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24일 제502호
진보여… 힘 모으자 vs 힘 기르자

우리당 · 민노당 지지자의 ‘삼겹살 설전’… 현실에 ‘올인’할 것인가 소신 밀어붙일 것인가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이번 총선에서 민노당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열린우리당을 찍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이른바 ‘탄핵 정국’은 이런 고민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4·15 총선은 진보정당의 출현을 바라면서도 실제 투표 행위에서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못한 많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그 부채 의식을 청산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 두명의 남자가 있다. 둘 다 1964년생 동갑내기다. 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나오고, 학생운동 경험도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다르다. 한명은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다른 한명은 열린우리당 당원이다.

이명주씨는 건축회사 설계실 팀장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노사모 회원이었다. “사무실 직원 50명 모두를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기 위해 밥까지 사먹이면서 결국 모두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개혁당원이 됐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그는 다른 개혁당원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기성 정당의 기존 질서를 어떻게든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위성남씨는 출판사 편집주간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 민주노동당원이 됐다. “침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위기 의식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이제는 뭔가를 할 시점이며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는데 개인보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때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에게 당시 가장 치열하게 반전투쟁을 벌이고 있었던 곳은 민주노동당이었다고 한다.

3월19일 밤 10시 두 사람이 만났다. 서울 홍익대 앞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번 총선에 임하는 입장을 나눴다. 토론의 고비고비마다 팽팽한 접점이 만들어졌다.

‘비판적 지지’에 대하여

이: 나는 열린우리당의 당비 내는 당원이다. 주변에 보면 개혁당에서 온 친구들이나 새롭게 입당하는 분들이 많다. 순수하게 생활정치를 하자고, 기존의 틀을 깨자고 하는 이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토론을 하다보면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는 우리당을 찍고, 정당 투표는 진보정당으로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저는 차분히 그런 얘기를 한다. 지금은 탄핵 국면에서 볼 수 있듯이 수구·보수 세력을 몰아내는 데 확실히 힘을 실을 때다. 몰아내려면 표를 어디다 줄 것이냐가 중요하다. 진보정당에 주는 것도 좋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표 하나도 귀중할 수 있다. 지금은 ‘올인’ 할 때 아니냐, 표 갈라서 이쪽 하나 저쪽 하나 주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말한다.


△ 이명주: 지금은 수구 · 보수 세력을 몰아내는 데 확실히 힘을 실을 때다. 몰아내려면 표를 어디다 줄 것이냐가 중요하다. 진보정당에 주는 것도 좋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표 하나도 귀중할 수 있다. 지금은 ‘올인’ 할 때 아니냐.

위: 예전부터 있어온 이른바 ‘비판적 지지’의 논리인 것 같다. 대선 때 집사람과 누구를 찍을 것이냐를 두고 의견 대립이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막판에 밀리면서 아내가 ‘노무현 안 찍으면 이혼하겠다’고까지 했다. 본인은 그렇게 절실했나보다. 싸울 수도 없고 나야 소신 투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몇 개월 뒤에 바로 후회하더라. 지금은 그런 얘기 안 한다. ‘비판적 지지’의 논리가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과제는 이것이니까 여기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힘을 합쳤을 때 하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점도 있다. 87년도에 시작돼서 20년 가까이 내려오는데 한번 빠지면 끝까지 그 논리로 가게 돼 있다. 작은 과제는 그 시기마다 제기된다. 그 논리에 빠져서 투표해본 적도 있다. 근데 나중에 자존심이 상해서 하고 싶은 대로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당하고, 속상하고, 술 먹고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

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속은 편한데 현실이라는 게 있다. 나는 군대 경험을 했는데 그렇게 비인간적인 곳에서 내가 탈영 한번 안 하고 고참한테 한번 개기지도 못한 것에 지금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 현실도 견뎌왔다. ‘비판적 지지’도 넓게 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일이다. 그 안에는 물론 기준이 있다. 그렇게 기준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위: 내 인생에 처음 하는 선거에서 조순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밀어준 적 있다. 한달 만에 후회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손가락이라도 자르고 싶었다. 노 대통령 관련해서는 파병 때부터 아내가 나한테 얘기 안 한다.

