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세월호의 인천~제주 불법 증선과 무리한 증개축을 눈감아줬던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제1081호 특집 ‘4월16일 이전 침몰하고 있었다’). 세월호의 증개축 이후 선박검사를 부실하게 시행한 한국선급 선박검사원이 한국선급의 도움으로 무죄를 받았음을 밝혀냈다(제1083호 특집 ‘부실 선박검사원 무죄 이끈 ‘뻔뻔한’ 변호’).
이번호에선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를 앞두고 청해진해운과 ‘제주도 관광’을 떠났던 해양경찰이 뇌물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부분 무죄를 받게 된 과정을 추적했다. 해경은 검찰의 분리 기소와 항소 포기로 엄한 형벌을 피하는 ‘행운’을 누렸다. _편집자
인천해양경찰서 장아무개(57) 해상안전과장은 2013년 2월15일 오후 6시께 인천항에서 출항하는 청해진해운의 오하마나호에 탔다. 같은 과 경찰관 이아무개(44) 경사 등과 함께 세월호 시험운항과 운항관리규정에 대한 현장 점검을 하기 위해서였다. 신규 선박에 대한 시험운항은 인천해경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었다.
세월호의 시험운항은 2월18일 오후 6시께로 예정됐다. 해경은 출장을 4박5일간으로 계획했다. 세월호와 같은 항로(인천~제주)로 운항하는 오하마나호의 시험운항은 2시간 동안만 진행했다. 4박5일은 이례적으로 긴 여정이었다. 청해진해운 송아무개(55) 당시 해무팀장은 세월호의 시험운항에 긴 시간을 들인 이유를 이렇게 짐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장 과장이 먼저 시험운항을 제안했을 때 접대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2월18일 오후 4시 제주도에서 출발해 2월19일 오전 9시께 인천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험운항 일정이 정해졌다면, 해경은 비행기를 이용해 제주도에 와서 세월호를 타고 시험운항 일정을 소화하면 되는 것이다. 먼저 시험운항을 제안하고, 오하마나호를 타고 내려가겠다는데 무슨 말인지 왜 모르겠나. 다만 선사 입장에서 ‘을’의 지휘에 있으니 그냥 따를 수밖에 없었다.”(2014년 5월31일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청해진해운 차량으로 제주 관광지 누빈 해경장 과장은 ‘갑’ 중에서도 ‘갑’이었다. 그는 인천항에 출항하는 모든 선박의 해상 안전지도 업무를 총괄했다.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실 등을 지도·감독하는 것도 장 과장의 몫이었다. 그도 스스로를 “선사 업주들의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청해진해운은 장 과장 등 해경의 제주 출장비를 전부 부담했다. 왕복 뱃삯과 식비, 술값 등을 다 냈다. 이틀간의 숙박비 12만원만 해경이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2박3일 동안은 ‘제주도 관광’에 나섰다. 해경은 청해진해운의 차량으로 해안도로를 달리며 성산일출봉, 하멜표류선박, 제주해녀박물관 등 관광지를 누볐다. 관광지 입장료 역시 청해진해운이 지불했다. 감사원 조사에서 이 경사는 제주 관광은 “장 과장의 지시”였다고 진술했다.
감사원 출장 목적과 관계없는 제주 관광을 실시한 것은 공무원으로서 성실의 의무 태만이 아닌가.이 경사 상급자인 장 과장이 관광을 실시하자고 지시해 하급자로서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감사원 상급자나 이해관계자에게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나.
이 경사 장 과장이 제주 출장 일정과 운항관리규정 심사 일정을 청해진해운과 협의해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제주 출장 중에 나는 우리 일행의 식대를 지불하려고 했지만 장 과장이 식사 비용이나 교통편 등은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2014년 5월21일 감사원 조사)
감사원 해상안전과장이라서 청해진해운이 향응을 제공한 것인가.
장 과장 내가 교통편, 식대 등 향응을 제공해주도록 요청한 사실은 없다. 공무원으로서 받지 않았어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감사원 제주도 특산물 등을 선물로 받았나.
장 과장 옥돔선물세트를 받았다.
(2014년 6월16일 감사원 조사) 해상안전과장, ‘여객선 친목모임’과 돈독한 관계
검찰은 장 과장과 이 경사를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장 과장은 법정에서 청해진해운의 접대가 “의례적인 것으로 뇌물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주 출장도 “해양경찰로서 안전운항 항로 점검을 한 것”이며 세월호 시험운항도 “먼저 제안한 것은 청해진해운”이라고 주장했다. “공무원으로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깊이 반성”하지만 뇌물죄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장 과장에게 접대는 처음이 아니었다. 해운사 대표나 임원들과 돈독한 친분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인천 지역의 8개 정기 여객선 업체의 친목모임인 ‘인천연안여객선협의회’(인선회) 구성원들과 잘 어울렸다. 2014년 1월 동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옮길 때까지 10차례에 걸쳐 264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장 과장은 “사교적·의례적” 모임이라고 주장했지만 선사 임직원의 증언은 달랐다. “여객선 운항과 관련한 모든 지시는 해상안전과로부터 받기 때문에 선사 입장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 과장에게 눈도장을 찍고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접대한 것이다.” “장 과장을 제외한 인천 여객사 대표 내지 임원들이 돌아가며 계산했다.” 때로는 장 과장이 다른 사람과 만나 술자리를 가진 뒤 여객사 대표를 불러 돈 계산을 하도록 한 정황도 포착됐다.
