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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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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12살 일꾼 에브라임 킨도의 ‘Why Not’,
“왜 착한 초콜릿은 생각하지 않는 거죠”
등록 2009-01-24 16:42 수정 2020-05-03 04:25
우리 아버지들과 살았던 20세기는 바쁜 세상이었습니다.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들이 주도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었습니다. 나쁜 세상이었습니다. 싼값과 좋은 품질 속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2008년 한해는 ‘충격과 공포’의 한해였습니다. 연초부터 석유 가격은 ‘악’소리가 날만큼 치솟았고, 자원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중반에는 중국의 멜라민 분유가 전세계의 식탁을 위협했습니다. 하반기에는 대량생산과 소비를 주도해 왔던 미국 경제가 거품과 함께 붕괴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과 살아갈 행복한 21세기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21세기는 예쁜 세상이 되기를 상상합니다. 은 2009년 한 해 동안 그런 세상을 그려보려 합니다. ‘지구를 바꾸는 행복한 상상-Why Not’. ‘안 될 게 뭐냐’고 물어보려 합니다.
코트디부아르 미야기주 시니코송 마을에서 카카오 농사를 짓는 12살 소년 에브라임 킨도.

코트디부아르 미야기주 시니코송 마을에서 카카오 농사를 짓는 12살 소년 에브라임 킨도.


‘Why Not’은 4개의 시즌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시즌에는 착한 소비를 생각하는 이들을 찾아갑니다. 키워드는 ‘공정’입니다. 생산자는 제 값을 받고 소비자는 양심을 지키는 착한 소비입니다. 두 번째 시즌에는 올바른 생산을 보여드립니다. 키워드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세 번째 시즌에는 미래를 바꾸는 기술을 찾아갑니다. 키워드는 ‘녹색기술’입니다. MB식 ‘그린뉴딜’이 아닌, 지구를 살리는 기술의 현장을 보여드립니다. 네 번째 시즌에는 미래를 바꾸는 교육과 나눔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키워드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이 바뀌면 내일이 바뀝니다. 우리가 변하면 세상도 변합니다. 저희와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은 첫 기사로 달콤한 초콜릿의 진실을 찾아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아이들의 조그만 손으로 만들어진 초콜릿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초콜릿의 쓰디쓴 진실 때문이었습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착한 초콜릿입니다. 이번 밸런타인데이에는 착한 초콜릿을 선물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제 이름은 에브라임 킨도입니다. 코트디부아르 미야기주의 시니코송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12살 소년입니다. 코트디부아르는 대서양 연안의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나라예요. 한국에선 꼬박 2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대요. 우리나라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최대 생산지로 유명하지요. 전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나라니까요. 우리 마을에서도 카카오를 재배해요. 당연히 우리 집에서도요. 전 12살이지만, 이래봬도 6년이나 카카오 농사를 지은 전문가랍니다.

팔뚝엔 늘 마시트에 벤 상처들

오늘은 꼬네(40) 아저씨네 일을 도와주러 왔어요. 열매를 따서 쪼갠 뒤 카카오콩을 꺼내는 일이에요. 며칠 전 우리 집 일을 꼬네 아저씨가 도와줬기 때문에 오늘은 아빠가 저를 보내셨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카카오 농사를 짓는데, 서로 돌아가며 일을 도와요. 한 집에서 경작하는 카카오 밭이 보통 3~5ha 정도 되는데, 가족들만으론 일을 다 할 수가 없거든요. 열매 따기부터 시작해 카카오 콩 꺼내기, 카카오콩 발효시키고 말리기, 농약 치기, 거름 주기, 잡초 제거하기 등 카카오 밭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 오늘은 이웃에 사는 아마라(34) 아저씨랑 오드라고(18) 형, 드라만(10), 사와도고(19) 형 이렇게 6명이 일을 도와줘요. 우리 마을에선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을 하는데, 오늘은 카카오콩 100kg 정도를 분리해낼 수 있을 거라고 꼬네 아저씨가 얘기해주셨어요.

에브라임이 딴 카카오 열매. 잘 익은 카카오는 품종에 따라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띤다.

에브라임이 딴 카카오 열매. 잘 익은 카카오는 품종에 따라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띤다.

