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10월15일 제480호 

성난 ‘노짱’이 핵펀치 날리다

재신임 카드는 모든 것 내건 ‘불안한 승부수’… 과연 누가 흔들리는 대통령을 만들었을까

나라가 사상 초유의 격랑에 휩싸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로 정국을 돌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재신임 국정을 돌파할 친노·반노의 카드는 무엇일까. 여야 의원 3인이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뜻밖의 정국 해법을 제시했다. 국정 위기를 신임 투표를 통해 일거에 반전시키겠다는 정면돌파 전략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적들이 “차제에 그를 갈아치울 수도…”라며 은근히 반색하는 반면에, 지지자들은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이라며 당혹감에 빠졌다. 그의 진의와 배경을 두고 분분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련과 위기는 순방 외교서 비롯돼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는 꽤 오래 전부터 지금의 해법을 깊이 고민해온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 중국 연쇄방문 뒤인 어느 무렵 참모들과의 사석에서 “다른 나라 대통령들은 인정을 받는 것 같더라.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참모들은 “다른 나라 정상들은 국정운영의 공과가 어떠하든 간에 최소한 대통령으로서의 신분과 지위 자체는 의심받지 않는 반면에, 노 대통령은 제대로 대통령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점을 괴롭게 여긴 것”으로 해석했다.

순방 외교는 노 대통령에게 시련이었다. 방미에선 대미 과공 논란이 빚어졌다. 방일 때는 “하필이면 현충일에 일본을 찾나”라는 비판이 일었으며, 노 대통령 자신은 “더 이상 일본의 과거사를 묻지 않기로 작정하고 (일본에) 왔다”고 공언했다가, 국내 여론의 비판에 부닥치자, 결국 일본 중의원 연설에서 과거사를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논란은 방미 때의 “한국전쟁 때 미국이 돕지 않았더라면 나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는 발언처럼, 노 대통령이 외교적 미숙함 때문에 자초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보수 신문들이 노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적대의식을 바탕에 깔고 “외국에 나갈 때마다 사고 치는 사람”으로 몰아간 측면도 컸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은 자신을 ‘흔들어대는 세력’에게 분노를 쌓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수구세력의 발목잡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은 순방외교 과정에서 미숙함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그 뒤 괴로움과 위기감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5월21일, 5·18 기념행사위원회 간부 면담), “마음에 안 들어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다”(6월28일 여성 공무원 특강), “괴롭고 힘들다”(7월23일, 민원담당 공무원과의 대화), “하야하지 않는다”(8월23일 장·차관 토론회)는 발언들을 쏟아낸 것이다.

이런 심경 속에서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말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나에게도 한두 가지 수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정무수석실이 제시한 정국 타개방안들에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나름의 ‘획기적 비책’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는 이야기다. 정무수석실은 당시 “여야 국회의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구 사업용으로 특별교부세를 활용하자”는 등의 ‘전통적 처방’을 냈으나, 노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정무수석실이 아닌 청와대 안팎의 다른 참모들에게 “차라리 재신임을 묻는 게 어떠냐”며 지금의 카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대부분의 참모(주로 수석급)들은 “그래선 안 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으나, 노 대통령은 굽히지 않았다.

최소한 두달 전에 재신임 실무팀 꾸려져

당시 노 대통령의 인식을 한 측근은 이렇게 전했다.

“정부가 개혁을 하려는데 보수언론을 필두로 한 수구세력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개판’이나 ‘못해먹겠다’는 등의 대통령의 자그마한 언행을 침소봉대해 대통령 자질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림으로써 힘을 빼자는 것이었다. 그들의 공격의 본질은 결국 국민이 선택한 대선결과에 불복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질질 끌려다녀야 하는가. 과연 수구세력의 주장대로 대통령 자질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국정을 더 맡겨도 좋은지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두달여 전부터 재신임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10월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결국 ‘노무현식 정치’를 이해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재신임 방안을 검토하는 실무팀이 꾸려졌다고 한다. 실무팀은 청와대의 일부 386 실세와 부산 출신 소장파 참모들로 짜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 비서실장이나 유인태 정무수석 같은 정무 분야 공식 참모라인이 재신임 카드 불가론에 선 만큼, ‘대통령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다른 사람들로 별도의 팀이 가동된 셈이다. 한 참모는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은 갑자기 불쑥 나온 게 아니며 오래 전(최소한 두달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팀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재신임 방법은 국민투표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국민투표 시기를 놓고 1안=내년 4·15 총선과 같은 날, 2안=4·15 총선 두달 전인 2월 중, 3안=1, 2안과 무관하게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등 3개 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1안은 4·15 총선과 같은 날 치름으로써 △각종 정치비용을 절감하고 △노 대통령의 신임과 총선을 연계함으로써 신임 투표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의 이점이 있을 수 있다. 반면에 총선용 카드라는 논란이 일면서 국민의 판단에 거취를 맡기겠다는 노 대통령의 ‘순수성’이 희석된다는 단점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2안은 신임투표에서 부결 결과가 나올 경우 노 대통령이 하야하는 것을 전제로, 보궐선거를 총선 날짜와 맞추는 차원에서 검토됐다고 한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궐위 때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어설픈 기자회견… 정무수석도 몰라

