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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연설문을 돌려 읽은 이들은 누구인가

‘막장 드라마’에서 국정 농단한 ‘빛나는 조연’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최순실 최측근이던 고영태·차은택부터 청와대 ‘문고리 3인방’까지
등록 2016-11-02 12:29 수정 2020-05-02 19:28
4부_진실한 친구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말벗’ 최순실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뜯어고쳤다.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는 거의 매일 밤 최순실의 서울 논현동 사무실 책상 위에 놓였다. ‘최순실 재단’으로 불리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은 대기업에서 순식간에 수백억원을 모금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영태, 차은택,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안종범.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영태, 차은택,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안종범.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말벗’ 최순실은 때때로 대통령의 말을 대신 해줬다.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뜯어고쳤다.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표를 받아 입을 옷을 정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을 추천하는 내부 보고서를 받아 인사에 개입했다.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는 거의 매일 밤 최순실의 서울 논현동 사무실 책상 위에 놓였다. 그가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10월25일 가 보도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자료 배달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맡았다.

최씨의 태블릿PC에 저장된 200여 개 파일 가운데 연설문은 총 44개다. 최씨는 문서들을 하루이틀 전에 미리 받아 열람했다. 예컨대 2013년 5월14일 오전 10시에 있었던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기념사’는 연설 하루 전날인 5월17일 오전 11시15분에 전달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13년 7월23일 오전 10시에 있었던 32회 국무회의 박 대통령 모두 발언 문서는 회의 2시간 전인 오전 8시12분에 저장돼 있다. 극비 문서인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 2013년 대통령 비서진 교체와 관련한 국무회의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부터 지난 7월까지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 일하며 대통령의 말을 담당했던 조인근 전 비서관은 올해 초 지인들에게 “연설문이 자꾸 이상하게 돼서 돌아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순실 파일 논란이 일고 잠적했던 그는 10월28일 자신의 직장인 한국증권금융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최순실씨를 모르고 수정된 사실도 모른다. 초고와 완전히 달라진 적은 없다”며 연설문 수정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최순실이 어떻게 비선을 조직하고 국정을 농단했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최순실씨는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 최순실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씨는 자신도 이 모임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광고감독 출신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전 펜싱 국가대표 고영태씨는 자주 참석했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의 비선들인 셈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극소수만 열람이 가능한 연설문을 밤마다 돌려 읽은 이들은 누구인가. 권력형 비리의 거대한 블랙홀에 흡입된 조각들을 인물 중심으로 정리했다. 늘어놓고 보니 막장 드라마 기획안의 인물 소개 페이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빛나는 조연들이다.

① 한밤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최순실이 지난 1월 설립한 더블루K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이 사무실은 9월 말께 비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최순실이 지난 1월 설립한 더블루K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이 사무실은 9월 말께 비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차은택의 소개로 최순실 사업에 개입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제외하고 고영태와 차은택은 어떤 연유로 최순실과 인연을 맺었는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고영태와 차은택은 최순실 주도로 설립한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각종 개인 회사와 페이퍼컴퍼니에 깊숙하게 관여하면서 청와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영태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걸 좋아한다”고 최초로 폭로했다. 자신보다 20살 많은 최순실과 반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근한 사이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고씨는 2008년 패션 브랜드 ‘빌로밀로’를 론칭했다. 그가 제작한 가방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자주 들고 다녀 주목받았다.

고영태는 2014~2015년 최순실이 만든 고원기획, 모스코스, 코어플랜 등의 법인에도 개입했다. 특히 고원기획의 경우 “고영태씨의 성 ‘고’와 최순실씨 개명 이름 최서원의 ‘원’을 합쳐 나온 걸로 안다”는 미르재단 관계자의 말도 있었다.('TV조선' 10월21일)

서울 논현동 K스포츠재단 인근에 주소지를 둔 이들 회사 가운데 코어플랜을 제외한 두 회사는 설립 1년 이내에 청산해, 자금 세탁을 위한 법인 돌려막기 의혹을 받고 있다.

고영태는 최순실이 지난 1월 설립한 더블루K의 이사직도 맡았다. 설립 당시 더블루K는 고영태와 국내 대기업 출신인 조아무개 전 대표, 두 사람이 직원의 전부였다. 더블루K의 비상식적인 사업 진행 방식과 최순실의 강압적 태도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는 조아무개씨는 더블루K 설립 직후인 지난 1~3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이 먼저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사업과 관련한 지원과 조언을 했다고 밝혔다.(KBS 10월27일)

고영태와 최순실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전직 CF 감독 차은택이 최순실과 급격히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10월21일)

차은택

전직 CF 감독이자 현 정권에서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맡았던 차은택은 미르재단의 기획자로 지목된다. 그 또한 K스포츠재단 반경 2km 이내에 주소지를 두고 우후죽순 설립된 최순실 개인 회사 설립에 주요 관여자로 뛰어들었다.

2015년 1월27일 설립된 더플레이그라운드, 모스코스의 대표는 차은택과 친분이 깊은 제일기획 출신 김홍탁이다.

