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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밀린 전 남편’ SNS에 올렸다가 범죄자 될 뻔

‘사실을 말한 죄’로 범죄자가 되거나 될 뻔한 여섯 명의 일반인 이야기 ②
등록 2021-01-09 15:22 수정 2021-01-12 00:56
‘진실을 말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가.’
논쟁적 물음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또 다른 기본권인 ‘명예와 사생활의 비밀 보호’(인격권)가 충돌하는 문제다.
‘처벌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법의 대답이다.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밝혀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표현 수단이 ‘말’이냐 ‘출판물’이냐 ‘정보통신망’이냐에 따라 형법 또는 정보통신망법으로 형사처벌한다. 다만 공익성을 입증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꼭 처벌해야 하는가.’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물었다. 2003년 신평 교수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이유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론을 처음 꺼낸 뒤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2011년부터는 유엔 인권기구들이 지속해서 폐지를 권고했다.
2021년 다시 한번, 법이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1항)가 위헌인지를 따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기다리고 있다. 동물병원의 치료로 반려견이 실명 위기를 겪었다고 생각한 시민이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가 형사처벌의 위험성을 인지하고선, 고발을 포기하는 대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건이다. 아직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았지만 공개변론까지 마쳤다. 이르면 2021년 초에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소원 청구 대리인 김병철 변호사는 “(선고가)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재판관들의 견해가 많이 엇갈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2016년엔 답이 단호했다. 헌재가 정보통신망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헌재의 답이 완전히 바뀌진 않아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주로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뤄지는 형법상 명예훼손은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명예훼손에 견줘 전파성이 낮아 형사처벌 논란이 크기 때문이다. 2018년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를 거치며 시민과 법률가들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기도 했다. “합헌 결정이 나더라도 위헌 의견이 과반수는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정합헌’으로 합헌은 유지하더라도 위헌성은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제시하길 기대한다.”(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헌재가 답안지를 내기 전, 한번쯤 들어봐야 할 사실적시 명예훼손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죄를 비범죄화하더라도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사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도 살펴봤다. _편집자주

*‘사실을 말한 죄’로 범인이 된 사람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789.html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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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위험성’만 있어도 처벌된다

딱 하루였다. 2018년 이하경(가명)씨는 SNS의 익명 게시판에 ‘건물주 갑질 횡포 알려요’라는 글을 올렸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건물주 가족이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가게에서 밥을 해먹지 못하게 하고, ‘월세 공제’를 신청한다고 하면 월세를 올리겠다고 협박한 일 등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처음에는 그런 부당한 대우를 참았지만 아버지에게 폭행까지 가해지는 상황이 너무 마음에 아팠어요. (우리가 나가도) 누군가 또 들어갈 텐데, 그들이 피해를 보지 말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글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건물주 가족들이 (익명 게시판) 관리자에게 글을 삭제하라고 요청했다고 들었어요.” 그러고선 얼마 뒤 고소장이 날아들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였다. 벌금 30만원을 내라는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받았으나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전파될 가능성이 인정되다보니, 명예가 침해될 ‘가능성’만으로도 처벌된다. 우리 판례는 현실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결과’(침해범)가 없더라도 명예를 침해할 ‘위험성’(추상적 위험범)이 인정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고 본다. 인격적·정신적 가치인 명예의 침해 정도를 입증하기 어렵고, 그걸 입증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위험성’ 인정은 법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판단을 판사의 직관에 의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명예훼손 위험성으로 죄를 묻는 것은) 개인이 타인의 명예훼손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범죄가 성립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모순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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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공익성이 자의적이다

2019년, 밀린 양육비 두 달치 400만원을 한 번에 받았다. 고진경(가명)씨가 두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남편의 신상이 등재된 ‘배드파더스’ 누리집 주소 링크를 전남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지 한 달 만이었다. 당시 진경씨는 자신의 SNS에 전남편의 사진과 이름을 올리면서 ‘당신은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라는 글도 올렸다. “한 달 200만원씩 못 받아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상태에서 (전남편 가족과 지인에게) ‘양육비 지급을 독려해달라’는 뜻”이었다.

