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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야구, 통하였느냐

야구 전문가·애호가 5인 뉴스 화약고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리더십 놓고 ‘불꽃 토론’ “선수들 눈빛이 달라졌다”vs“인간 개조 그만둘 때 됐다”
등록 2015-10-06 09:28 수정 2020-05-02 19:28
연합뉴스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과 한화 이글스는 2015년 프로야구의 히트상품이다. ‘야신’으로 불리던 김성근 감독의 움직임이 뉴스가 아닌 적은 없었지만 올 시즌 한화와 만나면서 ‘김성근 뉴스’는 한강 불꽃놀이축제의 불꽃처럼 폭발했다. 프로야구 최초의 김성근 감독 영입 추진 팬 집회에 이어, 시즌 전 지옥훈련과 시즌 중 투수 혹사 논란, 막판까지 이어진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은 뉴스에 화약을 쏟아붓는 꼴이었다. 최하위 팀을 외롭게 응원하다 8회에야 목청껏 ‘최강 한화’를 외쳐야 했던 팬들도 이제 큰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김성근 감독과 함께 뉴스의 중심이 됐다.
이번 레드 기획은 정규시즌 마감을 앞두고 올해 프로야구를 마지막까지 불태운 김성근 감독에 대한 논란을 짚었다. ‘야구 기자’로 오랫동안 김성근 감독을 지켜본 김양희 기자, 스포츠와 사회 사이를 날카롭게 오가는 정윤수 칼럼니스트, 스포츠심리학자인 정용철 서강대 교수, 골수 야구팬인 김완 디지털 팀장, 한겨레신문사 야구동아리 ‘야구하니’ 선수 이완 기자가 모였다.
1. 결국 가을야구 못하는 한화, 잘했나 못했나

이완  한화의 성적은 현재 7위다(10월1일 기준). 가을야구가 멀어 보이지만 2013년, 2014년 연거푸 꼴찌를 했던 것에 비교하면 순위가 올랐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윤수  놀라운 성적이다. 한화는 최근 5~6년간 한 번을 빼놓고 모두 최하위였는데, 그런 팀이 포스트시즌을 노렸다. 올해 5위를 하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못한다 할지라도 김성근 감독이 지난 시즌 뒤 부임한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잘한 것이다.

김완  아니다. 시즌 초에도 잘하면 5~6위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고, 자유계약선수(FA)를 공격적으로 영입한 것에 비하면 객관적 성적이 높은 게 아니다. 투수 송은범·배영수가 기대보다 부진해 어려운 가운데 팀을 끌고 온 감독의 리더십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이대로 끝난다면 뛰어난 성적을 낸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김양희  작년 한화 경기를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책이 많았다. 당연히 프로라면 잡을 수 있는 걸 놓쳐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올 시즌 가장 변별력 있게 좋아진 것이 수비 다. 특히, 3루수-유격수 보면 이제 프로처럼 잡는 모습이 보였고, 전반적으로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없어졌다. 물론, 한화가 좋아질거라는 예상은 있었다. FA의 문제라기 보단, 매해 드래프트 꼴찌라 유망주들을 많이 뽑아왔다. 그런데 그래도 선수층이 너무 엷다. FA는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자원이고, 특히 FA 투수는 성공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 야구기자로서 FA 3명 데려와서 성적이 좋아질거라는 예상은 그래서 하지 않았다. 다만, 송은범의 경우 워낙 김성근 감독 밑에서 잘 했었으니 기아 때보다는 잘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타고투저의 해였고. 투수들이 살아남지 못한 시즌이었던 예측불가능의 상황이었단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의 경우 시즌 전체를 예상하고 들어가는데 예측불가한 상황이 많았다. 정근우도 시즌 초반 다쳤고 김태균도 결장했었다. 시즌 내내 외국인 선수도 거의 없다시피 버텼다. 악조건 너무 많아서 김성근 감독의 계산이 핀트 어긋난 예측불허 상황으로 가버렸다. 작년까지 한화는 1점만 내기를 바라는 팀이었는데 이젠 1승이 아니라 시즌 막판 2~3경기 남은 상황에서 가을야구까지 바라는 상황이 왔다. 분명 김성근 효과는 있었다. 선수들 눈빛이 달라졌고, 이기고자하는 투지도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팀들은 한화랑 하면 쉬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팀이 꺼려하는 두려워하는 팀이 됐다. 이 변화는 김성근 감독 이후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김완  개인적으로 타이거즈 팬이다. 김성근 감독은 끔찍했다.(일동 웃음) 김성근의 SK는 정말 끔찍한 팀이었다. 그 시절에는 경기를 보는 내내 김성근 감독이 뭘 한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으며, 김성근 감독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시즌 초반 한화가 잘할 때, 김성근 감독이 어떻게든 이걸 끌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재가 많았다고 하지만, SK때도 이런 정도의 악재는 언제나 안고 하던 감독이었다. 올 시즌 한화는 8말 9월초에 연패하면서 무너졌다. 그 연패 국면에서 김성근 감독은 내가 알던 SK의 감독이 아니었다. 게임에 대한 지배력이 현저히 떨어졌단 느낌을 받았다. 김성근의 한화가 올 시즌 자체를 ‘붐업’시킨 것은 분명 맞지만, 성적 면에선 글쎄다. 9월초에 그 경기들, 그 반드시 잡아야하는 경기들에서 한화는 자꾸 무너졌다. 그건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이 그간 보여줬던 계산되는 야구, 뒤에서부터 끊어서 해석하는 능력, 선수 장악력 이런 것들이 오히려 많이 퇴색되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김성근 감독에게 기대하는 감독의 야구는 결정적인 순간에 해내는 것 아니었나. 그런 김성근 감독이 가지고 있는 극적인 힘이 올 시즌 안 나온게 아닌가 싶다.

