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민주주의 위기,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 없이는 투명하고 건전한 경제, 서민을 위한 경제가 이뤄질 수 없다. 남북관계도 민주정부만이 국민 지지를 받고 반대파를 설득해가면서 발전시킬 수 있다. 5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문당하고 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얻었다. 그러나 최근 민주주의가 역주행하고 있다. 매우 우려스럽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등 독재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모두 종식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6·15 9주년 기념식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민주주의 후퇴를 지적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월15일 서울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한반도 평화 정착은 김 전 대통령이 평생을 건 과제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생시인지 꿈인지 모를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일”(지난 1월1일 국민의 정부 관계자 신년하례식 발언)이 벌어졌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가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무너져내리고, 그 가치마저 부정당하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재직 당시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을 지낸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김 전 대통령은 다른 정치적 사안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서민경제의 원칙이 훼손되고 그 성과들이 무너지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풀이했다.
처음 그가 ‘3대 위기론’을 거론하며 이명박 정부를 공개 비판한 것은 지난해 11월27일 북한을 다녀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난 자리였다. 남북관계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는 상황이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남북 사이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최후의 궁극적 목표”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북한이 “북침 의도”라고 비난하며 11월24일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교류협력사업 중단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파탄내려고 하는데, 성공 못한다. ‘비핵개방 3000’ 정책은 핵을 포기하면 도와주겠다는 것인데, 부시 정부가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최대 소원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인데, 이를 받아줄 오바마 정권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면 김영삼 정부 시절의 통미봉남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쓴소리도 했다.
‘3대 위기’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 발언록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남북 화해는 김 전 대통령이 “온갖 박해와 참을 수 없는 중상모략을 견디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생을 바쳐왔다”(2008년 12월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강연)고 자평할 만큼 소중히 여기는 가치였다. 이 금지곡이던 1970년, 누구도 ‘통일’이란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던 그 시절 신민당 대선 후보로 나선 그가 첫 기자회견에서 꺼낸 주제가 통일정책이었다. 그 결과 마침내 2000년 6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고,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금강산·개성 관광이 가능해졌고, 개성공단을 비롯해 경제협력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후임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북한을 방문해 ‘10·4 정상선언’에 사인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1일 “따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옷을 벗지는 않고 옷을 벗기려는 사람이 옷을 벗었다”고 말하는 등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여러 차례 비난했다. 지난해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 땐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라며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수 세력의 ‘퍼주기’ 비난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지원했으나 그 돈이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있다”며 근거 없는 의혹도 제기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결정으로 북한을 더욱 자극하기도 했다.
29년 전 성명과 비슷한 6월11일 발언자신이 이룩한 남북 화해·교류의 성과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그 가치마저 부정당하자 김 전 대통령은 결국 “‘퍼주기’라는 말은 사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비방”이라며 자기방어에 나섰다.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된 7월10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2의 냉전시대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쪽이 북한을 도와 핵무기가 개발됐다는 주장은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 외에는 합리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북한이 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고, 내가 북한과 접촉한 것은 2000년으로 6년 차이가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현금을 준 적이 없다. 매년 20만~30만t씩 식량·비료 지원을 했는데, 그런 것으로 핵은 못 만들지 않느냐”고 사실관계도 강조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해법으로 이 대통령에게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만일 현 정부가 국민 전체가 바라지도 않는 것을 성급히, 그것도 국민의 의혹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추진하거나 혹은 도리어 국민이 원하는 것을 고의로 지연시키든가 하면, 정부는 스스로 정국을 불안정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게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3월1일 낸 성명이다. 여기서 ‘정부’는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등을 지칭한다. 29년 뒤인 지난 6월11일 김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과 같은 길로 계속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을 준비하던 2007년 1월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을 찾아 김 전 대통령에게 인사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4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55차례 가택연금당한 그의 삶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20~30년 전으로 역주행해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 장본인이자 “독재정권”이었다. 특히 용산 참사 이후에도 정부가 ‘법치 확립’을 내세워 철거민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 상황을 두고 그는 “불법만 내세워 사람을 잡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며 통탄했다. 지난 1월22일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한 신년하례식에서 그는 “민주주의가 반석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내가 (반독재 투쟁을 하다)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 갔을 때 독재자 편에 섰던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보면서 안타깝고 분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김 전 대통령의 비판은 더욱 거세진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이명박 정권의 ‘정치 보복’으로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5월28일 서울역 앞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한 발언을 보면 그런 인식이 드러난다. “일가친척들을 저인망 훑듯이 훑었고, 소환되고 나서는 20여 일 동안 증거도 못 댔다. 노 전 대통령이 느꼈을 치욕과 좌절, 슬픔을 생각하면 나라도 이런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반대로 읽지 못한 추도사에서도 그는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사형 구형 뒤 최후진술서 반대했던 ‘정치 보복’
1980년 9월17일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은 뒤 최후진술에서 “머지않아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드리고 싶다”고 했던 김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민주화 동지이자 대북 포용정책 계승자인 노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의 부당한 수사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억울함과 분노는 ‘국민의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 때 자주 썼던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6월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한다”며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린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호소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격앙된 민심을 선동하는 것으로 여긴 탓일까.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 화합에 앞장서 국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셔야 할 전직 국가원수가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김대중씨는 침묵을 지키는 게 대한민국을 돕는 길”(안상수 원내대표), “아프리카 후진국 반군 지도자냐”(장광근 사무총장)는 한나라당의 상식 이하 반응도 이어졌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37억불에 불과한 빈 금고를 물려받았지만 전 국민의 노력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국민의 정부가 1400억불, 노무현 정부가 2200억불의 외화를 쌓았다. 이명박 정부는 역대 최고 외환보유고, 건전기업, 은행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중소기업·비정규직·서민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원조 경제 대통령’인 김 전 대통령이 지난 1월1일 신년하례회 때 한 ‘경제위기’ 얘기다. 그는 지금 경제위기의 핵심을 ‘양극화’라고 봤다. 부자 감세,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런 양극화를 더욱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엔 국민의 정부가 계획보다 3년이나 빨리 구제금융 체제를 벗어났고 노 전 대통령 때도 지표가 좋아졌는데,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로 자신들을 ‘무능 세력’으로 낙인찍는 데 대한 불쾌감도 깔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규제 완화, 부자 감세가 핵심이던 레이건·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은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지금은 식품쿠폰, 물품구매권 등 서민 손에 쥐어주는 정책을 통해 돈이 밑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 기초생활보장, 서민 소비 확대와 경기 부양 등을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했다.
민주주의는 행동하는 양심에서부터김 전 대통령은 지금 상황을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옛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갈 때에 비하면 지금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들은 역사마다 독재정권을 좌절시켰고, 우리들은 매번 이겼다. 지난 촛불시위의 의미가 아주 크다. 누가 선동하거나 조직하거나 권유한 것이 아닌데도 자발적으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런 국민 앞에서 민주주의를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국민 앞에서 어떻게 독재가 있을 수 있겠나. 일시적 반동은 있겠지만 절대 후퇴는 없다.”(지난해 11월27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면담 발언)
전제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정부를 끊임없이 감시·비판하고, 좋은 정당·좋은 정치인을 기억하고 가려내고 투표할 정도의 양심.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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