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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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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숨죽인 아이들

등록 2002-05-08 15:00 수정 2020-05-02 19:22

점차 악질화되는 폭력의 수준… 왕따 없는 학교를 위한 법제화를

7년 전 필자가 몇 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렀을 때, 학교 폭력 추방 캠페인의 시초를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끔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학교 폭력문제를 ‘아이 장난’쯤으로 취급해온 ‘주류 언론’들이 갑자기 ‘왕따’ 현상에 대한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한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피해학생들과 가해학생들의 이야기가 처음 들리던 그때에 ‘왕따’라는 말은 인기 신조어가 됐다. 학교마다, 동네 도서실마다 ‘폭력 추방’의 똑같은 스티커들이 동시에 보이기 시작했다.

‘왕따현상’의 세계사적 흔적들

한편으로는 남한의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매체력·행정력에 대해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전환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태까지 학교에서의 폭력을 위시한 모든 억압·지배 관계를 ‘아동기 체험의 일부분’으로, 기존의 사실로 받아들여온 한국이 이제서야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의 서구·미국·일본이 그런 것처럼 국가·사회의 힘과 권위를 이용해 아동 사이의 불평등한 ‘역학관계’의 해체에 착수했다는 것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아동 사이의 폭력·위계 질서에 대한 한국의 국가·사회의 태도는, 드디어 핵심부 국가들의 태도와 비슷해진 것이었다.

계급사회의 사회화(socialization) 기관인 학교에서의 ‘비공식적인’ 힘의 위계질서와 사적인 힘·폭력의 사용은, 그야말로 세계사의 보편적인 현상들 중에서도 가장 흔한 현상이다. 계급분화 이전의 사회(예를 들면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들)에서는 아동 사이의 사적인 폭력이 그다지 대표적이지 않은 반면, 거의 모든 계급사회들이 아동기의 힘에 의한 ‘위계질서 형성’이라는 현상을 면치 못했다. 타 지역보다 비교적 비폭력적인 한국 중세의 양반문화에서마저도 ‘왕따현상’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패설문학에서 학우들의 등쌀·야유에 기가 죽어 평생 이렇다 할 만한 출세를 하지 못한 ‘인기 없는’ 불운의 유생의 이야기를 꽤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 특히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성장·전성기인 19세기에 -의 학교 내 ‘폭력적인 위계질서화’는 그 사회적 보편성이나 강도에서 한국이나 중국과 비교조차 못할 정도로 대대적인 현상이었다. 사회는 이 현상을 ‘아동기의 당연한 체험’, 즉 “사회화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인식하여 근절을 시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낭만화’(浪漫化)하기까지 했다. 19세기의 모든 유럽 국가와 미국의 사관학교에서의 선배에 의한 후배들의 폭력적인 지배는 불문율이자 ‘자랑스러운 미풍양속’이었다.

각국의 군 당국은 이를 군에서의 위계질서의 ‘예비학습’으로 인식해서 장려하기까지 했다. 군사기술학교를 졸업한 도스토예프스키는, 힘이 약하거나 부모가 가난한 후배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장면을 지켜보면서 신앙만 억제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적인 폭력성의 ‘원죄’에 대한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됐다고 한다. 19세기 말의 일반학교의 경우 약육강식을 찬양·장려하는 사회진화론의 영향으로 아이들 사이의 힘에 의한 ‘질서 잡히기’가 ‘생존투쟁’의 하나로 간주되어 필연적이며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폭력을 당한 아들에게 권투 학습을 열심히 권해 결국 주먹이 강한 ‘적대자’를 잘 때려주게 하는 ‘현명한 아빠’는 그 시대 유럽 문학의 하나의 주인공 유형이었다. 즉 사회는 학교 폭력의 근절을 시도하기는커녕 그 현상을 이용해서 힘과 담력을 연마하기를 권했다.

