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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첫 번째 키워드 스타벅스


제742호
등록 : 2008-12-31 10:42 수정 : 2009-01-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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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는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통해 세상을 미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살펴보는 기획입니다. 한 사람은 인문학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글쓰기를 인문학자도 부러워하는 글쓰기로 승화시킨 과학자(정재승)이고, 또 한 사람은 미학자로 출발했으나 ‘미학적으로는 훌륭하지 않은’ 정치를 평론하면서 시대의 재담꾼이자 토론의 달인(진중권)이 됐으니, 두 사람 모두 생을 크로스하며 살아온 셈입니다. 이들은 만화영화에서 영희와 철수가 ‘크로스’를 외칠 때처럼, 세상을 해석하는 조각들을 합체하여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스타벅스.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취향 공동체’의 탄생

커피가 아니라 브랜드를 사고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를 소비하네

[진중권]


‘언제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느끼는가?’ 한국에 사는 어느 외국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대답은 다양하다. “식당에 가서, 아줌마 ‘빨리 빨리’라고 외칠 때.” “두루마리 휴지가 식탁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때.”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자판기 커피가 맛있다고 느껴질 때.” 실제로 유학 갔다 처음 돌아왔을 때만 해도 자판기 커피는 끔찍했는데, 요즘은 자판기 커피가 정말 맛있다. 그것의 진정한 매력은 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있다.

자판기남과 스타벅스녀의 격돌

커피 한 잔에 300원 하는 사회에서 스타벅스는 가끔 문제로 여겨진다. 자판기 남성들 중 몰지각한 일부는 7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한 잔에 5천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된장녀’를 비난한다. 하지만 5천원짜리 밥 사먹는 주제에 술집 가서는 수십만원을 쓰는 ‘된장남’의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커피 한 잔을 둘러싸고도 성 권력은 어김없이 끼어드는 모양이다. 이보다는 좀더 합리적인 이유로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매일 식사 후 습관처럼 마신다고 했을 때 한 달에 20일만 잡아도 족히 10만원은 된다. 적립식 펀드에 하나 더 가입할 수 있는 자금이다. 1년이면 원금만 120만원, 10년이면 1200만원, 50년이면 6천만원이 된다.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 한 잔의 가치는 5천원이 아니라 미래의 6천만원이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여자 스타벅스 주식을 사는 여자>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책의 저자에게 그 6천만원으로 나중에 뭐할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마시지.”

‘취미’ 혹은 ‘취향’이라는 낱말은 글자 그대로 입맛(taste)을 뜻했다. 이 낱말이 이성중심주의 문화 속에서 시각과 청각의 섬세함으로 지각 능력으로 전의된 것이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감각의 섬세화를 문명화 과정, 특히 궁정화의 산물로 설명한다. 폭식과 폭음을 일삼던 중세의 호전적 전사들이 궁정에서 귀족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점차 취향의 섬세함을 평가하게 됐다는 것. 이 세련된 궁정 취향은 훗날 시민계급에게 받아들여지고,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의 확산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퍼지게 된다.

‘취미’의 탄생을 목격한 최초의 증언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아닐까. 거기에는 산초 판자가 제 조상 자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 조상 중에 형제가 있었는데, 와인을 맛보는 섬세한 미각으로 유명했단다. 훌륭한 와인 통을 개봉하는 날, 동네 사람들이 그들에게 맛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먼저 맛을 본 형은 “맛이 훌륭하나 어딘지 금속 맛이 남는다”고 했고, 동생은 “맛이 훌륭하나 어딘지 가죽 맛이 남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형제를 비웃었으나, 나중에 다 비운 와인통 바닥에서 가죽 고리가 달린 열쇠가 나왔다나?

미학을 닮아가는 미래의 경제학

커피가 와인과 달라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스타벅스’는 유럽의 섬세한 커피 취향을 미국에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어떤 원두를, 어떻게 갈아, 무엇과 섞느냐에 따라 다양한 커피가 만들어진다. 마담이 타주는 다방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 먹다가, 설탕과 크림 분말의 혼합비로 취향을 드러내는 단계를 거쳐, 다양한 원산지의 커피들의 질적 차이에 대한 감각을 섬세히 분화시키는 단계. 거기에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문화적 필연성이 있다.

