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혼란 사태를 둘러싼 전문가 긴급 좌담…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정국 돌파할 해법은 있는가
사회 · 정리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한나라당이 대혼란에 빠졌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갈지자 정국 대처 등이 맞물려 정당 지지율이 급락한 상태다. 최근에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최병렬 대표의 진퇴 문제가 정면으로 제기됨으로써 당의 공중분해 가능성마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한겨레21>은 한나라당 사태가 “왜?”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디로 갈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밝혀보고자 했다. 최 대표의 공과, 새 지도부 구성 방법론 따위의 미시적 문제를 뛰어넘는 정치 지형의 변화 문제를 최근의 사태에서 읽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한겨레21>은 이를 위해 여론조사 전문가, 정치학 연구자,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등 4명으로 긴급 좌담을 가졌다.
[ 좌담 참석자 ] - 김형준(47·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미국 아이오와대 박사, 의회정치 전공) - 김헌태(37·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전 한국티엔소프레스 사회조사본부장) - 김도종(48·명지대 교수·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박사, 한국정치 전공) - 김성식(46·한나라당 서울 관악갑지구당위원장·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며 민주화운동으로 2번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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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소장파들의 절박한 사정
사회=한나라당 사태의 배경을 먼저 여론조사 흐름과 관련해 짚어보자.
김헌태=국민 전체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최병렬 대표의 퇴진을 비롯한 한나라당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하는 소장파 지지 여론이 우세하다. 반면에 순수한 한나라당 지지층만을 놓고 보면 소장파의 개혁 요구보다는 (당의 안정을 희구하는) 영남 중진들을 지지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층은 약 20% 규모로 파악되는데 기존의 수도권 중산층 등이 대거 이탈한 가운데 영남 지역주의 성향의 사람들만이 남아 있는 게 한나라당으로선 좋지 않은 점이다. 당의 핵심 지지층이 개혁 요구를 외면하는 반면에 지지하지 않는 계층이 개혁을 지지한다는 게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딜레마로 볼 수 있다.

△ 김헌태 : 당의 핵심 지지층이 개혁요구를 외면하는 반면에 지지하지 않는 계층이 개혁을 지지한다는 게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딜레마로 볼 수 있다. 영남지역주의가 변화의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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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한나라당의 지지자 중 상당수가 일시적으로 이탈했지만 잠재적 지지자는 남아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느냐의 여부에 따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수도권 소장파들이 절박하게 행동에 나서는 데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합쳐도 열린우리당의 그것을 밑돈다는 배경이 있다. 따라서 현 지도체제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에 영남권은 아직도 절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회=국민의식 변화와의 관련성은 어떤가.
김형준=과거 보수 편향이었던 국민들의 의식 지형이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다원화되어 정상분포로 바뀌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 사회는 보수가 많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면서 진보와 중도 성향이 두터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아직도 보수가 중심이 되는 사회라는 인식틀과 보수 편향 사회의 과거 전략에 머물고 있어서 많은 사람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1997년 대선 이전까지는 ‘진보’라면 좌파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던 것이, 그 뒤로 진보 하면 개혁이요, 보수 하면 수구 이미지가 떠오르게 됐다. 즉, 진보는 좋고 보수는 나쁘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계속 ‘진보는 나쁘다’ ‘진보는 심판 대상’이라는 네거티브 전략을 취해왔다. 색깔론 같은 게 대표적이다.
게다가 과거 60, 70년대의 보수이념은 힘들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룩하자는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나름대로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한나라당이 여전히 과거 회귀적 주장만 하니까 지지를 잃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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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 : 진보하면 개혁이요, 보수 하면 수구 이미지가 떠오르게 됐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계속 ‘진보는 나쁘다’ ‘진보는 심판 대상’이라는 네거티브 전략을 취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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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국제통화기금(IMF)을 계기로 과거의 개발 지상주의에 따른 한계가 드러나면서 진보·보수 정치세력 모두에게 변화의 과제가 주어졌다. 특히 김대중 정권 세력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탄압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상대적 업보가 더 컸던 만큼 변화의 필요성이 한층 컸다. 이에 따라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생산적 담론을 개발했어야 하는데 이 점을 간과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정권에 실망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냐”는 물음에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면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지 못한 과오
사회=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변화를 제때 읽고 변신하지 못한 근원적 이유는 뭔가? 경력의 화려함 등 인적 자원 측면에선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김도종=권위주의 정치세력이 1987년에 죽을 뻔하다가 지역구도 분할 전략으로 살아남았다. 다음에 호남 대 비호남 구도로 갈라놓고 반DJ 정서를 활용함으로써 1992년 대선에서 또다시 생명을 연장했다. 그러다가 1997년 대선에서는 졌지만 그 다음 2000년 총선에서는 다시 이겼다. 그러니까 당 전체적으로, 그리고 의원들 모두가 특별히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해온 것이다.