정윤수  바로 그 시각에서 좀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한화 경기는 8~9회까지 계속 타이트한 경우가 많았다. 4,5월이나 8,9월 경기들이 다 포스트시즌 경기처럼 진행됐다. 몇 번의 실수들이 있었지만, 그런 경기들에서 역전승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그런 게임들도 많았다. 올 시즌 한화 야구에서 5~6점 지고 있어도 ‘이건 끝까지 가봐야 돼’라는 말이 많이 나왔었다. 대단한 거다. 김성근 감독은 ‘왜 5-6점 지고 있는데 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느냐, 이해할 수 없다’고 인터뷰에서 자주 말했었다. 아직 3이닝, 2이닝 남아있는데 5~6점 차이를 포기하는 건 프로가 아니란 얘기였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찬반양론 있겠지만 그래서 그 이른바 불문율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5~6점 이기고 있는데 번트대서 1점 내려고 하면 팬들이 야유한다. 그 이면은 ‘우린 질건데, 왜 그러느냐’가 깔려 있다. 김성근 야구는 그게 프로의 자세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김성근이 불러온 효과는 이 지점에서도 들여다봐야 한다.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 야구.

정용철  ‘스포츠와 스토리텔링’이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야구 팬덤 별로 특성이 있다. 학생들 중에 한화 팬들을 보면, 올 시즌 눈빛이 달라졌다. 작년까지는 소개하라고 하면 고개 떨구고 그랬는데, 올해는 아니었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예컨대, ‘이런 얘기하면 안 좋아하겠지만 1등 할 것 같고요’ 이렇게 시작한다. 김성근 감독 이전에 한화는 워낙 이기는 경기가 드물어 시즌 중에 이긴 경기 리플레이해서 보는 경우도 있는 그런 슬픔의 팀이었다.(웃음) 올해는 일단 여기선 벗어났다. 다만, 그게 엄청나게 놀랍거나하지는 않다. 김완 기자와 정윤수 교수의 중간쯤이다. 김양희 기자는 올 시즌이 예측 불가한 상황 많았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놀랍지도 실망스럽지도 않은 정도였다고 본다.

김양희  김성근의 야구에 있어, 올 시즌은 번트의 중요성이 희석된 해였다. 빅 이닝이 워낙 많아 짜내는 게 의미가 없던 시즌이었다. 그 와중에 한화가 삼성한테 10승 6패를 했는데, 이게 올 시즌 순위 판도 전체를 흔들었다. 삼성한테 상대 전적을 앞선건 한화가 유일하다. 삼성이 시즌 막판까지 1위 확정을 못하는 게 결국, 한화한테 막혀서다. 올 시즌 전체적인 혼돈의 순위를 한화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가 시즌 전체를 재밌게 만들었다.

이완  타이거즈도 삼성의 호구 중 하나였는데 올 시즌, 한화와 비등하게 삼성한테 잘했다.(8승 7패, 10월 4일 기준) 호구들이 많이 사라졌다.(웃음)

