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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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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문화융성’인가

2017년도 문체부의 ‘최순실 예산’의 속살
등록 2016-11-15 23:03 수정 2020-05-03 04:28
2부_국익으로 포장된 ‘최순실 예산’
‘VIP’(대통령)를 위시한 청와대가 정부 부처들이 여럿 동원되는 ‘범정부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TF가 비선 실세들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하는 창구로 쓰인 정황이 확인됐다. 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된 ‘농단’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국정 농단으로 얻으려던 비선 실세의 이익은 궁극적으로 누구의 이익이었을까.
2015년 2월11일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2015년 2월11일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최순실 국정 농단’은 ‘국가예산 전횡’ 의혹으로 번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친구 최순실(60)씨가 전 CF 감독인 측근 차은택(47)씨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예산을 전횡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기획재정부가 11월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7년도 이른바 ‘최순실 예산’(정부안 기준)은 총 3569억7600만원이다. 그중 문체부 예산만 3385억7천만원이다. 나머진 외교부(143억5600만원), 농림축산식품부(40억5천만원) 예산이다. ‘최순실 문체부 예산’은 2017년도 문체부 전체 예산(5조9104억원)의 5.7%에 달한다.

최순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예산은 그 사업주체(특혜), 규모(과다 배정), 내용(중복 배정)에서 문제가 지적된다. 문체부가 11월6일 국회에 그중 892억7천만원 자진 삭감 계획을 제출했을 정도다. 국회에선 관련 예산을 그 이상 대폭 삭감할 계획이다. 이 모든 게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문화융성’ 기치 아래 벌어진 일이다.

‘최예산’ 의혹 핵심은 사업 특혜, 예산 과다 배정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문화창조융합벨트(이하 문화벨트) 사업이다. 문화벨트 사업은 ‘최순실 예산’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2017년도 문체부 예산 1278억2700만원이 배정됐다. 지난해 예산 903억6500만원에서 374억원 이상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2월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서 출범 배경을 “문화융성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라고 말했다.

문화벨트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2014년 1월 출범)의 문화창조융합본부(2015년 4월 신설)가 주도했다. 초대 본부장 겸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최순실씨의 측근 차은택씨다. 그는 2016년 4월까지 1년간 본부장과 단장을 맡았다.

문화벨트 사업 구상은 이렇다. 콘텐츠 기획부터 유통까지 ‘문화벨트’로 잇겠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융복합 문화콘텐츠 기획(문화창조융합센터)→제작(문화창조벤처단지)→유통·소비(케이팝(K-Pop) 아레나 공연장, 고양·서울 케이컬처밸리(K-Culture Valley)→재투자·교육(문화창조아카데미)의 선순환 구조를 꾀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런 구상은 문화·산업계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 아이디어·기획·개발·창업 지원부터 국내외 유통까지 지원해왔다. 예를 들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4년 5월 콘텐츠코리아랩 센터를 개소했다. 그 뒤 전국 7개 지역에 콘텐츠코리아랩을 열었다. 전국에서 콘텐츠 개발자·업체들의 기획·창업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문화벨트의 문화창조벤처단지와 유사한 역할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체부는 2017년 예산에서 콘텐츠코리아랩 운영비 307억3천만원을 별도 배정해놓은 상태다.

문체부 예산안 분석에 참여한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문화창조융합벨트는 기존에 해온 사업들을 쓸어 모으고 복제해서 맥락이 단절된 채 벌인 사업이어서 그 자체로는 없애도 되는 사업이다. 결국 예산과 사업이 중복돼 정책적 비효율을 낳았다”고 말했다.

최씨 카페 운영업체 임원의 문화단지 입주 특혜 의혹도

문화벨트 핵심 사업인 문화창조벤처단지(이하 문화단지)는 2015년 조성 단계부터 불법·특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 중구 다동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건물에 단지를 마련하면서 문체부가 관광진흥기금 80억원을 지원했다. 관광 용도가 아닌 벤처업체 지원 용도로 관광진흥기금을 전용해 관광진흥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화단지는 2015년 12월 개소했다. 문화벨트에서 벤처업체들의 제작·해외진출 지원 구실을 표방했다. 벤처기업 90여 곳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과 제작 장비 등을 마련해놓고 최대 4년간 업체에 임대료 없이 공간·장비를 제공한다. 최근 최순실씨 지인으로 알려진 업체 대표가 특혜를 받고 입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화단지 입주업체 G사 대표 마아무개씨는 2015년 4월까지 최씨의 서울 논현동 카페 ‘테스타로싸 카페바’ 운영업체 J사 임원이었다. 문화단지 2017년도 예산은 555억원이 배정돼 있다.

문화벨트의 ‘글로벌 허브화 사업’은 예산 과다·중복 배정 지적을 받고 있다. 글로벌 허브화 사업은 문화단지 입주업체 가운데 해외진출을 희망하는 업체를 서울 상암동 DMS(Digital Magic Space)에 입주시켜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2017년도 예산은 168억5천만원이 배정돼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7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서 “서울 중구 문화창조벤처단지와 별도로 상암동 DMS에 공간을 마련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허브화 사업이 문화단지 입주업체를 중심으로 지원할 계획인데, 2016년 수요조사를 통해 문화단지 입주업체 60% 이상이 글로벌 허브화 사업 참여 의향을 밝힌 이상, 문화단지 안 공간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산이 불필요하게 과다 책정됐다는 뜻이다.

글로벌 허브화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의 ‘ICT 창의기업 육성’ 사업과도 내용상 겹친다. 미래부는 이 사업 중 ‘글로벌 창업지원’ 전문기관 육성 및 컨설팅·프로그램 운영 명목으로만 2017년 예산 84억원을 배정한 상태다. 두 사업 모두 콘텐츠·기술 벤처업체의 해외진출을 지원한다는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벨트 사업 외에 가상현실(VR) 콘텐츠 사업도 예산 중복, 특혜 배정 논란을 낳고 있다. 문체부는 2017년도 예산에서 ‘가상현실 콘텐츠 산업 육성사업’에 191억5천만원을 배정했다. 주로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과 국내외 체험·소비·유통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미래부도 ‘가상현실 산업 육성사업’에 2017년도 예산 76억5천만원을 배정했다. 미래부 사업 역시 가상현실 관련 콘텐츠 개발, 전시, 마케팅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양 부처는 가상현실 지원사업 내용이 유사한 측면이 있으므로 사업 내용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상현실(VR)콘텐츠 사업에도 최씨 지인 등장

가상현실 콘텐츠 사업에도 최씨의 지인으로 알려진 G사 마아무개 대표가 등장했다. 지난 3월22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창조경제밸리에서 열린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마 대표와 G사의 가상현실 콘텐츠에 대해 대화를 나눈 내용이 보도됐다. 7월7일 박 대통령이 주재한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국내 최초 가상현실 클러스터 설립 등 가상현실 산업 육성책이 확정됐다.

2015년부터 급작스럽게 몸집이 커진 문화벨트 등 문화예산 앞에 결국 ‘최순실’이란 석 자가 붙었다. 최순실·차은택씨가 정부 문화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이 짙어진다. 하지만 문화벨트 등의 제안·기획 과정이 누구 손을 거쳐갔는지는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최순실·차은택 그리고 문화창조융합본부에 이름을 올린 문체부 고위 간부들의 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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