양육비와 함께 ‘청구서’도 날아들었다. 고소장이었다. 2020년, 진경씨는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양식명령)을 선고받았다. 의아했다. 진경씨가 SNS에 링크한 배드파더스 누리집은 공익성을 인정받은 곳이었다. 그 운영진이 신상 공개된 부모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지만, 1심에선 ‘양육비 미지급의 문제를 알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금은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진경씨도 “상대방(전남편)을 비방해 사적 채무를 받으려던 게 아니라 자녀를 제대로 키우려고 양육비를 촉구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인정받기 위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2021년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처벌이 크게 강화되는 것에 진경씨는 희망을 걸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자녀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를 대상으로 신상공개,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형사처벌 하는 법이 순차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공익성은 유무죄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형법)을 위해, 혹은 ‘비방의 목적’(정보통신망법) 없이 세상에 사실을 드러냈다고 입증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진다. 판례는 국가, 사회, 다수의 일반인, 사회집단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공공의 이익으로 폭넓게 해석한다. 윤지영 변호사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사실이면 공익성을 강하게 인정해줘서 무죄가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익성이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판례는 공공을 위해 ‘비판할 목적’과 사익을 위해 ‘비방할 목적’이 충분히 구별된다고 밝히지만 현실에선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전 직장 사장의 언어 학대 사실을 종이에 적어 동료 직원들에게 알린 여성 직원, 회사의 노조 담당자가 과거 다른 회사에서 노조 파괴 활동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터넷에 알린 노조위원장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표현의 자유 실현은 무죄, 공공의 이익과 무관한 표현의 자유 실현은 유죄.’ (중략) 이러한 요구는 표현의 자유가 지닌 헌법적 위상(기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반헌법적이다.”(‘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과 비범죄화 방안’,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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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벌금으로 끝나지 않는다

2019년, 벌금 100만원으로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됐다. 정수빈(가명)씨는 성폭력 피해자다. 우울증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로부터 수차례 성착취를 당했다. 2018년, 수빈씨는 SNS 계정을 만들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포함해 가해자의 불법 진료 등을 폭로했다. ‘×× 만진 손으로 진료하지 마세요’ ‘의료인이 오줌 싸고 손 안 씻고 진료하는데 법에 안 걸리나요?’ 고발 내용에는 “병원에 갔다가 (가해자인) 의사가 화장실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소변통에 소변을 보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가해자는 성폭행 고발을 제외한 여러 표현을 모욕·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걸었다.

수사 과정에서 대부분의 표현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이 났다. ‘소변 목격담’은 거짓이 아닌 사실로 인정받았다. 간호사들이 “요실금이 있던 의사가 쓴 소변통을 씻었을 뿐 아니라 (가해자가) 탕비실에 아무렇게나 벗은 기저귀를 치웠다”고 진술해서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는 피하지 못하고 법원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수빈씨는 교사였다.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의사에게 당했던 성착취 피해, ‘동의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지도 못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만큼 벌금형은 “큰 충격”을 줬다.

‘공무원의 품위 손상’이라는 이유로 교육청 징계(견책)를 받았다. 두 달 뒤 법원 약식명령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가해자의 고소 취하로 벌금형은 사라졌지만, 징계는 남았다. 교원의 부당한 징계를 구제하는 교원심사소청위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미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결국 수빈씨는 다른 학교로 강제 전보됐다. “징계를 받아서 다른 교육청이 있는 지역으로도 못 가요. 여기서 2차 가해를 너무 당해서 다른 지역에 가서 근무하고 싶어도 자격이 안 되는 거예요. (피해를) 회복하기도 너무 힘들고 더뎌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이 무겁지 않다. 기소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이다. 징역형은 물론 집행유예형도 드물다. 그러나 범죄 기록이 남는다. 벌금형을 받아도 공무원 임용(횡령·배임·성폭력 제외)에는 문제가 없지만 징계는 받을 수 있다. 불이익과 상관없이 ‘전과’가 주는 위축 효과도 있다. 수빈씨 가해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도 전과가 생기면 공무원이 되는 과정에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피해 폭로를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고소했다.

