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인터뷰 특강- 거짓말 ②
김동광과 함께한 ‘국가와 과학의 잘못된 만남
황우석 사건에 나라 전체가 속아넘어간 이유를 듣다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인터뷰 특강 두 번째 날, 적당한 두께의 구름이 덥혀놓았는지, 등록금 투쟁과 노점상 생존투쟁의 합동시위대가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네거리를 뛰어다니기 때문인지 서울 신촌의 거리는 온도가 꽤 올랐다.
사회자 오지혜씨의 말대로 인터뷰 특강을 일곱 번이나 듣게 되면 청중끼리 정도 꽤 들리라. 그들끼리 정분이 나면 또 어떠랴, 이제 봄인데…. 공연히 들떠서 두 번째 특강을 즐긴다.
“과학사회학자가 뭐하는 사람이냐면…”
하지만 두 번째 주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기실 이번 특강 주제를 결정한 바로 그 사건(이렇게 모호하게 말해도 ‘황우석 사건’을 누구나 떠올릴 테니 과연 큰 사건은 큰 사건이다)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한겨레21>의 독자라면 익히 알겠지만 김동광씨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학자다. 2005년 황우석 교수가 화려한 조명을 받을 때, ‘황우석 쓰나미에 휩쓸리는가’라는 글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일이 생생하다(이에 대해 사회자가 물었을 때 그는 아내와 함께 무시무시한 수백 개의 댓글을 읽으며 그 열화와 같은 반응을 즐겼노라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 이후에도 그는 과학에 대한 성찰,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외쳐댄다.
오지혜씨는 ‘과학사회학자’라는 그의 프로필을 물어보는 것으로 인터뷰 특강을 열었다.
오: 과학사회학이 무엇인지?
김: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시군요. (웃음) 단적으로 말하면 저는 잡종, 하이브리드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학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자는 겁니다.
오: 과학사회학의 연구가 시민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김: 사회적 담론을 생산해냅니다.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성찰해내기도 하고, 시민운동 영역과 연계된 다양한 활동도 합니다.
김동광씨는 지난해 일부 과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지적했을 때 그 목소리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고,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성찰, 아무런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던 일을 다시 애석해하면서 ‘시민 참여’를 역설했다. 과학이 국가나 정책 입안자, 과학자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 참여가 얼마든지 가능하며 미약하지만 실제로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그는, 시민 참여야말로 다양한 관점과 사회적 합의를 제시함으로써 과학의 민주화를 확대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 주제 강의를 했는데, 과학주의와 국가주의의 만남, 그리고 생명에 대한 관점이 큰 줄기였다.
어떻게 과학에 거짓말이 있을 수 있을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학 사기 사건은 그리 드물지 않다. 다만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이유의 밑바닥에는 ‘과학은 뭔가 다를 것이다’라는 통념이 깔려 있다. 흔히 과학은 자연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는 다르고 과학자 사회에는 일반 사회와 다른 높은 수준의 규범이 작동하며 설혹 조작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자기 규찰 기능이 있어서 스스로 정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이는 실제와는 다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념형에 가깝다.
나라 전체가 그토록 쉽게 속아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 과학계, 언론, 재계가 모두 얽혀 집단적인 거짓말과 환각이 작용한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곧 여러 사회 집단들이 각자 갖고 있는 속이려는 욕구와 속기 쉬운 갈망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유·무형의 권력의 부추김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집단적인 환각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생명을 분자적으로만 보면 위험한 이유
과학주의와 국가주의의 결합
= 모든 사유의 중심에 과학기술을 놓고 사고하는 과학주의는 서구에서는 원폭 이후에 과학 자체와 사회적 관련에 대한 성찰이 이미 있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 이래 ‘과학=국가, 과학 발전=경제 성장’이라는 등식이 과학자와 국민 모두에게 내재되었고, 이 과정에서 과학주의는 국가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성을 띠게 된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국가와 과학이라는 두 권력이 과도하게 결합했을 때 어떤 전횡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비평을 어떻게 압살할 수 있는지와 과학에 대해 벗어나지 못하는 뿌리 깊은 신화들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우리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분절화돼 있다. 생명에 대한 인식이 개체화돼 있고 개별적 ‘나’에 집중해 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사회, 자연과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표피적이고 단편적이면서, 분자적 관점에 기초해 너무 조작적인 데 머물러 있다. 생명에 대한 조작적 개념, 기계적 관점은 생명을 인간 맘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관념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 생명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황우석 사태는 이러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인터뷰 특강의 묘미 역시 질의응답 시간에 있었다. 돌발 질문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해하는 것은 사회자의 몫이지만 청중은 그것마저도 즐긴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혹시 연구실 복도에 진달래꽃 뿌리던 사람들이라도 와서 공격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시 했지만, 질문은 강연만큼이나 차분하고 다양했다. 과학사회학의 범위나 줄기세포 연구의 순기능 여부, 과학연구의 지원비 배분의 기준, 과학의 민주화 등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자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는 인류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왔고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최근에 그게 거짓말이 아닌가 회의한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김동광씨는 토머스 쿤을 인용하면서, 시대마다 나름의 관점과 시스템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우월하고 어느 것이 미개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근대과학도 어떤 문제에 대한 한 방식일 뿐 그게 유일한 관점이 아니라고 답했다.
과학발전, 한 교사 방청객의 성찰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무슨 질문이든 <한겨레21>에 나오는 제 메일 주소로 보내주시면 최대한 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게 그냥 인사로 하는 말이 아님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강연 내내 보여주었던 책임 있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성실한 면모 때문이었다. 사회과학이니 과학의 시민 참여니 하는 정도의 담론이나마 시작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귀갓길에 공연히 화이트데이에 미처 팔리지 못한 사탕 여러 줄기(!)를 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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