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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된 학교의 두 얼굴


스웨덴 최대 투자회사가 자금 댄 자율학교 쿤스캅스스콜란… ‘좋은 성적’과 ‘인성 교육’ 엇갈려
등록 2009-02-20 11:07 수정 2020-05-03 04:25

자율학교인 쿤스캅스스콜란은 1999년 지식에서 스웨덴 최고의 학교가 되겠다는 교육목표를 내걸고 설립됐다. 자율학교 도입 당시 정부에 조언을 제공했던 앤더스 홀틴은 에릭슨의 대주주이기도 한 스웨덴 최대의 투자회사에서 자금을 끌어들였다. 투자자들이 건축비의 50%를 부담해 2000년 첫 학교를 연 이후 해마다 새로운 학교를 늘려가 지금은 22개 중학교와 10개 고등학교에, 1만 명의 학생과 750명의 교직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학교군이 됐다. 이미 초기 투자분을 다 회수했고 연간 5~7%의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수익을 내는 비결은 학교 그룹의 통합적 관리를 통한 효율적인 학교 운영이라고 ‘키스타 쿤스캅스스콜란’의 아사 쿠스타프손 교장은 말한다.

키스타 쿤스캅스스콜란의 정문으로 방문단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 권상한

키스타 쿤스캅스스콜란의 정문으로 방문단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 권상한

1인실~회의실, 교실 크기 제각각

이 기업학교군에 속하는 키스타 쿤스캅스스콜란은 스톡홀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키스타 지역의 한복판에 있다. 12∼16살의 아이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우리나라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셈이다.

지난 1월 말에 찾아간 이 학교는 산업지역에 소재한 탓인지 외관상 다른 기업 건물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학교 하면 으레 있음직한 운동장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도 기존 학교의 교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학교 건물은 설계 당시부터 학교의 설립 이념을 반영해 만들어졌다고 쿠스타프손 교장은 설명한다. 강당과 회의실, 카페테리아, 크기가 다른 개별 학습실 등으로 이뤄진 학교 건물은 “모든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학습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란다. 그러나 학교를 함께 둘러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사설 학원 같은 느낌이 들 뿐이라며 “화분 하나, 꽃나무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학교에 왜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보내려고 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작은 방을 보고는 “감옥 같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었다.

그럼에도 학부모나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 기업학교군에 속하는 쿤스캅스고등학교의 학부형인 리잔 시주는 “아들이 이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학습에 점점 더 책임감을 갖게 됐고 일반 학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자랑한다. 키스타 쿤스캅스스콜란의 소개책자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80% 이상이 학교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 학교에서 종교와 스웨덴어를 가르치는 말린 베르너 교사는 학생들이 보여주는 높은 목표달성률이 만족의 원인일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이 학교군에 속한 학교 가운데 8곳이 해당 지역 일제고사에서 1위를 했고 3개 학교는 2위를, 2개 학교는 4위와 5위를 했다. 자율학교라고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 국가교육청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 학교 체인의 성적은 훌륭한 편이라고 베르너 교사는 주장한다.

최고의 학교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쿤스캅스스콜란이 사용하는 도구는 개별화 학습과 목표관리, 지식 포털의 활용이다. “우리는 선생님이 주도하는 공장식 학교 모델에 대한 대안이다. 학생들은 집단적 필요가 아닌 자기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학습을 조직한다. 이렇게 개별화된 접근을 통해 더 많은 책임감을 주면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동기 유발이 돼 더 많은 흥미를 갖게 된다”는 게 이 기업학교군 설립자인 홀틴의 주장이다. 모든 학생이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계별 개인 학습목표를 정하고 이를 관리해나간다는 것이다. 기업의 목표관리 전략을 학교 수업 방식에 적용하는 셈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각 학생에게는 졸업할 때까지의 목표가 정해지고, 그 목표는 주·학기·연간 단위의 목표로 세분된다. 매 학기가 끝나면 부모와 학생, 교사가 만나 성취도를 점검한다. 또 매주·매분기 학생들이 세운 목표와 성취 결과, 교사와의 대화와 토론 내용 등이 웹상에 기록돼 부모나 학생이 언제나 접근할 수 있다”고 쿠스타프손 교장은 설명한다.

개인별 학습을 추구하는 이 학교에는 작은 개별 학습실들이 이어져 있다. 1·2인용 학습 공간의 모습. 사진 한겨레 권태선

개인별 학습을 추구하는 이 학교에는 작은 개별 학습실들이 이어져 있다. 1·2인용 학습 공간의 모습. 사진 한겨레 권태선

‘지식 포털’ 이용해 재택 학습 가능

학생들은 아침 8시30분께부터 학교에 온다. 그러나 모든 학생에게 통용되는 정해진 시간표나 전통적인 교실이 없는 이 학교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일을 한다. 몇몇 아이는 인터넷으로 뭔가를 찾고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겉으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체계적인 계획이 있다”는 게 베르너 교사의 주장이다.

“학생들의 일과는 매주 선생님과의 대화로 시작한다. 지난주의 목표 성취를 점검하고 새로운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학습전략을 의논한다. 이런 대화 내용은 모두 학생들이 휴대하는 기록장에 기록된다. 개인별 학습계획과 학교의 학습일정과 기록장이 모두 하나의 개인적 학습계획이 된다”고 베르너 교사는 덧붙였다.

이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학과 담임으로서의 역할은 부차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맡고 있는 아이들의 성과 관리를 위한 개인 교사로서의 역할이다. 아이들 스스로 필요한 학습을 해나가도록 도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정보의 바다 속에서 아이들이 지식을 얻는 경로도 단순히 교사의 강의로 국한될 수만은 없다.

이 학교 체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지식 포털에는 학생들이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각종 교재, 도표, 숙제, 기타 자료 등이 가득 차 있다. 이러니 학생들은 반드시 학교에 나와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칼은 하루에 몇 시간만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머지는 온라인 등을 통해 집에서 스스로 공부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학습 방법이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모든 게 개인의 책임이라 오늘 못하면 다음날 보충하면 되지만, 언제나 그렇게 잘되지는 않는다”고 시인한다.

개별화 교육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런 교육 방식은 반스웨덴적인 교육이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만 관심의 초점이 되기를 바라고,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어울리는 인성 교육이 약화된 이런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더 이상 공동체적 가치를 배우지 못할 때 사회적 수준에서 어떤 효과가 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스톡홀름 사범대학 잉아노티얼 교수는 지적한다.

“반스웨덴적 교육, 특혜 학교” 비판도

이 학교가 거둔 성적에 대해서도 다른 평가가 나온다. 교사 1인당 담당해야 할 학생 수의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 일반 공립학교는 학급당 평균 인원이 30명이지만, 자율학교는 평균 20명 수준이다. 키스타 쿤스캅스스콜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스웨덴 교사들은 학부모의 선택권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 학교에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스톡홀름(스웨덴)=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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