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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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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전쟁 덕분에 ‘온실가스 감축’?

러시아 자원 무기화 전략은 석유·가스 가격 고공행진 등 전세계에 큰 충격
유럽 국가들 재생에너지 투자 증대 등 길게 보면 에너지 전환 계기로도
등록 2022-07-26 12:16 수정 2022-07-27 05:51
2022년 3월 독일 북부 항구도시 루브민에서 발트해를 관통해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의 지상 시설물을 직원이 점검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2년 3월 독일 북부 항구도시 루브민에서 발트해를 관통해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의 지상 시설물을 직원이 점검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최대 위기는 기후변화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196개국 만장일치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실천 목표는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구체화했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2010년에 견줘 최소 45% 이상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실질적인 배출량을 ‘0’(Net Zero)으로 낮추는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로 했다. 주로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에너지원이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2022년 2월, 지속가능한 지구를 향한 노력에 심각한 돌발 변수가 생겼다.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에너지 공급망에 대혼란을 가져왔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재정수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유와 가스의 수입을 대폭 줄이는 등 러시아에 전방위 경제제재를 단행하고 우방국들의 적극 참여를 요구했다. 3월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독일은 8월부터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독일과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도 단계적으로 줄여 12월 말까지는 완전히 중단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는 유럽연합에 하루 220만 배럴(약 10억달러)의 원유를 수출했다.

‘오일쇼크’보다 더 심각한 위기

대러 제재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서방의 러시아산 자원 금수 조처에 맞서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제한으로 응수하면서 국제유가가 치솟았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가 역시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봉쇄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도 덩달아 급등했다.

유럽에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특히 취약한 아킬레스건이다. 러시아는 세계 천연가스 수요의 25%를 공급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2021년 수출량은 2400억㎥로, 2위 미국(1800억㎥)보다 훨씬 많다. 미국은 자원 부국이지만 그렇지 않은 유럽 대다수 국가는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평균 40% 안팎이며, 독일은 60%가 넘는다. 그 대부분은 러시아 동부 유전지대에서 서유럽까지 촘촘하게 깔린 수많은 가스관(파이프라인)으로 신속하게 공급된다.

2022년 6월, 러시아는 프랑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독일 공급량은 60%, 이탈리아 공급량은 50%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표면적 이유는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의 설비 보수 작업 때문이지만, 언제 ‘정상화’될지는 알 수 없다. 러시아 제재 이후 미국은 선박을 이용해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늘렸지만 수요를 충족하진 못한다. 그렇다고 유럽이 천연가스 공급원을 러시아가 아닌 곳으로 즉각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에너지 위기가 19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보다 더 심각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새로운 지도: 에너지, 기후, 국가들의 충돌>(2020)이란 책을 쓴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은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는 원유만 문제였지만 지금 위기는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발전까지 연관돼 글로벌 시장을 분열되고 취약하게 몰아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지정학적 위기로 세계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이 심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탄소 저감에도 제동 걸려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 전략은 당장 전세계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왔다. 유가와 가스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데도 에너지 다소비 국가들인 유럽은 충분한 물량을 공급받지 못해 발을 구른다. 아직은 여름이지만 2022년 말 겨울이 다가오면 난방용 가스 수급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게 뻔하다. 독일은 자국 내 천연가스 저장시설을 2022년 10월까지 최소 80%, 11월까지는 90% 채운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 비축량은 최대 저장능력의 60% 수준에 그친다. 앞서 6월, 독일 정부는 가스 비상공급계획 경보를 1단계(조기경보)에서 2단계(비상경보)로 상향 조정했다.