정윤수  김성근 감독은 늘 업다운이 있었다. 물론, 김응룡, 김인식 이런 다른 감독들도 업다운이 있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 폭이 놀라울 정도다. 유튜브에서 김성근 감독 다큐를 찾아보니까, 90년대부터 꾸준히 김성근 다큐가 제작되어 있더라.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에 있던 90년대, SK에서 3연속 우승할 때 그리고 고양 원더스 시절까지 김성근 감독은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묘하게도 다큐의 전반적인 프레임은 같았다. 김성근 감독의 모습은 나쁘게 말하면 코스프레이고, 좋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포지셔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자기 지도자원으로 활용한다. 김성근 감독은 굉장히 높은 반열에서 업다운을 해왔고, 이분이 다운되는 것 역시 다른 감독이 따라올 수 없는 높은 수준에서의 상대적 다운이었다. 최상층 레벨에서의 상대적 업다운이었고, 구단과 불화했던거지 인생이 추락했다거나 기회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김성근의 롤러코스터 인생은 축소된 최상위에서의 롤러코스터다. 그게 지나치게 부각되는 건 건강한건 아닐지 모른다. 다만, 김성근 감독과 직접 상관은 없겠지만, 프로야구 전체가 하나의 방법론이나 컨셉으로 모든 팀이 겨룰 순 없다. 지도자의 철학과 컨셉에 따라 대혼돈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 예측할 수 없는 변화구도 던져지고 이래야 규모도 커지고 재밌어진다. 관중들에게 동기 부여도 되고. 김성근 감독 이후 달라진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김완  그런데 그건, 김성근 감독에 대한 너무 초인적 해석이 될 수 있다. 작년 시즌 LG만해도 끊임없이 위닝 시리즈를 이어가는 신묘한 운영을 선보였다. 바닥에서 그렇게 차고 올라오는 그런 시즌을 갔을 때, 그걸 특정 누군가의 문제로 해석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직 김성근이라는 감독만이 그 팀의 모든 것을 오로지 김성근 감독의 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해석이 아닐 수 있다.

김양희 김성근 감독이 선수단 전체의 투지와 의지를 부추긴 것은 맞다. 왜 김성근만 찬양하느냐의 이면에는 지금처럼 왜 김성근만 공격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그 김성근을 향한 포화 속에선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화 선수들은 올 시즌 끝까지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했고, 막판까지 의지를 보여줬다. 이들의 투지가 아무것도 아니냐고 할 순 없다.

시범경기처럼 가볍게 첫 의견을 교환하려 했던 질문은 바로 열띤 토론으로 빠져들었다. 이야기는 선두 타자가 이끌지 않아도 선수 혹사, 특타 논란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올 시즌 한화 중간계투진은 공을 많이 던져 혹사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투수 권혁은 9월30일까지 2074개의 공을 던지며 109이닝을 책임졌다. 권혁이 맡은 109이닝은 한화 전체 투수진이 책임진 1254이닝의 8.7%에 이른다. 한화 투수진 가운데 마운드에 자주 오른 권혁·박정진·송창식(선발투수 겸직)이 맡은 이닝 수(314이닝)는 다른 팀 중간계투진의 이닝 수를 압도한다. 일부 팬들은 한화 투수진이 혹사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 한화 투수진은 혹사당한 것인가

이완 한화는 올 시즌 내내 혹사 논란이 화제였다. 팬들이 혹사 논란을 타당성이 있다고 받아들인 이유 중에는 김성근 감독이 여러 팀 거치는 동안, 그 팀 투수들이 객관적으로 다음 그 다음 시즌에 별로 좋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올 시즌 한화의 주축 투수들을 보면, 권혁이 대표적인데, 올시즌 2074개를 던졌다. 불펜투수인데도 거의 선발 투수 급 투구수이다.

김완  한화는 송은범과 배영수가 선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많이 던진 선발투수는 외국인 투수 미치 탈보트뿐이었다. 앞 선발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뒤 선수들에게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큰 틀에서 김성근 감독의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김성근이 아니라 야구신이 와도 누군가는 그렇게 던져야 했던 문제다.

정용철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뒤에는 그 팀에서 많이 던진 선수가 2~3년 내에 부상으로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김 감독이 선수들을 혹사시켰다는 논란과 직결된다.

김양희  김성근 감독이 2002년 LG 감독을 할 때의 투수 이동현이 자주 언급된다. 김 감독이 떠난 뒤 이동현은 수술을 3번이나 했다. 김성근은 자기 식으로 선수들을 관리하는데, 뒤에 온 감독들이 어설프게 관리는 안 하고 (많이 등판시킨) 김 감독을 따라하니 선수들이 망가졌다. 김 감독의 책임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완 기자

이완 기자

이완  김성근 감독의 성적은 2015년만을 보지만, 팬들은 2016년, 2017년 성적도 기대한다. 계속 지켜보는 팬의 입장에서 선수들이 한 해만 반짝 잘 던지고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LG나 SK에서는 이동현 등 당시 젊은 투수들이 많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한화 투수들은 30대가 많다. 다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김양희  왜 내년부터 던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나. 팬들이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단정할 필요가 없다. 감독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때 던지지 않았으면 한화는 이미 가을야구와 상관없이 놀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조절해서 쉬었으면 지금 더 잘 던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정이다. 일단 한화는 이겨야 했다. 그동안 패배주의가 너무 강했다. 1승이 아쉬운 팀에 ‘오늘 쉬게 하고 내일 이기자’는 말은 의미 없다.

