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8월14일 제472호 

‘동포’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1년 내내 계속되는 일본 우익 주도의 괴롭힘과 폭력사태… 총련계 향했지만 한민족 전체에 대한 도전

지난해 9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치시인 발표 이후 재일 총련계 동포들이 일본사회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1년 내내 계속된 이 공세는 급기야 총련 사무실에 실탄 사격으로 이어졌다. <한겨레21>은 현지에서 동포들의 피해 실태를 긴급 취재했다.

“이건 ‘열등민족 조선총련 본부 니가타의 돼지새끼들’이라는 뜻이고, 이건 ‘똥 먹어라, 돼지새끼야’라는 뜻입니다.”

일본어로 빼곡히 쓰인 엽서와 편지를 들춰보는 그의 심사가 편치 않아 보였다. 매일 보는 내용이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고도 했다. 8월6일 오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니가타현 본부에서 만난 김종해(54) 부위원장은 “9·17(2002년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을 가리키는 말) 이후 한달에 수십통씩 이런 편지와 엽서를 받는다”며 “주로 이 땅을 어서 떠나라는 말과 함께 듣기 심한 욕설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따가 식사를 못하실까봐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용변 보는 것을 촬영해서 사진을 보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털어놨다.

‘니가타의 돼지새끼들’에게 실탄을 쏘다


사진/ 7월29일밤 총격이 가해진 총련 니가타현 본부 건물. 사건이 난 이후 일본 경찰이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다.


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57년을 살아온 리주현 위원장 역시 “내 평생 이런 사태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정희 때 문세광 사건과 전두환 시절 랑군사건이라는 게 있었을 때 일본 우익이 나서 테러한다고 떠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총알을 날리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곳 사무실에 총알이 날아든 것은 지난 7월29일 밤이었다. 총련 본부 사무실 옆 창고 셔터에 권총으로 실탄이 발사된 것이다. 1.3m 높이로 셔터를 통과한 총탄은 만경봉호에 실릴 화물상자 하나에 명중됐다. 짐 일부가 총알에 맞아 깨진 현장을 확인하는 기자에게 리 위원장은 “창고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총탄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같은 날 밤 비슷한 시각에 총련 본부로부터 1.5km 떨어진 총련계 하나신용조합 사무실에서는 시한장치가 돼 있는 폭발물이 발견됐다. 하나신용조합은 파산한 총련계 금융기관인 조긴(朝銀)신용조합의 인수기관이다. 역시 현장 입구에는 염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고객용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김 부위원장은 “당일날 조합 사무실 옆 건물인 맨션에 사는 일본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총탄이 발사되기 전 한 일본인 남자가 도쿄 아사히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나는 겐코 구기유군인데 총련 니가타현 본부에 총탄을 쐈다. 하나신용조합에도 폭탄을 설치했다”고 직접 밝혔다는 것이다. 니가타현 사건이 벌어진 바로 다음날인 7월31일 새벽에는 가나카와현 후지사와시 하나신용조합도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화염병-사제폭탄-총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폭력사태는, 지난해 9월17일 이후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집단적·조직적 따돌림과 물리적 해코지의 결정판이다. 폭언과 폭행으로 시작해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로 그 강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테러까지 몰고 온 직접적 계기는 물론 지난해 9·17 북-일 정상회담이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9·17은 이제 하나의 보통명사가 됐다. 그러나 9·17은 재일동포 사회에 극도의 정체성 혼란을 가져온, 부정적 아이콘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북쪽이 납치한 일본인 13명 가운데 5명이 살아 있고 8명은 이미 숨졌다고 밝혔다. “납치 주장은 일본의 자작극”이라던 기존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사진/ 니가타현 총련 지부로 배달된 폭언, 협박편지와 엽서들(왼쪽). 총련 창고 건물 셔터에 난 총탄 자국을 가리키는 리주현 위원장(오른쪽).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든 ‘적의’

이때부터 일본 사회는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 됐다. 한마디로 납치라는 유령이 지배하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언론은 북-일 수교를 한 단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은, 평양회담의 긍정적 측면은 외면하고 이 문제를 선정적으로 활용하면서 불이 붙은 일본인들의 감정에 휘발유를 뿌려댔다.

동포에 대한 물리적 폭력사태는 일본 우익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총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일본 전국의 총련 지방본부 및 관련 시설에 방화, 투석, 창문 파손, 낙서 등 기물파손 행위로 분류할 수 있는 사건이 모두 20여 차례 일어났다. 도쿄의 총련 본부에 실탄이 든 편지가 배달되기도 했다.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은 조선학교 여학생들에게 집중되고 있다(사이드1 기사 참조).

이번 사태로 총련계 동포들이 느끼는 정체성 혼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총련계 동포는 물론이고 한국 국적의 동포들마저 비슷한 충격을 받고 있다. 오사카에서 만난 한 동포는 이를 두고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Identity Crisis)라고 표현했다. ‘아노미 상태’라는 말도 했다. 믿었던 조국에 배신당했다는 것이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납치행위를 일본쪽 자작극이라고 해온 기존 입장에 대해 일본사회에 사과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사진/ 만경봉호가 정기적으로 입항하던 니가타항 부두에 한국 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와 마약, 밀수입 등을 이유로 만경봉호 입항을 막고 있다.