스타벅스는 커피의 입맛(taste)을 하나의 미학적 취향(taste)으로 바꾸어놓았다. 스타벅스는 커피 이상의 현상으로, 그들이 파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브랜드다. 사이렌이 그려진 로고가 달린 머그잔·티셔츠·일기장은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된다. 빈티지풍의 푸른색 사이렌 로고는 제법 고풍스런 원본의 아우라를 풍기며 스타벅스의 뿌리 없음을 슬쩍 은폐한다. 커피잔과 아이템 위에 새겨진 사이렌의 로고는 그것을 소유한 이가 어떤 ‘취향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말해준다. 일종의 ‘종족화’ 현상이랄까.

고객은 “거기에 가면 늘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타벅스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 아이템은 물론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커피의 취향을 팔고, 나아가 문화적 취향을 판다. 스타벅스는 매장에 흐르는 음악의 선곡자이며, 읽을 만한 책의 추천자이자 볼 만한 공연의 기획자다. 그것은 취향의 방향을 결정하는 비평가다. 듣자 하니 기존의 아이템을 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앞으로는 아예 새로운 저자, 새로운 가수를 발굴해 소개하고, 새로운 영화까지 만들 예정이란다.

스타벅스는 식품산업을 문화산업으로 변화시켰다. 물론 이는 스타벅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애플 사용자들은 컴퓨터의 성능이 아니라, 그것의 디자인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연출하는 데에 민감하다. 애플숍에서는 컴퓨터와 주변기기만 파는 게 아니다. 그들은 취향을 판다. 자기의 사용자들이 자사의 기기가 아니라 브랜드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전략이 보여주는 것은, ‘미래의 경제학은 점점 더 미학을 닮아간다’는 사실이리라.

스타벅스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삐딱한 시각은 사회학에서 나온다.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을 보드리야르는 ‘파노플리 효과’라 불렀다고 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라면 이를 계급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구별짓기’로 설명할지 모르겠다.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는 허구 자체가 세계가 되는 법. 허구로서의 커피, 서사로서의 커피가 오늘날에는 이미 에스프레소의 진한 액체만큼 진한 물질적 현실이다.

스타벅스는 이탈리아 커피를 들여와 커피의 본고장 유럽에 진출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스타벅스 프랑스 파리의 한 지점. REUTERS/ CHAARLES PLATIAU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

대중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를 소비한다.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다. 생산과 소비의 물질적 모델은 산업사회에 속하는 것. 그것에 대한 정보사회의 모델은 비(非)물질화 혹은 재(再)물질화, 다시 말해 물질이 아닌 브랜드 그 자체, 혹은 물질의 디자인과 결합된 브랜드일 것이다. 스타벅스는 취미를 선사하고, 전달하고, 창조하는 문화적 매체다. 오늘날 기업은 취미로 묶인 상상의 공동체를 수신자로 갖는 미디어가 되었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예술의 옆에 커피‘과학’을

과학기술자들의 불면증으로 시작해 21세기형 인간의 뇌를 중독시켰네

[정재승]

1980년대 초반. 시애틀의 한 커피숍이 ‘우유가 들어간 따뜻한 커피’를 팔면서 읽기도 힘든 이탈리아어를 메뉴판에 써넣기 전까지 미국 사람들은 ‘카페라테’(Cafe Latte)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매년 전세계 지구인들에게 23억 잔의 커피를 팔고 매주 900t의 원두를 포장 판매하며 연간 10조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다국적 기업. ‘공정무역 커피’라는 이름으로 커피 문화 운동에 동참하면서도 매출액의 90%가 순이익이어서 창업자 하워드 슐츠를 평범한 지배인에서 25년 만에 세계 359위의 부자로 만들어놓은 커피숍 스타벅스. 그들은 어떻게 지구라는 거대한 행성의 도시 곳곳에 별가루(Star Bucks)를 박아넣을 수 있었을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스타벅스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게 된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과학이 크게 한몫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미국 내 커피 소비량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던 1980년대 초반 무렵, 이탈리아에 갔다가 에스프레소 커피향에 매료된 하워드 슐츠는 원두를 파는 시애틀의 작은 커피가게 하나를 인수해 커피숍으로 바꾸고, 50센트 커피 시대에 무려 3달러짜리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그것도 종이컵에.

