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9월05일 제475호 

“먹지도 못했는데 뭘 배웠겠어!”

남한사회 적응 어려움 겪는 탈북자들이 남과 북에 동시에 던지는 쓴소리

어찌 반가운 마음이 없을 것인가? 고향 땅, 고향 마을에서, 고향 말씨를 쓰는 누이들이 찾아왔거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탈북 동포들은 북녘 땅에서 온 응원단에 대한 감정을 쉽게 표현해내지 못했다. ‘우리는~하나다’ ‘조국~통일’ 경기장을 가득 메운 외침이 메아리가 돼 온 나라를 휘감을 때도, 동포들의 가슴 속에선 기쁨과 착잡함, 반가움과 안쓰러움이 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사진/ 지난 1월 말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머물다 필리핀을 거쳐 입국한 탈북 동포들이 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한겨레 탁기형 기자)

‘태양상’도 비바람을 맞을 텐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비를 맞았다고 눈물을 훔치는 북쪽 응원단의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뜨거웠다. …텔레비전에 나와 ‘장군님’ 얘기를 하면서 항의를 하는 건 남쪽 동포를 무시하는 처사다.” 북녘 땅을 떠나온 지 3년째로 접어든 탈북학자 ㄱ씨는 대뜸 쓴소리부터 꺼냈다. 북쪽 응원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답답함’을 느낀 탓이다. 그는 “어쩌면 단지 ‘우리는 이렇게 일심단결해 있다’는 모습을 남쪽에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남쪽에선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모른다”고 말했다.

남녘 땅에 정착한 지 2년째인 20대 탈북여성 ㄴ씨도 “당혹스러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내가 북에서만 살았다면, 나도 저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도 했다. 남쪽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그런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 탓이다. 그는 “김일성 주석이 숨진 뒤 북녘 땅 전역에 만들어진 ‘태양상’ 역시 사시사철 비바람을 맞지 않느냐. 왜 남쪽에 와서까지 저래야 하느냐.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깥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분단 반세기, 우리는 여전히 하나일까? 북녘 응원단이 남기고 간 이 의문에 대해 대부분의 탈북 동포들은 선뜻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1998년 71명에 불과했던 탈북 동포가 지난해 말 현재 1140명으로 늘어났지만, 그들이 느끼는 이질감의 크기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 탓이다.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자면 언어가 통해야 한다. 탈북 뒤 낯선 이국땅을 떠돌며 말 한마디 못해 온갖 고생 다하면서도 남한에 가면 이런 어려움은 없겠거니 했다. 내 민족이 사는 땅이니 언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영업을 하는 40대 탈북 동포 ㄷ씨는 “막상 남한 땅에 와보니 말이 너무나 달랐다. 영어를 많이 사용해 알아듣기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옷 입는 것부터 소비 행태, 음식문화까지 같은 것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말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를 낳고, 생각의 차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삶의 방식도 바꿔놓는다. 남과 북이 뛰어넘어야 할 차이는 그래서 문화적일 수 있다.

탈북자들이 입는 자존심의 상처

ㄷ씨는 “같은 처지의 탈북동포를 채용해 써봤는데, 업무수행 능력이 남쪽 사람의 30~40%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일을 맡겨도 업무처리 속도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고 털어놨다. 경쟁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철칙에 익숙치 않은 탓이다. 그는 “더구나 탈북 동포는 남한 사회에서 필수적인 인맥이 전혀없다. 그러니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사진/ ‘우리는 하나인가?’ 북녘 동포들이 고 김일석 주석의 거대한 동상 앞에서 경의를 표하고 있다.(연합)


탈북 동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견은 고스란히 북녘 동포에 대한 편견과 맞닿아 있다. 교사 출신의 한 탈북 여성은 “유치원 애들도 탈북 동포에게는 맡기지 않으려는 게 현실 아니냐. ‘먹지도 못했을 텐데, 뭘 배웠겠느냐’는 편견이 팽배해 있다. 이 때문에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북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탈북 동포들은 “정착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한 20대 탈북 동포는 “그래도 내가 북에서는 엘리트였고, 그런 대로 잘 나갔었다. 그런데 북에서 교육받은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란 존재를 남쪽에서는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북 동포들이 통일 뒤 남북이 쉽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세대 전우택 교수(사회정신의학)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덕룡 연구원이 2001년 10월 내놓은 ‘북한이탈주민 사회 적응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조사 결과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통일 뒤에 쉽게 서로를 이해하며 잘 살 수 있을까’란 질문에 답한 528명의 탈북 동포 가운데 “매우 그렇다”(15%·80명), “어느 정도 그렇다”(17%·88명)고 응답한 동포에 비해, “별로 안 그렇다”(28%·147명), “전혀 안 그렇다”(20%·108명)고 응답한 동포가 높게 나타났다. “보통이다”는 20%, 105명이었다.

‘문화적 차이’가 ‘사상 차이’보다 더 무서워

또 같은 조사에서 ‘통일 뒤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살 때 생길 어려움’에 대해 탈북 동포들은 △가치관·사고방식·생활습관 등의 문화적 차이(28.3%) △경제적 생활 수준 차이(25.0%) △상호 이해 부족·편견 등으로 인한 화합 부족(13.4%) 등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이념·사상·제도 차이(10.9%) △언어 차이(10.0%) △지역 갈등(2.1%) 등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결국 남북한 사람들의 가치관·사고방식·상호이해의 부족·상호 편견 등으로 인한 갈등 예상이 총 41.7%로, 정치·이념·사상 등의 차이로 인한 갈등 예상 10.9%보다 4배 정도 크게 나타났다.

북쪽 응원단이 돌아간 지금, 일부 탈북 동포들은 ‘후폭풍’을 염려한다. 응원단이 보인 ‘돌출행동’으로 자칫 기왕의 북에 대한 편견이 더욱 나쁜 쪽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한 탈북 동포는 “남북이 자꾸 만나다보면 서로 비슷한 점도 보이겠지만, 다른 점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남도 북도 ‘우리는 하나’라고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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