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파생된 여러 의혹들은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까지 하면서 밀어붙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최순실에게 ‘줄대기’ 하면서 은밀한 관계를 맺어온 삼성 등 대기업….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걸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잊혀가던 박근혜 정권의 비밀을 수면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뜻한다. 시민과 야당은 비선 실세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늑장 대처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다.
발단은 두 건의 언론 보도였다.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연설문뿐 아니라 청와대 내부 문건을 미리 받아봤다”는 JTBC의 보도(10월24일)와 “최순실이 거의 매일 비선 모임에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10월25일)는 의 보도다. 최순실이 국정 전반에 두루 개입해온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최태민 굿판설, 보톡스 시술설까지곧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달아올랐다. 시민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국정 운영의 원인을 최순실의 ‘섭정’ ‘수렴청정’에서 찾기 시작했다. 특히 2년6개월 넘게 진실이 감춰진 세월호 7시간의 의혹에 상상력이 집중됐다. ‘한국-독일 시차 7시간설’이 먼저 돌았다. 참사 당일 오전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고를 받았으나 독일에서 아직 자고 있는 최순실의 지시를 기다리느라, 두 국가의 시차만큼인 7시간을 허비했다는 설이다. 물론 당시 최순실이 독일에 머물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참사 직후 떠돌던 ‘최태민 굿판설’도 다시 퍼졌다. 최순실의 아버지이자 박 대통령의 후견인이던 최태민의 사망 20주기인 2014년 4월20일(음력 3월21일)은 주말이라, 그에 앞서 평일인 4월16일 청와대에서 천도재를 지냈다는 설이다. 이혼소송 중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역술인으로 알려진 이세민씨를 만난 사실도 다시 회자됐다.
이에 더해 박 대통령이 영생교 교주 최태민과 그의 영적 후계자인 최순실을 따라 사교에 심취했다는 의혹까지 보태지면서 굿판설은 많은 시민들의 입길에 올랐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가 최태민을 위해 의도된 사고라는 인신공양 괴담마저 또다시 유포됐다. 급기야 10월26일에는 최순실의 태블릿PC를 입수한 JTBC가 세월호 관련 기사를 내보낼 거라는 ‘지라시’(사설 정보지)까지 돌았지만,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도 11월4일 대국민 담화에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논란은 국회로 옮겨갔다. 10월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은 “사라진 7시간이 최씨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대단히 강하다”고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따져물었다. 이에 황 총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께서는 내가 알기로 청와대 안에서 일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뒤이은 질문에, 황 총리는 “(청와대 간부들과) 직접 통화도 했고 얘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정부의 전면 부인에도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보톡스 시술설’까지 다시 나왔다. 10월31일 “최순실이 6개월에 한 번가량 정기적으로 의사를 대동하고 청와대에 들어가 ‘연예인 보톡스’ 시술을 해줬다. 시술에서 회복까지 통상 7시간가량 소요된다고 한다”는 의 보도가 불을 지폈다. 기사는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보톡스를 맞고 회복한 날짜를 4월16일로 특정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자연스레 세월호 7시간을 떠올렸다.
핵심은 최태민 굿판설, 보톡스설 같은 자극적인 소문이 아니다. 그와 상관없이 다수의 시민들은 최순실이 7시간의 의문을 푸는 열쇠를 쥐었다고 생각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10월31일 전국 성인 10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2%는 그날 박 대통령의 행적이 “최순실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련 없을 것”이라는 답변은 15.2%에 그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세월호 7시간과 연관짓는 시국선언과 정치인이 잇따랐다.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을 실은 세월호가 물속으로 잠겨간 7시간 동안 대통령은 흉흉한 소문을 뒤집어쓴 채 공무의 공간에서 이탈하여 어둠의 공간 속에 잠적해 있었다”(충남대 교수 시국선언)거나 “(국정 농단이 없었다면) 세월호 7시간의 완전한 공백도 없었을 것”(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10여 개 단체가 모인 언론단체비상시국대책회의는 11월3일 이번에 언론이 밝혀내야 할 10대 시민 의제 중 첫머리에 세월호 7시간을 꼽았다.
