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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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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3만 명이어도 출구전략

하루 100여 명 사망자에도 내세웠던 조건을 충족하자
‘위드 코로나’ 실행한 영국, 그 교훈과 반면교사
등록 2021-09-19 07:14 수정 2021-09-20 02:50
2021년 9월12일 영국 리즈시 엘런드 로드 축구장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시민들. 영국 정부는 7월19일 계획대로 ‘자유의 날’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2021년 9월12일 영국 리즈시 엘런드 로드 축구장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시민들. 영국 정부는 7월19일 계획대로 ‘자유의 날’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영국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학교 개학을 맞아 전면등교를 시작하고 재택근무를 하다가 직장으로 복귀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대중교통 이용량은 2020년 3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버스 이용률은 예전의 약 60%, 지하철은 절반 수준까지 회복됐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다. 공연시설과 경기장에 내려졌던 인원제한령이 해제됐고, 클럽도 영업을 재개했다. 동네 펍에는 예전처럼 사람들이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함께 축구 경기를 관람한다. 물론 이런 변화는 지난 20개월간 13만5천 명이 넘게 숨지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결과다. 게다가 ‘영국이 모든 방역 조처를 해제했다’는 상당수 국내 언론의 묘사는 사실과 다르다.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은 여전히 강력한 권고사항이다. 코로나19 증상이 있거나, 양성 판정을 받거나, 역학조사반의 요청이 있는 경우 자가격리를 시행한다.

시행착오에서 질서 있는 전환으로

영국이 오늘날 이른바 ‘위드 코로나’ 국면에 진입하기까지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20년 3월 ‘1차 록다운(전면봉쇄)’을 단행했다가 그해 7월을 기점으로 방역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 ‘가을 이후 대유행’을 예상한 과학자문기구(SAGE)가 모델링 결과를 바탕으로 ‘서킷브레이크’(2주간의 록다운)를 제안했지만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알파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경유하며 영국은 2021년 1월 최악의 유행을 겪었다. 당시 일일 확진자는 최대 8만1천 명, 사망자는 하루 1300여 명에 이르렀다.

다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백신 개발의 성공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2021년 2월 말 출구전략을 발표하며 4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백신 접종이 성공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둘째, 백신 접종이 입원율과 사망률을 낮춘다는 충분한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의료체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유행을 통제해야 한다. 넷째, 새로운 변이가 록다운 해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7월 초 영국 정부는 현재 상황이 4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고, 7월19일 ‘자유의 날’을 계획대로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고위험군의 92%가 접종을 완료했고, 백신 접종은 중증화와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병상 가동률에도 여유가 생겼고, 우려했던 델타 변이 바이러스도 기존 백신 접종을 무력화하지 않았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부 장관은 “바이러스 박멸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법적 제한 조처를 해제할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고 말하면서 방학이 시작하는 7월 말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최선의 타이밍이라 설득했다. 가을철은 개학으로 부담이 늘어나고, 겨울에는 인플루엔자 유행과 고질적인 병상 부족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가정폭력과 정신질환 등 팬데믹의 부수적 피해가 더 이상 장기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도 작용했다. 물론 정부는 일일 중증 입원이 1천 명에서 2천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므로, 이는 코로나19 이전으로의 즉각적 복귀가 아니며, 팬데믹 대응의 핵심(3T: 검사·추적·치료)과 해외 유입 방지 조처는 유지된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9월 초 현재 영국에서는 하루 확진자가 3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백신 접종 효과가 나타날 뿐 아니라 젊은층을 중심으로 감염이 발생하면서 치명률이 떨어졌다. 하루 1천 명 이상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예전과 달리, 현재 사망자는 1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이를 다소 안정된 상황으로 보고 있다.

교훈 사회적 숙의의 정치는 왜 중요한가?

영국이 4가지 기준을 만들고 먼저 ‘위드 코로나’라는 과제를 시작한 덕분에, 한국은 후발 주자의 이점을 얻었다. △고위험군 백신 접종률 제고 △의료체계 역량 확충이라는 과제는 이미 지적했으니, 이 글에서는 차치하고 대신 영국의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교훈’에 주목하려 한다. 한국의 ‘위드 코로나’ 담론에서 훨씬 적게 논의되는 문제기도 하다. 이 교훈은 모범과 반면교사를 포괄한다.

