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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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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하나님으로 장사하는 가짜뉴스

기자가 가짜뉴스 카톡 채팅방 31개에서 16일간 참여해보니
등록 2018-09-22 08:37 수정 2020-05-02 19:29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가짜뉴스의 주소비층이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가짜뉴스의 주소비층이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국 경제는 아작났다” “소름 끼치는 남북 비밀 정상회담의 비밀” “남북 정상회담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인가”.

지난 9월19일, 남북 정상 사이에 역사적인 평양공동선언이 이뤄진 직후 가짜뉴스 카카오톡방(카톡방)들은 당혹과 충격으로 부르르 떨었다. 처음엔 분노에 찬 개인들의 소박한 성토가 많았지만 곧 “북에 다 퍼주려고 한다”거나 “공산주의자 김정은을 옹호하는 거짓 위정자의 실체가 곧 드러날 것” 같은 전통적 반공 신념에 호소하는 주장이 상소문처럼 쏟아졌다.

며칠 지나자 현기증이 일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자 가짜뉴스 카톡방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귀인’들이 등장했다. 자유한국당 논평, 김진태·김문수 등 몇몇 정치인의 극우적인 말들과 그들이 좋아하는 인터넷 매체 기사가 나오자 “드디어 진짜 기사가 나왔다”며 퍼나르는 글들로 카톡방이 도배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31개 모든 방이 ‘300+’(읽지 않은 메시지가 300개 이상 있다는 표시)로 채워졌다. 하루가 지나자 “ 5000만 국민과 동맹국 미국을 속이고 김정은에게 공산혁명 전권을 위임한 문재인 이적세력 방북 귀환 규탄 긴급집회” 글이 거의 모든 가짜뉴스 채팅방에 공지사항으로 떴다.

취재팀은 지난 8월31일, 가짜뉴스 생산 집단 내부자들과 연구자들의 자문과 초청으로 카카오톡에 개설된 가짜뉴스를 전하는 채팅방 31개에 가입했다. 인원 수는 채팅방마다 달랐지만 인원이 많은 방은 700~800명에 이르렀다. 채팅방들은 밤낮이 없었다. 늘 분주했다. 한 가짜뉴스 연구자는 “꼭 알람을 꺼둬야 한다. 처음엔 재밌을지 모르지만 계속 보다보면 우울증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사실로 존재하는 것을 모조리 불신하는 집단을 날마다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일었다. 세상 전체에 대한 거대한 불신 속에 사는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가짜뉴스 카톡방에선 예상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가 사분오열된 상황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에 대해 한쪽에선 “홍준표는 복귀하라. 국민의 명령이다”라 하고, 다른 한쪽에선 “홍준표가 가짜 태극기인 것을 모르고 집중적으로 지지할 때, 태극기 국민들은 절벽으로 떨어지고 촛불은 문재인과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었던 것”이라고 힐난했다. 홍준표를 둘러싼 견해가 충돌할 때마다 서로 격한 ‘썰전’이 오갔다. ‘태극기 부대’의 상징인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은 끊임없이 그를 ‘위장 우파’라고 비난했다. 카톡방에선 조 대표가 “최순실 특별법”(국정농단 특별검사 임명 법률)에 찬성표를 던졌고, “5/9 위헌대선”(19대 대선)에 출마하는 등 “국가반역죄를 자행한 자”라는 성토 글이 수십 번 반복해 돌았다.

가짜뉴스 압도적 1위 단어 ‘하나님’
취재팀은 가짜뉴스 카카오톡 채팅방 31개에 들어가 8월31일부터 9월15일까지 올라온 글을 전부 내려받아 분석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들을 조사해 이를 시각화했다.

취재팀은 가짜뉴스 카카오톡 채팅방 31개에 들어가 8월31일부터 9월15일까지 올라온 글을 전부 내려받아 분석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들을 조사해 이를 시각화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보수언론에 대한 신뢰도도 낮았다는 것이다. “ 는 한국당 당권 유력 주자 보도에서 김진태라는 유력 주자를 의도적으로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다” 등과 같은 글이 계속 돌았다. 가짜뉴스 카톡방에는 지지 기반에 대한 인식, 특정 언론에 대한 호불호 같은 일관된 사고방식이 없었고 모든 문제를 단편적 조각만 강조해 음모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부정적 단어의 빈도가 높았다. 마귀(7464회), 죄(7389회), 지옥(5262회), 거짓(4257회), 멸망(3423회) 등의 단어가 정세와 여야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높은 빈도로 연결되며 등장했다. 기독교인이 많다보니 성경 인용도 많았는데, 특히 자주 나온 성경은 요한복음(3498회), 야고보서(2878회)였다.