김완  김성근 감독은 아마 올 시즌이 144경기이니까, 대략 1300~1400이닝 해야 한다면, 투수진을 어떻게 끌고 간다 뭐 이런 계산이 있었을 거다. 그 계산에는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송은범과 배영수가 있었을 것이고. 근데, 그게 틀어졌다. 송은범이 고작 65이닝, 배영수 98이닝 밖에 못 던졌다. 로저스는 75이닝을 던졌고. 선발이 다 무너진 상태서 뒤에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부하를 관리하지 못한 걸 큰 틀에선 김성근의 실패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혹사 논란의 인과 관계로 삼는 건 맞지 않는다. 삼성 안지만도 넥센 조상우도 많이 던졌다.

정용철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혹사는 당연한 일이다. 혹사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은 철두철미하게 선수를 관리했던 것이다. 다만 부딪히는 부분이 오늘만 이기면 되는 감독이니까 (오늘과 내일이) 충돌할 때 오늘로 가는 것이고, 이것이 반복되면 선수 처지에서는 혹사당하는 게 된다.

정윤수  다른 팀에 그런 혹사는 없었나. 이전이나 이후에는 없었나. 쓸 때 쓰고 버리면 안 되지만 어느 감독도 선수를 자신을 위한 소모품으로 여기고 쓰고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지도하다보면 선수가 정해진 지점보다 더 상회하는 능력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때 중요한 것은 선수 내면에서 그것에 만족하며 따라와야 하는데 한화가 그러했을까.

김양희  권혁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던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자료: 한국야구위원회(KBO, 2015년 9월30일 기준)

자료: 한국야구위원회(KBO, 2015년 9월30일 기준)

3. 선수 훈련 방식은 전근대적인가

이완  혹사 논란과 함께 김성근 감독이 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특타(특별타격훈련)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경기 중에 실책을 하면 경기 뒤에 남아 펑고(공 받는 수비 훈련)를 하거나, 부진한 타자들은 어김없이 지목돼 특타를 했다. 그다음 경기에 안타를 치면 이를 ‘특타 효과’라고 했다. 마치 시험 성적이 부진하면 야간 자율학습을 더 시키거나 체벌을 해서 각성시키는 것과 뭐가 다른지 우려된다.

정용철  이 지점을 김성근 감독이 지금 왜 안 먹히느냐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뭔가 시대랑 잘 안 맞는 부분이다. 선수들이 계속 변하고 야구도 진화한다. 그런데 김성근 야구는 예전 일본야구에 머물러 있다. 일본 야구는 이런 것이다. 서강대가 일본 대학팀이랑 야구를 한 적이 있는데, 19대0이었는데 일본 선수들이 ‘스퀴즈’를 시도했다. 김성근 야구의 원류는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다. 성과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 있어서 자신 몫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하는 것을 신처럼 받아들이면서 하면 선수로서 깊은 만족감을 얻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김양희  김성근 야구의 원류를 흔히들 일본야구라고 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일본에 있었고, 이후 쭉 한국에 있었다. 김성근 야구에서 벌에 의한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수많은 특타와 펑고를 거친 SK 선수들은 야구를 할 줄 안다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김성근 감독은 설렁설렁 하는 것을 싫어한다. 열심히 훈련하면서 야구를 깨닫게 한다.

정용철 교수

정용철 교수

정용철  한화의 야구를 보면, 믿었던 선수가 실책을 하면 그 무게가 다른 팀보다 훨씬 크다. 경기를 하다보면, 한번 실수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는데 그거에 어떻게 반응을 보이냐가 리더의 중요한 태도이다. 그 실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실수한 이가 받는 응징을 지침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서 김성근 감독 야구의 핵심은 단기 효과를 창출하는 벌로 유지되는 것이다. 징벌은 단기 효과를 일으키고,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수의 의지나 의욕과 동기화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현대 스포츠에선 줄어가는 상황이다. 기계적 반복훈련으로 기량을 높이는 게 가능하냐의 문제가 있다. 몸에 익게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몸에 붙을 수 있다. 나는 그게 내면이 빠진 기계로서의 동작이라 생각한다. (특타 등) 벌을 주는 방식으로 선수를 컨트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윤수  자료를 찾다가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김성근 감독이 90년대 삼성하고 경기를 하는데 이길 줄 알았는데, 9회말 졌다. 그랬더니 특정 선수를 찍어 지목한다. 누구누구 남아서 치고 와라. 그 당시 카메라는 물론, 머리 수그리는 선수들의 모습과 감독의 카리스마를 대비해 멋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벌이다. 올 시즌만 해도 경기 중 실수 한 선수를 바로 교체하는 건, 류중일 감독도 말했지만 분명 징벌이다.