△ 김도종 : 지도부 교체와 동시에 중요한 게 공천 물갈이다. 그러나 물갈이를 놓고 볼 때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 ‘직원’에 불과하던 의원들이 지금은 ‘주주’로 격상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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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노 대통령은 3김 시대와 함께 지역구도 정치가 끝날 것으로 보고 10년 전부터 행동에 나섰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계속 부산에 출마한 게 그것이다. 2002년 대선은 그러한 변화에 대비한 사람과 대비하지 않았던 사람이 붙은 싸움이었다.
김헌태=공감한다. 영남 지역구 의석이 70석에 가깝기 때문에 영남 지역주의만 살아 있으면 한나라당은 반드시 1당이 되도록 되어 있다. 한나라당이 변화하지 못한 것은 영남 지역주의 때문이다. 영남 중진들의 머릿속에는 소장파들의 개혁운동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또 1당 할 수 있는데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번에 또 영남 지역주의를 이용하면 다음 대선에 이르러 완전히 영남의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영남 지역주의는 영남 고립주의이다.
사회=지난해 6월에 들어선 최병렬 대표 체제가 그런 변화를 시도할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나.
김성식=최 대표는 대표가 될 무렵, 첫째 보수세력의 자기반성론, 둘째 인큐베이터론(자신은 대권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인재군을 키우겠다), 셋째 주도세력 교체론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즉, 부패·기득권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 지향적인 변화를 앞장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최 대표는 스스로 언명한 것을 실행하지 않았다. 최근 최 대표가 대선자금 정국이나 서청원 석방결의안 처리, 관훈클럽 토론 등에서 범한 전술적 실책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최병렬 대표는 이회창을 닮아갔다
김형준=이회창 후보 진영은 1997년 대선의 패배 원인을 지역연합에서 실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즉, 상대는 DJP 연합에 성공한 반면 자신들은 이인제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본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분석하는 것도 나름대로 타당했다. 실제로 23만표 차이로 아깝게 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 후보쪽이 2002년 대선에서도 개혁이 아닌 선거연합 전략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즉, IMF 사태를 겪으며 보수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국민적 확신이 생기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큰 흐름이 생겼는데도 이에 눈감은 것이다. 2000년 총선 뒤에도 반성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대로 넘겼다. 당시 한나라당이 1당을 차지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영남권의 싹쓸이 때문이었으며 수도권에선 민주당한테 졌다. 그때부터 영남 고립주의화 가능성이 엿보였는데, 그것을 승리로 착각했다. 그리고 계속 반DJ 따위를 내세우면서 영남 지역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 대표가 제시한 3가지 개혁선언의 핵심은 보수가 중도로 옮겨가겠다, 즉 과거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것을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쳐 일종의 ‘우파적 제3의 길’을 가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 뒤의 실제 행동은 이회창 시절과 똑같이 수구적으로 갔다. 더구나 최 대표는 계보도 돈도 없이 한나라당을 개혁하겠다는 참신성 하나로 대표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노무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랬던 사람이 기대감을 잔뜩 높여놓았다가 거꾸로 이회창처럼 행동하니까 한층 급속히 무너지게 된 것이다.
김도종=최 대표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최 대표 체제가 들어설 때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50%만 되어도 위기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도가 30%로 떨어지고, 게다가 민주당 분당까지 되니 반성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제 살을 자르는 아픔이 없이도 총선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지난해 11월부터 급속히 무너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강요받지 않고도 스스로 자기 문제를 반성한다는 게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회=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한나라당이 어떻게 변화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로 옮겨보자.
