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월호 침몰 원인: 알 수 없음”

검경이 참사 직후 발표한 첫 번째 사고 원인 ‘조타 실수’, 선체 인양해 정밀 조사해야만 사고 원인 밝혀져
등록 2015-05-27 20:27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은 선체가 온전히 인양돼 정밀 조사를 마칠 때까지는 물음표다. 2014년 4월22일 세월호 ‘쌍둥이배’로 불리는 오하마나호가 인천여객터미널 부두에 정박해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은 참사 한 달 만에 발표됐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014년 5월15일 선원 15명을 기소하며 △세월호 선원의 조타 실수 △청해진해운 임직원의 화물 과적 △우련통운의 부실 고박(고정)에 따른 화물 이동을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전문가 자문단도 그랬다. 합동수사본부로부터 사고 원인 분석을 의뢰받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는 2014년 8월과 10월에 중간·최종 보고서(‘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 분석’)를 제출하며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가 12월에 내놓은 ‘여객선 세월호 전복사고 특별조사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15년 4월 세월호 선원과 청해진해운 임직원의 재판을 맡은 광주고법(재판장 서경환)은 “사고 원인을 모른다”고 판결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정밀 조사를 해야만 사고 원인이 밝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체 인양과 사고 원인 조사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사고 발생 1년이 지났어도 그날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은 세월호 재판·수사 기록에서 드러난 사고 원인 규명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2014년 4월16일 ‘그날의 진실’ 네 번째 이야기다.

낚싯바늘 모양 선회, 도대체 무슨 일이 ①선원은 조타기를 잘못 돌렸나

침몰 사고 발생 다음날인 4월17일, 선원을 조사한 해양경찰은 사고 원인을 ‘무리한 항로 변경’이라고 결론 내렸다. 인천~제주로 향하는 선박의 방향 전환 장소인 전남 진도 맹골수도에서 선원들이 조타기를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서 배가 좌현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는 것이다. 당시 해경 관계자는 “세월호가 110도 정도의 큰 각도로 방향타를 틀면서 적재된 컨테이너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순간적으로 배의 중심을 잃은 게 침몰 사고의 주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항해한 흔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다. 해양수산부와 해경이 수집한 AIS 항적을 보면, 4월16일 오전 8시45분 세월호는 선수 방향 135도에서 천천히 140도로 변침한다. 2분간 항로를 유지하던 배는 8시49분부터 갑자기 낚싯바늘 모양(알파벳 J 모양)으로 빠르게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그사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조타실에 있었던 3등 항해사 박아무개씨와 조타수 조아무개씨의 법정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상황은 이랬다.

맹골수도를 지나 병풍도 변침 구간이 가까이 오자 3등 항해사는 전방을 바라봤다. 바다는 잔잔하고 배는 없었다. 이곳에서 세월호는 135도에서 145도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하지만 무리한 증축으로 워낙 세월호의 복원성이 나빠진 상태라 항해사는 5도씩 끊어서 변침하기로 했다. 항해사가 “140도”라고 지시하자 조타수가 조타기를 돌리고 “140도”라고 복창했다. 8시48분 항해사가 두 번째 조타 명령을 내렸다. “145도.” 이때 조타수가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어, 어… 안 돼. 타가 안 돼요!” 뱃머리가 급속히 우선회하고 배가 왼쪽으로 순식간에 기우뚱 넘어갔다.




2014년 4월30일 합동수사본부 조아무개 질문조서 중에서



검사 140도 정침이 제대로 됐나.
조타수 140도를 넘어서 143도까지 선수가 돌아갔다. 타를 좌현 측 3도까지 사용했지만 선수는 145도까지 돌아갔다. 타각을 좌현 5도까지 사용했다.
검사 타를 왼쪽으로 사용했을 때 선수 방위 변화가 정지됐나?
조타수 스테디(정지)가 되지 않고 선수가 계속 우회두했다.

