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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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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색깔로 쑥쑥 자라거라


스웨덴 현장 교사들이 만든 ‘2000년대 학교’ 푸투룸스콜라,
무학년제 혼합능력 학급에서 맞춤 교육 받는 학생들
등록 2009-02-20 02:34 수정 2020-05-02 19:25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는 푸투룸스콜라의 나무 모양 로고에는 다양한 색이 섞여 있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는 푸투룸스콜라의 나무 모양 로고에는 다양한 색이 섞여 있다.

새 정부 들어 교육현장의 고통이 극에 달했다. 일제고사로 초등학생까지 경쟁에 내몰리고 지난 30년간 한국 교육의 근간이던 평준화 틀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대안을 찾기 위해 교육계 안팎의 인사들과 1월 말 교육 선진국 핀란드와 스웨덴을 방문했다.
여정은 스웨덴부터 시작했다. 스웨덴은 1990년대부터 학교선택제와 자율학교를 통해 공교육의 변화를 유도해왔고 그 결과 다양한 학교 모델을 창출했다. 푸투룸스콜라(미래학교)와 쿤스캅스스콜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푸투룸은 교사들 스스로 스웨덴 교육의 장점인 통합교육과 시대적 요구인 개별화 학습을 연결해 혁신을 이뤄낸 미래형 공립학교 모형이다. 반면 쿤스캅스콜란은 기업이 설립한 자율학교로,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 스웨덴 교육의 변화를 이끄는 두 학교를 비교해 살펴보고, 스웨덴 교육개혁의 방향도 짚어본다. 편집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50km쯤 가면 인구 1만8천 명의 하보코뮌(코뮌은 광역지자체)이 있다. 이 코뮌 내 발스타시에 있는 조그만 학교가 스웨덴은 물론 덴마크·노르웨이·독일의 공립학교 교육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학교의 이름은 푸투룸스콜라(미래학교)다.

개교 10년, 수천 명 방문·교육 모형 수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푸투룸은 이왕의 학교와 다르다. 지난 1월 말 눈발이 날리는 어둑한 아침에 우리 방문단을 맞은 나지막한 학교 건물은 겉에서 보기엔 마치 가건물처럼 허술했다. 그러나 건물 안은 여느 학교와 달랐다. 건물 내부는 노랑·분홍·초록의 세 색깔로 나눠져 있고, 각 부분에 커다란 강당(또는 무대)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빙 둘러 배치돼 있었다. 전통적인 교실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를 맞은 에니카 에코블럼 교장이 학교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푸투룸스콜라 내에는 초등학교 2개와 유치원 6개가 있고, 초등학교에 1007명, 유치원에 452명이 재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교사 출신이 아니고 작은 중소기업에서 교육을 담당하다 4년 전 이 학교 교장으로 스카우트됐단다.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한스 알레니우스 교사는 푸투룸을 하보 지역의 첫 번째 사회적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1999년 개교한 이래 8500명의 방문객이 찾아왔고, 스웨덴에서만 푸투룸을 본뜬 학교가 25곳이나 생겨났고, 덴마크·노르웨이·독일 등 이웃나라에도 같은 교육 모형을 수출하고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학교에서 한 학생이 컴퓨터를 이용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한 학생이 컴퓨터를 이용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의 개별적 발달을 도모하는 학교’를 지향하는 푸투룸의 시작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에 지은 크바른바크라는 낡은 학교를 개축하게 된 발스타시의 시장은 700만유로(현재 가치로 약 120억원)를 들여 단순히 개축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는 당시 이 학교에 근무하던 알레니우스 교사에게 “미래를 위한 학교”를 구상해보라고 요청했다. 88명의 교사들은 이 요청을 받고 고민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단순히 수선할 것이냐 아니면 새롭게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인터넷 문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래를 향한 교육을 위해 학교를 재구성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미래’(푸투룸)라고 붙였다. 새로운 사고의 반영이고 새로운 정보사회를 맞이하기 위한 학교의 대응이기도 했다”고 일레니우스 교사는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사 88명을 13개 그룹으로 나눠 여러 분야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진행했다.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고 다른 학교들도 둘러보았다. 몬테소리 교수법도 연구하고 프레네 교수법도 연구했다. 여러 콘셉트를 혼합·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 안 되겠다며 떠난 사람, 그저 관망하는 사람. 하지만 열정이 냉소를 이겨내고 마침내 1999년 문을 열 수 있었다.

일레니우스 교사는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는 어린이 둘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학교 소개를 시작했다.

“학교에 처음 들어와 기뻐하는 6살짜리 아이들이다. 우리 목표는 이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는 날에도 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침마다 담임과 30분간 ‘공부 회의’
분홍학교 교사들이 주간 학습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 학교의 모든 방은 이렇게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분홍학교 교사들이 주간 학습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 학교의 모든 방은 이렇게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푸투룸의 개별화 교육은 ‘2000년대 학교’(School 2000)란 교육학 이념에서 출발했다. 이 이념은 학습을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하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이라고 본다. 또 모든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학습 역시 각자의 필요에 알맞은 개별화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해 푸투룸이 선택한 조직은 학교 내 작은 학교, 학급이 아닌 모둠 중심 수업, 유연한 혼합능력 학급 등이었다.

