론은 이 의원이 서지현 검사의 ‘바통’을 이어받을 거라 기대하며 그의 피해 경험을 캐물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밝히지 않았다. 은 이 의원에게 성폭력 피해 경험이 아니라, 이 의원이 말하기를 주저하고 망설이는 이유를 물었다. 13년 전 피해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의원의 얼굴은 상기됐고, 눈가는 붉어졌다. 이 의원은 “서 검사가 오죽하면 1월31일 ‘장례식장에서 있던 그 일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입장문을 냈겠냐”며 “장례식장 그 일 말고, 그 이후에 왜 말하지 못했는지에 집중해달라”고 했다. 그는 서지현 검사가 8년 동안 겪은 내적 고통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마치 서 검사가 미처 다 못한 이야기를 이 의원이 대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3년 전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font></font>페이스북에 썼던 그 글은 완전히 삭제됐나, 아니면 남아 있나.그대로 가지고 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그 글을 내린 건 정말 단순한 이유였다. 그 사람 옆에 있고 싶다는 무게감만 주려 했다. 내 피해 사실을 쓴 글보다 ‘#미투 #위드유’라고 간단히 적은 글이 나을 것 같았다. 진짜 고민한 것은 지금 올린 그 글조차 올리지 말까 했다는 것이다. 인간 이재정이라는 스피커 앞에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나 소방법 개정이라는 정책 이슈가 놓여 있다. 그런데 여기서 미투를 얘기하면 앞으로 나의 스피커는 미투에 몰입되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다 국회의원만 이런 처지에 놓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서 검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피의자를 상대하고 재판을 해야 하는데, 당분간 사람들은 검사 서지현에게서 미투만 읽으려 할 거다. 서 검사 역시 정무적 판단을 했으면, 못했을 일이다. 그런 일을 한 것이다.
그 부분까지 피해자가 고민해야 한다는 게 부조리하게 느껴진다.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이나 검사 아니라 성폭력 피해 경험 있는 모든 여성의 처지가 같다. 종합적인 판단을 못해서, 정무적 판단을 못해서 글을 올린 게 아니다. 서 검사도 했으니 나도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나 나름의) 결단은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쓸까 말까가 아니라 이 글을 올릴 때 이미 했다. 기자를 만나서 “나는 다 얘기했다”고 말했다. 페북에 서 검사에게 연대 의사를 표시하고 나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고 적었다. 그런데 기자가 ‘미투는 구체적으로 사례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미투 방식을 누가, 언제 법적으로 정해서 내게 강요할 수 있나. 페북 글을 쓴 이후 계속 ‘언제 누가 그랬냐’는 것만 질문할 것 같았다.
페북 글을 올린 뒤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많았을 것 같다.다음날 문자가 100통 넘게 왔다. 다른 출입처에 간 동향, 동문 기자, 법조 때 알았던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떤 분은 하고 어떤 분은 안 하기도 어려워서 답할 수 없었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글 올린 첫날 언론의 요청은 좀 불편했다. ‘톱으로 가겠다’ ‘앵커하고 모시겠다’ 이런 말들이 싫었다. 서 검사가 JTBC 인터뷰에 나온 그 방식대로 제2의 서지현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언론사 특유의 욕심이 읽혔다. 이 사안을 본질적으로 보고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인가, 솔직히 화가 났다. 미투를 얕은 트렌드로 보는 것인가 싶어 내키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피해 어마어마한가’라는 질문 충격”</font></font>아무도 미투를 강요할 수 없다. 이런 망설임을 기록하는 것도 미투 운동을 보도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수한 ‘서지현’들이 지금도 주저하고 있을 것이다.‘황교안 총리 앞에서 그렇게 대세게 하던 이재정이 왜 그래?’라는 반응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이재정도 이렇게 망설인다. 그게 핵심이다. 참 씁쓸한 게 여성 의원들이 새벽같이 국회에 온다. 새벽 대여섯 시 정도. 여성 의원들 있는 곳에서 야당 여성 의원 한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거기서 텔레비전으로 서 검사 보도를 보던 분이 “8년이나 지난 일을 꺼내서 저런다”고 했다. 제가 그분한테 그랬다. “저는 13년 전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제 사건은 13년 전 일이에요.” 서 검사가 오죽하면 1월31일 ‘장례식장에서 있던 그 일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입장문을 냈겠나. 서 검사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똑같다. 장례식장 일 말고, 그 이후에 왜 말하지 못했는지에 집중해달라는 그 마음 말이다. 내 피해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얘기를 삼간 적은 없다. 이 사건 이전부터 동료 국회의원들한테 여러 번 얘기했다. 다만 이걸 공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은 다르다. 나도 모르게 피해자성이 나를 더 지배하는 것을 인식하고 나도 놀랐다. 누군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 못할 건 없지만 100% 확신한다.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나는 그 과정에 갇힐 것이다.
