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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책임은 누가 대행해줍니까?

배달대행업계 커졌지만 오토바이 사고 나도 치료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10대 배달대행 아르바이트
등록 2016-08-18 05:30 수정 2020-05-02 19:28

도로는 차갑게 얼어 있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살을 벨 듯 날카로워진 공기 사이로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다. 매끄럽고 단단한 도로 위로 ㄱ(22)씨가 무너졌다. 그의 옆으로 육중한 오토바이와 함께 음식이 쏟아졌다.
2013년 11월26일, 당시 고등학생이던 ㄱ씨는 ‘배달대행 아르바이트’ 중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부딪쳤다. 보행자는 팔과 다리에 골절상을 입는 수준이었지만, ㄱ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폐가 손상되고, 쇄골이 부러졌다. 척추도 다쳤다. 수술에 이어 2년 넘는 치료·요양 기간을 거쳤지만, 결국 두 발로 일어설 수 없었다. 평생을 휠체어에 의존해야 할 수도 있는 치명적 부상이었다.
한 달 임금 35만원, 입원·치료비 7천만원

서울 동작구의 한 교차로에서 배달대행 노동자가 정지선을 넘어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 배달 횟수만큼 수익이 늘어나는 이들에게 위험은 일상이 됐다. 임윤 교육연수생

서울 동작구의 한 교차로에서 배달대행 노동자가 정지선을 넘어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 배달 횟수만큼 수익이 늘어나는 이들에게 위험은 일상이 됐다. 임윤 교육연수생

ㄱ씨를 더욱 괴롭힌 것은 7천만원에 이르는 수술·입원·치료비였다. 퇴원 뒤에도, 욕창이나 소변 장애가 발생해 통원치료를 받는 데 한 달 평균 70만원 정도 들었다. ㄱ씨는 “배달대행일을 하면서 번 돈이 한 달 평균 35만원에 불과했는데, 한순간의 사고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이 치료비로 나왔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배달대행 업체가 딴죽을 걸었다. 근로복지공단은 ㄱ씨의 사고가 배달 도중 일어난 점, ㄱ씨의 동료들이 업무 중에 일어난 사고란 것을 증언해준 점 등을 고려해 산재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받을 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배달대행 업체 사장 ㄴ씨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배달대행은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대행 업무를 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챙기는 ‘특수고용근로자’이기 때문에 업체는 보험급여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요양급여는 업무상 부상이나 질병을 당했을 때 진찰·수술·간호·간병·보호기 등의 비용을 지급받는 산업재해 보험금의 일종이다. 휴업급여는 치료 등을 위해 일하지 못한 기간에 급여 일부를 산재보험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특히 ㄱ씨처럼 별도의 소득이 없는 청소년 노동자에게는 그나마 치료비를 보전받을 최소한의 보호 장치다.

2015년 10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차행전)는 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ㄱ씨가 ‘개인사업자 알바’라는 업체 쪽의 논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배달대행 노동자 ㄱ씨는 업주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배달 업무를 수행했지만, 가맹점(음식점)의 배달 요청 수용 여부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었다. ㄱ씨의 수입은 오로지 배달한 건수로만 산정되고 업주로부터 고정적 급여를 받지 않았다. 또 ㄱ씨는 업주와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게 판결의 취지였다.

판결에 불복한 근로복지공단은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지만, ㄱ씨는 이 모든 비극 앞에 그저 황망하다. 그 비극은 ㄱ씨와 같은 배달대행 노동자 누구에게나 갑자기 닥쳐올 수 있다.

기존 배달 서비스는 음식점이 고용한 직원이 담당했다. 중국음식점 사장에게 월급을 받는 배달부가 자장면 등을 배달하는 방식이다. 배달원에게 사고·산재가 일어나면 고용주인 중국음식점 사장에게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2010년 들어 ‘배달통’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음식배달 주문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했다. 덩달아 음식점을 상대로 배달 업무를 중개하는 ‘배달대행 업체’가 급성장했다. 이들 배달대행 업체는 배달원을 모집했는데, 이렇게 하여 ㄱ씨와 같은 ‘특수고용 배달대행’이 확산됐다. 음식점은 배달대행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개별 배달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이용한다.

