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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차이 끌어안고 하나로 남북의 엄청난 ‘다름’ 확인한 대구유니버시아드…‘공존의 미덕’위해 서로 마음 열어야
대구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쪽 응원단이 9월1일 숱한 화제를 뿌리고 돌아갔다. 이들이 대구에 머문 12박13일 동안 남쪽 땅은 ‘미녀 응원단’ 열풍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여기까지는 지난해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와 비슷했다.
북한의 ‘초상화 정성사업’
8월28일 오후 1시 40분께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도로, 북쪽 응원단 150여명이 양궁 경기 응원을 마치고서 버스를 타고 대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들이 지나간 길가에는 현수막이 4장 걸려 있었다. 현수막 왼쪽에는 한반도기, 오른쪽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때 만난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현수막 가운데에는 ‘북녘 동포 여러분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남녘과 북녘이 하나되어 만납시다’가 적혀 있었다. 현수막 4개 중 1개는 장승과 주유소 철제 기둥 사이에 걸려 있었다. 이날 예천에는 오전부터 비가 내려 현수막이 빗물에 젖어 있었다.
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 동안 ‘현수막 사건’뿐만 아니라 남쪽 보수단체와 북쪽 기자의 마찰도 있었다. 이번 대회를 취재했던 한 기자는 “북쪽 기자들은 그 사회의 논리를 대변해야 하는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해서 충격이 덜했다. 그런데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맑게 웃으며 ‘플루트 연주’라고 발랄하게 대답하던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갑자기 비에 젖은 현수막 때문에 단체로 우는 모습은 너무 뜻밖이었다.” 이를 두고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술자리나 인터넷 등에서 벌떼같이 ‘광신도’니 ‘꼭두각시’라고 비아냥거렸다. 평범한 사람들은 착잡하고 당혹스러웠다. 김주영(24·대구 북구 태전동)씨는 가슴이 꽉 막혔다고 했다. “평소 통일을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북에서 내려온 응원단과 선수 등을 보니 진짜 반가웠다. 그런데 현수막 소동을 보면서 답답해졌다. 통일을 제도나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의 이 엄청난 생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북쪽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과 초상화를 특별하게 다루는 일을 ‘초상화 정성사업’이라 부른다. 북쪽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사진과 초상화에는 조그만 먼지가 묻어서도 안 되도록 교육받는다. 초상화는 일터나 가정에서 가장 넓고 깨끗한 방에서 의무적으로 부착하고 정성을 다해 관리해야 한다. 로동당에서는 수시로 위생검열을 나와서 사진 보관 상태를 점검하고 사진에 먼지가 쌓이거나 보관 상태가 나쁘면 비판을 받는다.
남쪽 사람 보기엔 황당해도…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 1993년 4월28일치에는 이런 ‘미담기사’가 실렸다. 노동자 합숙소에 살던 두 처녀가 공장 건물에 불이 나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를 꺼내기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숨진 사건을 크게 보도하면서 이들의 죽음을 혁명적이고 충성스런 행위로 예찬했다. 1999년 북쪽에서는 <비행사 길영조>란 영화가 상영됐다. 길영조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공군 비행사다. 그는 어느날 훈련비행을 하다 비행기 기관이 고장나 불덩이에 휩싸인다. 비상 탈출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는 항구의 김일성 주석 동상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비행기의 기수를 바다로 돌려 최후를 맞이했다. ‘인민을 하늘같이 사랑한다는 수령님의 동상을 위해서는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남긴 채.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산 북쪽 응원단이 비에 젖은 김정일 위원장 사진에 보인 반응은 남쪽 사람이 보기엔 황당해도, 그들 처지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탈북자 김기철(40)씨는 “만약 내가 응원단이라도 비에 젖은 사진을 봤으면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을 것이다. 북쪽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사진을 잘못 다루면 큰일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북쪽 응원단은 공포 절반, 충성 절반 심정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유니버시아드대회 관계자는 “‘북쪽 대학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물으면 ‘수령님 품에서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남쪽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낸 대답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우리 처지에서는 갑갑하기 짝이 없지만 그 친구들은 이미 그런 생각과 반응이 삶 속에 체화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육체적 생명과 사회적 존재로서 활동하는 정치적 생명이 있다. 둘 중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생명이다. 육체적 생명은 친부모가 주지만, 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준다고 한다. 수령-당-대중은 혈연적 관계로 맺어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대중은 생명의 은인인 어버이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도록 요구한다. 수령은 충성과 효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민위천(以民爲天)에 바탕한 인덕정치를 약속한다. 물론 이런 논리는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북쪽 사회에서 예전 같은 설득력을 잃었지만 아직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심지어 남쪽에 온 탈북자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남아 있다. 40대 중반의 다른 탈북자는 “학교나 회사에 안보강연을 다니면 중학생 아들이 ‘북쪽 사회가 못살고 당 간부들이 부패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수령님과 장군님을 욕하지는 말라’는 당부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대다수 북쪽 사람들이 권력의 부자세습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고 전한다.