항해사가 “반대로! 반대로!”라고 외쳐댔다. 조타수는 좌현 5도로 잡았던 키를 10도 더 돌려서 좌현 15도로 잡았다. 그런데도 배는 오른쪽으로 자꾸 돌았다.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에 참여한 KRISO는 조타수가 말한 대로(우현 5도→0도→좌현 5도→ 좌현 15도) 시뮬레이션해봤다. 그러나 세월호의 실제 AIS 항적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에 대해 조타수는 조타기 고장을 주장했다. 우현으로 돌린 상태에서 조타기가 고장났고 그 뒤에는 핸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조타수가 실수로 대각도 조타(큰 각도로 핸들을 꺾는 일)를 했다”고 추정했다. 검찰이 추정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사고 지점에서 조타수는 항해사의 “145도”라는 변침 명령을 받았다. 타를 오른쪽으로 돌렸는데 예상보다 선수가 빨리 돌아갔다. 당황한 조타수가 왼쪽으로 돌리려는 순간, 항해사가 “반대로! 반대로!”라고 외친다. 엉겁결에 조타수는 좌현의 반대인 우현으로 조타기를 돌려 “우현 15도 이상 타각을 40초 이상 유지”한 것이다. KRISO 시뮬레이션 ‘우현 15도 40초 유지’와 세월호 항적이 그래서 엇비슷하다.

KRISO는 세월호와 비슷한 선박 모형을 만들어 다양한 조건에서 시뮬레이션했다. 조타 각도와 시간, 화물의 양, 고박(화물의 고정) 상태 등을 조금씩 바꾸어가며 ‘경우의 수’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대각도로 조타할수록, 화물이 많고 평형수(균형을 맞추기 위해 배 안에 넣는 바닷물)가 적을수록, 고박이 부실해 화물이 빨리 이동할수록 세월호 AIS 항적과 시뮬레이션 결과가 닮아갔다.

“조타기 작동에 대해 합리적 의심”
조타기 고장이나 프로펠러 오작동이 세월호 사고의 원인이라고 재판부는 단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고 원인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해 정밀히 조사해야만 비로소 사고 원인이 제대로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사고 원인 시나리오를 받아들였다. “조타수는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우현 변침을 시도하던 중 원하는 대로의 변침이 이뤄지지 않자 당황해 임의로 조타기를 우현 측으로 대각도로 돌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1심에 따르자면, 세월호 침몰의 주요 원인은 조타수에 있다.

지난 1월20일 세월호 선원들이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서경환)의 항소심 재판 피고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월20일 세월호 선원들이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서경환)의 항소심 재판 피고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2015년 4월 이를 뒤집었다. “조타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조타수의 과실과 상관없이 조타기 자체의 고장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첫째,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장 가능성이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전기신호에 따라 밸브를 열고 닫아 유량을 조절하는 조타 유압장치다. 조타기에서 타를 돌린다는 것은 이 밸브를 열고 닫아서 유압을 발생시켜 타판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노후한 선박의 경우 이 밸브에 오일 찌꺼기가 껴서 ‘스풀’(밸브 안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장치)이 고착될 수 있다. 그러면 밸브가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조타기 작동과 상관없이 최대 타각인 35도 전타(끝까지 조타기를 돌리는 일)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면 배는 낚싯바늘 모양으로 우선회한다. 재판부는 “세월호를 건조할 당시 우현 최대 타각 35도로 한 선회 시험이 사고 당시의 세월호 항적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현상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둘째, 프로펠러 오작동 가능성이다. 세월호는 프로펠러가 2개이고 조타기가 하나인 ‘2축 1타선’이다. 2축 1타선의 경우, 엔진 이상으로 좌현 쪽 프로펠러만 작동하고 우현 쪽 프로펠러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추진력 차이로 급격히 우회전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조타기 고장이나 프로펠러 오작동이 세월호 사고의 원인이라고 항소심 재판부는 단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고 원인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해 정밀히 조사해야만 비로소 사고 원인이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고 재판부는 밝혔다.