국민 69% ‘세월호 당일 행적 최순실과 관련’누구나 ‘잃어버린 7시간’에 최순실을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최순실은 검문 없이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었을 정도로 박 대통령이 믿고 의지한 최측근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의상부터 연설문 표현, 정부 인사, 정책 전반을 상의하거나 전적으로 맡긴 것으로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통일대박론, 개성공단 폐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 굵직한 정책에도 최순실의 손길이 닿았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순실이 세월호 참사 대처·수습 과정에만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다. 수백 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서면으로 받은 박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의존해온 최순실을 청와대로 불러들이거나 적어도 전화 통화로 상의했을 거라는 추론이 자연스럽다. 최순실을 ‘7시간 잠수’의 공범은 아니더라도 목격자 또는 증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세월호 참사 즈음 최순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애정은 비상식적일 만큼 각별했다. 세월호 참사 9일째인 4월25일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YTN 취재진에게 “대통령께서 세월호 난 그다음 날(4월17일), ‘체육 개혁 확실히 하라’고 오더 내려왔어요. 24시간 그 얘기(세월호)만 하나? 정책도 챙겨야지!”라며 승마계 비리 기사화를 종용했다고 11월1일 YTN이 보도했다.
김 차관이 박 대통령의 ‘오더’를 앞세워 솎아내려 했던 인사는 대한승마협회 임원으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과정에서 원칙을 강조해 모녀의 심기를 거스른 인물로 알려졌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수색 작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4월17일, 박 대통령은 최순실 모녀를 ‘모함한’ 체육계 인사를 단죄하는 일에 관심을 둔 것이다.
“검찰, 최태민·최순실 관련해 끈질기게 물어”때마침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묘한 발언을 남겼다. 가토 전 지국장은 2014년 8월 칼럼 등을 인용해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과거 비서실장이던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를 만난 게 아니냐는 칼럼을 쓴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현재 사회부 편집위원인 그가 10월27일 칼럼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2014년 8월) 한국 검찰에서 조사받을 당시 검사가 끈질기게 물어본 것 중 하나가 최태민과 최순실에 관한 것이었다. 이 문제가 박 대통령의 최대 약점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최태민과 최순실은 박근혜 정권 최대 금기였다.”
가토 전 지국장 말대로라면 참사 석 달 뒤 검찰은 이미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이 특수한 관계라는 사실을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최순실에게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대통령이 서면·유선으로 21차례 보고를 받고 2차례 지시를 했다”고만 파악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0월28일 국회에서 ‘검사가 가토 전 지국장에게 끈질기게 물어본 것이 최태민과 최순실에 관한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수사 검사에게) 확인해봤더니 그 기사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부인했다.
박근혜 정권의 ‘악몽’인 세월호 7시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수백 명이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기만 했던 참담한 날,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서면보고를 받은 뒤 7시간 넘게 대면보고를 받지도, 회의를 주재하지도 않았다.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가 힘드냐”는 한가한 소리만 늘어놨다.
그날 박 대통령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식으로 참사에 대응했는지 확인하려는 진상 규명 활동 역시 청와대의 방해로 좌절됐다. 2014년 8월 말, 국회 국정조사는 박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 김기춘 비서실장과 정호성 부속비서관의 증인 채택 불발로 청문회조차 열지 못한 채 끝났다. 그로부터 2년 뒤 지난 9월 말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정부의 예산·인사 방해, 비협조로 맥없이 강제 해산됐다.
유가족들 “의혹 낱낱이 밝히라”사법부마저 청와대 손을 들어줬다. 10월20일 서울행정법원은 가 청와대를 상대로 낸 정부공개 청구소송에서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공개하지 않는 청와대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7시간의 공백이 영원히 비밀로 묻힐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이면 청와대의 세월호 관련 자료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돼 15~30년간 비공개된다.
절망은 여전히 희생자 유가족의 몫이다. 유가족들은 11월1일 국정 농단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 가족과 국민은 세간에 도는 세월호 참사 연루설에 관한 이야기들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며 “국정 파괴 사태가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을 낱낱이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특조위는 이미 해산됐고 검찰이 불법행위가 드러나지 않은 의혹을 수사할 리도 없다. 현재로선 유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방법은 박 대통령이나 그림자인 최순실의 자백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1136호에서는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지 집중 파헤쳐 봤습니다. 이름하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집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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