이: 나도 파병반대국민연대에 들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것과 실제 현실의 논리는 다를 수 있다. 탄핵 과정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현실의 맥락을 전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주장을 해야 현실적인 것이다.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가자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당위성을 얘기하는 것은 쉽고 나도 할 수 있다.

우리당의 한계, 민노당의 한계

위: 대안 없는 비판이라서 비현실적이라는 논리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파병 반대가 현실화했을 때 국제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 내부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등의 시뮬레이션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파병 반대를 외치는 것 자체가 힘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해서 힘이 쌓이고 현실이 바뀌는 것 아닌가.

이: 주장을 할 때 설득력이 있으려면 현실적이어야 한다. 있는 현실에서 이끌어내지 않으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나. 정말 대중과 민중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어야 한다.

위: 그 현실성 논리가 발목을 잡는 측면이 있다. 사실 대안이 있을 것 같지만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안이 있는 것처럼 느낄 뿐이다. 니네들은 만날 원칙만 얘기하고 대안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주춤하고 버벅거리는 게 바로 그 대목이다.

이: 탄핵 국면을 봐라. 6·29 이전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봐도 좋을 정도 아닌가. (탄핵 국면에 따른) 정치적 힘은 물론 열린우리당이 받고 있지만 사실 수구를 몰아내려면 ‘올인’ 하는 게 맞다.

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라기보다는 아직도 힘을 가진 기득권층의 저항이 극에 달한 것 아닌가. 그 사람들이 군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면 쿠데타라도 날 수 있는 상황 아니었나.

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실망스런 모습은 있지만, 결국 큰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로 볼 수 있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릴 수 있는 기득권까지 버려가면서 하는 것 아닌가. 보수는 그렇다고 해도 진보세력까지 딴죽을 걸어야 하나. 한 발짝 물러서서 욕만 하고 있다.


△ 위성남: '비판적 지지'의 논리가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번 빠지면 끝까지 그 논리로 가게 돼 있다. 그 논리에 빠져서 투표해본 적도 있다. 근데 나중에 자존심이 상해서 하고 싶은 대로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밀어줄 때 밀어주자는 것인데 계속 밀어줘도 나중에 배신당한다.

이: 결코 배신당했다고 생각 안 한다. 노 대통령도 한계는 있지만, 배신당했다는 수준은 아니다.

위: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이: 시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개인 자체는 배신했다고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위: 매번 반복되는 힘을 모아야 한다는 논리를 보면 그것은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전제한 게 아니다. 사람들의 정서나 분위기로 모아가자는 것이다.

이: 탄핵 국면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은 초기 국면과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올 때 보인 태도가 다르다. 그게 민노당의 한계 아닌가. 진보정당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기보다는 기성정당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한 발짝 물러나서 이해득실의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닌가로 보였다.

위: 민주노동당이 정치 쟁점을 형성할 만한 자기 힘이 있으면 현실을 움직일 수 있을 텐데 현재는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다. 힘을 가져야 자기 역할이 있고 새로운 양상을 보여줄 수 있다. 현역 국회의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다. 자민련이 미약하나마 국회의원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인정해주는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정치의 미래는 밝다

술잔이 거듭될수록 ‘알코올 대담’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경남 지역 등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연대 움직임이 무산된 데 대해 이씨는 “잘났다, 정말. 그래, 잘난 맛에 살아라”고 역정을 냈고, 위씨는 “그 맛이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이고 힘”이라고 응수했다. 이씨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열린우리당을 ‘보수세력’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서구의 잣대”라고 지적했다.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고 수구세력이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열린우리당은 중도좌파 정도로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호소였다. 이씨의 지적에 위씨는 여전히 “그건 ○○아빠 생각이지”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반적인 수구·보수의 퇴조와 진보의 성장이 가져올 한국 정치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진정성’을 인정했다. 토론은 밤 12시가 한참 넘어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