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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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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연꽃이 시궁창에 폈다

로힝야 무슬림의 선거권·피선거권 모두 박탈된 버마 총선 2015… 아웅산 수치의 NLD는 무슬림 민주세력의 유망 정치인 공천도 배제해, 불교극단주의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은 확장 중
등록 2015-09-10 12:06 수정 2020-05-02 19:28
2009년 버마-타이 국경 반군 지역에서 카렌 병사가 아웅산 수치를 표지 모델로 한 시사잡지를 읽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아웅산 수치는 버만족, 소수민족 할 것 없이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버마가 개방 노선을 걸어온 지난 4년간 그는 독선적 리더십을 보이며 소수민족 문제에 침묵해왔다. 이유경

2009년 버마-타이 국경 반군 지역에서 카렌 병사가 아웅산 수치를 표지 모델로 한 시사잡지를 읽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아웅산 수치는 버만족, 소수민족 할 것 없이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버마가 개방 노선을 걸어온 지난 4년간 그는 독선적 리더십을 보이며 소수민족 문제에 침묵해왔다. 이유경

우 쉐마웅(50)은 로힝야 국회의원이다. 2010년 총선 당시 아라칸주 부티동 타운십에서 연방연대개발당(USDP) 소속으로 당선됐다. USDP는 군사정권의 전위대 격인 정당이었고 현 집권당이다. ‘왜 USDP였나?’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부터 라카잉족(아라칸주 주류 민족) 극우세력과 갈등이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고위 관료를 찾아가서 보고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 연장선에서 생각했다. 정부와 로힝야 커뮤니티 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 쉐마웅은 중개자 역할을 하며 로힝야 시민권 문제를 어떻게든 가시화하고 싶었고, 군정은 당선될 만한 인물이 필요했다. 군정은 2008년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칠 때부터 로힝야들에게 ‘화이트카드’를 발급한 바 있다. 시민권이 아닌 ‘임시등록카드’로 이동의 자유가 없는 로힝야들이 이동 허가를 받거나 투표를 할 때 쓰는 ‘신분증’이다. 우 쉐마웅이 당선된 건 바로 이 화이트카드 투표 때문이었다. 그의 선거구가 속한 부티동 타운십의 로힝야 인구는 약 15만 명, 라카잉족은 약 4만 명으로 추정된다.

부티동, 15만 명 투표권자가 고작 10명으로

2010년 국회 입성 뒤 우 쉐마웅은 로힝야 문제를 환기시킨 유일한 제도권 정치인이었다. ‘로힝야’ 호명조차 거부하는 버마(미얀마) 내 분위기를 고려하면 그의 활동은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지난해 1월 아라칸주 마웅도 타운십에서 발생한 ‘두치야단 학살’과 관련해 그는 외부로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로 심문을 받았고 체포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제1011호 세계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참조).

그런 그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11월 총선에서 집권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다. 버마 정부는 올 2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화이트카드를 전부 몰수했다. 시민권은 없지만 투표권은 누려온 로힝야들은 이제 어떤 형태의 ‘증’도 없다(타임라인 참조). 지난 선거에서 로힝야 유권자가 15만 명에 이르렀던 부티동에서는 이제 10명만 투표장에 갈 수 있다. 그 10명은 화이트카드를 제출하면서 3등 시민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인종란’에 “벵갈리”라 적고 받은 그린카드다(로힝야 시민권 문제에 대해서는 제979호 기획 연재1 ‘버마 종족·종교 갈등의 현장을 가다’ 참조). 1947년 독립 직전 치른 제헌의회 선거 이래 선거권을 박탈당하긴 처음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우 쉐마웅은 무소속 출마를 신청했지만 8월22일 부티동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의 후보 등록이 거부당했음을 알렸다. 그가 태어날 당시 부모님이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게 이유다.

“아버지는 1918년생, 어머니는 1935년생, 두 분 모두 아라칸주 태생이고 독립 뒤인 1952년 9월2일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내가 태어난 1965년 아버지는 경찰관이셨고 1978년 은퇴 뒤 연금까지 수령했다. 나는 랑군공과대학(RIT) 출신에 지난 총선에서 당선돼 아직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권자 집안이 아니면 이 모든 게 가능하겠나?”

기자와 통화하고 이틀이 지난 9월1일, 아라칸주 선관위는 그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서류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30초 만에 기각했다’는 후문이다.

