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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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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마저 코로나19 곁에 남지 않을 때

<한겨레21>과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이 본 ‘위드 코로나’의 미래
등록 2021-09-17 09:35 수정 2021-09-18 00:03
2021년 9월14일 경북 상주 희망요양원에서 104살 장태분씨가 가족과 면회하고 있다. 정부는 추석특별방역대책으로 9월13일부터 27일까지 백신 접종을 한 경우에 한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서 면회할 수 있도록 했다. 연합뉴스

2021년 9월14일 경북 상주 희망요양원에서 104살 장태분씨가 가족과 면회하고 있다. 정부는 추석특별방역대책으로 9월13일부터 27일까지 백신 접종을 한 경우에 한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서 면회할 수 있도록 했다. 연합뉴스

*위드 코로나 위드 에브리원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926.html

3장 위드 의료진- 쏠림과 소진

국립중앙의료원의 풍경은 3차 대유행이 있던 2020년 12월과 여전히 비슷하다. 확진자가 늘건 줄건, 이곳 코로나19 병상은 비는 날이 거의 없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놓칠까 초조하고, 의료진은 바쁘게 달린다. 애초 공공병원이기에 맡아야 할 중증외상 환자나 취약계층 환자를 돌보다가 다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며, 수시로 병동 사이를 오간다. 돌봐야 하는 환자도, 근무환경도 시시때때로 바뀐다. 그러다보니 “단시간 노동자처럼 소속감도 없고 자존감도 무너지고 스트레스는 배로 가중됐다.”(안수경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 지부장)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같은 소수의 공공병원들이 짊어진 부담을 줄이거나, 민간병원과 나눠지도록 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들지 못했다.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대체하는 용어로 쓰는 ‘단계적 일상 회복’은 그래서 오히려 걱정거리다. 안 지부장은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점차 일상이 회복되면 아무리 중환자 비율이 줄어든다고 해도 전체 확진자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 중환자 수도 같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 같은 의료체계 아래서라면, 중환자는 다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몰릴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코로나19 환자는 격리·치료해야 했다. 경증 확진자는 생활치료센터에 격리했고, 중환자는 국립중앙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에 입원했다. 쏠림 현상이 심했다. 다른 질병처럼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약을 먹고 집에서 쉰다거나, 동네 병원 등 1차 의료기관에서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따위는 아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국민의 86.8%는 “동네 병원도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갖춰야 한다”(‘포스트-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고 판단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제 방역은 모든 국민이 아닌 ‘고위험군’에 집중되는 게 바람직하다(아래 그래프 참조)고 여기지만, 정부는 아직 민간병원을 비롯한 기존 의료체계를 제대로 동원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저 상급 종합병원에서 병상을 동원했다고 홍보했을 뿐이다. 병상은, 그냥 병상이다. “병상 운영을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아요. 아직도 정규 인력 충원에 대해선 ‘무대책’에 가깝죠. 병상은 하다못해 음압텐트를 치면서까지 마련할 수 있지만, 사람은 아니잖아요.” 간호사인 안수경 지부장은 말한다.

‘살려야 한다’는 부담이 쏠린 곳에 사람이 있다. 간호사, 의사 등 의료진이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소진됐다. 끝이 보이지 않으니 번아웃(소진)은 더 심하다. ‘포스트-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절반에 가까운 보건의료인들(48.2%)이 코로나19로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유로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을 꼽았다. 이런 막연함 탓에 새로운 인력은 잘 들어오지 않고, 들어온 사람은 이내 떠난다. 남은 사람은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사람이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곳은 또 있다. 고위험군을 감염의 위험에서 지키는 일을 하는 이들이다. 돌봄을 맡은 사람들이다.

4장 위드 돌봄- 불안정과 격차

96명의 노인, 즉 코로나19 고위험군이 머무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허미숙은 늘 잔뜩 예민한 상태다. 감염병에 걸려, 나로부터 ‘돌보는 이들’로 바이러스가 번지면 끝장이다.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평소 동선을 최대한 줄인다. 사회적 관계를 단절한다. 매주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어르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1년9개월을 지냈다.