이렇듯 특수고용 배달대행 노동자는 배달대행 업체와 음식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사업자로 취급받는다. 사업자라는 명칭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확실한 신분으로 저임금, 고위험 업무에 내몰리고 있다.

배달직원 사고 위험 부담에서 해방된 점주

특수고용 배달대행은 ‘직원 같지만 직원이 아닌’ 애매모호한 형태를 띤다. 먼저, 배달대행 노동자가 휴대전화로 음식점의 ‘콜’(배달 요청)을 받은 뒤 해당 음식점에 찾아간다. 이들은 음식점에서 고객이 내기로 한 음식값보다 2천~4천원 정도 싸게 음식을 구입한다. 이후 고객에게 음식을 전달하고 원래 가격대로 돈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2천~4천원 정도의 차액이 배달대행 노동자의 수익이다.

많이 배달할수록 손에 쥐는 돈도 많아진다. 배달대행 노동자들이 거칠게 길거리를 내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하루 1만원 정도를 내면 대행업체에서 오토바이도 빌릴 수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실시한 ‘서울지역 배달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달대행업계의 평균 일당은 7만7452원이다. 패스트푸드점과 일반음식점에 비해 1천~2천원이 적다.

배달대행 노동자가 사고 위험 비용을 온전히 감수하는 대신, 비용 절감에 따른 수익은 배달대행 업체와 배달대행 노동자를 활용하는 업주가 나눠 갖는다. 배달대행 업체는 배달대행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다. 이들은 제휴 음식점으로부터 기본 이용 횟수에 따라 월 10만~35만원의 선불 요금을 받고, 필요할 경우 초과 요금을 받는 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음식점 업주는 배달대행 노동자의 4대 보험 가입 의무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 배달직원을 별도로 채용하고 근태를 관리하는 부담, 보험료와 식대를 포함한 직원 월급, 오토바이 관리비 등의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배달직원에게 사고가 났을 때, 이와 관련한 모든 책임에서 면제된다.

이는 사고 위험 부담을 고스란히 ‘배달대행 개인사업자’에게 넘기고 배달대행 업체와 점주들은 이익만 챙기는 형태다. 이 점은 배달대행 업체의 홍보물에도 잘 드러난다.

한 배달대행 업체의 홍보물을 보면, ‘직원 채용시 최저 230만원이 들지만, 배달대행을 이용했을 때 최저 52만5천원이면 가능하다’고 적었다. 음식점 업주 입장에선 월 180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홍보물에선 또 ‘사고로 인한 오토바이 수리비, 직원 퇴직금·보험료 등 추가 비용 발생 없이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다’거나 ‘배달직원의 사고 위험에서 해방돼 업주가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된다’ 등의 내용을 강조한다.

상당수 음식점들은 배달직원을 고용한 상태에서 배달대행 노동자를 추가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거리가 멀어 위험한 배달은 배달대행 노동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ㄱ씨는 말했다. 주문이 몰리는 날이면, 가까운 거리는 직접 고용한 배달직원에게 맡기고, 먼 거리는 대행노동자를 부른다. 거리가 멀어지면, 사고 위험도 커진다. ㄱ씨는 서울 구의동에서 장안동까지 배달해본 적도 있다. 그 거리는 7.4km였다.




배달대행  업체가  홍보하는  ‘배달대행  이용시  장점’


1. 사고 발생시에도 추가 비용(오토바이 수리비, 직원 보험료 등) 없이 업주의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다.
2. 직원의 잦은 지각, 무단 결근, 기타 속썩임 없이 운영할 수 있다.
3. 부족한 배달직원 모집 압박감에서 해방된다.
4.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5. 배달직원 사고 위험 부담에서 해방돼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사고 후 오토바이 수리비, 일해서 갚으라는 대행업체

배달대행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가장 손쉽게 구하는 일자리로 꼽힌다. 특별한 자격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운전면허만 있으면 된다. 자신의 오토바이가 있을 필요도 없다. 대행업체는 저렴한 비용으로 오토바이를 빌려준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이 위험천만한 오토바이 배달대행에 몰려들고, 그들이 겪는 사고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일이 반복된다.

