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최병렬’ 주도한 소장파 의원들의 파워… 총선 이후 ‘보수신당’ 결성까지 무한질주 가능한가
위기의 한나라당에 던져진 최후예감 신호에 소장파 의원들이 일어났다. ‘포스트 최병렬’을 주도하며 여권에서 흔하지 않은 ‘쿠데타’를 성공시킨 그들이 총선 이후 ‘보수신당’ 결성까지 계속 무한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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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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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렬 대표는 관훈토론회에서 ‘이회창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화를 자초했다. 최 대표가 지난 22일 대표직 이양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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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무릎을 꿇었다. 최 대표는 2월22일 기자회견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에게 대표직을 이양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남경필·원희룡·오세훈 의원 등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자기희생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지 열하룻만의 일이다. 일찍이 옛 여권에서 볼 수 없던 ‘쿠데타’가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번 한나라당의 소용돌이 중심에 남·원·오 의원 등 소장파가 있었다는 데 이견을 달 이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이 처음 ‘깃발’을 내걸었고, 구당모임이니 10인위원회니 최 대표 퇴진과 후속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 모여든 여러 계파들의 집합체에서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장 주목받았다. 그러나 ‘소장파들이 한나라당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왔느냐’는 질문으로 각도를 틀어보면 여러 대답이 가능해진다.
여권에서 흔하지 않은 ‘쿠데타’ 성공
먼저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공천을 반납할 각오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골방에 처박혀 외로움에 떨 수도 있었고…. 그런데 최 대표가 화를 자초했다. 2월16일 관훈토론회에서 최 대표 자신의 책임이나 거취에 관한 표명 없이 이회창 전 후보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불을 끈다면서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실제 관훈토론회에서 본격화된 최 대표의 ‘이회창 책임론’은 당내에서 그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소장파의 ‘반최 깃발’ 주위로 서청원 전 대표와 가까운 세력, ‘포스트 최’ 이후를 노리는 세력, 공천 과정에서 소외된 민정계 세력들이 집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소장파들이 본격적인 공천에 앞서 ‘60대 용퇴론’ ‘5·6공 청산론’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당내 소수 세력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제거’ 대상으로 꼽던 세력들의 힘을 등에 업고 뜻밖의 ‘전과’를 세우게 된 것이다. 최 대표쪽이 “물러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에도, 말 안 듣는 최 대표보다는 말 잘 듣는 분을 대표로 옹립해 뜻대로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최 대표가 백의종군을 선언하기까지는, 소장파들이 전면에 나서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는 민정계 중진들의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 불을 댕긴 쪽은 소장파지만, 그 불의 쓰임새까지 소장파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한나라당 사태는 환골탈태로 이어질 것인가. ‘반최 진영’의 초 · 재선 의원들이 지난 2월19일 국회에서 임시 전당대회 개최 등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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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반최 연합전선’ 속에서 소장파들에게 힘이 쏠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누구도 소장파들이 최 대표 체제 이후 당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반최 전선’에 모여든 여러 정치세력들이, 다른 정치세력들의 움직임에 “‘사’가 끼어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반면 소장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순수하다”는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천심사위의 독립성과 권위 존중’ 주장이었다. 소장파의 입장에서는 절반가량 진행된 그동안의 공천작업이 썩 내키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흔들린다면 당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최병렬 대표에게 불출마를, 홍사덕 총무에게 전략 지역 출마를 권할 정도의 공천심사위라면 남은 공천 과정에 기대를 걸어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장파들의 주장은, 최 대표가 자신의 거취와 당의 진로 문제를 두고 장고에 들어가면서 생긴 공백상태에서 ‘방부제’ 역할을 한 셈이다.
순수성 무기로 ‘반최 전선’ 앞에 나서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반최 연합전선의 성격을 잘 봐야 한다. 소장파를 제외하고 이재오·김무성·맹형규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포스트 최’를 노리는 세력의 대표자 성격이 짙다. 맹형규 의원은 서청원 전 대표의 측근이고,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미래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무성 의원은 어떤가. 공천에서 물을 먹었거나 밀려날 위기에 있는 영남권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이들은 공공연히 분당 가능성을 거론하거나 공천심사위 재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전당대회 판이 벌어지는 순간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한나라당 사태가 소장파들의 위기 진단과 처방에 대한 공감대 확산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당내의 복잡한 여러 세력이 “최병렬 퇴진”이라는 깃발 아래 일시적으로 모인 것일 뿐이어서,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런 점에서 소장파 의원들은 이번에 임시 전당대회를 통한 새 대표 선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냈지만,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남경필 의원은 “이제 중간 정도 왔다”라며 “한나라당의 중심세력을 교체하고 부패수구 세력과의 절연을 통해 새로 태어나려면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자평했다.