카카오를 따고 쪼개는 건 힘들지만 어렵지는 않아요. 카카오 열매는 품종에 따라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익어요. 맛엔 차이가 없고요. 손이나 마시트라고 부르는 긴 낫으로 따는데, 제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달린 건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장대에 마시트를 묶어 따야 해요. 그래서 제 팔뚝엔 실수로 나뭇가지에 긁히거나 마시트에 벤 상처들이 늘 남아 있어요. 마시트는 날카롭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않으면 안 된답니다. 이렇게 딴 카카오 열매는 자루에 담아 밭 중간중간에 수북이 쌓아놓지요. 열매를 다 딴 뒤엔 쌓아둔 카카오 더미 주변에 모여앉아 카카오콩을 꺼냅니다. 럭비공처럼 생긴 열매를 왼손으로 움켜쥐고 오른손에 든 마시트로 쪼개면 새하얀 과육에 둘러싸인, 어른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카카오 콩 30~40개가 포도송이처럼 꽉 들어차 있어요. 흰 과육은 딱딱한 카카오 콩과 달리 구름처럼 부드럽죠.

껍질을 쪼개고 꺼낸 카카오콩 송이는 고무통에 담아 집 근처나 밭 입구에 있는 발효·건조대로 가져갑니다. 큰 비닐로 카카오콩을 둘둘 말아 일주일 정도 발효시킨 다음 다시 일주일 동안 햇볕에 바짝 말려야 하거든요. 짙은 갈색으로 잘 마른 카카오콩에선 달콤한 냄새가 나지만, 그 맛은 윽! 너무 쓰고 시어서 먹을 수가 없어요. 오늘 카카오콩 옮기기 담당은 꼬네 아저씨의 아들인 드라만이에요. 드라만은 저보다 어리고 키도 작지만, 무겁고 커다란 고무통을 머리에 번쩍 이고 200m쯤 떨어져 있는 건조대까지 왔다갔다 하는 일을 불평 없이 해내지요. 우리 마을에선 6살 무렵부터 부모님의 카카오 농사일을 돕기 때문에 열 살인 드라만도 일을 곧잘 한답니다.

카카오 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잡초 제거와 농약 치기입니다. 거름의 영양 성분이 땅 속까지 제대로 흘러들어 카카오 나무가 잘 흡수하려면, 무성한 잡초부터 마시트로 다 걷어내야 하거든요. 빠른 속도로 마시트를 휘두르다보면 저절로 땀이 뻘뻘 흐르기 때문에 일 잘한다는 19살 누푸 형 조차도 “잡초 제거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불만이예요. 나무가 벌레 먹어 말라 죽지 않도록 농약을 칠 땐 또 어떻고요. 저도, 친구 에브라(12)도 가끔 농약 치기를 돕는데, 우리 키 만한 농약통을 어깨에 메고 마스크도 안 쓰고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쌀값만 208만원, 한 해 벌이는 243만원

우리 아빠는 29년 전 코트디부아르 북쪽에 있는 나라인 부르키나파소에서 코트디부아르로 이사 오셨대요. 할아버지랑 밀과 옥수수 농사를 지었지만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대요. 처음 10년 동안엔 수도인 아비장에서 미장이로 일하셨는데, 고용주인 백인들 밑에서 고생만 하고 돈은 못 벌었대요. 그래서 아비장에서 1050km나 떨어진 이곳으로 와서 카카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답니다. 곳곳이 푹푹 패어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여간해선 통행이 힘든 비포장 흙길로만 족히 3시간은 달려와야 하는 우리 마을엔 아빠처럼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산답니다. 코트디부아르 인구는 2천만 명이 조금 넘는데, 그중 26%가 부르키나파소, 말리, 기니, 라이베리아, 베냉 같은 주변 나라들에서 온 외국인이래요. 자기들 나라에선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라죠. 코트디부아르는 자원도 풍부하고, 주변 나라들보단 잘살 거든요. 외국인들 가운데선 70%, 그러니까 360만여 명이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이고, 이들 대부분은 아빠나 우리 동네 사람들처럼 카카오 농사를 짓지요.

시니코송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이 카카오콩 건조대 앞에 서 있다. 사람들 뒤로 보이는 게 집인데, 카카오콩 건조대는 이렇게 집 앞이나 카카오밭 입구에 설치해둔다.

시니코송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이 카카오콩 건조대 앞에 서 있다. 사람들 뒤로 보이는 게 집인데, 카카오콩 건조대는 이렇게 집 앞이나 카카오밭 입구에 설치해둔다.