선원 진술 따라 복원력 오락가락 ② 화물 이동으로 전복됐나

또 다른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물의 이동 역시 불확실하다. 객관적 증빙자료 없이 선원의 진술에 따라 세월호 선체의 상태를 추정해 계산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검찰은 세월호가 출항할 때 화물은 2142.7t, 평형수 761.2t, 연료유 198.38t, 청수(승객 등이 쓰는 물) 150t을 적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에는 연료유 150.6t, 청수 259t으로 변경했다. 1등 항해사 강원식씨가 4월25일 경찰에서 했던 진술을 9월10일 검찰 진술에서 번복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4월 경찰 조사에서 청수 2번 탱크를 용량이 100t인 청수 2번 탱크와 착각해 최대 용량을 잘못 알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2014년 9월26일 청해진해운 1심 제11회 공판 내용 중에서



검사 청수의 양과 관련해 청수 2번 탱크의 최대 용량을 착각해 잘못 진술했다는데 맞나?
강원식 2번 탱크를 1번 탱크로 착각한 것 같다.
검사 1번 탱크는 100t이고 2번 탱크는 147t이라는 걸 나중에 확인했나.
강원식 그렇다.
검사 2014년 4월15일 오후 4시23분경 촬영된 사진을 보면, 당시 총 청수는 269t이었다. 이때부터 출항 전까지 저녁식사, 샤워 등으로 청수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강원식 10t 정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변호사 사고 지점까지는 얼마나 소모됐나.
강원식 최소한 40t 정도.

세월호 사고 당시 청수의 양이 달라지면서 선박의 복원력(기울었다가 평형으로 되돌아오는 힘)을 보여주는 GoM값이 변했다. GoM값이 클수록 선박의 복원성이 좋다는 뜻이다. 강원식씨가 경찰에서 최초로 진술한 청수의 양 등을 기초로 사고 당시 세월호 GoM값을 계산해보니 0.37m였다. KRISO 중간보고서는 이를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하지만 최종보고서는 9월 검찰 수사에서 강씨가 번복한 진술을 적용했다. 이때 GoM값은 0.59m였다. GoM값이 높아지면, 다시 말해 복원성이 좋으면 선박은 침몰하지 않는다. 선원이 방향타를 크게 돌리더라도 잠시 기우뚱했다가 똑바로 선다. 아니면 기운 상태로 멈춘다. 강씨가 번복한 진술에 따르자면, 세월호는 급속한 방향 전환에도 불구하고 침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화물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서 기운 쪽으로 쏟아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게중심(G)이 급격히 무너져 전복하고 만다. 세월호가 그런 경우라고 KRISO 최종보고서는 추정했다. “화물의 이동이 없는 경우에는 35도 전타를 하더라도 19.2도 정도의 초기 횡경사(기울어짐)가 발생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사각이 줄어들어 선박이 전복되지 않을 수 있었다.” 검찰이 대각도 조타와 더불어 화물의 이동을 세월호 사고 원인으로 꼽는 근거다.

검찰의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화물 고박을 맡은 우련통운 쪽은 검찰이 강원식씨의 진술을 고의로 번복시켰다고 의심한다. 화물 이동이 세월호의 전복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입증해 우련통운 쪽에 책임을 물으려 했다는 것이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우련통운 쪽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선원의 진술만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핵심 수치(GoM값)를 정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그 수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스웨덴, 333년 만에 밝혀진 진실

스웨덴 정부는 1628년 8월 침몰한 전함 바사호를 333년 만에 인양해 복원력 상실이 사고 원인이라는 걸 밝혀냈다. 유럽 최대의 전함이었던 바사호는 스톡홀름항을 출항한 지 30분 만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첫 출항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에 국왕 구스타브 아돌프 2세는 격분했다. 살아남은 선장 등이 법정에 줄줄이 끌려나왔지만 사고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1961년 4월 바사호가 인양됐고 진상이 드러났다. 평형수에 비해 중무장 무기를 너무 많이 실어 균형감을 잃은 게 문제였다. 해상을 제패하겠다는 국왕의 과욕이 부른 참사였던 것이다. 이 배는 스톡홀름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결국 세월호 인양 이후에야 침몰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인양 이후까지 활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24~25쪽 참조).

“후손이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침몰 원인을 (나중에) 규명하면 뭐라고 하겠나. 원인도 모르면서 관련자를 처벌하고 이로 인해 희생자는 제대로 추모하지 못한, 야만적인 2015년 대한민국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렵다. 세월호는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사고 원인은 더 두고 봐야 한다.” 지난 3월27일 세월호 선원의 항소심 재판에서 정대득 목포해양대 교수(항해학)가 증인으로 출석해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