‘어둠의 거리’이용하는 우익정객들

주먹다짐으로 폭력의 희생자에서 폭력의 주체로의 자신의 ‘변신’을 꾀하지 못하는 아이는, 공공연하게 ‘낙오자’, ‘부적자’(不適者)로 낙인찍혔다. ‘주먹이 강한 아이’의 폭력에 의한 ‘지위 획득’을 노래한 당시 유럽 사회에서 전쟁과 식민지 침략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였는가? 미국·서구에서 학교 폭력현상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과 사회 차원에서의 근절 노력이 본격화한 것이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라는 사실은 과연 우연인가? 물론 미국·서구에서의 학교 폭력근절 운동을 촉발시킨 것은 반전(反戰)의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민주화를 지향하는 진보진영이 학교에서의 폭력적인 ‘위계질서’가 민주·평등의 이상과 얼마나 서로 맞지 않고 어긋나는지를 절감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몇십 년 전 만해도 피해자를 멸시하고 가해능력을 가진 학생을 거의 ‘이상형’처럼 취급하던 유럽·미국 사회가 뒤늦게나마 약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실을 내민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의 다른 민주화 정책처럼, 학교 폭력근절 이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호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계급사회의 불평등과 정의 부재가 가장 아프게 느껴지는 유럽 대도시의 빈민가에서는, ‘정글의 생존의 법칙’이 지금도 몇십 년 전처럼 그 효력을 유지한다.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작고 복지정책이 가장 철저한 노르웨이만 해도 그렇다. ‘미시적인 차별’로 불릴 만한 사회의 괄시와 인정 부족에 시달리는 이민자들이 밀집하여 사는 오슬로 변두리 일부 동네는 청소년들의 갱 폭력 때문에 한밤중에 외출을 삼가야 한다. 본토인들이 살던 몇십 년 전의 빈민가의 똑같은 풍토는 당연시하면서도 이민자 동네들의 아동폭력의 만연을 반(反)이민 선전의 근거로 삼는 우익정객들의 현재의 추태를 지켜보면 쓴웃음을 금할 길 없다.

그러나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일반학교들도, 그동안의 대책에도 폭력수준의 점차적인 증가와 폭력수법의 악질화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의 철저한 도입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첨예화한 영국에서는 “여러 신화 중에서 bullying(폭력·집단따돌림)이 없는 학교가 있다는 말은 가장 비현실적이다”는 말이 교육계의 상식으로 통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여러 여론 조사에 따르면 70∼75%의 학생들이 폭력이나 따돌림을 한 번이나 가끔 당한데다가 약 20∼25%가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 1년에 10∼12명의 학생들이 폭력·따돌림으로 인한 자살(bullycide)을 감행한다는 것은, 이 끔찍한 현상과 관련되는 통계 중에서 가장 마음 아픈 숫자다. 계급적 불평등이 덜 심한 노르웨이에서는, 폭력피해 유경험자는 약 45∼50%, 지속적인 피해자는 약 15∼17%로 추산된다. 중세적인 고문을 방불케 하는 영국식 폭력에 비해, 놀리기·상징적 인격 모독(침뱉기 등) 중심의 노르웨이의 교내 따돌림형식이 덜 악질적이긴 하지만, 따돌림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최근에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수년 동안 손가락질과 놀림을 당해온 어린 학생의 상흔이 치유되겠는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상담원으로…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학교 폭력의 추방에 성공했다고 할 수 없지만, 몇십 년 동안의 대책 실시 과정에서 쌓인 경험에서 참고할 만한 요소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대책들이 전체적 피해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은 아니지만 몇 사람이라도 폭력의 지옥에서 구제해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첫째는 피해자의 개인적인 비극을 사회 전체의 아픔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는 교육부나 아동 옴부즈맨으로 보낸 피해자의 피해 진술들을 자주 주요 신문에서 그대로 실어준다. 멸시, 짓밟힘, 욕설 지옥으로부터의 그 절규들은, 교사·학부모의 주의를 폭력문제로 돌리기도 하고, 교내 자치기관인 학생협회의 토론사항이 되기도 한다. 학교의 세 주체인 교사·학부모·학생이 본교의 분위기에 대해 열띤 반성을 함께 하는 결과로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업무량에 짓눌린 담당교사들이 은밀한 폭력·소외가 자행됨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피해학생의 진술을 직접 듣는다고 해도 무관심과 요식적인 언행으로 일관되기가 드문 일이 아니다. 즉 폭력근절의 의지가 관철되려면 학교마다 폭력문제 전담 상담원을 두어야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의 일종으로 각급 학교의 폭력방지 전담요원으로 배치받는 것이 관례다.

셋째, 교장 등 학교의 행정 담당자들의 폭력문제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무관심의 벽을 허물기 위해 ‘폭력·따돌림 방지의무’를 법에 명시화해야 한다. 피해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직무유기’를 이유로 학교에 대한 소송을 손쉽게 할 수 있으면 학교 관계자의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법이나 각급 학교의 교칙이 노골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적 괴롭힘’까지도 폭력으로 인정하는 점이다. 이는 교육계뿐 아니라 전 사회의 장구한 과제인 ‘학교 폭력근절’을 완수할 수 없다고 해도, 상당수 피해학생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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