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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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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대학 꼭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마지막 강연자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진보적인 부모도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떠밀고 있어,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야”
등록 2010-04-15 02:22 수정 2020-05-02 19:26

제7회 인터뷰 특강의 마지막 날인 4월6일, 어린이 교양잡지 발행인인 김규항씨가 강연에 나섰다. 그는 “진보는 지금 존재하는 최악을 비판해 자신을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의 비전을 위해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은 경쟁 교육에 대한 매서운 비판과 날렵한 풍자로 채워졌다.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씨는 ‘내 아이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씨는 ‘내 아이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규항(이하 김) 한국인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교육 문제다.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 중에 위장 전입을 안 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아이 교육 때문에…”란 말만 나오면 다 봐준다. 엉뚱하지만, ‘한국 교육 문제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 문제가 아니라 대학입시 문제일 뿐이다.

교육이 무엇인가? 동물의 세계에서 교육은 ‘자기 새끼(종)’로 키우는 과정이다. 코끼리는 코끼리, 호랑이는 호랑이로 키운다. 그렇다면 한국 부모는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는가? 어떤 인격과 교양을 가진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고민하는 부모를 만난 지 오래다. 아이가 얼마짜리 인간이 될 것인가에만 ‘올인’하고 있다. 한우 등급을 매기듯 아이의 등급과 스펙을 매기는 게 대학입시다.

그렇다면 현재의 교육 문제는 ‘모두 이명박 때문’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민주적으로 치른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이것은 지난 5년간 한국인의 변화를 말해준다. 변화는 탐욕이 아닌 공포에서 왔다. 결정적인 것이 1997년 외환위기다. 갑작스런 실직과 부도로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내 새끼의 실패’에 공포를 갖게 됐다. 돈과 외형적 조건이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 욕망’이라기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정신병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조차 초등학생은 신나게 놀았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들이 1시간만 소재 파악이 안 돼도 난리가 난다. 이명박을 반대하는 부모는 많이 다른가?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내몰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애를 떠밀 뿐이다. 보수적인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아이가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란다. 결국 괴물의 속성을 갖게 된 우리가 이명박이라는 ‘괴물’을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함으로써 너무도 쉽게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편에 섰다고 착각한다. 정부 비판에만 열 올리는 사이, 이명박의 ‘시장교육’은 더 강화될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도 인텔리는 나와야 하니 일류대에 보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일류대에 들어가 진보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일류대는 자본의 논리를 철저하게 주입하기 때문이다. 진짜 엘리트를 원한다면, 주변 사람에게 존중받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면, ‘내 아이가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교육 문제가 바뀔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아이가 더 자유롭고 충만한 엘리트로 자라는 기본적 출발점이 된다. 그래도 불안한가? (청중 웃음) 아이를 키워보니, 사랑과 애정뿐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삶을 사는 아이들로 키워보자. 나도 여러분도 용기를 내자.

청중1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안 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진보 지식인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은 서민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자식만 빼내는 것’ 같다.

현재 대학 진학률이 90%다. 대학을 안 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장사꾼들이 대학을 많이 만들었다. 실용적 가치를 따져보면, 대학을 갔을 때 얻는 미래의 경제적 안정성이 5%밖에 안 된다. 연고대생 절반 이상이 특목고 출신 아닌가. 계산을 하면서 가능성을 보자. 상위 5%라는 비정상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예습·복습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부자들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학력을 끌어올려놔서 거기에 들어가려면 골병들 수밖에 없다. 일류대를 나와 삼성 연구원이 되는 것에 19년이라는 인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대안학교 논의에는 계급적 문제가 존재한다. 동네 학교도 보내기 빠듯한 사람이 학비가 한 달에 몇십만원인 대안학교를 보내겠나. 어느 정도 의식과 교양을 가진, 먹고살 만한 진보들의 선택이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정부 지원이 없는 것이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월급은 일반학교보다 적다. 정답은 없다. 대안을 계속 모색해야 한다.

청중2 교육 문제 이전에 아이를 낳아야 할지 고민이다.

내가 지금 20대로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면 답은 회의적일 것 같다. 한편으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면 반대쪽 사람들한테 ‘쪽수’로 밀리니 걱정스럽다. (청중 웃음)

청중3 고3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를 보며 자랐다. 요즘 친구들이 남자친구를 사귈 때 스펙을 따지는 걸 보고 놀란다. 잘못인 걸 알아도 바꾸지 못한다.

를 보고 자라 그런지 말을 잘한다. (청중 웃음) 평생 폼나게 살려면 스펙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은 아이들은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 질문한 학생이 그들 옆에서 스펙을 안 따진 ‘찌질한 연애’를 더 행복하고 풍성하게 보여줘라. 그럼 친구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청중4 고등학교 입시담당 교사다. 우리 학교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많다. 내가 경쟁교육을 조장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좋은 대학이라도 가서 가난을 벗길 바라게 된다.

선생님의 고심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서민 지역 학교도 그렇고, 공고와 같은 실업계고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교실 안에서만이라도 선생님이 아이들의 장점을 부각시켜 기죽어 살아온 아이가 ‘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면 그 경험으로 아이의 삶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박지숙 19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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