김양희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올 시즌 한화는 진짜 짠했다. 선수 교체나 혹사 모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결국, 결과다. 그때 그 선수를 안 썼으면 지금 한화는 놀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쉬었으면 지금 잘 던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가정이다. 한화는 이겨야 되는 팀이었다. 김성근 감독 본인이 그걸 가장 잘 알았다.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지면 잠 못 자고 정말 이기고 싶어 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매 시점 본인이 갖고 있는 최선의 방법 뽑아내려고 엄청 생각한다. 김성근 감독은 매 경기 끝을 보려하고, 흔히들 하는 얘기로 오늘만 산다.

정윤수  시즌 막판이 되면 삐끗해서 놓친 한 두 경기들이 정말 귀해진다. 그 지점에서 김성근 감독에 관한 2가지 얘기를 해보고 싶다. 우선, 지휘자 없이도 음악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다들 프로들이니, ‘시작’하고 하면 될까. 어떤 지휘자가 어느 템포로 끌어가느냐에 따라 음악이 되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야구에 10명 안팎의 감독들이 있지만, 감독이 선수와 한명 한명과 한 경기에 대해 주도면밀한 철학을 가지고 이기고 지냐를 치열하게 찾는 경우를 보는 건 점점 어려워 졌다. 예컨대, 김성근 감독이 선수를 교체하면 그 선수가 뭔가를 기가 막히게 해낸다. 그런 장면들이 모두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 흐름과 선수의 특성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한 결과들을 보는 것이다. 김성근 야구에는 그런 강한 임팩트의 지도 철학이 굉장히 많았다. 아무 감독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용철  그 핵심이 앞서 얘기한 기계적 반복훈련이다. 결국, 몸에 익어지면 하게 한다는 것인데 계속 반복 훈련을 하면 확실히 몸에는 붙지만 이게 내면이 빠진 기계로서의 작동 원리와 같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김완  한국축구는 왜 문전에 약하고 골을 못 넣느냐와 비슷하다고 본다. 매일 수천 번씩 차는데 정작 시합에 가면 못 넣는다. 기계적 반복 훈련이란 것이 매번 옳은 게 아니다. 과거 SK의 경우, 최정 정근우 김강민 이런 선수들이 다 어렸다. 고양 원더스의 경우 선수들 특성상 강한 훈련 자체에 모두가 기술적으로 정서적으로 동화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강했다. 예컨대, 고양 원더스에선 ‘감독님이 보고 있다’는 티셔츠가 제일 많이 팔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한화에서는 정근우, 김태균, 이용규 이런 레벨의 선수들이 특타를 하는 게 화제가 됐고 논란이 됐다.

정윤수  어젯밤 밤새 고민했는데 해답이 없다.(웃음) 김성근 감독 인터뷰를 보면 선수를 강하게 조련하는 양상은 굉장히 유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담준론 학술적 근거까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력을 강화하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등의 말은 굉장히 20세기적이다. 야박하게 말하면, 헌신적으로 쏟아 붓는 능력 있는 선생의 과욕에 의해 아이들의 정신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할까. 이런 지도자를 받드는 것과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포츠는 사회와는 다른 독특한 영역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김완 <한겨레21> 디지털 팀장, 김양희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이완 <한겨레21> 기자,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정용철 서강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10월2일 서울 마포구 미디어카페 후에 모여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웠던 화제인 김성근 한화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김완 <한겨레21> 디지털 팀장, 김양희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이완 <한겨레21> 기자,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정용철 서강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10월2일 서울 마포구 미디어카페 후에 모여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웠던 화제인 김성근 한화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4. 김성근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이완  그렇다면 김성근은 어떤 사람이라고 봐야할까. 데이터 신봉자이면서, 인간에게서 모든 걸 뽑아내려는 훈육 방식의 신봉자이기도 한데.

정윤수  김성근의 지도력은 확실히 20세기적이다. 근데 혼란은 이게 21세기에도 통하고 있다는데서 나온다. 나쁜 의미에서만 통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김성근 외의 다른 지도방식은 프로라는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나아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스포츠는 굉장히 독특한 영역이다. 선수와 지도자와 관계를 사회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맞지도 않고 반대한다. 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의 관계가 특수하다는 점을 전제하고 보더라도,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이 나누는 대화는 성인들이 나눌만한 대화 수준이 아니다. 차라리 80년대 공포 외인구단 수준 대화에 더 가깝다.

김양희  2000년부터 김성근 감독을 봐왔다. 당시, 한 신문에 관전평을 쓰셨는데 기록을 정말 깨알같이 한다. 매 상황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공 하나의 실수까지 보는 야구관이다. 김성근 감독이 다시 오기 전, 몇 년 간 야구는 천편일률적이었다. 김성근 감독을 20세기 야구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 야구를 계속 못 이겨왔다는 점을 봐야한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와 지도는 바뀌지 않는다. 그건 불통이나 퇴행이라기보다는 그 특수한 상황과 그 하나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그의 고유함이다. 김성근 감독은 아직도 야구를 모른다고 한다. 아직 배운다고도 한다.

