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2 ] 2003년06월12일 제463호 

“파주는 불확정적 공간”

북시티 건축작업 참여한 플로리안 베이겔 교수… ‘자연과 인공 녹아드는 건축’ 한국에 전파

승효상(이로재 대표), 민현식(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종규(M.A.R.U. 소장), 김준성(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등 한국을 이끄는 건축가 집단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플로리안 베이겔 교수(북런던대). 그는 98년 승효상씨가 북런던대 객원교수로 초청돼 영국에 체류할 당시에 만난 인연으로 함께 파주북시티의 건축지침을 만드는 작업을 상의하면서 한국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파주북시티의 중간점검 심포지엄을 위해 지난 6월1일 방한한 베이겔 교수를 만났다. 그는 “파주북시티는 한강과 심학산이라는 기억이 모여져 형상화되는 도시이자 기존에 있었던 갈대습지를 보존하여 새로운 도시 구조와 공존할 수 있는 습지의 도시(urban wetland)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지금의 상태는 기본 개념을 잘 지켜가고 있다”고 평했다. 덧붙여 파주북시티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미래를 대다수 확정해버리는 마스터플랜류의 도시개발과 다른 신개념의 도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도시의 모습이 갖추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평소 자주 이야기하는 ‘불확정적 공간’(Indeterminate Space)의 개념은 이러한 생각을 잘 뒷받침해준다.

실제 이 장소에서 삶을 유지해갈 사람들을 위해 특정한 용도와 기능, 성격을 정해놓지 않은 공간을 설계했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소풍을 계획하기보다는 돗자리를 준비하는 것이며, 저녁 만찬을 계획하기보다는 만찬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는 거주자를 위해 최소한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결국 건축전문가의 역할이라는 점을 역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플로리안 베이겔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그가 줄곧 주장해온 ‘건축적 랜드스케이프’(architectural landscape)가 한국 건축계의 주요한 화두로 등장했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건축적 랜드스케이프’란 자연과 인공물이 대립하지 않고 서로 녹아들어 가면서 융화되게 하는 최소한의 건축디자인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인식의 밑바탕에는 자연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구조에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좀더 나은 인공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환경의 중요성이 날로 중요해지고, 아름다운 오브제쯤으로 여겨지는 건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또한 자연주의 세계관이 바탕이 되었던 고유의 전통 건축문화와 맥락을 살리는 전략으로서, ‘건축적 랜드스케이프’는 한국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점차 제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채워지기 전의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건축물이 공유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 그 답은 심학산이나 한강, 갈대습지와 같은 자연에 있다. 그 풍경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장소의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플로리안 베이겔이 하고자 한 일은 바로 그것이다.

최연숙 | 월간 〈건축문화〉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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