민사소송이 뒤따르기도 한다. 동물병원의 과잉진료를 비판하는 글을 온라인 카페에 올렸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받았던 소비자가 ‘병원의 명예를 훼손해 매출이 떨어졌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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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일상에서의 표현까지 대상이다

2020년, 얼마 전 찍은 결혼식 사진을 확인하던 권소아(가명)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가 불량이었다. 결혼하는 날에는 정신이 없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제였다. 웨딩드레스 대여 업체에선 ‘도우미가 실수한 것 같다’고만 했다.

소아씨는 전액 환불을 요구했다. 웨딩드레스 사진을 업체 누리집에 올렸다. ‘일부 비용을 줄 테니 글을 내려달라. 내리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 업체의 연락을 받고 소아씨가 고민하는 동안, 사진은 강제로 삭제됐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 나중에 무죄가 나오더라도 그 과정이 너무 힘들 것 같은 두려움”에 더 이상의 대응을 포기했다.

사실 표현을 형벌로 규제하면 일상에서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된다. 가족·지인과의 대화, SNS 이용 후기, 청와대 청원 등 모든 온·오프라인 공간이 규제 대상이다. “음식점 후기에 ‘맛없어’ 하면 명예훼손도, 모욕죄도 안 된다. 그래도 ‘너 고소할 거야’ 하면 소비자는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글을 지운다. 그러면 업체는 소기의 성과를 이룬 게 된다.”(이상민 변호사)

정치인이나 언론의 비판에는 ‘공익성’을 이유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적용되지 않는 추세이지만, 개인이 성폭력, 직장 갑질, 기업 비리 등 ‘사회적 고발’을 하려면 여전히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순간에 ‘피해자’가 ‘피의자’가 된다. 가해자가 ‘명예훼손죄 고소 취하’를 빌미로 가해 사실에 대한 합의를 종용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자유로운 표현과 사회적 고발이 줄어들면 개인의 알 권리도 함께 축소된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권으로서 성격만 갖지 않는다. 자기 지배 원리를 따르는 민주주의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특정 사람, 사물, 가치 등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교환하며 공론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오류를 시정해나갈 수 있다.”(윤해성 선임연구위원)

물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의 비밀’(인격권)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완전 폐지가 가져올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비범죄화’(국가 형벌의 최소화)의 방법이 학계·법조계에서 다양하게 제시된다. 진실이 밝혀지면 사라질 ‘이미지’에 불과한 개인의 명예를 형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되,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은 형법이 더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32~34쪽 참조)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거나 무력화돼 있다. 일본도 한국보다 처벌 범위가 좁다.(35쪽 참조)

“제가 받는 불이익을 보고 나서 성폭력을 폭로할 용기가 꺾이고 ‘그냥 잊어버리고 살자’ 하는 피해자가 생기면 어떡해요?”(정수빈씨) “갑질당한 걸 호소한 게 죄가 되면 어디에 말해야 하나요?”(이하경씨) “앞으로 누구와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요?”(강이든씨) 이들의 질문에 법이 대답할 차례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인터뷰는 2020년 12월15~31일 이뤄졌습니다. 여섯 명 가운데 일부는 추가적인 사실적시 명예훼손 고소를 우려해 신원이 완전하게 가려지길 바랐습니다. 일부의 신원을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참고 문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윤해성·김재현, 2018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과 비범죄화 방안’, 김성돈, 2019

‘명예훼손죄 비범죄화에 대한 비판적 검토’, 김형준, 2019

*표지이야기-'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운명은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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