‘위드 코로나’ 사회에 대한 명료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신 상용화가 코로나19로 인한 중증화와 사망을 크게 줄인다는 사실은 이 감염병이 초래하는 위험의 정도를 재평가하게 해준다. 달리 말해, 감염병에 취약한 인구집단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 도구를 갖춘다면 ‘생명 보호’와 ‘생계 보호’ 간 균형점이 달라질 수 있다. 또 마땅히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특정 집단의 희생을 대가로 이뤄지는 ‘무차별적인’ 방역 조처는 다시 생각돼야 한다.

문제는 기존 정책 기조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변할 때 이러한 정책 변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하루 확진자가 3만 명, 그리고 사망자는 하루 100여 명이 발생하는 영국 사례를 다시 떠올려보자. 백신 접종률 100%는 달성 가능한 목표가 아니며 감염 위험은 어떤 경우든 0이 되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에 진입한 한국 사회 또한 그에 상응하는 피해를 예상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하루 2천 명 규모의 확진자 발생을 방역의 위기라 인식하며, 일일 사망자가 한 자릿수에 그치는 한국 상황에서 영국과 비슷한 정도의 피해를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는 결국 팬데믹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는 물음과 직결된다. 거꾸로 말한다면, 그 질문을 고민할 때 ‘위드 코로나’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인식 전환이 가능하다.

고령층의 생명과, 경제활동인구(특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계 간 상충관계가 그 핵심이다. ‘위드 코로나’ 체제에선 고령층 등 고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처를 했음에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망에 얼마나 큰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령층의 사망을 막기 위해 자영업자의 생계를 어느 수준에서 얼마나 희생시킬 수 있는가? 당장 고령층의 단기 사망을 막기 위해, 학생들의 조기 사망과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교육의 결손을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

정해진 답은 없으나, 이러한 딜레마를 피해갈 방법도 없다. 이런 점에서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가 ‘위드 코로나’ 이행을 위한 4가지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체계적인 조처를 책임 있게 시행해나간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위드 코로나’로 직면할 상충관계를 최대한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그에 관한 사회적 토론과 숙의를 진행할 제도적인 장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팬데믹 시대에 가장 긴급한 정치다.

반면교사 팬데믹을 팬데믹으로 대응하기

영국의 오류에서 배워야 할 대목도 있다. 국제보건의 맹주로 활약하던 영국도 국내 상황이 악화하자 한 국가적인 수준에서 팬데믹에 대응했고, 결국 인도발 델타 변이가 유입되면서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국지전에서 일시적인 승리를 맛보고 있지만, 전쟁에서는 패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표적인 예가 ‘백신 자국주의’다. 영국은 전세계에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나라다. 동시에 영국은 백신 회사와 직접 계약해 자기 나라 인구보다 훨씬 많은 백신을 확보하면서 백신 국제 공조를 어렵게 했다. 유럽연합(EU)과의 백신 수급 경쟁으로 소송을 겪기도 했다. 자기 나라의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야 존슨 총리는 다시 국제 공조를 말하며 1억 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 분량의 백신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영국은 2021년 9월까지 백신 500만 도스, 연말까지는 2500만 도스를 기부할 예정이지만 전세계적인 유행 상황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다. 청소년 접종과 성인 부스터샷(추가 접종)에 관해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영국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논의는 여전히 국내 코로나19 발생자 감소와 위험 대비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소득국가에 대한 고려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코로나19 공적개발원조(ODA) 추진 전략을 통해 약 120개국에 6억달러가량의 물자를 제공했고,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2억달러 공여와 현물 지원을 약속했다. 적잖은 금액이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지원인지는 되돌아볼 일이다. 한국이 코백스 퍼실리티 지원 규모를 더 늘릴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전 지구적 연대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부스터샷을 접종하는 행렬에 합류하는 데도 신중해야 한다. 유럽 질병통제예방센터(ECDC)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세계보건기구(WHO)의 과학자들도 현시점에서 부스터샷 접종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며 지금 단계에서 성인 부스터샷은 가난한 나라들의 백신 확보를 더 어렵게 한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코로나19 유행이 통제되지 않으니, 해외에 생산라인을 둔 한국 기업들도 타격을 입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백시네이션(Vaccination·대규모 백신 접종)은 결코 손해 보는 투자가 아니다. 한국 정부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백신이 부족한 나라들에 적극적인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단지 연습경기에 불과하다면

‘코로나19 위기가 단지 연습경기에 불과하다면?’ 미국의 저명한 경제사 학자인 애덤 투즈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쓴 글의 제목이다. 이번 팬데믹은 전세계가 지역별, 부문별, 분야별로 깊이 연결됐음을 확인시킨다.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면서. 연습경기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이에게 본경기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김상준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보건경제·정책 전공

정웅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보건정치·정책 전공

*1381호 표지이야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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