<우리는 하나>, 해석은 천리차이
하지만 이런 북쪽 논리를 남쪽 사람이 이해하기는 좀체로 어렵다. 주체사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평양을 3번 방문한 한 북한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머리’는 북한을 이해하지만 ‘가슴’은 이질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처음 평양 갔을 때는 뭔지 모를 감동으로 가슴이 뛰었다. 한민족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만남이 계속되면서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과 흥분은 가라앉았으며, 크고 작은 마찰과 오해가 두드러졌다. 두 번째 갔을 때, 그리고 세번째 다시 갔을 때는 처음의 벅찬 감동과는 달리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남쪽 사람들은 핏줄이 같고 같은 말과 글을 쓰기 때문에 언뜻 북쪽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비슷할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전혀 다른 체제에서 반백년을 떨어져 산 남북의 차이는 깊고 넓다.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피줄도 하나/ 하나 이 땅도 하나 둘이 되면 못 살 하나/ 긴긴 세월 눈물로 아픈 상처 씻으며/ 통일의 환희가 파도쳐 설레이네/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
대다수 남쪽 사람들은 이 노래를 한 핏줄인 우리 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고 빨리 통일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김경화(30·경북 경산시)씨는 “북한 응원단과 선수들을 보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뭉클해졌다. 직접 경기장에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함께 응원을 해보니 우리는 하나란 생각이 절실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북쪽 응원단이 오는 경기장에는 선거에서 ‘평생 1번(한나라당 혹은 민정당, 공화당만)만 찍었을 것 같은’ 50·60대 아저씨들도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의 구호를 신나게 따라 외치기도 했다. 북쪽은 이 노래를 이렇게 해석한다. “지금 시대의 명곡 <우리는 하나>는 2000년대 통일가요로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가요는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통일 위업을 이룩하면 태양조선,태양민족의 위용을 세상에 보란 듯이 떨치리라는 확신과 환희를 형상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2002년 4월28일치) <로동신문> 기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태양조선’ ‘태양민족’이다. 남쪽에서 태양은 말 그대로 태양계에 있는 해(sun)일 뿐이다. 이와 달리 북쪽에서는 ‘태양=김일성 주석’이다. 북쪽은 1997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을 태양절이라고 선포하고, 우리 민족을 ‘김일성민족’ ‘태양민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북쪽 논리에 따르면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란 김일성 주석의 유지를 따르는 통일인 셈이다. 북쪽 사람들이 ‘자유대한 나의 조국’을 거부하는 것처럼, 남쪽 사람들이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
플래카드 사건이 준 또 하나의 충격
크고 작은 차이와 충돌을 ‘황당하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남북의 차이를 서로를 알아가고 닮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남쪽 국민들에게 북쪽의 가감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북쪽 응원단의 모습을 보면서 남과 북이 하나되기까지는 엄청난 과도기를 거쳐야 함을 새삼 확인했다.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선행조건이다. 북쪽에서도 지나치게 담론의 측면에서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만 강조해서는 곤란하다. 성급한 통일, 준비되지 않은 통일을 입으로만 주장할 게 아니라, 공존의 미덕을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할 때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대회를 계기로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도 다른 점을 인식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봉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쪽 응원단 처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이 비에 맞은 채 걸려 있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북쪽은 남쪽 사람들이 김정일 위원장 사진을 ‘방치’한 것은 남쪽의 대북 적대감 탓으로 해석하려 하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 방치는 북쪽 젊은이들에게 남쪽이 북쪽의 논리와 전혀 다른 정치체제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북통일은 단순히 땅을 합치고 정치·경제 제도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다. 남북의 주민이 삶의 양식을 공유하고 마음을 여는 ‘사람의 통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서로의 가치체계가 얼마나 다른지 알아야 한다. 물론 다름의 인정이 무작정 동조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만약 ‘민족 동질성 회복’을 ‘북쪽 사람들을 남쪽 사람들처럼 만드는 것’으로 규정하면 남북 사이에 큰 마찰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독일 통일 과정의 사회심리적 통합을 연구해온 한스 오아힘 마츠 박사는 지난해 5월 방한해 한 학술대회에서 남북통합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독일 경험에서 정치적인 변동만으로 삶이 자동적으로 향상될 것이란 희망은 큰 착각이었다. 서로 다른 발전과정을 거친 남북이 생소함을 발견하고 토론하고 이해하는 게 해결책이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 위선적 획일화나 단순한 적용을 대신해 인간적 친밀감과 사회적 안정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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