처음 3만세파프랑(약 8만7천원)을 들고 시니코송으로 와서 1ha짜리 카카오밭 농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빠는 이제 5ha나 되는 카카오밭을 갖고 있어요. 보통 카카오밭 1ha에선 1년에 카카오콩 500kg을 수확할 수 있죠. 아빠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잘 말린 카카오콩을 중개상인한테 넘기는데, 지난해 10월부턴 카카오 값이 두 배나 올라 kg당 600~650세파프랑(1740~1885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카카오값이 오른 건 지난해 비가 많이 오고, 카카오 나무에 흑점병까지 돌아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실제 아빠가 받는 돈이 늘어난 것 같진 않아요.

사실 아빠는 우리 집 1년 수입과 지출이 얼마인지 계산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때그때 돈이 들어오면 쌀과 빵, 농약, 비료를 사는 돈으로 다 나가거든요. 농사지은 돈으론 11식구가 살기 빠듯하죠. 그래서 큰형 아다마(33), 둘째형 알라산(30)은 부르키나파소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있고요, 셋째형 푸세니(27)는 우리 동네에서 차로 4시간 걸리는 수브레라는 도시에서 카카오 트럭을 운전해요. 큰누나 마리암(26)부터 둘째누나 알리마따(21), 넷째형 슐레만(19), 셋째누나 마무나따(16)와 여동생 아이사따(5), 그리고 제가 아빠·엄마랑 같이 살면서 카카오 농사를 짓지요. 올해 예순인 아빠는 일을 안 하시는데, 저한테 “일을 많이 도와줘서 만족스럽다”고 말씀하시곤 한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아빠처럼 돈을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 잘 몰라요. 계산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가족이 10명인 모하메드(57) 촌장 할아버지는 “먹고살기도 바쁘다”고 하세요. 모하메드 할아버지네는 쌀을 하루에 5kg씩 먹는데, 쌀은 kg당 400~450세파프랑(1160~1305원)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마을에 오는 카카오콩 중개상 노엘 아저씨가 사다주곤 합니다. 한 달이면 150kg, 1년이면 1800kg이 필요하단 얘긴데, 그럼 400세파프랑씩만 잡아도 72만세파프랑(약 208만8천원)이 되네요. 지난해 할아버지네는 카카오콩 1400kg을 재배했으니까, 오른 뒤 값으로 계산해도 벌어들인 돈은 84만세파프랑(약 243만6천원)이죠. 어휴~.

시니코송 마을의 한 소녀가 동생을 업은 채 커피콩과 카카오콩을 말리고 있다.

시니코송 마을의 한 소녀가 동생을 업은 채 커피콩과 카카오콩을 말리고 있다.

이래서 우리 마을에선 농약이나 비료를 살 때 카카오콩을 최근에 판 집에서 돈을 빌리고, 나중에 카카오콩을 팔아 갚는 일이 반복되는 거였군요. 농약과 비료는 세 달에 한 번씩 줘야 하는데, 농약은 ha당 5만세파프랑(약 14만5천원), 비료는 ha당 10만세파프랑(약 29만원)이 들거든요. 돈이 없으니까 농약을 살 땐 비료를 못 사고, 비료를 살 땐 농약을 못 주고…. 모하메드 할아버지도, 우리 아빠도, 아마라 아저씨도 “카카오콩 값이 kg당 1천세파프랑(약 2900원)만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노엘 아저씨 같은 중개상을 ‘피스떼’라고 부르는데, 이 아저씨들은 다시 ‘아쉐떼’라고 하는 더 큰 중개상들에게 카카오콩을 팔지요. 그래서 잘 사는 나라들에 카카오콩이 팔려갈 때는 ㎏당 1950세파프랑(5655원)쯤 된다고 하네요.