정용철  한 길을 가는 것 좋고, 그걸 지키는 것도 좋다. 그런데 지금 수준은 너무 가서 도그마처럼 갇히는 수준에 가지 않았나 싶다. 김성근 감독이 훌륭한 시절 있었고, 통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게 전체 스포츠가 가야할 방향은 아니다. 과거의 것이란 비판에도 김성근 감독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유연했기 때문이다. 매일 배우고 있는 사람이란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 조차 신화화되고 있는 지금, 본인도 본인에 갇히고 있단 생각도 든다. 예컨대, 혹사 논란이 있던 권혁이 올 시즌 행복했던 이유는 자신을 불러주고 쓰임을 받아서였다. 전형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혹사당하는 만족감이다. 선수로서 야구를 제대로 많이 알아간다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 느낄 수 있는데 하나만 얘기하고 있지 않나 싶다.

김완 팀장

김완 팀장

김완  그 대목에서 김성근 감독을 변호하자면, 이런 건 있을 거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뛸 때는 시합 전에 상대팀 분석지가 나오고, 상대팀 패스방향 등 데이터로 경기에 임할 사항을 정리해 준다. 선수들이 그걸 보고 감독과 미팅에서 전술을 논한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 상대적으로 그냥 열심히 하라는 수준이란 거다. 한국 선수들이 지도자에게 갖는 근본적 불신은 바로 그 실력에 있다. 커리어 굉장히 좋은 감독이 하는 말이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김성근 감독의 차별화는 거기에 있을 거다. 보여 주는 실력에 대한 근본적 믿음 같은 것. 김성근 이전의 한화 감독님은 선수 이름도 제대로 모르던 분이었다. (웃음)

김양희  김성근 감독은 고전적 주전 멤버들보단 20대 초중반한테 잘 먹힌다. 감독님이 자주하는 말이 과거는 흘러간 물이라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한테 야구는 뭐냐고 물으면 물이라고 한다. 결국 물은 흘러가고 선수들도 과거 이랬던건 다 이미 흘러 간 거고. 그 원칙 하에서 동일한 기회의 제공이 김성근 감독의 운영이다. 열심히 하면 감독이 봐 준다는 믿음, 이름있는 선수가 아닌 실력있는 선수들 쓰는 운영이 핵심이다. 김성근 감독은 시즌 중에도 선수들을 전반적으로 본다. 무명의 선수들 입장에선 아버지인거다. 김성근 감독의 마인드 역시 ‘얘들은 내가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줘야 돼’이다.

이완  김성근은 누구인가와 관련해 감독으로서의 공을 주로 얘기했다, 그런데 실패한 적도 있지 않나

김양희  삼성 때는 철저히 실패했다.

정윤수  삼성 시절은 완전 망했던 때다. 선수들이 감독위에 있던 면도 있었고 그 당시 삼성구단 전체가 야구단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느슨하기도 했다. 우승 못한 최고의 팀이었는데, 그룹에선 그 정도면 충분히 홍보되고 뭐 그 정도면 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때 프런트와 불화하는 감독이 됐다. 김성근 감독이 회고하기로 훈련 한참 하고 있는데, 코치들이 사장님 오신다고 다 거기로 가버린다는 거다. 코치들이 사장 영전하러 가는 이런 구단문화에서 뭔가를 해보려했으나 실패했다. SK시절에도 비슷했다. 사장이 감독실에 와서 감독한테 큰소리를 막 지르는데 코치들이 가만 듣고 있고, 선수들은 벽에다 듣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정용철  김성근의 흥망은 결국, 실력이다. 이 사람이 지도하면 실력이 는다는 게 있으니까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고, 그걸 건드리면 김성근 감독이 못하는 거다. 리더십으로 보면, 인간개조론인데, 무서운 얘기지만 선수 실력 키우는데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있는 사람이다.

자료: 한국야구위원회(KBO, 2015년 9월30일 기준)

자료: 한국야구위원회(KBO, 2015년 9월30일 기준)

5. 아버지 같은 감독, 김성근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완 선수들에게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고 했는데, 시즌 막판에 발생한 임의탈퇴 논란은 어떤가?

김양희  선수를 버렸다고 보기엔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한화가 시즌을 너무 풀로 채워서 운영했다. 보유선수 65명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몇 자리 비워놨어야 하는데, 시즌 중에 한 선수라도 더 보겠다고 다 넣어버린 게 문제였다. 그래서 막판에 유동적으로 못 움직이게 됐다. 시즌 중에 많이 방출했다고도 하는데 다른 구단도 다 그렇다. 유독, 김성근이 했기 때문에 더 비판이 있는 것 같다.