올해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근로보호센터가 수집한 ‘배달대행 청소년 피해 사례’를 보면 이같은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ㄷ군은 배달대행 업체에 사용료를 내는 대가로 오토바이를 빌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했지만,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오토바이 책임보험 가입 의무는 ㄷ군에게 있었다. ㄷ군이 오토바이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하자 업체 사장이 대신 납부했다. 업체 사장은 ㄷ군에게 오토바이 수리비를 일해서 갚도록 강제했다. ㄷ군은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청소년 배달대행 노동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 형태로 일하게 할 방안을 사회가 마련해야 한다.”
-김수영 변호사

ㄹ군은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관리업체에서는 오토바이에 따른 책임보험 처리만 했다. ㄹ군은 안면광대 골절을 포함한 중상으로 장애 발생 우려가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배달대행업의 경우, 개인사업자여서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ㅁ군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ㅁ군은 자신이 4대 보험에 가입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월급에서 공제되는 금액이 생각보다 많았다. 배달대행 업체는 ㅁ군에게 근로자로 고용한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ㅁ군을 개인사업자로 등록해버렸다. 이로 인해 월급에서 소득세 항목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지난해 안전보건공단이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음식서비스업에서 발생한 청소년 알바생 산재 현황’을 보면, 2010년 이후 5년간 음식점 배달 알바 청소년 2554명이 사고를 당했다. 이 가운데 53명은 목숨을 잃었다. 한 해 평균 511명꼴로 사고를 당하고 10.6명이 사망한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최근 배달 앱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배달 알바 청소년의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정부가 요식업계 산재보험 가입 여부를 비롯해 청소년 배달 알바 사고의 예방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3750명 중 53명
ㄱ씨는 배달대행일을 하다 척추를 다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ㄱ씨의 뒷모습. 임윤 교육연수생

ㄱ씨는 배달대행일을 하다 척추를 다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ㄱ씨의 뒷모습. 임윤 교육연수생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낸 자료를 보면, 2015년 현재 배달대행 등의 일을 하는 15~19살 특수고용직 청소년은 375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산재보험에 가입된 경우는 53명에 불과했다. 사업자가 산재보험에 들어준 경우가 37명이고, 청소년 노동자가 직접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한 경우가 16명이었다.

우 의원은 “청소년 특수고용직들 가운데 대다수인 98%가 산재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능력만큼 벌 수 있다’는 식의 홍보물만 보고 배달대행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사고를 당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신종 직업군 가운데 하나인 배달대행업에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청소년을 포함한 배달대행 노동자를 제도권 안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서울시가 실시한 ‘배달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보기술(IT)이 접목된 신종 산업인 배달대행업은 앞으로 시장이 더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이라도 배달대행 노동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이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 특히 업주들이 값싸고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어린 청소년이 대형 사고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ㄱ씨의 2심 재판 공동대리인인 김수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배달대행일을 찾는 청소년을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 형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청소년들이 배달대행을 통해 생전 처음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경험을 하는 만큼, 사회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산재보험 같은 장치를 의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올바른 노동의 대가와 권한, 책임에 대해 청소년과 그 업주들에게 두루 알리기 위해서라도 청소년 배달대행 노동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특정 업체에 소속된 근로자 형태로 일하게 할 방안을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산재보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어요.”

사고 이후 ㄱ씨는 2년이라는 시간을 병상에서 보냈다. 퇴원 뒤 다시 6개월이 지났지만, ㄱ씨의 삶은 사고 직후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던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이 2심 재판에서 승소해야만 그나마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ㄱ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입을 뗐다. “학교에선 임금체불, 부당대우를 당하면 어디로 신고하는지 정도만 알려줬어요. 왜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산재보험이 뭔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오토바이를 탔다는 건 후회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산재보험을 몰랐다는 게 후회돼요. 만약 알았다면 그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요즘 ㄱ씨의 바깥 나들이는 일주일에 두 번 가는 통원치료가 전부다. 퇴원 후 새 출발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요양급여부터 받아야 한다. 주저앉기보단 일어서는 것을 선택했지만, 아직 ㄱ씨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많지 않다.

임윤 교육연수생 imyun12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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