이 학교라고 전통적 학습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습 능력과 속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가르치는 대신 소그룹의 모둠으로 나눈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맞는 유연한 교수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에 7명이 오늘 고등학교로 수학을 배우러 갔다. 물론 우리는 학생들의 수업 비용을 그 고등학교에 낸다.” 일레니우스 교사가 든 사례다. 그렇다고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무학년제의 혼합능력 학급을 구성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 속도에 맞춰 공부할 수 있다.

이렇게 수업이 개별화되다 보니 학생들은 스스로 수업을 기획·관리해야 한다. 매일 아침 학생들은 담임 교사와 30분 동안 회의를 한 뒤 그날 할 공부를 결정한다. 학습목표 달성 계획과 그에 따른 학습량이 정해지면 학생 각자가 목표를 달성할 책임을 진다. 학교는 학생의 요구에 맞출 수 있도록 학습 시간과 주제를 가능한 한 유연하게 정한다. 또 유치원에서부터 9학년까지 10년 동안 같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책임지게 함으로써 교사가 학생 하나하나를 충분히 파악해 지도할 수 있게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학교 내 작은 학교다. 방문단은 푸투룸스콜라의 초등학교 한곳을 찾았는데, 이 학교 안에는 노랑·초록·분홍으로 3개의 작은 학교가 있었다. 각각의 작은 학교에는 유치원에서 9학년까지 모두 150여 명의 학생이 소속돼 있고, 각 학교에 강당을 중심으로 모둠학습실이 빙 둘러 배치돼 있다. 작은 학교들은 교과과정이나 학생 지도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교사들의 책임감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에코블럼 교장은 말했다.

‘사랑과 종교’ 수업에 사용된 교재. 종교와 생물 등 다양한 분과를 통합한 프로젝트 수업의 한 모형을 보여준다.

‘사랑과 종교’ 수업에 사용된 교재. 종교와 생물 등 다양한 분과를 통합한 프로젝트 수업의 한 모형을 보여준다.

분홍 학교의 한 교실에 들어갔을 때 학생 5~6명이 컴퓨터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8학년생과 9학년생을 대상으로 사랑과 종교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이 설명했다. 학습주제를 결정하는 데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참여한다. 오늘은 사랑이란 주제를 놓고 각 종교의 차이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수업 과정을 통해 문학은 물론 생물학까지 폭넓게 공부한다. 하나의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연결해 공부하다 보니 보통 한 주제를 여러 주에 걸쳐 다루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이 수업 역시 매주 3시간씩 6주간 계속될 예정이라고 한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참여해 만든 다양한 교재가 사용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바로 웹사이트에서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기도 했다. 강의식 수업보다 학습 효율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 학교의 수업 방식은 이렇게 프로젝트 수업을 위주로 한다.

이런 수업 방식은 아이들이 접하는 현실에서 학습 소재를 끌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한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고, 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중국에 관해 공부하는 식이다. 한번은 여행회사를 아이들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해보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심취했다가 그 회사가 가상의 회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크게 혼란을 겪기도 했다고 초록반의 한 선생님은 전했다. 미래학교의 이런 실험이 가능한 이유는 스웨덴에서는 정부가 교육목표만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나 절차, 수업 내용은 학교와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정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령 섞이니 ‘돌봄’ 학습 돼

에코블럼 교장은 이 학교는 학생들의 사회적 능력 개발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통합교육과 모둠학습, 혼합능력 학급, 지역사회와 연결된 학습 등이 이를 위한 노력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학교에는 10% 정도의 학습장애아들이 있지만, 이들은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통합 수업을 받는다. 또 서로 다른 연령의 아이들을 섞어놓는 혼합능력 학급을 통해 아이들은 돌봄의 가치를 배운다. 실제로 탈의장에서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유치원생이 옷 입는 것을 돕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탈의실에서 아이들이 옷을 챙기고 있다.

탈의실에서 아이들이 옷을 챙기고 있다.

일레니우스 교사는 모둠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둠학습은 아이들의 사회적 능력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 모둠을 구성하고 모둠 내에서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며 협력을 통해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함께 섞이게 해 아이들의 사회적 능력을 배양하고 사회적 배제를 방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스웨덴 공립학교의 기본정신이다. 스톡홀름 시내 생트에릭스고등학교의 로스 구스타브 욘슨 교장은 “출신 배경이나 성향이 달라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서로 만날 수 없게 되는 아이들이 매일 만나면서 사회의 다양성을 직접 체험하고, 나와 다른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스웨덴 통합교육의 장점이라고 자랑한다.

15년 전 이 학교 구상 작업부터 시작해 전세계에 푸투룸 모델을 전파하는 데 열심인 일레니우스 교사는 새로운 학교 운동이 성공하려면 먼저 교육적 이념을 잘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를 먼저 세우고 나서 어떻게 학교를 운영할까를 묻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먼저 이론적 모델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조직을 생각하고, 그 조직에 맞는 학교를 디자인해야 한다.”

스톡홀름(스웨덴)=글·사진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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