차은택은 지인들을 활용해 최순실 비선 라인을 두텁게 했는데, 한때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으로 불리던 김성현은 차은택과 “형, 동생” 하는 사이다. 김성현은 최순실이 운영하는 카페 ‘테스타로싸’를 소유한 회사 존앤룩씨앤씨의 이사로 재직했다. 김성현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연결고리로 통한다. 정동구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직원들이 가져오는 사업계획서를 보고 기획의 전말을 물으면 ‘누가 뒤에서 자꾸 지시를 한다’는 대답을 듣곤 했다고 밝히며 그 지시자가 김성현이라고 지목했다.( 10월24일)

차은택은 최순실과 함께 현 정권의 역점 사업인 ‘문화융성’ 관련 사업을 추진하며 관련 예산안을 직접 만들고 검토했다. 이 가운데 문화창조센터 건립은 문화창조융합벨트로 확대돼 전국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실제 예산이 집행됐다.('TV조선' 10월27일)

이성한

최순실 비선 모임의 주축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통령 보고 자료’를 돌려 보는 모임에 수차례 참여했다. 그는 미르재단 사무총장 당시 “청와대와 계속 상의해서 사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10월25일)

이성한의 본업은 부동산 개발 및 기획업자다. 상인과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이 극한 갈등 중인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에도 관여했다. 그는 2014년 “국가를 위해서 일해보자”는 차은택의 제안을 받고 최순실 사업에 손을 보탠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최씨와 갈등하며 척을 진다. 올해 초부터 최씨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다. 그는 미르재단에서 올 6월 말 해임되고, 9월 말 사직했다. 그는 최순실, 차은택, 고영태 등이 등장하는 녹취 파일을 77~78개 정도 갖고 있다고 밝히며 를 통해 “내가 지금까지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내가 이만큼 받고 있잖아” 등 최순실 음성 녹취 파일 일부를 공개했다.

② 청와대 핫라인
10월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을 잇는 연결고리로 지목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도왔던 보좌진으로 ‘정윤희 문건 유출 사건’ 당시 비선 실세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 따르면 이들 또한 “사실 다들 최(순실)씨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비서관은 최순실의 국정 개입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정황을 보인다.

정호성

정호성 비서관 본인은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그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과 가장 많이 접촉한 인물로 지목된다. 박 대통령의 직무실 바로 옆방에서 근무하는, 물리적 최측근이기도 하다.

그는 최순실에게 거의 매일 밤 ‘대통령 보고 자료’를 갖다준 의혹을 받고 있으며, 유출된 각종 연설문과 국가안보 기밀이 담긴 문서 가운데 최순실의 태블릿PC에서 최종 수정자로 등장한다.(JTBC 10월26일) 2013년에 저장된 ‘제32회 국무회의 말씀 자료’ ‘강원도 업무보고’ 등을 마지막으로 저장한 아이디는 정호성 비서관이 국회 보좌관 때부터 청와대 입성 이후까지 사용해온 ‘narelo’다.

2013년 8월4일 작성한 ‘국무회의 말씀자료’는 원고가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돼 있었는데, 아래에 ‘추가로 준비하고 있는 주제’라는 메모와 신문기사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메모는 이틀 뒤 국무회의 때 박 대통령 발언에 반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종범

모르쇠로 일관한 최순실의 인터뷰에서, 최씨는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안종범 수석 또한 내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자신과 무관하다며 주장해왔지만, 미르재단 내 인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지난여름 이미 제기됐다. 기업들로부터 재단 운영 기금을 끌어온 사실도 최근 폭로됐다.

익명의 미르재단 관계자는 “4월4일 (내게) 재단 떠나줬으면 좋겠다, 라고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TV조선 7월26일)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검찰 수사에서 최순실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요구로 SK그룹에 80억원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롯데그룹이 지난 5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낸 것도 그가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10월27일) 3월28일 작성된 K스포츠재단의 내부 문건에는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과 관련해 ‘(주)롯데와 후원 가능 여부 및 금액 타진 협의’라는 내용과 함께 ‘약 35억(건설비의 2분의 1) 지원 의사 있으나 협의 후 알려주기로 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재만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10월21일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최순실과 박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묻자 “대통령의 친분 관계, 그런 부분들에 대해 제가 잘 알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을 18년째 보좌하는 이재만 비서관은 계속되는 추궁에 답변을 거부했다. 야권은 이재만 비서관의 답변과 관련해 국감에서 거짓증언을 한 것은 ‘국회증언 감정법률 제14조’를 어긴 행위라며 위증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만 비서관은 정호성 비서관에 앞선 ‘대통령 보고 자료’ 배달책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10월26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이재만 비서관은 2014년부터 청와대 서류를 외부로 가지고 나가는 것으로 국회에서 추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 회의 속기록을 보면 박 의원이 “이 총무비서관이 밤에 외출을 자주 한다고 들었고, 목격자도 있더라. 왜 밤에 자주 외출하나”라고 질의했다. 이재만 비서관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외출한다기보다는 청와대에서 집으로 갈 때 내가 하다 만 서류라든지, 집에서 보기 위한 자료를 가지고 가는 수는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청와대 서류를 함부로 집에 가져간 것이냐”는 추궁에 “책”이라고 말을 바꿔 해명했다.

③ 끝없는 비선 조직 팔선녀

최순실의 문어발식 비선 라인은 어디까지일까.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10월26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순실이) 비밀 모임인 팔선녀를 이용해 막후 국정 개입은 물론이고 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엽기적인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며 언급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현재 가장 불투명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떠도는 팔선녀 명단은 재계 여성 임원과 대기업 회장 아내, 고위 공직자 아내 등 최순실을 포함한 8명으로, SNS상에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들 모임과 관련해서 최순실은 “팔선녀는 소설이고, 그런 그룹을 만든 적도 없다”고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단순한 친목 모임에 불과하다는 말부터, 정부 고위 관료 인사에 입김을 불어넣는 또 다른 비선 조직이라는 설까지 의혹이 일고 있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이들은 대부분 팔선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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