7월18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해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량을 2027년까지 지금의 갑절 수준인 연간 200억㎥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에서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대통령과 ‘에너지 부문의 전략적 협력 합의문’에 서명했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는 기후변화 대응에도 역풍을 불러왔다. 탄소 저감보다 연료 확보가 발등의 불인 독일·프랑스·영국·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는 석탄 화력발전 유지, 원자력발전 연장·증설을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잠정적 대응이라지만 탄소중립과 반대되는 퇴행인 건 분명하다. 이를 의식한 듯,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7월18일 “지금 독일에서 석탄발전 비중이 높아지는 것에 누구도 즐거울 수 없다. 이건 ‘엄격하게 제한된 일시적 비상수단’일 뿐 기후 목표 포기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7월26일 긴급회의를 열어 가스 수요 축소, 에너지 절약, 회원국 간 에너지 협력 등 비상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 경쟁력 향상

앞서 7월14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온실가스 이행 전략 패키지인 ‘핏포(Fit for) 55’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배출량의 40%에서 55%로 늘리고 관련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게 뼈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기적으로는 전세계에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드리웠지만, 좀더 길게 보면 기후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가속하는 계기가 됐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랄까.

세계경제포럼(WEF)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전세계에서 저탄소 에너지 기술 개발 등 에너지 전환에 투입된 금액은 7550억달러(약 990조원)였다. 전년보다 27% 늘어난 수치다. 중국의 투자액이 2660억달러로, 전년보다 60%나 급증하며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미국(1140억달러)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다.(그래프 참조)

재생에너지 투자 증대와 관련 기술 발전에 힘입어, 태양광과 풍력 발전 용량은 급증하고 발전 비용은 급감하는 추세다. 7월13일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발표한 ‘2021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세계에서 신설된 육상풍력의 균등화발전비용(LCOE) 가중평균값은 전년보다 15% 낮아진 ㎾h당 0.033달러(약 40원)였다. 균등화발전비용은 발전설비 건설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운영 기간 생산한 총발전량으로 나눈 값이다. 신규 태양광 발전 비용도 0.048달러/㎾h로 1년 새 13% 떨어졌다. 2021년 세계 전역에서 증설된 모든 형태의 발전설비 용량 중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이 257기가와트(GW)로 전체의 81%를 차지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화석연료 가격이 위기(고유가)라는 점에서, 2022년 재생에너지의 수혜는 전례 없는 수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원으로 수소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졌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환경오염 물질은 전혀 배출되지 않고 부산물로 순수한 물만 배출해 청정 에너지원이다. 7월15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역내 수소산업에 54억유로(약 7조2300억원)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했다고 독일 <데페아>(dpa) 등 외신들이 전했다. ‘유럽의 공동이익을 위한 중요한 프로젝트-수소2 기술’(IPCEI-Hy2 Tech)로 명명된 이 계획에는 독일·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스페인·체코 등 15개국이 기금을 조성하며 35개 기업이 참여한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도 독자적으로 수소기술 산업에 90억파운드(약 14조원)를 투자하는 대규모 수소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수소에너지가 대안 될까

수소에너지의 대중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물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비용이 비싼데다 그 과정도 아직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서다. 수소는 추출 방식에 따라 그린(녹색) 수소, 그레이(회색) 수소, 블루(파란색) 수소 등 세 가지 색깔 코드로 분류된다. 진정한 청정 에너지원인 그린 수소는 물의 전기분해에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데, 고비용 탓에 세계 전체 생산량의 0.03%에 그친다. 그레이 수소는 생산 비용이 그린 수소의 5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데, 수소 추출에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까닭에 다량의 탄소를 배출한다.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와 추출 방식은 같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60~90%까지 포집해 따로 저장하거나 달리 활용한다. 그레이 수소의 생산 비중도 전체의 0.7%에 불과하다.

미국·캐나다·영국·네덜란드·노르웨이 등은 블루 수소 생산 과정에서 포집한 탄소를 원유전과 가스전에 주입해 장기 보관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방식을 주도하고 있다. 독일은 그린 수소의 상용화에 초점을 맞춘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 장관은 2022년 초 자국의 그린 수소 발전량을 현재의 70메가와트(㎿)에서 2030년까지 10GW로 150배나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에너지공사(GEA)는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중동에서 태양광으로 생산된 그린 수소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입하는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말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그린 수소의 첫 인도분이 들어올 전망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는 2022년 초 ‘세계 에너지 전환 전망’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는 전세계에서 생산된 수소의 30% 이상이 국경을 넘어 거래돼 오늘날 천연가스 국제 교역 비중보다 높을 것이며, 세계 에너지 총소비에서도 수소가 12%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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