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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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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창의적 청춘? 전전두엽을 자극하세요


다섯 번째 강연자 정재승
“불안하고 불온하고 불쌍한 청춘들의 뇌”
등록 2011-04-21 02:50 수정 2020-05-02 19:26

봄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캠퍼스엔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땅에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났다. 생명 가득한 계절, 20대 시절을 ‘청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싱그럽고 열정이 넘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정재승 교수의 인터뷰 특강 ‘불안하고 불온하고 불쌍한 청춘들의 뇌’ 강연이 열린 4월14일 저녁은 활짝 핀 벚꽃이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쌀쌀했다. 중간고사를 앞둔 캠퍼스엔 알 수 없는 정적마저 감돌았다. 종잡을 수 없는 봄 날씨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불안하고 불온하고 불쌍하다”. 이런 고민하는 청춘들을 위해 정 교수는 자신이 보낸 청춘과 지금 젊은이들의 청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의 연이은 자살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사회를 맡은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카이스트의 현안에 대한 질문으로 입을 뗐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과학인재 육성 위한 근본적 고민 해야”

김용민(사회자): (카이스트 학생의 연이은 자살 사태와 관련해) 내부가 곪도록 교수들은 뭐하고 있었나. 언론에 보도된 ‘획기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정재승: 뼈아픈 지적이다. 미리 대처했어야 한다. 현재 카이스트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수립되었고 나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획기적인 대책이란 단순한 자살 예방이 아니라 21세기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의 도입 등 여러 아이디어가 있지만 아직 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진 상황은 아니다.

김용민: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징후가 있었나.

정재승: 상대평가가 시작된 뒤 징후라고 할 만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최근 3년 동안 성적에 항의하는 학생이 늘었다. 물론 이전에도 자신의 성적에 불만이라고 전자우편을 보내는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A학점을 받았는데, 왜 A+가 아니냐는. 그런데 요즘은 C를 받은 학생이 더 많이 전자우편을 보낸다. C학점 받으면 (징벌적)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출석 점수 역시 중요해지면서 예전에는 없던 현상도 보인다. 결석한 다음날 장문의 편지와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하는 것을 보고 경쟁에 따른 부담감이 심화했음을 느꼈다.

김용민: 일각에서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받는 등록금 장학은 일종의 특혜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정재승: 카이스트는 지방에 있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다. 이런 현실에서 장학금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카이스트 학생 중 최소한 절반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다. 이들에게 등록금은 큰 부담이 된다. 카이스트는 사회에 필요한 과학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학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개인뿐만 아니라 교과부(교육과학기술부)도 고민했으면 한다.

과학계의 서태지가 되고 싶었던 물리학자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짧은 대담이 끝나고 강의가 시작됐다. 지나온 청춘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오락실을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가 봤다”는 고백 아닌 고백, 어린 시절의 정 교수는 사회의 요구에 충실히 답변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과학고에 진학한 뒤 수학과 과학 공부에만 몰입하는 친구들을 보며 회의를 느끼고 반항심을 품는다. 반항 방식은 다름 아닌 과학고와 어울리지 않는 과목의 공부를 하는 것. 국어·음악·미술에 심취한다. 자연스레 많은 책을 읽게 됐고 함께 공부한 이들과 조금은 다른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충격적인 인물을 만난다. 정 교수와 같은 나이의 서태지는 새로운 (세대) 문화를 가지고 나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다.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정 교수는 우주가 왜 생겼는지를 답할 수 있는 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학회에서 ‘복잡계 과학’을 접한다. 물리학이란 전공을 뇌과학에 접붙여보겠다며 연구 방향을 전환한다. 그러나 뇌 연구는 당시 한국에서 생소한 분야였고 설령 전공을 마친다 해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정 교수의 선택을 응원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학문 간 융합과 통섭이 중요해지면서 모교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정 교수가 집어등 사진을 슬라이드에 걸어 청중에게 보여줬다. 그는 오징어배에 불 밝힌 집어등의 빛을 향해 모여드는 오징어떼를 보며 요즘의 청춘을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입된 타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맹목적으로 환한 불빛을 좇다 죽음을 맞는 오징어들처럼, 습득된 욕망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고통,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커다란 뇌 그림을 보여줬다. 뇌의 안쪽에는 만족감을 느끼는 특정 부위가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젊은 시절 이 부분을 자극하는 자신의 욕망이나 경험이 무엇인지를 찾으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된단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부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전전두엽은 상황을 판단하고 예측하는 등 인간의 고등한 사고 영역을 담당하는 부위다. 전전두엽은 청춘 시기에 계속 발달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 부분을 자극하도록 해야 한다. 정 교수는 전전두엽의 발달을 위해 독서와 여행,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권했다. 젊은 시절의 독서와 여행 등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고 자신의 세계를 의미 있게 채울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인생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을 발달시키고 뇌의 여러 부분을 연결해 사용할 줄 알면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창의적 청춘을 길러내려면? 스스로 탐구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전전두엽의 발달을 도와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학교교육 혹은 사교육은 단순한 암기만 강요한다. 이는 전전두엽 발달과 무관하다. 학교란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에 나가면 학교에서 배운 문제풀이 과정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산재해 있다. 암기력으로 대처할 수 없다. 뇌를 연구하는 처지에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위험해 보인다고 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불안과 즐거움의 공존, 청춘의 본질”

청중1: 개인 욕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욕구를 억제하는 것과 따르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정재승: 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둘의 균형이 깨져 욕구를 너무 억제하거나 혹은 욕구만 좇는 것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청중2: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지금의 문·이과를 구분하는 교육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재승: 구분 없이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적성검사를 해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문·이과 성향과 다르게 나타난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봐도 인간은 두 가지 측면 모두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현재의 고등학교나 대학의 학과제도는 한쪽 문을 걸어잠근 모양새다. 통섭 능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없게 만든다.

청중3: 고등학교 첫 시험을 앞둔 17살 학생이다. 입시 부담감이 크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럴 땐 또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어떻게 하면 이 시기를 즐겁고 창의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창의성’을 강조하셨으니 다른 어른들과 다른 창의적인 답변을 원한다. (웃음)

정재승: 교과서를 중심으로…. (좌중 폭소) 불안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것이 청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시기를 현명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혼자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서로의 삶을 보듬을 수 있는 친구가 주변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동료가 있다면)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대훈 21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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