이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4만2천 회)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가짜뉴스 카톡방에서 압도적 1위로 나온 단어다. 그 뒤를 잇는 단어가 미국(1만8409회)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은 하나님 다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존재였다. 3위로 많이 나온 단어는 문재인(1만6445회)이었는데 당연히 압도적 비난 일색이었다. 행여 문재인에 대한 칭찬 글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짓밟는 모습이 반복됐는데, 간혹 나오는 문재인 칭찬이 더 큰 저주 놀이를 하기 위한 미끼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그 밖에 북한(1만1472회·5위), 신천지(1만1009회·6위), 김정은(7793회·12위) 등이 저주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됐다.

세상과 기성 정치인 전부, 그리고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을 불신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일베와 유튜브, 일부 팟캐스트 정보를 신뢰하고 있었다. 가짜뉴스 카톡방에선 유튜브 스타가 이미 주류 언론인이었다. 특히 이용희( 운영자), 김일선( 운영자), 한성주(《KSKTV》 운영자), 변희재( 운영자), 지만원( 운영자), 손상윤( 운영자) 등의 이름은 카톡방에 자주 등장했다.

가짜뉴스 카톡방에서만 신봉되는 뉴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부산 문현동 금도굴 사건’과 ‘남침 땅굴로 포위된 대한민국 수도 서울’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관련 내용이 있는 유튜브 채널 주소를 계속 공유하며 관련 링크를 반복적으로 퍼뜨렸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뉴스가 나오면 “속으면 안 된다. 문재인 금도굴은 아느냐”고 훈계하고 남북 화해 분위기에 대해서는 “땅굴은 알고 있느냐”고 힐난하는 식이었다.

유튜브 스타가 주류 언론인
가짜뉴스 채팅방 실제 사진.

가짜뉴스 채팅방 실제 사진.

이들 방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주기적이고 강렬한 소수자 혐오 정서였다. 성소수자, 무슬림 등 난민,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글들은 대체로 ‘교수·교회 성직자’에게 받았다며 유포되는 글이 많았다. 소수자 혐오를 복합적으로 엮어 말하는 것을 선호했다. 더 얼토당토 않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는데, 예컨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공산당+섹스=젠더 차별금지법’의 제목을 단 가짜뉴스가 공감 속에 퍼졌다. 난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무슬림을 들여와 개신교를 죽이는 동시에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을 늘려 오랫동안 통치하겠다는 뜻”이라고까지 비약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도입을 앞둔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는 “이단 확산을 꾀하는 개신교 약화 목적”이라며 “지금 사탄의 세력이 밀려오는데 주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라며 신앙에 호소했다.

이 와중에 한편에선 끊임없이 건강 관련 가짜뉴스를 유포했다. 카톡방에 들어온 사람이 주로 건강에 관심 많은 고령층이라는 점을 노린 듯하다. 아이디 ‘간강과부 다판다 닷컴’은 “항암제는 맹독성으로 암을 고칠 수 없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했다. 일본 오카야마 의과대학병원에서 1년간 사망한 암환자의 진료 기록을 조사했더니 80% 이상이 암 아닌 항암제·방사선 등 ‘암치료’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근거로 따라붙었다.

혼란 틈타 가짜뉴스로 장사하기도

이렇게 고령층의 불안을 증폭하는 가짜뉴스는 결국 장삿속으로 연결된다. 아이디 ‘허동옥’은 “206가지의 씨앗에서 추출한 영양물질인 ○○를 먹으면 손상된 장기가 재생된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인 ‘밴드’ 가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가짜뉴스 카톡방은 사실성과 연관성(맥락)은 거세된 채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날것의 언어로 부딪치는 전쟁터였다. 이들에게 사실과 정보는 특정 정치의 입장에 끼워맞추기 위해 존재했고, 대화는 오로지 정치적 주장을 위해 기능할 뿐이었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던 이들이 정권 교체 뒤 일상에서 정치적 대화의 공간을 잃어버렸고, 소셜미디어로 모여 더 응집되고 결속되는 상황이다”라며 “이들에게 가짜뉴스는 정치적 대화를 할 소재면 충분할 뿐 사실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적 대화’ 자체라는 지적이다. 이 전쟁은 언제 끝날까. 끝나긴 할까. 2주간 관찰한 결과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변지민 기자, 김완·박준용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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