이완  근본으로 돌아가 김성근 리더십에 열광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정윤수 칼럼니스트

정윤수 칼럼니스트

정윤수  고민스런 대목이다. 만약 21세기 지도자론을 쓴다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스포츠적으로도 지향되어야할 지도자론이 있을 것이다. 간단히 얘기하면, 탈근대적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지나친 집념화나 인간개조를 기본으로 하는 수직계열화는 파시즘적인 방식이다. 지도자를 화신처럼 받드는 20세기와 결별해야 한다는 것도 기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독특한 영역이라고 전제해줘야 한다. 김성근의 선수 장악력은 애정을 기본으로 하고, 물에 물탄 듯 가는 일반적인 지도자에 비해 몰입력이 엄청나다. 사회 일반에 적용해선 곤란하겠지만, 인간이 개조될 수 있다는 믿음도 확고하다. 박정희식이다, 파시즘적이다고까지 말할 순 없겠지만 그런 유형의 지도자가 싫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간이 개조될 수 있고 특별한 목적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삶으로부터 결별하기 위해 사회적인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분명 문제적 인물이다. 입시교육이나 경쟁사회를 연대와 나눔의 사회로 가자는 최근의 흐름은 인간개조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스포츠에선 이런 리더십이 통한다. 선수들한테 물어보면 희미한 목적 지향을 갖는 감독보단 나를 끌어주고 바꿔주는 감독이 좋다고 한다. 유보적으로 평가, 판단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스포츠에는 사회적 정서가 투영되는데, 김성근 감독의 이 대목이 수많은 잉여들로 하여금 김성근에게 뭔가를 투영하게 한다. 수많은 잉여들이 불러주길 기다린다. 불러주면 기꺼이 개조될 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양희  나도 열심히 하면 누가 발탁해줄 거야, 꼭 간택해줄거야 이런 믿음이다. 실제 사회에선 사라진 개천에서 용 나오게 하는 리더십 말이다.

김완  김성근에 대한 대중적 환호는 철저히 주군론이다. 모두 주군이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적 정서에서 김성근이 빛난다. 주군은 나에게만 완벽한 현인이면 된다. 옳고 그름의 대상도 아니다. 김성근은 고유한 카리스마 방법론을 토대로 완벽한 주군의 모습으로 군림한다. 대표적 사례는 최정이다. 수비가 안 된다고 프런트가 판단했는데 김성근 감독은 최정을 어쨌든 만들었다. 최정 역시 김성근 감독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인다. 김광현도 마찬가지고, 박경완도 그렇다. 한화 올 때는 철저히 메시아였다. 국내 스포츠 역사상 팬들의 시위를 통해 영입된 첫 감독이 아닌가. 한화 팬덤은 조용한 곳이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이 온 이후 무협지가 됐다. .

김양희  한화팬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올 시즌 메르스 여파에도 최다 관중을 모은 건 한화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KBO 같은 곳에서는 김성근 이슈에 모든 게 묻힌다고 부정적으로 볼 정도다. 김성근 관련 기사가 그렇게 쏟아지는 이유 역시 김성근이란 말만 들어가면 클릭수가 보장되니까 그랬다.

정윤수  KBO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대중의 열망을 못 읽은 건 분명하다. 한화가 선전하던 5월도 그렇고 이후에도 모든 경기 화제 지표에서 한화가 압도적이었다. 팬덤에는 늘 사회적 분위기가 투여되어 있다. 80년대 한 감독의 팬덤을 보면, 이런 장면들이 있다. 선수들은 훈련하고 감독은 노려본다. 훈련하는 선수한테 “야, 이리와” 소리치면 와서 퍽 때린다. 불패의 투지가 강조되고 오늘도 그들은 뛴다 이런 식이다. 그 정서가 오늘날 김성근에게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력있는 강한 지도자를 기다리는 대중의 열망이 가혹한 의미에서의 파시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열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미생의 사회에서 완생으로 갈 수 있다면, 자발적으로 내가 알아서 기겠다는 열망이 김성근에게서 희미한 파시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김완  김성근 신드롬이 이렇게까지 온 이유는 그러나 겹쳐있다. 핵심적 시기는 고양원더스 시절이다. SK에서 나와 야인으로 고양원더스를 갔다. 회자되고 있는 김성근 어록은 그 3년 동안 거의 나온 것이다. 그리고 제일 약체인 한화를 맡았다. SK시절의 김성근을 기억하는 사람과 고양 원더스에서 탈락자들을 보듬는 김성근이 겹쳐있다. 근대적인 개조론자의 이미지와 장르 최고의 장인이 어른의 풍모를 보이는 것이 결합되어 지금의 김성근이 만들어졌다.