페북 글 이후 기자들 질문을 보니 대체로 피해 사실의 심각성에 관심이 많더라.“피해가 어마어마한가”라는 질문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심각하게 당했냐”고도 묻더라. 심각하고 심각하지 않은 게 어디 있나. 사람들은 성추행에도 용인할 수 있는 수치가 있다고 본다. 사회생활 하는 여성이면, 그 자리에 동석했으면, 그 분위기를 함께 즐겼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심각성을 드러내야 내 얘기에 더 호응하고 사안의 문제점을 인식하겠다는 얘기인가. 그 시각에 동의할 수 없어서 당장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성추행당하는 와중에도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피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우리는 왜 그런 고민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다보면 시간이 걸린다. 바로 ‘이러지 마세요’ 하고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어색하지 않게 잘라야지 하고 때를 보다가 오히려 피해가 가중되기도 하고, 받지 않아도 될 비난을 받기도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날 훼손하는 방식으로 항변하는”</font></font>아직도 그 일을 떠올리면 고통스러운가.양가 감정이 든다. 나는 왜 그 순간 더 일찍 그 장소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왜 그 사람에게 더 단호하게 따져묻지 못했을까. 억울함도 있고 분노도 있다. 변호사 초년에 로펌에 면접 다니면서 겪은 일이다. 고검장 출신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이다. 언론에도 나오는 분이다. ( 인터뷰 뒤 그는 다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가해자가 검사장 출신의 로펌 대표라고 했다.) 당시에 너무 충격적이어서 문제제기를 할까 고민했다. 사회 이슈에 대해 발언해왔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시민사회 선배들이 도와주겠다 했는데, 내가 자신이 없었다. 두 사람만 있는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증거 공방을 해야 하고, 나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항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힘들었다. 엄청난 연차 차이가 나는 법조계 대선배와 갈등하는 구조에 들어갈 텐데, 나의 구직과 사회적 진로도 당연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다 밝힐 수 없다는 걸 공감한다.말로는 다 밝힐 수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게 사실이다. 페북 글 이후 느끼는 건데, (여성이 겪는 성폭행 피해는) 시간이 지나도 딱지가 생기거나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아마 가해 행위를 한 그분도 내가 피해 사실을 적은 글을 올렸다 해도 자기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거다. 그분은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었을 거다. 내겐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지만 그분은 그 뒤로도 전화를 계속 해댔다. 일 때문도 아니었다. ‘아, 저분은 내가 문제제기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구나.’ 여성들은 이런 일을 공론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거다. 휴대전화 연락처에 그분 이름이 하나, 둘 저장돼 있고 그다음에 ‘받지마’라고 적은 전화번호가 있다. 그분이 번호 3개를 바꿔가면서 전화했다. 그는 범죄적 행위를 한 뒤에도 “출장 갔다 선물 하나 사왔는데 주겠다”고 연락했다. 자신감은 결국 경험에서 나온 거다. 성폭력 가해 사실을 아무도 문제제기한 사람이 없었고, 게다가 변호사들 중 권리의식이 있다고 이름난 이재정도 안 했다, 아마 이후 더욱더 자신감을 가졌을 거다.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 시보로 나올 때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검사 시보 시절에 검찰 문화를 분명히 느꼈다. 단체 도박 사건으로 들어온 여자 피의자가 있었는데 “도박 안 했다”고 하니까 수사관이 “도박하러 오는 거지, 네가 그럼 거기서 남자 × 빨라고 갔냐”고 다그쳤다. ‘저런 얘기 못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나한테도 성희롱을 하는데 내 말을 듣겠나. 중앙지검 수사관들은 이동도 없고 스스로 최고의 권력을 가졌다고 자신하는 분들이다. 꽤 지난 일이라 얼마나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검찰 전반의 문화가 그러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회적 평가 피해 입고 싶지 않아” </font></font>법조 전반의 문제인 것 같다.법조 문화에 익숙해지는 걸 강요받는 시간이 연수원 기간이다. 연수원 지도교수 1명에 연수생 20명이다. 회식을 할 때 지도교수 옆자리는 비워놓는다. 그 자리에 여성 연수생이 앉는 거다. 어느 연수원, 어느 조, 어느 반도 그건 예외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게 비단 연수원만의 문화겠나. 검찰 조직에 있지 않아도 법조인이라면 그 문화에서 독립적일 수 없다. 전문직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자기 능력과 결부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일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서 피해 입고 싶지 않았다. ‘국회의원 이재정이 다른 발언으로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언론에 나와도 부족할 판에, 미투로 언론을 채우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 말이다. 이걸 자기 욕심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주위 반응은 어떤가.이재정이라는 정치인의 스피커가 이 문제에 매몰되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분이 많았다. ‘왜 국회의원까지 이런 트렌드에 동참해야 하냐’고 말한 분도 있다. 사실 이 얘기는 서운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이 기사를 보면 그분이 미안해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미투는 우리에게 좇아가느냐 마느냐 하는 손쉬운 트렌드가 아니다.
<font color="#008ABD">글</font>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font color="#008ABD">글</font>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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