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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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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엔 착한 초콜릿을


강제노동 없고 농약·비료 최소화한 공정무역 상품… 국내에는 인증 제품이 두 가지뿐
등록 2009-01-22 08:30 수정 2020-05-02 19:25

온 나라가 달콤한 초콜릿향에 취할 날이 다가온다. 연정을 고백하는 누군가는 설레고 떨리는 가슴을 하트 모양 초콜릿에 수줍게 담을 것이다. 흔들림 없는 사랑을 확인시켜줄 누군가는 커버처 초콜릿(가공유지를 포함하지 않은 제과용 초콜릿)을 직접 녹여 단단한 믿음의 상징을 만들 것이다. 사랑이 넘쳐나는 날, 밸런타인데이. 근데 그 초콜릿이 저 멀리 바다 건너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하루 종일 흘린 땀과 눈물이라면? 마음의 징표로 건네기 부끄럽지 않을까. 대안은 있다. ‘공정무역 초콜릿’이다.

한국공정무역연합이 판매하는 공정무역 초콜릿. 스위스 클라로가 만드는 이 초콜릿은 FLO 인증을 받은 가나·볼리비아의 농장에서 생산된 카카오로 만든다.

한국공정무역연합이 판매하는 공정무역 초콜릿. 스위스 클라로가 만드는 이 초콜릿은 FLO 인증을 받은 가나·볼리비아의 농장에서 생산된 카카오로 만든다.

‘사회적 프리미엄’으로 인프라 구축

공정무역은 저개발국 생산자에게 적정한 대가를 지불해 안정적인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는 질 높은 제품을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무역형태다. 이윤만을 좇는 다국적 기업과 복잡한 유통망을 배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농약과 비료 사용도 최소화된다. 카카오 생산은 물론 초콜릿으로 가공되는 전 과정에서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하는 아동노동·강제노동은 이뤄지지 않는다.

공정무역 초콜릿의 핵심은 가격이다. 세계공정무역상표기구(FLO)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원료가 될 카카오의 최소가격을 1t당 1600달러(약 217만원, 1kg당 약 2176원)로 정해두고 있다. FLO 인증을 받은 공정무역 카카오 생산자 조합원들은 코트디부아르 시니코송 마을의 카카오 농민들보다 1kg당 291~425원을 더 받는 셈이다. 카카오 국제가격이 폭락하면 시니코송 농민들은 중개상이 아무리 가격을 후려쳐도 별 도리가 없다. 공정무역 생산자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카카오 국제가격이 공정무역 최소가격보다 더 높아지면, 공정무역 카카오는 이보다 1t당 150달러(약 20만4천원), 유기농 카카오는 1t당 200달러(약 27만2천원)를 더 쳐준다. 일반가격에 얹어 받는 돈을 ‘사회적 프리미엄’이라고 하는데, 이는 개인이 아니라 생산자 조합에 주는 것이다. 조합은 이 돈으로 학교나 의료시설 등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만들거나, 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싸게 빌려준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FLO 인증 ‘착한 초콜릿’은 아직은 두 종류 뿐이다. 공정무역 시장 자체가 규모가 적고, 인식도 낮은 탓이다. 한국공정무역연합은 1년 전부터 스위스 공정무역 초콜릿 회사인 ‘클라로’에서 초콜릿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서울 안국동의 공정무역가게 ‘울림’(02-739-1201)과 홈페이지(www.fairtradekorea.com), 현대백화점 압구정점·무역센터점에서 살 수 있다. 클라로는 가나의 ‘쿠아파 코쿠’, 볼리비아의 ‘엘 세이보’라는 FLO 인증 소규모 농가 조합에서 유기농 카카오를 공급받는다. 초콜릿에 들어가는 설탕은 유기농 흑설탕으로 유명한 필리핀 마스코바도산이다. 클라로는 30년 동안 이런 공정무역의 역사를 이어왔다. 다국적 기업 스타벅스도 우리나라 매장에서 영국 공정무역 브랜드인 ‘디바인’ 초콜릿을 판매한다. 우리가 많이 살수록, 더 많은 공정무역 제품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다.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독일 녹색당 공동대표가 2006년 12월 콜롬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의 남자로부터 공정무역 초콜릿을 건네받고 있다. REUTERS/ ARND WIEGMANN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독일 녹색당 공동대표가 2006년 12월 콜롬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의 남자로부터 공정무역 초콜릿을 건네받고 있다. REUTERS/ ARND WIEGMANN

‘싱글’들이 할 수 있는 일

전해줄 사람이 없는 ‘싱글’들은 밸런타인데이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미국 공정무역 시민단체인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밸런타인데이마다 ‘행동하는 밸런타인데이’(National Valentine’s Day of Action) 캠페인을 벌인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신청을 받아 학생들에게 공정무역 초콜릿을 알려준다. 왜 공정무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공정무역 초콜릿 판매를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교육한다. 교사들은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을 데리고 간다. 지난해 캠페인엔 학생 2천 명이 참가했다. 올해는 밸런타인데이를 한 달 앞둔 1월 초순에 벌써 학생 1천 명이 공정무역 초콜릿 교육을 신청했다. 신청한 학생들은 미리 만져보면서 ‘체험학습’을 하라고 카카오 몇 알씩을 받는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올해에는 교육생 3천 명을 목표로 잡았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주변의 교사 5명에게 캠페인 참가를 독려하는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캠페인 홍보글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이메일에 글만 복사해 보내면 된다. 이 단체는 평소에도 카카오 생산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공정무역 초콜릿이 왜 중요한지를 초등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집을 나눠주고 있다.

캠페인에 참가하려고 미국까지 갈 수는 없는 법.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영리하고 재미난 아이디어를 몇 가지 내놨다. △공정무역 초콜릿과 꽃 사기 △홈페이지에 공정무역을 알리는 배너 달기 △밸런타인데이 카드에 공정무역 홍보물 함께 넣기 △플래시 애니메이션 (미국 시민단체 ‘유기농소비자연맹’(Organic Consumer’s Association)이 만든 것)을 친구들에게 보내기 등이 있다. 홍보물과 배너는 모두 글로벌 익스체인지 홈페이지(www.globalexchange.org)에서 제공된다.

물어보자 “이 초콜릿은 어디서 왔나”

좀더 적극적인 방법은 ‘더 많은 공정무역 초콜릿을 더 쉽게 먹고 싶다’고 우리나라 제과업체에 요구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초콜릿 대부분은 포장지 어디를 봐도 누가, 어디서 만든 카카오를 썼는 지 나와 있지 않다.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이 판매하는 초콜릿의 대부분은 어디서 생산한 카카오인지, 설탕이나 우유는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초콜릿을 집어들면 가혹한 아동노동 착취의 결과물인지, 유전자조작 대두에서 추출한 유화제가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도록 기업에 기본적인 식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일상의 변화와 실천에서 나온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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