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9월05일 제475호 

동독인은 후회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 통일독일 내부의 반목… 교육활동으로 ‘내적 통일’ 이루려 노력

통일 직후까지만 해도 동독인은 통일을 크게 기뻐하고 서독인과 서독의 사회체제에 대해 큰 호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동독지역이 곧 번영의 땅으로 바뀌리라고 헬무트 콜 수상이 약속했던 것과 달리, 동독 경제가 빨리 부흥되지 않고 20% 가까운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는 가운데, 동독인 사이에 통일 현실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 서독의 기본법이 동독지역까지 확대 적용되고 서독의 자본과 엘리트에 의해 주도된 흡수통일 방식 또한 내적 통일에 많은 문제를 안겨주었다.

“거만하다” vs “게으르다”

이런 과정에서 동·서독인 사이에 사회심리적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이는 여러 지표들에서 확인된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1992년 말 조사에서 서독인의 69%, 동독인의 79%가 “통일 뒤에야 비로소 동·서독인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는 진술에 공감을 표하였다. 동·서독인의 상대방 성격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빠졌는데 이것은 통일 뒤 서로를 가까이 경험하면서 생겨난 양자간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동독인은 서독인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기술하라는 조사에서 서독인은 특히 거만하고, 자기들의 과거를 무시하며, 자기들을 돕는 데 인색하고, 인정이 없고 출세지향적이라는 점을 비판했다.


사진/ 1990년 8월 독일 통일 당시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시민들. 대다수 독일인들은 통일 뒤에야 비로소 동독과 서독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SYGMA)


“점령군처럼 거만하다. 자주 으스대며 우리를 바보 취급하려 한다. 자기들이 승자라고 느낀다. 우리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너무 적다. 자기들만 잘 살려고 우리에게 등을 돌린다. 옛날에는 제 스스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떠나서는 이제 와서 거들먹거리며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우리에겐 걱정거리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너무나 조금밖에 모르면서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몰아붙인다. 돈 문제와 관련하면 인간적 온정은 사라져버린다. 너무 출세만을 생각한다.”

반면에 서독인은 동독인이 게으르며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너무 서독의 도움에만 의지하려 하며, 독립성과 자발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옛 동독에서는 생산이 합리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기업들이 과잉 노동력을 고용시켰기 때문에 노동이 매우 느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효율적 노동에 익숙해 있던 동독의 노동자들이 통일 뒤 새로운 작업장에서 높아진 노동 강도에 빨리 적응할 수 없었으며, 이것이 서독의 기업가들이나 동료 노동자들에겐 동독인이 게으르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동·서독인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징표는 동독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산이다. 1990년 3월 “당신은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독일인이라고 더 느낍니까, 아니면 동독인이라고 더 느낍니까”라는 한 설문조사에서 동독 사람의 61%는 독일인이라고 답했다. 동독인이란 응답은 32%였다. 그러나 1992년 1월의 조사에서 이 비율은 35%와 60%로 정확히 뒤바뀌었다. 동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시한 사람은 1997년에는 67%로, 2000년에는 77%로 계속 늘어났다.

서독 엘리트들이 주도한 통일과정 속에서 동독인에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과 동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부활한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동독 상품을 샀으며 자신들의 성취력에 대해서 전보다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식’과 새로운 자부심의 강화가 최근 사회주의통일당(옛 동독공산당)의 후신 정당인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상승의 배경이다. 1988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사회당이 모든 동독지역(동베를린 포함)에서 얻은 득표율은 20%가 넘었다.

동독인의 ‘반발적 정체성’이 이렇게 강화된 원인은 통일 뒤에 정치·경제·문화 등에서의 구체적인 경험들이라는 상황적 요인뿐만 아니라 더 장기적인 요인으로서 40여년간의 사회주의 체제의 경험과 이데올로기를 통한 사회화의 영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40년간 다른 체제에서의 경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동독인의 지지는 옛 동독 사회주의가 붕괴한 직후 가장 높았다. 1990년에 동독인의 77%가 통일독일의 경제체제에 대해 좋게 평가했으며, 거의 60%가 독일 민주주의의 기능에 만족감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1998년 동독인 중 독일의 경제체제를 호평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23%, 독일 민주주의의 기능에 만족한 사람들의 비율은 40%로 크게 감소하였다. 동·서독인 사이에는 자유나 평등, 국가의 역할 등의 가치관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이는 동·서독인이 과거 40여년간 서로 다른 사회체제에서 경험한 사회화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사진/ 동독인은 복지정책은 물론 경제정책에도 국가의 개입을 더 강하게 요구한다. 동독의 그라이프스발트대학.


평등을 훨씬 더 중요시하는 동독인과 자유를 더 중요시하는 서독인 사이에는 분명한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동독인은 당연히 사회주의나 계획경제에 대해서 서독인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동독인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사회적 안전이 보장되고 더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여기에 실업과 이기주의, 착취로 특징지어지는 시장경제 체제를 대비시켰다.

동독인은 국가주의적 사고의 경향이 서독인보다 더 강하다. 그들은 복지정책은 물론 경제정책에도 국가의 개입을 더 강하게 요구한다. 이를 종합해볼 때 동독인은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에 정향지어 있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회상케 하는 독자적인 민주주의 이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민주주의 이상은 서방적 민주주의에서 더 강하게 국가를 통한 근본적인 재분배와 사회적 평등을 지향한다. 반면 서독인은 개인의 권리 보호와 연방주의를 더 강조하는 개인주의적·탈중앙적 민주주의관을 가지고 있다. 통일독일의 헌법정신을 벗어난 동독인의 국가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고 그들을 서방적 참여민주주의로 통합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소하라”

독일의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연방 및 주 센터, 그리고 각 정당의 아카데미와 연구소 등 정치교육 담당기관들은 ‘내적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각종 행사를 통해 동·서독인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대화를 중재하여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과거와 현재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들과 정보와 견해들을 교환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굳어지는 것을 막고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기관은 각종 세미나와 강연회, 교사연수회 등을 통해 내적 통합의 정치교육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교사와 활동가들을 양성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동독의 청소년 및 일반 시민들은 서서히 통일독일의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체제의 정신과 구조 및 그 기능방식 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갈 수 있다. 그러나 내적 통합의 과정은 동독인에게만 요구되는 일방적인 과정이 결코 아니다. 서독인 역시 동독인의 과거의 삶과 문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독일 연방의회 의장인 볼프강 티어제의 말처럼 “내적 통일이 성공하려면 우선 차이들에 대한 인정, 상이한 인생 도정에 대한 존중을 통해서 가능한 한, 평등한 권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운석 | 상지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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