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등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진 때, 서점에서 가장 인기를 끈 중국 관련 책은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이하 <차이나 쇼크>)이다. 이 책은 교보문고·예스24 등 주요 온라인서점의 정치사회 부문 판매량(8월 셋째 주) 2~3위다.
<차이나 쇼크>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로, 다른 중국 연구서적과 견줘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저자인 한청훤씨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고 2005년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2008년부터 중국 현지에서 6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국내에 돌어온 이후에도 중국과 거래하는 회사에 재직 중이다. 중국이 전기자동차,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어떻게 약진하는지 두 눈으로 지켜봤다. 이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현장의 경험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책에 담아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차이나 쇼크>는 중국이 거대한 위험(리스크)이라는 주장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안보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이 한국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우려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이 미국 쪽에 이제 확실히 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더 강해지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한청훤씨는 “혐중을 조장하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행태를 우려하는 <짱깨주의의 탄생>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면서도 “전세계가 중국을 미워하게 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을 중국에서 찾는 편이 훨씬 타당하지 않을까”라며 냉정한 분석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차이나 쇼크’라는 해일이 덮치는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한씨와 먼저 서면으로 인터뷰한 뒤, 2022년 8월23일 밤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책의 인기에 힘입어 한씨는 요즘 유튜브뿐만 아니라 라디오 방송 출연 등 스케줄이 촘촘했다.
중국 경제의 발전을 현장에서 직접 보았는데.
“중국의 산업 굴기 정책 때문에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정말 많이 줄었다. 예전처럼 중국에 제품을 파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시대다. 대표적인 게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과 현대자동차다. 갤럭시 폰의 시장점유율은 0%대로 떨어졌고, 현대·기아차의 실적도 크게 후퇴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간재와 부품, 설비에서도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큰 위기감이 느껴지니 나도 다른 나라 영업으로 먹고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요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중국 사람의 애국주의 소비 때문인가.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겠는가. 미국이다. 맹목적인 민족주의 때문이라면 삼성 갤럭시 폰이 퇴출되기 전에 아이폰(미국 애플)이 먼저 퇴출되지 않았을까. 아이폰은 중국에서 고가 스마트폰 브랜드 가운데 압도적인 1등이다. 극렬한 민족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중국 내에서도 소수 여론이고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국에 대한 호감도 많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산업의 위기는 중화민족주의의 고조라는 요인도 없지 않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중국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중국에서 매년 공과대학을 졸업하는 예비 엔지니어 수가 약 140만 명으로, 한국에 견줘 14배가 넘는다. 스마트폰, 전기차 등 소비시장 규모도 한국보다 최소 10배가 크다. 교육 중시, 집단에 대한 의무와 개인의 책임 강조 윤리, 유능한 관료제 전통 같은 제조업에 매우 유리한 문화적 배경은 중국이 오히려 한국의 원조인 나라다. 만약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 격화하지 않고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가 더 심화했다면 한국의 주력 수출 제조업은 과연 어떤 상황에 처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이 자본과 기술이 자유롭게 중국으로 흘러가도록 방치했다면 과연 반도체 초격차를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가성비 높은 중국산 배터리 대신 한국 배터리 회사들과 전략적 합작을 결정했을까.”
중국 경제의 발전뿐만 아니라 시진핑 체제의 위험성도 책에서 꼽았다.
“돌이켜보면 세계화 시대가 태평성대였다. 미국이 전세계의 룰을 정하고 중국은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며 미국과 경제적 이득을 나누려 했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도광양회’(능력을 감추고 힘을 기름)를 방침으로 정하고 경제성장에 매진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중국이 세계경제를 구하는 힘을 보여준 뒤 시진핑 정권이 출범(2012년)하면서 ‘중국몽’이 시작됐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한다는 중국의 꿈을 말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며 처음으로 내세운 이념이다. 시 주석은 2017년 당대회에서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같은 꿈을 밝힌 시 주석이 임기를 5년 더 연장하려는 2022년 가을의 당대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지도 주목받고 있다. 한씨는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한 시 주석의 세 번째 임기인 2023년에서 2027년 사이에 대만을 어떻게 해서든 굴복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덩샤오핑 이후 후진타오 등 중국 지도자들은 10년만 집권하고 물러났는데 시 주석이 이를 깨기 위해 중국 모두가 인정하는 업적을 세우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이 민주주의국가가 아니어서 위협적인 건가.
“중국이 민주주의국가로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편하다. 누가 되든 새로운 패권국가와 관계를 잘 설정해 지내면 된다. 그런데 중국이 다시 중화제국을 만들었을 때 주변국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질서를 만들지 알 수가 없다.”