로힝야 국회의원 우 쉐마웅은 출생 당시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번 총선 출마 자격을 얻지 못했다. 1965년 아버지가 경찰관으로 근무 중이었음을 증명하는 경찰증을 아라칸주 선거관리위원회에 보여주었지만 이의신청은 기각당했다. 아래는 우 쉐마웅의 랑군공대 졸업증. 우 쉐마웅 페이스북

로힝야 국회의원 우 쉐마웅은 출생 당시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번 총선 출마 자격을 얻지 못했다. 1965년 아버지가 경찰관으로 근무 중이었음을 증명하는 경찰증을 아라칸주 선거관리위원회에 보여주었지만 이의신청은 기각당했다. 아래는 우 쉐마웅의 랑군공대 졸업증. 우 쉐마웅 페이스북




버마  총선  타임라인


1990년 5월27일  1948년 독립 후 최초 다당제 총선. 민족민주동맹(NLD) 압승. 군사정권 선거 결과 불인정. 군사독재 유지
2008년 5월10일  군정 기안 헌법 국민투표. 상하 양원 내 25% 군인 할당제. 헌법 개정시 정족수 75%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436조로 사실상 군의 비토권 승인
2010년 11월7일  2008 헌법 기반 총선 실시. NLD 보이콧
           11월13일  아웅산 수치 가택연금에서 석방
2011년 3월21일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 출범. 개혁·개방 노선 본격화
2012년 4월1일  보궐선거. NLD 44석 중 43석 압승
           6월  아라칸주 1차 반무슬림 로힝야 폭력 사태
           10월  아라칸주 2차 반무슬림(로힝야·캄만족 겨냥) 폭력 사태
2013년 3월20일  중북부 멕틸라 타운에서 반무슬림 폭력 사태 발발
2014년 10월3일  테인 세인 대통령 정당등록법 개정안 승인. 화이트카드 소지자 당원 등록 금지
2015년 2월2일  임시등록카드(일명 ‘화이트카드’) 소지자 투표권 부여하는 ‘국민투표법’ 통과
            2월6일  헌재, 임시등록카드 소지자 투표권 부여 법안 위헌 판결
            2월9~14일  승려단체들. 임시등록카드 소지자 투표권 부여 법안 규탄 시위
           2월~5월31일  정부 임시등록카드 투표권 부여 법안 취소. 압수 뒤 말소
           3월  각정당 당내 임시등록카드 소시자 당원 축출
           8월12일  집권여당 USDP 대표이자 아웅산 수치의 헌법 개정제안에 호의적 입장이던 슈웨 만(Shwe Mann) 국회의장 당 대표직 강제 사임. 권력투쟁 관계에 있던 테인세인 대통령과 군 강경파 입김이 작용한 ‘미니쿠테타’로 해석됨
           8월20일  NLD 후보자들 미디어 인터뷰 및 토론회 참석 금지령
           8월22일   로힝야 국회의원 우 쉐마웅 무소속 후보등록 거부당함. 이후 총선후보 등록한 로힝야 정치인들 잇따라 거부당함. 시민권 논란 재점화
           9월8일   버마총선 공식 캠페인 시작
           11월8일   총선


당원 1천 명을 축출하고도 생존 불투명

“2011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로힝야에 관한 변화는 전부 부정적이다. 이번 선거 이후 로힝야는 모든 형태의 공공접근권이 차단된다.”

또 다른 로힝야 정치인 아부 타헤이(51)의 말이다. 랑군에 거주하며 비제도권에서 로힝야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아부 타헤이 역시 무소속 후보 등록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같은 이유다.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것. 지난 8월 두 차례 아라칸주를 다녀온 그는 “마웅도 주민들은 모든 걸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삶 자체가 절망이고 치안도 불안하더라.”

9월2일 현재 선관위(UEC) 발표에 따르면 총 88명의 후보가 등록을 거부당했다. 이 중 28명이 아라칸주에서 출마하는 로힝야 후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정당은 아라칸주와 랑군에 후보를 낸 민주인권당(DHRP)이다. 당대표인 우 초민은 1990년 총선 때 부티동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총 18명의 후보 중 17명이 시민권 문제로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 DHRP는 지난 2월 정당등록법에 따라 당내 화이트카드를 소지한 당원 약 1천 명을 축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당의 생존조차 불투명해졌다. 정당등록법상 3명 이상 선출 의원이 없는 당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버마의 11월 총선은 92개 정당 6189명의 후보가 1171개 선거구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예정이다. 개방 뒤 첫 선거라 ‘역사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지만 ‘민주주의의 꽃’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로힝야는 물론 비로힝야 무슬림도 공천에서 배제당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조차 무슬림 후보를 전면 배제했다. 이뿐만 아니라 NLD는 차세대 정치인으로 떠오르는 ‘88세대’ 공천 희망자 20명 중 한 명만을 공천했다. 소수민족 주에도 빠짐 없이 후보를 냈다. 이로써 연대가 아닌 경쟁을 지향했다.