또래 100명 중 학생은 3명뿐

전 코트디부아르에 살지만 공용어인 프랑스어는 말하기도, 쓰기도 못해요. 학교도 안 다니고요. 우리 9형제 가운데 학교를 다닌 건 아다마 형이 유일해요. 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죠. 우리 아빠는 “나도 너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네가 공부하길 싫어해서 안 보낸다”고 해요. 하지만 정작 저한테 학교에 가고 싶은지 물어본 적은 없어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걸요? 200여 가구, 1500여 명이 사는 우리 동네엔 제 또래가 10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정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3명뿐입니다. 학교는 모두 무료로 다닐 수 있지만, 걸어서 45분 정도 걸리는 먼 곳에 있는데다 다들 저처럼 농사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아, 원래 모하메드 촌장 할아버지댁 근처에 코란과 아랍어를 가르치던 곳이 있었는데 거긴 70여 명이 다녔어요. 저도 9살 때 잠깐 다닌 적이 있고요. 하지만 올해부터 프랑스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곳으로 바뀐 뒤로는 그곳에 가는 친구들은 30명도 안 돼요. 학교가 너무 멀어 마을 어른들이 학교에 얘기해 선생님을 보내달라고 했다던데, 이곳에 얼마나 더 많은 친구들이 모일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살리프(36) 아저씨입니다. 살리프 아저씨는 중학교 1학년까지 다녔대요.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중엔 유일하게 살리프 아저씨가 프랑스어로 읽고 쓰기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아저씨는 몇 년 전 야간학교를 열어 동네 형들 10명한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도 했대요. 하지만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그런지, 공부를 하다 말다 해 2년 동안 실제 공부를 한 기간은 열 달이 채 안 된다더라고요. 마을에서 프랑스어를 말할 줄 아는 어른들은 노엘 아저씨처럼 카카오콩을 사러오는 중개상인들한테 조금씩 귀동냥을 했다더군요.

우리 마을엔 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빗물을 받아두거나 개울물을 떠다 흙을 가라앉혀 마시고, 밥을 짓고, 씻기도 하지요. 텔레비전도 볼 수 있어요. 모하메드 촌장 할아버지댁과 할아버지의 큰아들인 아다마(30) 아저씨댁에 텔레비전과 발전기가 있거든요. 코트디부아르의 영웅인 영국 첼시FC의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가 경기를 하는 날엔 동네 사람들이 모하메드 할아버지댁이나 아다마 아저씨댁에 모여 경기를 봐요. 3년 전 처음 텔레비전이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을 사람들 모두 얼마나 신기해했는지 몰라요. 눈앞에서 드로그바 선수가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장면이라니!

카카오 열매를 벌리면 새하얀 과육에 둘러싸인 카카오콩이 포도송이처럼 꽉 들어차 있다.

카카오 열매를 벌리면 새하얀 과육에 둘러싸인 카카오콩이 포도송이처럼 꽉 들어차 있다.

제 또래들은 매일 오후 5시에 축구를 해요. 오후 4시쯤 일이 끝나고 나면 다들 공터에 모여 축구공 하나만 쳐다보며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힘든 일을 마친 뒤 축구를 하며 뛰어노는 이 시간이 저는 정말 좋아요. 우리 동네 오드라고 형은 저보다 더 축구를 좋아하는데,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처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래요. 아마 우리 동네 형·누나들 중에 오드라고 형의 꿈이 제일 클걸요? 아미나따(12) 누나의 꿈은 ‘사무실에서 일하기’입니다. 사와도고 형의 꿈은 ‘자전거·오토바이 장사로 돈 많이 벌어 결혼하기’입니다. 나르고(10)의 꿈은 ‘학교 가기’입니다.

꿈은 돈 많이 벌고 천국 가는 것

제 꿈요? 음… 전 농사를 지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사실 다른 일은 뭐가 있는지 잘 모르거든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하루에 5번씩, 아침 6시와 오후 2시, 4시, 6시30분, 8시에 드리는 예배 때 저는 기도합니다.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이마와 코끝이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할 때마다 저는 빌고 또 빕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그리고 천국에 가게 해주세요”라고요. 돈을 벌려면 저는 카카오밭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이 힘들지만, 저와 우리 식구들이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쌀을 살 수 있다는 걸 저는 알고 있거든요.

아, 그런데 초콜릿은 무슨 맛인가요? 전 초콜릿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저도, 우리 형과 누나들도, 우리 부모님도, 우리 마을 사람들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초콜릿이 어떤 맛인지 상상조차 잘 안 돼요. 초콜릿은 잘 익은 카카오 열매의 흰 과즙처럼 부드럽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인가요? 설마, 말린 카카오 콩처럼 시고 쓴 맛은 아니겠죠? 저와 친구들, 마을 사람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카카오콩을 재배하려고 일을 하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는다는 얘길 테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초콜릿은 천국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맛이겠죠? 그렇겠죠?