그러나 그가 종이컵에 담은 것은 커피만이 아니었다. 그가 담은 것은 커피를 향유하는 유럽의 고급문화. 모든 메뉴판의 커피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바꾸고, 매장을 온통 진한 커피향으로 가득 메웠다. 벽면은 고급스러운 갈색톤으로 바꾸어놓았고, 예술적 감각이 살아숨쉬는 미적인 그림들로 채웠다. 또 고급스런 재즈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스타벅스 분위기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다름 아닌 ‘시애틀의 과학기술자들’이었다. 비가 많이 오고 밤이 길어 ‘우울한 도시’였던 시애틀에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들어섰고, 관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줄지어 시애틀로 들어왔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즐길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임금 수준이 높고 지적인 과학기술자들은 이탈리아어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했다. 컴퓨터를 주무르던 과학기술자들은 스타벅스를 찾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드러냈고, 3달러짜리 스타벅스 커피는 시애틀의 과학기술자들을 몹시도 잠 못 이루게 했다. 이렇게 과학기술자들은 스타벅스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다른 주로 널리 퍼지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뜨거운 커피에 손이 데지 않도록 종이를 둘러주는 아이디어도 스타벅스가 처음 낸 아이디어였고, T모바일과 제휴해 무선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미국 내 스타벅스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미국 내 스타벅스에 가면, 대학생들이나 직장인들, 혹은 작가들이 커피향에 둘러싸여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스타벅스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로고에 즐거움의 중추가 반응하다

스타벅스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사실 중 하나는 그들이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 ‘싸고 맛있는 커피’로 유명한 던킨도너츠는 ‘우리들이 사랑하는 도너츠’라고 외치고 맥도널드도 다른 커피회사와 제휴해 맛있는 커피를 함께 즐기자며 유혹하지만, 낭만과 신비를 파는 스타벅스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것 역시 고급화 전략 중 하나일 텐데, 대신 스타벅스는 ‘스타벅스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음반을 판매하고 있다. 그들은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와 독점 계약을 해 그의 새 앨범을 스타벅스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예술’이 받아들여지는 대뇌 영역 옆에 끼워넣기를 하고 있는데, 스타벅스가 내놓은 음반이 그래미상을 받은 경력만도 8번이나 된다.

뇌영상장치 안에 들어 있는 일반인들에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는 햄버거 가게의 로고를 보여주면, 그들의 뇌 영역 중 ‘고통과 불쾌’를 표상하는 인슐라(Insula)가 활성화된다. 흔하고 값이 싸며 나를 살찌우면 정크푸드 이미지가 강한 것이다. 하지만 초록 여신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스타벅스 로고를 피험자들에게 보여주면, 즐거움의 중추(Nucleus Accumbens)와 브랜드의 가치를 음미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스타벅스는 어떻게 전세계 사람들을 초록색 로고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었을까?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한 것도 스타벅스의 친환경 이미지에 많은 보탬이 됐다. 동티모르의 커피농장 노동자들이 커피를 말리고 있다. REUTERS/ BEAWIHARTA

스타벅스는 ‘긍정의 심리학’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매장이다. 커피숍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사이즈는 단연 ‘스몰’(small). 하지만 스타벅스에선 가장 작은 것, 가장 싼 걸 시키면서도 ‘톨’(tall)이라고 주문해야 한다. 돈 내고 커피를 사먹으면서도 ‘스몰’이라고 주문하면서 주눅들 필요 없이, 작은 걸 사면서도 당당하게 ‘톨’이라고 외치도록 만든 것이다. 더 큰 것들은 ‘그란데’(grande), ‘벤티’(benti) 같은 이탈리아어 이름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존심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을 높인 것은 사람들의 심리를 놀랍도록 꿰뚫은 마케팅 전략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쇼트’(short)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게다가 좋은 품질과 친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색 로고도 기여한 바 크고,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한 것도 스타벅스의 친환경 이미지와 잘 맞는다. 커피를 재배하는 약소국들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품질 좋은 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커피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스타벅스는 에티오피아 등 28개 나라로부터 질 좋은 커피를 수입해 매년 78억7천만ℓ를 추출하고 있다. ‘커피’ 하면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턱없이 낮는 임금을 받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떠올라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커피를 사마실 수 있도록 죄책감을 덜고 있다. 나의 먹고 마시는 행위가 지구를 더럽히거나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에 참여한다’는 마음을 들게 만든 것도 유효한 전략이었다.

21세기 전략 ‘문화를 판다’

환경과 ‘부의 재분배’ ‘삶의 질’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21세기. 미국 내 매장이 대규모 감축되고 경쟁 커피숍들이 속속 등장한다고 해도, 스타벅스는 한동안 건재할 것이다. 커피를 멀리하고 차만 즐긴다는 중국에서도 스타벅스만은 길게 늘어선 줄이 끊이지 않는다질 않는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것’이라는 그들의 마케팅 전략이 21세기 문화산업의 중요한 프로토타입으로 오랫동안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21세기를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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