△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총선 이후에 대비한 청사진을 짜고 있다. 지난 18일 최병렬 대표와 소장파 의원들이 만났지만 서로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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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 소장파 의원은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끌어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답은 자명하다.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다. 2월11일 “한나라당의 혁신적 재탄생을 위한 당 지도부의 자기희생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이들은, 남경필·오세훈·원희룡·정병국·권영세·권오을 등 국회의원 6명과 김성식 위원장(관악갑)·은진수 부대변인 등 5명의 원외인사를 합쳐도 11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들의 활동기반이던 미래연대마저 지난해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서청원 전 대표 지지세력과 최병렬 현 대표 지지세력으로 갈려 사실상 활동을 마감했다. 이들의 위기 진단과 해법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의원들을 최대한 끌어모은다고 해도, 30명을 넘기기 힘들다(물론 최 대표처럼 ‘뉴한나라당’을 언급하는 이들은 많지만 소장파들의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있다). 아직까지도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정식 전당대회 통해 확실히 바꾸련다”
그럼에도 당내에서 ‘씨알도 안 먹히는’ 환골탈태를 외쳐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시계(視界)는 이미 총선 이후로 넘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개혁공천을 한다고 하더라도, 또 총선 이전에 임시 전당대회를 치러 새 대표를 뽑는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체질개선에 한계가 있는 만큼, 총선 이후 전개될 정치환경의 변화와 정식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소장파 의원 가운데 핵심인 원희룡 의원은 최근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 다음>과의 인터뷰에서 “아직은 지평선 너머에 있는 일”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보수신당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원 의원은 “미래연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의 최대치는 정당”이라며 “일단은 한나라당을 중도보수로 이끄는 예인선 역할을 하겠지만 불가능할 경우 보수시장을 재편해 정치 소비자가 원하는 신상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건강한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이끄는 ‘예인선’인 ‘당 내 당’ 역할에 주력하겠지만, “총선 결과 지역기반에 기대어 영남권은 후보들의 자질에 관계없이 모두 당선되고 수도권은 참패하는 경우라면” 신당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서, “총선 이후 정계개편의 필요성과 (정치)시장의 브랜드 체감도나 총선 결과, 개헌 논의, 건전보수 대 중도좌파 등 이념적 차원의 국가미션 논쟁, 차기 대선주자 논쟁 등이 보수신당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존 한나라당과 보수신당이 80석 대 30석 정도로 갈라진다 해도 여론이 보수신당쪽으로 몰리면 80석 정당에서 의원들이 물밀듯이 빠져나오게 된다”고 말해, 이런 구상이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님을 짐작케했다.
체질개선,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시계가 4·15 총선 이후에 맞춰져 있다고 해서, 이들이 코앞에 닥친 최병렬 대표 체제 이후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총선 이후를 위해서라도 임시 전당대회에서 ‘땅고르기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소장파 당 대표 출현’이라는 시나리오가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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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당권에 도전할 것인가. 지난 18일 최병렬 대표를 만난 소장파 의원들이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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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보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이름붙일 수 있는 원 의원의 이런 구상이 소장파 의원들과 어느 정도의 교감을 거쳐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차떼기’로 불법 대선자금이 전달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난 연말만 해도 “보수는 리모델링을 좋아하지 재건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며 보수신당의 가능성을 일축했던 한 소장파 의원이 최근 “철저히 부서진 폐허 위에 새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선회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보수신당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증폭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시계가 4·15 총선 이후에 맞춰져 있다고 해서, 이들이 코앞에 닥친 최병렬 대표 체제 이후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임시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를 선출한 뒤 이양하겠다는 최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여러 계파의 ‘최대공약수’로 등장한 ‘박근혜 카드’에 대해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는 탓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소장파들의 정치적 역량을 시험해보려는 시도도 감지된다.
소장파쪽 관계자는 “소장파들은 항상 대리인을 내세워 실패해왔다. 귀염받다가 외면받기를 반복한 것이다. 이제는 전면에 나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질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임시 전당대회가 현재의 지구당위원장 중심이 아니라 공천자 중심의 전당대회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당원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공천 결과에 따라 선거인단의 성격이 대폭적인 변화를 바라는 쪽으로 바뀔 수 있고 거기에 당 대표 선호 여론조사 결과로 가중치를 주는 제도상의 변화가 따라준다면, ‘소장파 당 대표 출현’이라는 시나리오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총선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서라도 임시 전당대회에서 ‘땅고르기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청년장교당’을 만들려고 최 대표 퇴진 깃발 들고 나섰느냐”는 비판이 뒤따를 수도 있다. 남경필 의원은 임시 전대에서 소장파의 독자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역량이 되고 능력이 되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지만, 지금은 정확하고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라며 즉답을 피했다. 일각에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인기가 급상승해 선거대책위원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오세훈 의원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오 의원 자신은 “불출마를 선언한 마당에 그런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고사하고 있다.
소수의 힘으로 ‘거대여당’ 움직일 건가
이회창 전 총재의 공천혁명에 의해 발탁돼 때론 그의 총애를 받았고 때론 그에게 반기를 들었던 한나라당 소장파. 지난해 최병렬 대표 등극의 1등 공신이면서 이제는 “최 대표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그들은 뒤늦은 ‘개안’(開眼)을 후회하고 있다. 2002년 대선 전에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위해 피터지게 싸웠더라면 현재와 같은 존망의 위기는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아픔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모습의 보수정당을 꿈꾸고 있다. 한 보수논객의 표현처럼 당내에서는 “한줌밖에” 되지 않지만, 그 한줌의 세력은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강력한 여론의 순풍을 타고 있다. 그 바람을 제대로 타는지는 온전히 그들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