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명백히 드러난 ‘연설문 유출 사과’를 제외하면 최순실과 관련된 모든 의혹에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묵묵부답의 불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워터게이트’에서 리처드 닉슨의 사임에서 보듯, 잘못도 문제지만 잘못의 은폐는 더욱 결정적 문제가 된다. 은폐의 실패가 낳은 분노는 걷잡지 못한다.</font>
해독 불가능한 일들이 청와대를 덮치고 있다. 한 나라의 국정 운영 시스템이 완전히 무시됐다. 대통령의 오랜 지인이 ‘비선 실세’ 노릇을 하며 청와대 밖에서 국정 전반을 주물렀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평범한 상식으로 믿기 힘든 일이 세상과 격리된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것이다.
세간에는 ‘우주의 기운’이 아닌 ‘괴이한 기운’이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쌌다는 말이 돈다. 정치인들도 나섰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 두 사람의 사교에 씌어 이런 일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르-K(ㄱ)스포츠재단도 연결시키면 ‘미륵’이라고 한다. 최순실씨의 선친인 최태민 목사가 스스로를 ‘미륵’이라 했다”는 따위의 내용이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 검증을 주도한 정두언 전 의원도 10월27일 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과 최씨가) 힘든 시절을 같이 보내고 그래서 각별하다는 건 틀린 사실… 주술적인 것, 샤머니즘적인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최태민이 무슨 말만 하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반응을 보였다. 최순실이 그 후계자니까…”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의혹에 고개를 끄덕인다.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청와대의 이런 태도 탓에 누리꾼을 중심으로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은 더 바람을 타고 있다.
호사가들의 입길을 가장 많이 타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 일가가 샤머니즘을 비롯해 기독교·불교·유교·천주교 등이 뒤섞인 ‘무속종교’를 가졌을 것이란 얘기다. “최태민이 근혜를 홀렸다”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이라든가, 최근 세간에 떠도는 “대통령이 사교에 씌었다” 같은 말처럼, ‘무속에 경도됐다’는 고리로 풀어보면 대통령 주변의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의 맥락이 보인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핵심고리는 종교적 이유? </font></font>실제로 2008년 문화재청이 제공한 ‘박정희 대통령 신당동 자택 복원 전 사진 자료’를 보면, 거실에 걸린 유일한 액자에 ‘증산상제 하감지위(下鑑之位)’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민족종교 증산도의 8개 주문 가운데 하나인 ‘진법주’ 글귀로, 당시 액자는 증산도 상제(일종의 하느님)의 위패로 알려졌다. 증산도는 ‘증산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란 뜻이고, 하감지위는 ‘상제나 하늘에서도 받들어주는 높은 성령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 1980년대 초반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이 3년여간 살았던 장소를 그대로 보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증산교도로 잘 알려졌고, 전 대통령 박정희도 5·16 쿠데타를 앞두고 기업가 남상옥에게 보낸 ‘자금 요청’ 서신에서 “상제께서 헐벗고 가난한 이 나라 백성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는 한”이라고 적어 민족종교에서 주로 쓰는 ‘상제’라는 표현을 썼던 기록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제 종교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에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을 ‘기불릭교’(기독교+불교+가톨릭)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민족종교와 관련 있는 심신수련법 ‘국선도’를 수십 년간 해왔다는 점도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2007년 2월호) 보도를 보면, 그가 무속적인 것과 어떤 형태로든 ‘인연의 끈’을 맺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전직 관료는 이런 말을 했다. ‘(박 대통령이) 책을 굉장히 탐독했어요. 제 추측이긴 하지만 양친을 흉탄에 잃은 것은 보통 사람도 이겨낼 수 없는 시련이었을 겁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게 아니겠습니까. 일부 친분 있던 대사들이 외국에서 심령 서적이나 종교·철학 서적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심령 서적 중에는 무속적인 것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아버지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20대 시절부터 수십 년간 후견인 구실을 했던 최태민씨가 한때 기독교·불교·천도교를 뒤섞어 만든 ‘영생교’ 교주였다는 사실은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마저 10월27일 “영생교가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라가기도 했는데,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과 주술적 관계를 맺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종교적인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는 주장을 내놓을 정도다.
이런 의혹이 스스로 자라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 뒤 여러 차례 ‘비일상적 어휘’를 쓴 게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공식 행사에서 “이것이 바로 하늘의 메시지다” “교과서 전체를 보면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바르게 역사를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는 등의 말을 해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이런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지만 일부 민족종교가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할 때 흔히 볼 수 있다. 증산도 경전인 발행사를 보면 “하늘땅에 살고 있는 인간과 신명 모두가 이 한 가지 우주의 참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고 있다”거나 “상제님은 일심 가진 자만 기운을 붙여 쓰신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정심(正心)으로 잘 닦아서 그 운수를 잘 받아 누리라” “민족은 동방 문화의 뿌리, 신교의 혼을 일군 주인공”처럼 박 대통령의 어투와 비슷한 부분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인용·‘오방낭’도 의심 키워 </font></font>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를 인용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라며 책 (또는 )를 인용했다.