NLD 깃발 아래 ‘민주대연합’을 꿈꿨던 모든 이들이 충격받았다. 익명을 신신당부한 한 NLD 지지자는 “NLD 후보나 중앙위원들 발언을 보면 기본 인권의식조차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NLD 비판을 삼가던 88세대이자 그 자신이 무슬림인 먀에조차 “무슬림들은 지금 NLD에 의해 차별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NLD 우 냔 윈 대변인은 과의 인터뷰에서 NLD가 무슬림을 차별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NLD  대변인  우  냔  윈  인터뷰


“버마에  ‘로힝야’는  없다”


민족민주동맹(NLD)이 당 후보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가운데 언론에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당내 인물은 아웅산 수치와 우 냔 윈(74) 대변인 두 사람 정도다. 그러나 대변인은 “잘 모른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NLD가 무슬림 후보를 단 한 명도 공천하지 않은 건 사실인가.
우리 당은 종교를 차별하지 않는다.
사실관계를 묻는 거다. 1천 명이 넘는 후보 가운데 무슬림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천 신청할 때 종교 기입란이 없기 때문에 누가 무슬림인지 아닌지 모른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최근 집권여당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슈웨 만 국회의장과 ‘동맹’을 선언했다. 무슨 의미인가.
두 사람이 상당히 친하다. 동맹에 대해서는 모른다.
당의 공식 입장은 아닌 걸로 해석해도 되는가.
(공식 입장) 아니다.
‘88세대’ 후보들을 왜 더 공천하지 않았나? 한 명밖에 안 했던데.
한 명인지 몇 명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 그룹 소속이 아니라서. 우리는 친구 관계고 (이번 선거에서) 함께 연대하기로 했다.
NLD 압승을 자신하나.
그렇다. 이 나라 국민들이 우리 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로힝야 무슬림들은 투표권을 완전히 박탈당했다. 이 조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내 의견을 말하자면, 버마에 ‘로힝야’란 없다는 것이다.


“수치는 라이벌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반무슬림 혐오 연설을 주도하고 있는 불교 극단주의 승려 우 위라투. 그가 시작한 ‘969운동’은 이제 ‘마바타’(인종종교수호위원회)라는 조직으로 발전해 전국에 250개 사무소까지 두고 있다. 이유경

반무슬림 혐오 연설을 주도하고 있는 불교 극단주의 승려 우 위라투. 그가 시작한 ‘969운동’은 이제 ‘마바타’(인종종교수호위원회)라는 조직으로 발전해 전국에 250개 사무소까지 두고 있다. 이유경

NLD의 이번 공천은 예의 선거 전략 부재와 아웅산 수치의 ‘독선’이 반복된 결과다. 버마 언론인 민진은 8월18일 기고문을 통해 이번 선거가 차세대 정치인을 키울 이상적인 기회임에도 아웅산 수치가 그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민진은 NLD와 88세대 내부 정보원을 인용해 새로운 인물 영입에 반대한 건 아웅산 수치의 결정이며 수치가 당내 ‘라이벌’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당 고위 간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NLD는 지금 오염된 ‘현실정치’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불교극단주의 세력에 사실상 굴복했기 때문이다. 버마 언론 9월1일치에 따르면 무슬림 혐오 연설로 악명을 떨쳐온 ‘969운동’의 후신 마바타(Ma Ba Tha·인종종교수호위원회)는 ‘교세’가 확대 일로 중이다. 전국에 250개 사무실을 마련하고 자문변호사와 ‘외무 담당 비서’까지 두고 있으며 최근 위성TV인 스카이넷(SkyNet)에 ‘설교방송’ 시간대까지 얻어냈다. 지난 몇 달간 버마 의회를 통과하고 테인 세인 대통령이 8월31일 마지막 사인을 마친 ‘인종과 종교에 대한 4개 법안’을 기안한 것도 다름 아닌 마바타다. 개종 금지법, 타 종교 간 결혼 제한법, 일부일처제법 그리고 산아제한법 등이 그 ‘패키지’ 법안들이다. 마바타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후보의 네거티브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고 아웅산 수치는 이 중 산아제한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시민권 없는 외국인 후손들이 시민권을 따낸 뒤 국회에 버젓이 앉아 있다. 매우 위험하다.”

한국의 이자스민 의원을 향한 악플 논리와 꼭 빼닮은 이 말은 마바타의 상징적 인물인 우 위라투 승려의 꾸준한 경고였다. 그의 경고는 로힝야·무슬림 정치인들의 피선거권 박탈로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무슬림 폭력으로 홍역을 치러온) 중북부 버마에서는 마바타 승려들이 지역 관료, 법조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마바타가 소수자 대변 후보들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만달레이에 거주하는 한 무슬림 활동가의 말이다. 극단주의자들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그는 “군정보국, 범죄수사국, 특별지부(SB·군정 시절 일상 감시로 악명 높았던 사복)들이 활동가를 미행하는 일도 잦아져 다들 불안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사정권 시절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묘사다. 만개한 언론 자유의 하늘 아래 치러지는 첫 총선을 두 달 남겨둔 풍경이다.

이유경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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