하지만 허미숙을 보호해주는 장비는 빈약하다. 정부에서 지원했다는 마스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부가 요양보호사들한테 마스크 80장씩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정작 (요양원에서) 저희에겐 5장을 주더라고요. 이상해서 구청에까지 전화해봤어요. (전화한 사실이 알려지니) 시설장이 ‘왜 전화했냐’면서 오히려 ‘앞으론 얄짤없다’고 이야기했죠.”

‘위드 코로나’ 시대라면, 돌봄 노동에 대한 대책도 ‘단계적 일상 회복’ 전략에 포함돼야 한다. 돌봄 노동자는 고위험군인 건강 약자 곁에, 닫힌 교실 문 앞에서 갈 곳 잃은 아이들 곁에 있다.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돌봄의 공백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흔든다. 가정 내 돌봄이 으레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가뜩이나 심각한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는 한층 벌어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코로나19 시기(2020년 3~11월)에 퇴직을 경험한 여성을 조사해보니, 초등학생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이 21.3%였다. 이 중 76%는 2020년 12월 초까지 실직 상태였다.

정부도, 돌봄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2020년 11월 “지속가능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긴급돌봄 제공 △아이돌봄 서비스 확대 △어르신 비대면 돌봄 강화 △장애인 활동지원 강화 △가족돌봄휴직 사유 확대 추진 등을 담은 ‘돌봄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다만 ‘누가?’는 빠져 있다. 돌보는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돌봄 노동자는 코로나19 이전처럼, 코로나19 유행 시기처럼, ‘위드 코로나’ 시기에도 이런 사람이다. 월급제 요양보호사는 월 239만원을 받는다. 감염이나 질병 위험에 노출됐지만, 위험수당은 없다. 병가는 있어도 못 쓴다. 사람이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머무를 만하지 않다.

허미숙은 그런 곳, “발가락이 부러져도 쉬겠다고 말할 권리가 없는 곳”에서 돌봄 노동을 한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항의조차 못하는 고령의 연령대에, 최저임금으로 일하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로 일한다. 인력이 충원되거나 임금이 높아지기는커녕 인건비를 덜 받으며 불안정하게 일하니 젊은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저 ‘방역 완화’에만 초점을 맞춘 ‘위드 코로나’는 돌봄 노동자에게 별 의미가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거나, 무증상·경증 환자는 재택치료를 받도록 한다고 해도, 이들은 고위험군의 가장 가까이서, 이렇게 열악한 채로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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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위드 에브리원- 저들과 우리

사장님, 청년, 의료진, 돌봄 노동자. 이들의 희생은 그저 이들만의 일일까. 우리는 괜찮을 수 있을까.

한국은행은 2021~2022년 잠재성장률을 코로나19 이전보다 0.3~0.4%포인트 낮춘 2% 수준으로 추정했다. 서비스업 생산능력 저하와 자원배분 비효율성 증대(사장님), 구조적 실업에 따른 이력 현상(청년), 육아 부담 증가 등으로 인한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하락(돌봄) 등의 이유에서다. 모두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품게 된 생각이다.

‘포스트-코로나 국민 인식 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응답 결과가 있다. 코로나19 대응 주체로서 ‘일반 국민’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7%가 ‘전혀 또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뢰한다’는 응답(57.3%)이 좀더 많지만, 불신의 크기가 뜻밖에 크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짐의 크기’와 ‘다른 이들이 진 짐의 크기’를 1년8개월 동안 견주며, 그저 버텨왔다. 불신과 거기서 비롯한 불안을 바탕에 둔채 위드 코로나 시대는 안정적일 수 없다. “방역 과정에서 직접적인 침해를 당하는 시민의 목소리랄지, 효과에 대한 과학적 판단이 반영되지 못했다. 스스로 정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방역) 방식 앞에서 시민의 순응도는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끝나지 않는 질병과 공존한다. 공존하기 위해 전환하고 적응한다. ‘모두 함께’ 아니면 이를 수 없는 일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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