카카오가 초콜릿이 되기까지
초콜릿 값 1천원, 농부 수익은 20원


싱그럽고 달큰한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열매는 다국적 기업의 손을 거쳐 바다와 사막을 건너면서 텁텁하고 뻑뻑한 초콜릿으로 바뀐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농부들한테 카카오콩을 사들여 무역회사에 판매하려면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중개상들을 ‘아쉐떼’라고 부르는데, 1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피스떼’라고 부르는 하위 중개상들을 고용해 각 마을로 카카오콩을 사러 보낸다. 피스떼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kg당 600~650세파프랑(약 1740~1885원)에 카카오콩을 사오면, 아쉐떼는 카카오 수출 회사에 825~850세파프랑(약 2393~2465원)에 이를 넘긴다. 런던국제금융선물거래소에서 매일매일 결정되는 가격에 따라 오르내리긴 하지만, 최근 수출회사들은 kg당 1950세파프랑(약 5655원) 선에 카카오콩을 판다. 사들인 가격과 판매가의 차이인 1100세파프랑(약 3190원) 가운데 450세파프랑(약 1305원)이 세금이고, 나머지는 수익과 경비 등으로 잡힌다.
잘 말린 카카오콩은 중간상인을 거쳐 수출회사로 넘어간다. 수출회사는 카카오콩을 사들인 것의 두 배가 넘는 값에 카길 등 다국적 식품기업에 카카오콩을 판매한다. 다국적 식품기업은 이를 카카오분말, 카카오버터 등으로 가공한 뒤 초콜릿을 만들어 전세계로 판매한다.

잘 말린 카카오콩은 중간상인을 거쳐 수출회사로 넘어간다. 수출회사는 카카오콩을 사들인 것의 두 배가 넘는 값에 카길 등 다국적 식품기업에 카카오콩을 판매한다. 다국적 식품기업은 이를 카카오분말, 카카오버터 등으로 가공한 뒤 초콜릿을 만들어 전세계로 판매한다.


코트디부아르엔 이런 카카오 수출회사가 40여 개가량 되는데, 이들 회사 대부분은 레바논, 프랑스, 미국 등 외국인 소유다. 코트디부아르 최대 무역항인 산페드로에서 가장 큰 수출회사인 사프카카오는 연간 10만t의 카카오 콩을 미국, 프랑스, 독일,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지로 판매한다. 물론 주요 거래처는 카길, 네슬레, 마르스, ADM 같은 다국적 식품기업들이다. 이 다국적 기업들은 사들인 카카오콩을 1차 가공해 카카오매스, 카카오버터, 카카오분말 등 초콜릿의 원료로 만들어 되판다. 카카오콩을 볶아 껍질을 벗긴 뒤 속살을 으깨 반죽처럼 만든 것이 카카오매스고, 여기에 압력을 가해 추출해낸 기름 성분이 카카오버터다. 기름 성분을 제거하고 남은 카카오매스를 가루로 만들면 카카오분말이 된다. 이런 원료와 초콜릿을 다국적 식품기업들로부터 사오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까지 카카오분말은 네덜란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프랑스 등지에서 1300만달러(약 179억원)어치, 약 6775t을 들여왔다. 카카오버터는 1170여t(805만9천달러·111억4천여만원), 카카오매스는 2800여t(1100만달러·150억여원)이 수입됐다. 역시 말레이시아와 네덜란드, 싱가포르, 영국 등이 주요 거래국이며 코트디부아르에선 카카오매스 20여t이 들어왔다.
국내 제과업체들은 이렇게 들여온 원료에 설탕, 대두유화제, 향료 등을 배합해 초콜릿을 만들어 국내 시장에 판매한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카길이나 ADM, 네슬레 같은 다국적 식품기업들이 네덜란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 카카오 가공회사를 설립해 수출을 하기 때문에 (서부 아프리카가 아니라) 이런 나라들에서 원료를 사들여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제과회사는 카카오 생두를 들여와 국내에서 직접 가공·제조를 하기도 하는데, 지난해에는 가나를 중심으로 생두 1600여t(420만달러·58억여원)이 들어왔다.
유럽 공정무역협회는 카카오 생산자들의 수익이 초콜릿 가격의 5%라면, 초콜릿 회사와 무역 조직이 얻는 수익은 그 14배인 70%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캐나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초콜릿 가격이 1천원일 때 농부들의 수익은 20원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강은주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은 “다국적 식품기업은 생산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카카오를 사들여, 임금이 싼 나라에서 가공품과 초콜릿을 생산한 뒤 자신들이 통제한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지속적인 생산자 착취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카카오 생산자들은 ‘노동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농민이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수준의 ‘푸드달러’(농산물 가격 가운데 농민에게 돌아가는 이윤)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적인 무역 형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야기(코트디부아르)=글·사진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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