노 대통령이 공식 정무참모 라인보다는 일부 소장파의 조력에 의존하다보니, 재신임 카드를 꺼내든 과정은 다소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10월10일 재신임을 제안한 첫 기자회견 때 대통령의 기자회견답지 않게 회견문조차 준비하지 않은 채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이어 재신임 제안의 배경으로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스캔들을 거론함으로써 의아심을 샀다. 최 전 비서관의 수뢰 때문이라면, 사법적으로 엄정하게 단죄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 그만이지 적어도 재신임을 물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노 대통령은 10월11일 기자회견에서 김두관 행자부장관 해임결의안 표결을 발목잡기 사례로 거론했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노 대통령은 다음날인 11일 또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회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해임 건의하고 윤성식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점”을 사유로 고쳐 들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발목잡기라는 명분을 둘쨋날에 들어서야 제시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발리 아세안+3 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빚어진 풍경도 기이했다. 그는 귀국 당일 저녁 청와대 관저에서 45분간 수석·보좌관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최도술씨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혀야겠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이에 수석·보좌관들이 정확한 속뜻을 모른 채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말리고 나섰다.

다음날인 10일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 1시간 전에 문희상 비서실장을 불러 자신의 생각을 ‘통고’한 뒤 곧바로 기자실인 춘추관으로 향했다. 이러다보니 이 문제의 주무자인 유인태 정무수석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 기자회견을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처음 알게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유 수석의 표정이 더없이 참담했다”고 말했다.


사진/ 정치권은 재신임을 둘러싸고 친노·반노로 갈라섰다. 여야 총무들이 10월13일 오전 국회 의장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시정연설 뒤 국민투표 실시 등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올인 형’ 승부에 기반한 ‘나홀로 결단’

사실 노 대통령은 과거에도 한번에 모든 것을 거는 ‘올인 형’ 승부를 즐겼다. 또한 그때마다 주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보다는 종종 ‘나홀로 결단’을 택했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이 2000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 출마를 택할 때도 주변 참모들은 일치단결해 반대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선 낙선했으나 ‘바보 노무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또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8·8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자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고 전격 선언했는데, 이때도 그와 상의한 사람은 핵심측근 몇 사람뿐이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이에 따라 그는 “내가 전략에서 틀린 적이 없지 않느냐”며 자신의 판단에 강한 자신감을 표시하게 됐다. 통합신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의 이번 재신임 결단 과정에서도 과거 배수진 승부를 통해 종종 성공했던 데 따른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 재신임 발표로 나라가 요동치고 있다. 고건 국무총리는 10월11일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어 재신임 정국에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번 재신임 결단은 ‘불안한 승부수’라는 성격이 담긴 것같다. 국민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끌어내려면 지지층을 확고하게 결집한 뒤 외연을 확대해야 하는데, 그동안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지지층이 이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신임 국민투표 자체에는 승리하더라도 이른바 ‘수구세력의 발목잡기’가 여전히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순수하게 지지하는 국민들과, “노 대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혼란이 싫어서…”라는 안정희구 세력이 함께 재신임 찬성집단을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경우 ‘도대체 무엇을 재신임한 것인지’라는 논란이 따를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대북송금 사건 특검 수용 △방미 과공외교 논란 △전교조 네이스 파동 △화물연대·철도파업 등의 사건을 경과하면서 차츰 떨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그가 당정분리를 내세워, 소속 정당이던 민주당과 거리를 두면서 당을 통한 지지기반 유지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즉, 개혁과 보수 양쪽 진영의 주문이 엇갈린 가운데, 대체로 지지층의 요구와 다소 거리를 둔 결과 지지층쪽의 이탈이 좀더 두드러졌던 셈이다.

극단적 방법을 선택해야 했을까

노 대통령의 재신임 카드는 “수구세력의 발목잡기에 대해 국민들이 심판해달라. 국민의 심판에 깨끗이 따르겠다”는 점에서 나름의 명분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인이 아닌 국정 책임자의 신분에서 국정 혼란을 초래할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는 점은 비판받을 일이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설정한 재신임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어떤 수순을 밟아나갈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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