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의 핵심 남경필 · 오세훈 · 원희룡 의원… ‘신보수 신상품’으로 영남 탈색 효과 거둘까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나라당의 남경필(39)·오세훈(43)·원희룡(40) 의원은 ‘제2의 천·신·정’(열린우리당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이 될 것인가. 정치를 시작한 시기와 몸담고 있는 정당이 다를 뿐, 이들 세 의원은 정치 입문 과정과 당 쇄신투쟁 경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견될 만하다.
우선 정치 입문 과정부터 살펴보면, 이들은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와 2000년 한나라당이 당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혈한 ‘젊은 피’였다. 남 의원은 경인일보 기자를 거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중 1998년 부친의 사망으로 선거구를 이어받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원 의원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친 검사 출신으로 당시 ‘제3의 길’이라는 ‘386’들의 예비정치인모임에서 활동했다. 오 의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TV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해 지명도가 높았다.
노쇠한 이미지의 한나라당 입장에서 이들은 신선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지닌 ‘신상품’이었다. 1996년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문화방송의 앵커 출신인 정동영 의원과 인권변호와 방송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천정배·신기남 의원을 영입했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두 그룹은 정치개혁과 당의 쇄신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서기 전까지 당 지도부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천·신·정 의원은 2001년 김대중 정권의 2인자인 권노갑 전 고문과 동교동계를 정면으로 겨냥하기 전까지 각각 수석부총무, 제3정조위원장, 대변인 등을 고루 거치면서 ‘DJ 정치학교의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오·원 의원은, 서청원 전 대표의 ‘대안’으로 “보수 대수술”을 표방하던 최병렬 대표를 지지하고 나서 최 대표 체제 이후 대변인, 기획위원장, 상임운영위원 등으로 중용됐다. 심지어 이들이 ‘잘나가던 시절’에 당 안팎에서 들었던 비난(“동교동계가 키운 황태자 그룹” “수구보수 세력의 장식품”)까지 비슷하다.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신당운동에 앞장섰고 이제는 열린우리당의 지도부에 포진한 천·신·정 의원이, 끊임없는 당내 투쟁을 통해 호남색을 탈색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이들이 호남만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보수’를 주창하고 나선 남·오·원 의원도 영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이들이 활로로 삼고 있는 새로운 보수가 정치 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보는 이들에 따라 시각적 편차는 있겠지만, “개혁세력”을 표방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원론적 의미의 보수정당에 가깝기 때문이다. 원 의원 등이 예인하고자 하는 새로운 한나라당, 혹은 그 실패 이후의 카드로 만지작거리는 보수신당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보수정당들 사이에서 얼마만큼의 정책적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