김형준=과거에는 그나마 이회창 총재라는 대권 후보가 있어서 그 사람을 따라가면 표가 붙는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쪽으로 발전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발전 전략의 요체는 권력 분산과 의식 변화, 자율성이다. 정치도 과거 정당이 독점하던 시대에서 시민단체, 이익집단 등이 참여하는 문화로 바뀌는 시대 상황의 변화에 맞춰 시스템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 김성식 : 영남의 절대 우위에 근거해서 선거를 쉽게 치르던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탈영남지역주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과거 세력이 아닌 새로운 세력이 당을 끌고 나간다는 점을 명백히 가시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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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가 살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표직을 던지고 서청원, 이회창, 그 밖에 당이 수구 보수주의로 가도록 한 몇몇 의원들과 동반 퇴진하는 논개 노릇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되살아날 길이 열린다. 이승연처럼 군대위안부 누드를 찍어놓고 누드가 아니라면서 시사회를 보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버티면 한나라당은 두번 죽게 된다.
대안론은 위험, 새로운 시스템 만들 때
김성식=영남의 절대 우위에 근거해서 선거를 쉽게 치르던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즉, 탈영남지역주의를 출발점으로 해서, 다른 지역 모두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모을 당의 존재 이유를 재설정해야 한다. 또한 과거 세력이 아닌 새로운 세력이 당을 끌고 나간다는 점을 명백히 가시화해야 한다. 당내 수도권 세력은 존재론적 조건 때문에 전향적 깃발을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단합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서는 활로가 없다. (편집자=한나라당 소장파 사이에는 당개혁운동을 제기한 수도권 세력이 당의 전면에 섬으로써 일종의 ‘청년장교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헌태=더 이상 시장에서 소비되지 않는 수구적 보수를 외연으로 한 영남 고립주의 노선이 지금 한나라당의 실체라는 점에 동감한다. 현 시점에서 좀더 중요한 문제는 철학의 빈곤이다. 즉, 영남과 비영남을 한데 묶어세울 새로운 보수철학, 보수 패러다임을 개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고 한나라당이 또 영남 고립주의에 기대면 수도권에서 전멸한 가운데 영남에만 의석을 확보하는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형준=최근 박근혜니 강재섭이니 하는 대안론이 나오는데, 이는 영남을 대변하는 또 다른 깃발론이란 점에서 위험하다. 보수세력이 다시 영남 지역주의의 덫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은 정권을 찾을 가능성이 사라진다.
위기극복 방법은 차기 대선주자를 세우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특정 개인을 중심으로 한 권력 의인화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지도 체제와 이념적 방향에 대한 합의를 토대로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바뀌지 않을 안정감 있는 당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가 성공한 것은 특정 인물을 내세워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푸는 방법들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손학규 대안론 따위도 저급한 깃발론이다.
김성식=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은 “노무현이 잘한 게 없는데 왜 한나라당이 ‘피박’ 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즉 지난 1년여에 대한 심판 성격과 함께 미래에 대한 선택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고리타분한 세력이 물러나고 새로운 사람이 앞장서야, 국민들에게 뭔가 선진화하겠구나라는 믿음을 줄 것이다.
김헌태=영남 물갈이가 중요하다. 영남 물갈이는 유리한 지형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는 의미가 담겼다. 영남 물갈이를 하면 개별 지역구에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총선 뒤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영남 물갈이는 개혁으로 가는 신호탄
사회=총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이다. 개혁의 주도세력, 방법론 등에 대한 합의도 없는 상태다. 과연 한나라당이 단기간에 개혁작업에 성공할지, 아니면 자중지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도 있다.
김도종=지도부 교체와 동시에 중요한 게 공천 물갈이다. 그러나 물갈이를 놓고 볼 때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 ‘직원’에 불과하던 의원들이 지금은 ‘주주’로 격상되었다는 사정도 있기 때문이다. 성패를 점치긴 어렵지만 어려운 여건임은 분명하다.
김형준=깃발론이냐 시스템이냐로 가는 싸움에서 현재로선 깃발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탈영남지역주의 문제도 현역 의원이 제일 많은 영남의 요구를 배제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하는 의문이 있다. 그게 한나라당의 비극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대로 가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매우 소중한, 절호의 개혁 기회를 갖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김헌태=과감한 물갈이를 단행한 결과 영남 의원들이 일부 이탈해 제2의 민국당을 만들면 오히려 한나라당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상태에서 열린우리당과 호각의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지금 그대로 봉합한다면 한나라당의 앞길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