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도시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출판·예술인들의 역량이 모인 테마 도시이자 살아 있는 건축 전시장, 파주 북시티와 헤이리를 가다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 뒤 연일 땅값이 들썩들썩한다는 경기도 파주. 하지만 파주엔 이미 몇년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새 도시의 꿈을 향해 달려온 ‘자매 도시’가 두곳 있다.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이하 출판도시 또는 북시티)와 헤이리아트밸리. 출판도시가 책의 출판·인쇄·유통 전 과정이 이뤄지는 산업단지라면, 문화·예술인들이 주민이 될 헤이리아트밸리는 작품의 제작과 전시가 이뤄지는 창작마을이다. 출판도시가 심학산이라는 야산을 빼면 평지로 판판히 닦여진 광활한 들에 세워지는 것에 비해, 헤이리아트밸리는 작고 낮은 5개의 동산으로 둘러싸여 소쿠리처럼 오목한 생김새의 땅에 앉혀진다. 출판도시의 길은 필지를 바둑판처럼 가르며 반듯반듯 나 있지만 헤이리아트밸리의 길은 둥글게 휘어 있다. 그러나 출판도시와 헤이리에 집을 짓는 건축주와 건축가들의 상당수가 겹친다는 점에서, 출판도시와 헤이리는 부모는 같되 얼굴과 성격은 다른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더딘 걸음이지만 꾸준히 제 궤도 밟아
출판도시가 만들어져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생태와 환경은 절대로 뺄 수 없는 키워드다. 본래 출판도시가 자리잡은 땅은 한강 하류의 너른 저습지였던 곳인데 자유로를 닦느라 쌓은 제방에 가로막혀 폐천부지로 남게 됐다. 이곳에 출판단지를 세우는 계획을 세운 뒤 토지공사쪽에선 터를 고르고 길을 내고 필지를 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한강의 흐름과 나란히 흐르던 홍수방지 수로가 덮혀 땅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가능한 한 본래 땅의 모습을 복원하길 바라는 출판조합의 바람에 따라 이 물길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갈대가 무성히 자라는 개울로 제 모습을 찾았다. 이후 갈대 샛강은 ‘습지도시’라는 도시의 성격을 가늠하는 결정타가 됐고, 북시티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 흐르는 친근한 친구가 됐다(2000년엔 강 주변에 보리를 심어 이를 수확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심학산과 한강, 그리고 갈대 샛강
이를 위해 코디네이터들은 건물의 용도와 땅의 조건에 맞춰 각 지역을 5가지의 유형으로 나눴고, 그에 따라 건물의 생김새를 결정했다. 가령 자유로와 맞닿은 땅에는 ‘고속도로 그림자’(hignway shadow)라는 이름처럼 도로변에 길게 누운 모양의 2층 이하 공장들이 지어지도록 했고, 공장 뒷열 출판사들은 ‘서가유형’(bookshelf unit)으로 정해 반지하에 주차장을 넣고 위층에는 한강 조망권을 해치지 않도록 사이공간을 주도록 했다. 샛강 주변습지엔 “긴 다리로 가볍게 걷는 듯” 기둥에 의지해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의 건물을 제안했다. 외장재료도 엄격하게 제한해 알루미늄판·화강석·타일·붉은 벽돌·유리커튼월은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전체 도시 색깔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어 2000년엔 입주사와 건축가가 건축지침을 지키자고 약속하는 ‘위대한 계약’이 맺어졌다. 북시티 프로젝트엔 김원·김영섭·김인철·승효상·민현식·조성룡·정기용 등 국내 유명 건축가들과 플로리안 베이겔을 비롯해 세지마 카즈요·니시자와 류에·자에라 폴로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외국 건축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북시티의 이상은 이들 건축가가 제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이웃을 고려한 통일된 틀 안에서 개별 건축가가 개성을 발휘하는 건축 공동체다. 이 때문에 출판도시는 ‘윤리성’을 주제로 열린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초청받기도 했다.
헤이리, 건물층수도 2~3층 이하로 제한
파주 농요 ‘헤이리소리’에서 이름을 따온 헤이리아트밸리는 생산성 높은 작업이 이뤄지는 신명나는 예술인마을이 꿈이다. 350여 가구에 이르는 입주자의 조건도 문화·예술·창작 종사자로 정했다. 이 때문에 사무국에서 내는 소식지의 회원 동정란은 웬만한 문화 정보지를 방불케 한다. “윤도현 회원 ‘윤도현의 러브레터’ 진행자로 입성”, “정태춘·박은옥 회원 골든앨범 출시”, “이주헌 회원 미술책 출간”, “조덕현 회원 프로젝트전시회 열어” 등 문화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소식들이 담겼다. 김언호 이사장은 “예술인마을이라는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건물의 3분의 2는 문화공간으로 쓰도록 정했다”고 말한다. 주거전용지역에 집을 짓는 100여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공간의 60% 이상을 갤러리·작업스튜디오·콘서트홀 등으로 꾸며야 한다. 건물들이 제맘대로 삐죽삐죽 올라서지 않도록 주거지역은 2층 이하, 나머지 구역은 3층 이하로 건물 층수도 제한했다.
마을의 심장부에 들어선 공원은 손이 간 듯, 안 간 듯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방문객을 맞았다. 이곳은 최대한 인공성을 배제하고자 잔디도 심지 않고 마사토로 표면을 덮었다. 택지개발 전에는 모두 논이었던 이 땅에 본래 있었던 작은 늪지도 그대로 두었다. 갈대 무성한 연못가로 나무다리를 놓아 물과 좀더 가까이 마주하도록 배려했다. 소나무 등 몇 가지 수목과 우리 꽃을 심어 토종공원다운 모습을 지켰다. 마을을 돌며 흐르는 개울 또한 원래 좁은 논수로였던 것을 넓게 파내고 자연형 하천으로 가꿔낸 것이다.
폐쇄도시가 될 것인가, 활기가 넘칠 것인가
북시티와 헤이리는 각각 우리나라 출판인·예술인들의 역량이 집중된 테마 도시이자 살아 있는 건축 전시장이 될 것이다. 환경과 이웃과의 공존이라는 이상을 위해 세심하게 계획된 이 도시가 과연 부동산의 물욕에 휘둘리지 않고 기존 도시개발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성공사례로 남을 것인가. 근사한 건물 속에 갇혀 자기들끼리만 교류하는 폐쇄도시가 아니라 사람의 활기가 넘치는 살아 있는 도시가 될 것인가. 이런 물음들은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이런 여백들은 아마도 정기용씨의 말마따나 “사람이 채울 몫”일 것이다.
파주=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