폭력행위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일본사회의 ‘적의’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 53만명인 일본 서북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니가타는 북에서 오는 만경봉호가 정박하는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폭력적인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지난 6월 초에는 일본 우익단체가 모두 이곳에 모여 만경봉호의 입항을 거부해야 한다고 시위를 벌이는 살풍경이 전개되기도 했다.

동포 1세들 “간도대지진이 연상된다”

니가타에 거주하는 한 동포 3세는 “이웃집 사람들의 눈치가 이상하다”고 호소했다.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선 한 일본인이 동포를 보고 북이냐 남이냐고 물어본 뒤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그냥 나가버린 일도 있다. 또 한 동포는 병원에 찾아갔는데 일본인 의사가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진료하지 않겠다고 해서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가게에서 북의 물건들을 모두 치우는 사례도 있다.”


사진/ 오사카 이쿠노구의 코리아타운. 오랜 경기침체와 납치 문제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태가 심각하게 흐르자 니가타현 경찰은 130명이라는 대규모 조사단을 구성해 수사를 하고 있다. 총련 관련 건물에는 경찰차를 대기해놓고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다. “60, 70년대 한국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구호가 먹혔던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 동포는 말했다.

총련 조직에 대한 일본 정권의 공격은 ‘전방위적인 목조르기’에 비유할 만하다. “김정일 정권과는 수교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며 여론을 선동하는 극우세력의 입장을 고스란히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수교관계가 없어 준외교기관으로 대접하면서 수십년 동안 물리지 않던 세금을 총련 관련 기관에 물리기 시작하는가 하면, 국립대학의 입학자격을 두고 총련계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대학 당국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도록 해 사실상 입학을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옴진리교에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던 파괴활동방지법(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을 총련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본 의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밤낮 없이 반북 캠페인을 벌이는 일본 매스컴의 영향(사이드2 기사 참조) 탓에 납치, 핵, 마약, 위조지폐, 공작원, 미사일 등의 온갖 부정적 이미지들이 ‘북조선’이라는 단어와 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광풍’이 진짜로 위험스러워 보이는 것은, 인권문제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 극우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쓰인다는 데 있다.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면서도 ‘북조선’을 활용하고, 군사대국화를 위한 일련의 조처를 취하면서도 ‘북조선’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우익들은 납치문제가 선량한 일본시민들을 식민지 가해자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먹잇거리라는 점을 드러내놓고 알리고 있다. 이른바 “우리도 피해자가 됐으니 식민지 시대를 통해서 한(조선)반도에 저지른 범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일본 시민들에게도 급속하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벽하게 역전된, 이같은 상황은 일본 보수세력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이제는 그 수가 극히 줄어든 동포 1세들은 일제시대 때 간도대지진을 연상하기도 한다.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은 모두 6400명이었는데 그때도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거나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일본인들이 지어냈는데 그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오사카 코리아타운에서 ‘어머니’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동포 1세 양행도씨.


오사카 이쿠노구 지역에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만난 양행도(73·동포 1세)씨는 납치문제로 운을 떼자 대뜸 “왜놈 종자들은 한마디로 흉악한 놈들이다. 욕설밖에 안 나온다”고 목청을 높였다. “납치는 잘못된 일이지만, 국가의 최고책임자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앞으로 원만히 해결하자고 한 것 아닌가. 일제시대 때 200만명 이상을 강제 연행한 것은 국가범죄가 아니고 납치가 아니란 말인가.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해서 날마다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격해진다. 우리 선조들이 왜놈들이 앉은 자리에는 3년 동안 잡초도 안 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다.”

일본 불순세력의 의도를 꿰뚫어라

양씨와 같이 격한 감정을 보이는 동포 1세들도 있지만, 총련계로 조선적을 지닌 동포 3, 4세들 가운데는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재일조선인인권협의회 긴키지방본부 회장인 홍경의씨는 “식민지 시대에 일어났던 강제 연행이나 징용 등 일제가 저지른 국가범죄를 내세워서 이번 납치사건을 상쇄시키려는 논리는 온당하지 못하다”며 “다만 납치문제를 자꾸 정치문제로 확대시키려는 일본 내 불순세력의 의도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일동포에 대한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남이나 북이나, 민단과 총련 구분 않고 우리 민족 전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야 한다”며 “일본 보수세력의 움직임은 국내의 불만세력과 민주세력을 억누른 뒤 전쟁을 일으켰던 일제 군국주의 역사를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나라와 나라의 경계선에서 조국의 분단상황을 맨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시대인식이기에 곱씹어볼 일이다.

2003년 8월10일 오후, 간밤에 태풍 10호가 지나간 오사카 하늘은 눈이 부시게 파랬다. 그러나 지난해 9월17일 태어나 이곳 하늘을 떠도는 ‘초강력 슈퍼 울트라 유령’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니가타·오사카=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민단은 좋고 총련은 나쁘다?
  •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겠지?”
  • 2002년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 이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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