증산도에서는 를 ‘환인·환웅·단군이 실재했던 사실을 포함한 대한민국 9000년사를 적은 고려역사서’로 받든다. 일부 민족종교에서 이 책을 “위대한 상고사의 유일무이한 보물”이라고 평가하는데다, 증산교에서는 ‘인류 창세 역사의 시원 문화를 밝히는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류 역사학계에선 1920년 이후에나 확인 가능했던 역사적 사실과 용어가 포함된 에 대해 이미 ‘가짜 역사책’(위서)으로 판정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굳이 ‘위서’를 인용한 것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의 ‘상고사 왜곡’ 논란도 주술적 내용이 바탕이 된 ‘환단고기의 자랑스런 고대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은 또 다른 논란을 만들고 있다.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 연설문을 고칠 때 썼던 태블릿PC에서 ‘오방낭’이란 폴더가 발견된 것도 눈길을 끈다. ‘오방’은 삼태극(3개의 색으로 이뤄진 태극)과 함께 와 증산도 등에서 우주의 근간을 설명할 때 빌리는 개념이다. 인간과 우주를 이어주는 수단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오방낭은 음양오행에서 오방(동·서·남·북·중앙)을 뜻하는 다섯 가지 색깔(청·황·적·백·흑)의 천으로 만든 주머니다.
최씨의 주도로 2013년 박 대통령 취임 행사 때 오방색 천으로 숭례문 전체를 감싼 뒤 제막하는 행사가 추진됐다. 10월27일 를 보면 “‘대통령 취임식을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날 박 대통령은 붉은색 두루마기를 걸쳤는데, 오방색에서 적색은 ‘토속신앙에서 주술적 의미로 강력한 벽사(사악한 마귀를 물리치는 중국의 전설 속 동물)의 빛깔’로 알려졌다. 각종 누리집 댓글에 최순실씨가 대통령을 ‘주술사’로 내세우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발 의혹은 점점 청와대와 정부 부처, 여당을 향한 ‘조롱에 가까운 괴담’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에서 빚어진 ‘오방’ ‘미르’(용) 같은 단어들을 조합해 각종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오방’에는 5개 방위를 각각 지키는 동물이 있는데, 증산 계열에선 청룡(좌)·백호(우)·주작(남)·현무(북)와 함께 중앙에 황웅(黃熊)이 있다고 본다.
때마침 지난 6월 국가정보원이 로고를 ‘좌청룡·우백호’로 바꾸었는데, 각종 정부 디자인 사업에 개입했던 최씨가 국정원 로고에도 ‘미르’(용) 이미지를 새긴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용띠’라는 사실이 누리꾼들 입길에 오르면서 여기에도 ‘무속적 의도’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엔 정부가 전체 부처의 로고를 일원화해 변경한 적이 있는데, 이마저도 유사 역사 단체들이 즐겨 쓰는 ‘삼태극’을 썼다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고 있다. 여당도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당명이 사이비종교 ‘신천지’를 순우리말로 바꾼 것이라든가, 당 로고가 최순실씨 딸 최유라의 말 안장과 비슷한 모양을 했다는 식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궁지에 몰린 대통령의 선택 “불안해”</font></font>청와대에서 시작된 사회적 불안감은 더 과격한 상상력으로 번지고 있다. 선택지가 바닥난 정부가 오히려 발톱을 세워 ‘극단의 카드’로 반전을 노릴 것이란 괴담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박 대통령이 북한과 국지적 전쟁을 벌인 뒤 계엄을 선언할 것”이라는 거다. 일부 정치권 주변에서 박 대통령이 결정적 위기를 맞았을 때 내놓을 카드가 첫째는 개헌, 둘째는 국지전, 셋째는 계엄이란 얘기가 우스개처럼 돌았다.
누리꾼 사이에는 이런 글이 돌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최고권력자의 위치에 있을 때 궁지에 몰린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라고 생각하면 사실 조금은 서늘합니다. 개헌과 국지전. 물론 상상입니다만, 이분이 아직 대통령이라 반대로 더 무서워집니다.”
증권가 정보지(지라시)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최근 박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이성적 사건들과 맞물려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 ‘최순실 게이트’ 뒤, 박 대통령이 바로 ‘개헌 추진’을 선언하자 ‘둘째, 셋째 카드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괴담까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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