장 과장은 사촌동생의 취업을 부탁하기도 했다. 청해진해운 홍아무개 해무팀 대리의 2014년 6월9일 검찰 진술조서다. “인천해경 해상안전과 직원이 전화해 ‘장 과장님의 이종사촌 동생이 이혼하고 혼자 산다. 일용직을 전전하는데 동생이 안정된 일을 했으면 한다. 배를 태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나’라고 (문의)했다.” 홍 대리가 확인해보니 윗선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청탁이었다. 2013년 5월 오하마나호의 조기원으로 취업시켰는데 사촌동생은 나흘 만에 그만뒀다.
장 과장은 해운사에 ‘보답’했다. 2013년 2월 고속페리호가 인천 옹진군 이작도 선착장으로 들어오다 선수 램프(차량 출입문)가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꺾였다. 그대로 운항하면 파도의 저항 면적이 넓어져 램프가 떨어져나갈 위험이 있었다. 또 배 안으로 물이 들어가 배가 침수돼 전복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해경은 사고 장소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선장과 선사 직원들이 대기 명령을 어기고 몰래 운항하다가 적발됐다. 해경 직원이 “벌금형으로 처벌하겠다”고 보고하자 장 과장은 “없던 일로 하라”고 지시했다. “위험한 사고가 발생한 것도 아니니 말로 주의를 주겠다.” 선사 직원들은 그냥 돌아갔다.
2013년 8월에는 삼목~장봉 항로를 운항하는 여객선의 우현 러더(오른쪽 방향타)가 고장났다. 이를 확인한 해경은 러더를 수리할 때까지 운항을 정지하라고 명령했다. 인선회 구성원인 해운사 대표가 “양쪽 엔진을 이용해 배를 조정할 테니 운항을 재개하게 해달라”고 장 과장에게 부탁했다. 장 과장은 이를 수락했다. 해경 직원들이 “중요한 결함이라 운항 정지 사유”라고 거듭 말했지만 무시했다. 선박의 좌우 방향을 잡아주는 두 개의 방향타 중 하나가 없는데도 장 과장은 여객선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방향타 고장나도 출항 허용해2013년 2월19일 장 과장 등이 청해진해운의 제주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청해진해운에서 제출받은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을 검토해 변경을 요구하거나 심사증명서 발급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심사위원들은 “선장의 직접 조선 구간” 등 12개 항목을 보완·변경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적재 가능 차량 대수가 잘못 기재된 것을 심사위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국선급에서 승인받은 복원성 자료를 보면, 세월호의 적재 가능 화물은 차량 89대, 컨테이너 54개였다. 하지만 운항관리규정에는 차량 148대, 컨테이너 247개로 부풀려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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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은 심사위원이 지적한 선장 직접 조선 구간 등도 변경하지 않은 ‘수정안’을 해경에 보내왔다. 장 과장과 함께 제주 출장을 다녀온 이 경사는 수정안이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반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월25일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증명서 발급을 기안했고 장 과장을 거쳐 인천해경 서장이 최종 결재했다. 이날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증명서가 발급됐다.
검찰은 제주 출장을 뇌물죄로, 운항관리규정 부실 발급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했다. 1심은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지만 항소심은 무죄로 뒤집었다. 항소심은 2월16~18일 제주 관광에만 뇌물죄를 적용했다. 2월15일 오하마나호, 2월18일 세월호 승선과 식사 제공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출장비는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라서 해경이 직접 이익을 챙기지 않았고 △오하마나호 승선 인원이 꽉 차지 않아 무임 승선해도 청해진해운의 손실이 아니라고 봤다. 또 해경이 세월호로부터 제공받은 식사와 술은 그 액수로 볼 때 “사회 상규에 반하는 정도”라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도 무죄로 판단했다. △심사위원들이 잘못된 적재 가능 화물을 스스로 바로잡아야 했고 △상사를 속여서라도 해경이 청해진해운의 편의를 봐주려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장 과장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이 경사는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선고유예란 유죄가 인정되지만 처벌 필요성이 미약하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2년이 지나면 면소된다. 하지만 장 과장과 이 경사는 상고해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특히 장 과장은 엄벌을 면하는 2가지 ‘행운’을 누렸다. 첫째, 검찰이 청해진해운 뇌물 사건(제주 관광)과 인선회 뇌물 사건을 분리해 기소했다. 두 사건이 병합돼 기소됐다면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었지만, 청해진해운 사건은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인선회 사건은 인천지법에서 진행됐다. 장 과장은 인선회 사건으로 구속됐지만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14년 8월 풀려났다. 같은 해 12월 청해진해운 사건에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2015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깎였다.
[%%IMAGE3%%]엄벌을 면하는 행운
둘째, 검찰은 인선회 사건에서 항소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항소심은 형량을 더 올릴 수 없게 됐다. 항소심에서 장 과장은 범행을 인정하던 1심 태도를 바꿔 인선회의 향응은 “사교적·의례적”이라서 뇌물수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형량(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도 너무 높아 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양형 기준을 보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었다. 항소심도 “1심이 선고한 형벌은 다소 가볍다고 보”인다고 밝혔지만,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1심 형량은 그대로 유지됐다. 장 과장은 해임 처분을 받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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