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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특권’이 아니다

기획연재 국민과 난민사이 ④ 난민이 된 한국인들 사실상 ‘난민’이었던 식민지 시대의 경험으로 한국이 피해자들에게 공감하는 ‘전세계 약자들의 피난소’ 되길
등록 2013-10-24 06:38 수정 2020-05-02 19:27
스스로를 ‘반(半)난민’이라 규정하는 한국 국적의 사람이 있습니다. 재일조선인 3세인 서경식(62) 도쿄경제대 교수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무권리’ 상태를 강요받아온 재일조선인으로 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66) 발행인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해 20여 년간 고향땅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사회에서, 홍 발행인은 정치적 난민이자 이주노동자였습니다. ‘국민’ 바깥의 삶, 이방인으로 살았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선생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난민을 포함해 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또 어떤 사회의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가?”(질문 내용을 다른 색으로 바꿔주세요)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답변이 도착했습니다._편집자
정용일

정용일

우리 조선 민족은 일제로부터 식민지배를 당해 강제적으로 ‘일본 신민=국민’이 되었습니다. 물론 식민지 시대에는 같은 ‘일본 국민’이라곤 했지만 그 내부를 보면 ‘야마토 민족’을 정점으로 하는 가혹한 차별제도가 있었습니다. 즉, 조선 민족 구성원은 모두 식민지 시대에는 사실상의 ‘난민’이었습니다. 일제의 패망과 조선 민족 해방으로 일본 지배층은 조선인이 보유했던 일본 국적을 박탈했으며, 이어 일본에서 살아가던 재일조선인들은 ‘무국적자=난민’이 됐습니다. ‘국민’ 범주에서 추방당한 재일조선인들은 인권도 박탈당했습니다.

즉 ‘난민’이라는 존재는 우리 조선 민족의 ‘타자’가 아니었고, 우리 자신이 난민이었으며, 재일조선인은 지금도 계속 난민과 같은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는다”는 기본적 인권 원칙에 위배되는 조처였습니다만, 지금도 일본에서는 “인권은 국민에게만 보장된다”는 잘못된 해석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유엔 난민조약의 기본 원칙은 ‘내외인 평등’입니다. 즉 기본적 인권에서 ‘내국인=국민’과 ‘외국인’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인권은 평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식민지배와 세계전쟁을 겪은 인류가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손에 넣게 된 이념입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세계에선 아직 자국 중심주의가 위세를 떨치고 국민 또한 자기 권리를 마치 자국민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양 생각하고 외국인이나 난민을 차별하거나 배척하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런 경향이 점점 강해져 재일조선인 등 소수자들은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어떠한가요? 내가 한국에서 흔히 들었던 말 중에 ‘우리도 국민 대접을 해줘’라는 게 있습니다. '차별하지 마, 억압하지 마'라는 의미의 하소연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나로서는 ‘국민 대접’이 아니라 ‘인간 대접’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민’은 ‘특권’이 아닙니다. ‘국민’이든 아니든 ‘인간’은 평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 민족은 근대에 식민지배를 경험했습니다. 즉 우리 민족은 근대의 역사를 ‘피해자’나 ‘소수자’ 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지금도 무권리 상태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동포로서의 이해와 공감을 보낼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민족의 나라인 대한민국은 구미 제국이나 일본한테서 배워 국가주의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가장 열려 있는 나라’ ‘전세계 약자들의 피난소’ ‘국가주의를 넘어선 미래의 대안적 국가상을 보여줄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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