정용철  주군론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 역시 잉여들도 전근대적으로 ‘하면 된다’ 이렇게 접근 하는게 위험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게 확장 되서, ‘여기서 되니까 사회에서 될 것 같다’는 대중의 왜곡으로 나타나는 건 더 위험하다. 히틀러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야구장이 위험할 수 있는 건 전 국민들이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거다. 그게 파시즘의 전조다. 인간개조라는 게 별거 아니다. 삼청교육대는 ‘나는 개다’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님을 인간임을 부정하는데서 시작하는 거다.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인 면을 담고 있고, 성공 신화랑 맞물려서 무협지 수준의 인식으로 회귀하고 있다.

정윤수  김성근 감독이 고양원더스 시절, 3년간 청와대와 기업 특강을 많이 다녔다. 핵심은 스포츠에서 할 수 있으니 기업, 사회에서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때 언론이 개입을 했어야 했다. 스포츠와 사회를 직접 오버랩하는 건 아니라고 짚어줬어야 한다. 김성근의 방식은 스포츠에서 가능한거고 사회에 기계적으로 하면 안 되고 위험하다는 전제가 사회적으로 인식되었어야 한다. 김성근 리더십이 이렇게까지 사회적 파급을 갖게 된 것은 미디어의 재현 방식 문제가 분명 있다. 스포츠 영화들의 내러티브를 보면, 헌신적인 리더가 낙오자들을 모으고 인간적으로 사랑하며 정을 나누고 끝내 어떻게 된다는 굉장히 빈약한 내러티브 뿐이다. 스포츠 내 수많은 갈등들과 다양성들이 지도자가 선수를 개조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스스로를 거기에 넣게 된다. 강한 카리스마 가진 지도자가 섬세하게 나를 다져주면 그게 감동이 되고, 성취가 되는 것처럼. 이런 미디어적 재현방식을 사회에 쉽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용철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류가 어느 지점에서 존경을 넘어 숭배로 넘어갔던 것은 확실히 우려스런 상황이었다. 강상중 교수 표현을 빌자면 귀 기울이되 물들지 말아야 하는데 김성근 감독에게 물들고 있다. 김성근 식 지도법이나 관계 설정을 기업과 사회에 그대로 투여하는 것은 성과로 모든 것을 얘기하는 스포츠의 방식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는 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스포츠는 스포츠만의 내러티브가 있는데 이걸 간과하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화의 올 시즌 성적만으로 김성근을 논하는 것 역시 성과만 놓고 따지는 자본적인 방식이다.

김성근 감독이 일군 기록은 화려하다. 그는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2007년·2008년·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투수 혹사와 특타는 논란이 될지언정 그가 이룬 성적 앞에서 그가 지도 방식을 바꿔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올해 김 감독에 대한 논란이 거센 것은 어쩌면 한화가 기대만큼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5년 프로야구는 예측 불가능한 경기가 많았다. 신생 팀으로 젊고 패기만만했던 2000년대 SK와 패배의식이 많았던 2010년대 한화를 놓고 동일하게 성적을 비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가 다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한국 야구는 계속 김성근 야구를 따라갈 것이다. 6. 2016년 한화는 어떤 야구를 보여줄까

이완  그렇다면, 김성근의 야구는 무엇이고 2016년 한화는 어떤 야구를 보여줄까?

김양희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물’이다. 감독님한테 ‘야구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물이라고 한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선수들의 과거 성적은 이미 다 흘러간 것이다. 야구는 다시 제로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윤수  김성근 감독 스스로 김성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자유로운 해석을 못 찾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인간 개조’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인간은 개조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1970∼80년대 리더십이다. 이젠 개조 안 해도 된다고 말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김완 김성근의 올해 야구는 특유의 질식할 것 같은 야구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아니었다’이다. 김 감독이 엄청난 신드롬을 몰고 왔지만 SK시절 같은 야구는 아니었다. 라인업은 나쁘지 않다. 그래서 내년 성적이 기대된다.

정용철  김성근 감독은 원래 이기는 야구였는데, 고양 원더스를 거치며 기르는 야구가 됐고 다시 이기는 감독으로 와야 하는데 거기 멈춰 있는 것 같다. 야구는 축구와 달리 홈으로 들어오는 서사가 있다. 김성근 감독이 3루를 돌아 아름답게 홈으로 돌아오면 좋겠는데…. 김 감독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성공 신드롬으로 남지 않고 영원히 그라운드의 이방인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김성근의 야구는 ‘올해 3루에서 (양쪽에서 치여) 협살당하는 중’이라고 하겠다.

김양희  김성근은 장인이다. 야구를 쉽게 말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올 시즌 한화의 성적은 재평가가 분명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서 중요한 건 너무 김성근 감독이 조명을 받으면서 한화 선수들은 조명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투지와 노력도 있다. 2015년 한화를 김 감독에게만 맞춰 이들의 노고를 폄하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리 김완 기자·이완 기자·김선식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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