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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이라는 이름의 ‘승강기’

기획연재 국민과 난민사이 ③ 한국인의 조건 36개 비자마다 심사 요건, 체류 허용 기간, 사회적 처우 다 달라… 외국인 기본권 보장은 소외 국민 기본권 강화 낳을 것
등록 2013-10-18 05:04 수정 2020-05-02 19:27
한국 체류를 원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사증은 모두 36가지다. 체류 자격에 따라 사회적 처우는 다르다. 외국인의 체류 상황을 관리하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풍경.한겨레 류우종

한국 체류를 원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사증은 모두 36가지다. 체류 자격에 따라 사회적 처우는 다르다. 외국인의 체류 상황을 관리하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풍경.한겨레 류우종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자(사증). 그렇다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비자, 즉 ‘체류 자격’ 종류는 모두 몇 가지? 2013년 10월1일 현재, 모두 36개다.

비자마다 심사 요건, 체류 허용 기간, 사회적 처우가 다 다르다. 워낙 복잡해,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헷갈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체류 자격 종류 및 내용은 법무부가 관장하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정해진다. 국회의 통제 없이 행정부가 체류 자격을 만들고 없앨 수 있다.

복잡한 체류 자격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은, 부자이거나 엘리트일수록 더 좋은 조건의 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만큼, 외국 국적을 지닌 동포들에게 부여하는 체류 자격은 따로 있다. 그러나 ‘돈포’와 ‘똥포’ 사이에는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150만여 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48만여 명의 재중동포다. 재중동포 절반가량은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 한국에 체류한다. H-2 비자는 중국 조선족, 옛 소련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발급하며, 최장 4년10개월간 머물며 단순 노무 위주의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받는 체류 자격과 유사한 형태다. 이에 비해, 한국에 체류 중인 재미동포 4만5천여 명은 거의 모두 재외동포(F-4) 자격을 소지하고 있다. 체류 기간이 3년인 F-4 비자는 계속 연장이 가능하며, 영주 자격을 얻는 디딤돌이다. F-4 비자를 지닌 재중동포는 14만 명가량이다.

‘다문화’ 가면을 쓴 혈통 중심주의

난민들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비전문취업(E-9) 체류 자격)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한다. 더불어 결혼이주민처럼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가능성도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주민 그룹은, 모두 다른 체류 자격으로 분류된다. 사회적 처우나 지원 부처도 다 다르다.

2011년 법무부는 결혼이민(F-6) 체류 자격을 신설했다. 종전에는 난민인정자처럼 거주(F-2) 체류 자격을 받았다. 체류 자격이 변경됐지만 남편의 신원보증이 있어야 합법 체류가 가능한 점 등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정부의 시혜적 지원이 집중되고 사회보장 범위가 가장 넓은 쪽은 결혼이주민들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관할인 다문화가족지원법상 다문화 가족은 ‘날 때부터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등으로 구성된다. 날 때부터 한국인이 아닌 귀화 한국인이 국제결혼을 한 경우, 이러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난민·이주노동자 가정 역시 마찬가지다. ‘다문화’ 가면을 쓴 혈통 중심주의다. 가난한 이주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빠르게 체감한다. 여동생을 난민이 아닌, 결혼이주민으로 한국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난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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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경우, 사회보장 범위는 영주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에 비해 넓은 편이다(표 참조). 그러나 어디까지나 ‘법’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추적조사 결과 97명 중 16명은 의료보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실이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3년 9월24일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중 난민은 13명에 불과했다. 또 보건복지부에서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130만여 명 중 외국인은 2500여 명이었다. 기초생활수급권이 있는 외국인은 결혼이민자(10만7천여 명)·난민 등이다.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E-9 체류 자격을 지닌 이주노동자의 체류 기간이 10년 가까이 연장됐다. 최장 4년10개월을 일하면 일단 출국해야 한다. 그리고 3개월 뒤 재입국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숙련 인력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정주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반귀화 신청 요건이 되는 5년 이상 국내 ‘계속’ 체류 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최장 10년 동안 합법적으로 살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4대 보험 외 사회보장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난민 13명

우리나라 헌법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만 표현한다. 1994년 헌법재판소는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도 기본권의 주체라고 보았다. 2007년 헌재는 헌법상 기본권을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권적 기본권으로 구분하고, 후자의 권리는 국민에게만 해당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다만 생존에 필요한 노동과 인간 존엄성을 위한 노동 조건은 자유권이며, 외국인에게도 보장돼야 한다고 판시한다. 외국인에 대한 기본권은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 명확히 정의 내리기 어렵다. 각 법률과 시책을 살펴보면, 외국인이 적용 대상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출신의 한 난민은 한국살이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일을 하면 살아갈 수 있다. 오직 교육만이 삶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독립적·발전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교육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국경을 넘은 난민과, 국적만 있는 내부 난민은 이런 면에서 닮았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설치한 엘리베이터는, 휠체어에 탄 어르신과 유모차를 모는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었다. 비국민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는, 소외된 ‘국민’의 기본권 강화를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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