책에서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와 인구 감소, 부채 증가 등 중국의 내부적인 위험도 상당히 많이 짚었다. 중국 위협론은 미국 등 서방에 의해 부풀려진 것은 아닐까.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주석도 자신들 내부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구조적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돼 장기적인 성장동력도 꺾이고 있다. 사교육 전면 금지, 부동산 거품 빼기 등 급진적인 조처가 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책에 ‘쇠퇴하는 중국이 문제’(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라는 글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패권국과 동맹세력에 포위돼 쇠퇴기를 앞둔 시점에 이르면, 신흥 강대국은 현재 움켜쥘 수 있는 것을 확보하려 들어 전쟁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내용을 인용했다. 중국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되레 없다는 조급함에 빠진다면 미-중 충돌 위협은 더욱 커진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급격한 발전을 통해 패권에 도전하든지 아니면 경제발전이 멈춘 내부의 동요를 막기 위해 밖으로 시선을 돌리든지 간에 미국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어느 상황이 더 위험한가.
“어떤 경우라도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중국은 서태평양이 고유한 자신의 영역이라고 굳게 생각하며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여기며, 미국은 그걸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미-중 충돌의 시점에만 영향을 줄 것이다. 결국 시점의 문제이고 장소의 문제이기 때문에 미-중 충돌에서 오는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 리스크는 언제쯤 한국에게 위협이 될까
“사실 이미 왔다. 사드 문제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경제적 타격을 받았나. 전랑(늑대전사·중국의 공격적인 외교를 이르는 말) 외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가만 두지 않고 더 올라오기 전에 밟아야겠다고 하면서 지금 서태평양을 중심으로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 않나. 한국만 받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일본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은 한국의 2대 교역국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경제관계는 1992년 수교를 맺은 뒤 중국의 노동력·시장과 한국의 기술·자본이 결합하면서 급속히 함께 성장했다. 2003년 한국의 중국 수출 비중(전체 수출액 기준 18.1%)은 그동안 1위였던 미국 수출 비중(17.7%)을 제쳤다. 수교 첫해 3.5%(1992년)에 불과하던 대중 수출 비중은 2018년 26.8%까지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미-중 무역분쟁이 발생한 2018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총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하고 미국의 비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그래픽 참조)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라는 한국의 외교정책 기조가 이제 끝났다고 보나.
“끝났다.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이 격화하기 이전에 중국이 저부가가치에서 고부가가치로 산업의 대대적인 전환을 추진했다. 한-중 산업과 무역은 과거 서로 이득이 되는 보완적 관계에서 갈수록 전세계 시장에서 경합적 경쟁 관계로 바뀌고 있다. 당장 중국 내수 시장에서 삼성 갤럭시 폰을 몰아낸 중국 로컬 스마트폰 업체가 전세계 시장에서 삼성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이런 일이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시장, 전자제품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외교를 엄청 잘해서 중국하고 그럭저럭 잘 지내더라도 이제는 수출시장에서 중국과의 제로섬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동안 수출과 무역, 필수 물품 공급선 등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았다. 점증하는 중국 쇼크에 대비해 다른 지역의 비중을 높이는 분산으로 리스크를 줄이자는 게 신남방정책이라고 생각했다. 아세안과 인도를 합치면 중국보다 거대한 인구이며 앞으로 경제 성장을 고려하면 미래에 중국의 경제력을 넘어설 것이다. 좋은 정책은 정권 교체가 돼도 계승하는 게 좋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추천 책 목록
한청훤씨는 공부를 생업으로 하는 연구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 직장인인 한씨 책을 중국 관련 언론인과 연구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중국 기업들과 거래한 수많은 경험, 다른 하나는 다독에서 오는 앎의 힘이다. 한씨가 이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추천한 책 가운데 몇 권을 추렸다.
<덩샤오핑 평전>은 1980년대 일본의 굴기(몸을 일으킴)를 예견한 <재팬 애즈 넘버원>의 저자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 에즈라 보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의 역작이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덩샤오핑인 만큼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CEO시진핑>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 당서기로 있을 때 직접 만났던 케리 브라운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중국연구소장의 책이다. 시진핑 주석이 권력욕에만 빠진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라 나름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추동되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임을 깨닫게 한다. 시진핑 입문서로 꽤 괜찮다.
<야망의 시대>는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후진타오 정권 시절의 중국 사회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 중국 유명 인사부터 일반 민중까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갖 욕망과 모순이 충돌하는 후진타오 시대의 에너지를 르포 취재 형식으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중국>은 중국 농촌의 암울한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한다. 저자인 스콧 로젤과 내털리 헬은 수십 년 동안 중국 농촌 학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에서 조사 연구를 했다. 단순한 반중 시각이 아니라 진정으로 중국의 현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조언이 묻어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농촌과 함께 중국의 오래된 문제인 부동산 거품과 금융권 부실 문제를 다룬 책도 있다. <빚의 만리장성>은 역사적, 구조적 맥락에서 어떻게 거품과 부실이 커져왔는지 현장을 심층 취재한 결과물이다. 이제 그 위기는 2021년 헝다 사태를 기점으로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중국 딜레마>는 21세기 시진핑 정권 시대의 인물 열전이다. 각양각색의 인물들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통해 현재의 중국 모습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은 중국 공산당 내 각 파벌과 권력 경쟁을 소개한다. 3대 파벌인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이 권력과 이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당파가 아니라 나름의 정치경제적 노선으로 구별될 뿐만 아니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입체적 세력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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