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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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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한 죄’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범죄자 된다

어디에나 있지만 모호한 범죄 ‘사실적시 명예훼손’
범죄자가 되거나 될 뻔한 여섯 명의 일반인 이야기 ①
등록 2021-01-10 00:16 수정 2021-01-12 09:5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진실을 말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가.’
논쟁적 물음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또 다른 기본권인 ‘명예와 사생활의 비밀 보호’(인격권)가 충돌하는 문제다.
‘처벌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법의 대답이다.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밝혀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표현 수단이 ‘말’이냐 ‘출판물’이냐 ‘정보통신망’이냐에 따라 형법 또는 정보통신망법으로 형사처벌한다. 다만 공익성을 입증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꼭 처벌해야 하는가.’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물었다. 2003년 신평 교수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이유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론을 처음 꺼낸 뒤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2011년부터는 유엔 인권기구들이 지속해서 폐지를 권고했다.
2021년 다시 한번, 법이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1항)가 위헌인지를 따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기다리고 있다. 동물병원의 치료로 반려견이 실명 위기를 겪었다고 생각한 시민이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가 형사처벌의 위험성을 인지하고선, 고발을 포기하는 대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건이다. 아직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았지만 공개변론까지 마쳤다. 이르면 2021년 초에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소원 청구 대리인 김병철 변호사는 “(선고가)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재판관들의 견해가 많이 엇갈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2016년엔 답이 단호했다. 헌재가 정보통신망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헌재의 답이 완전히 바뀌진 않아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주로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뤄지는 형법상 명예훼손은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명예훼손에 견줘 전파성이 낮아 형사처벌 논란이 크기 때문이다. 2018년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를 거치며 시민과 법률가들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기도 했다. “합헌 결정이 나더라도 위헌 의견이 과반수는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정합헌’으로 합헌은 유지하더라도 위헌성은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제시하길 기대한다.”(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헌재가 답안지를 내기 전, 한번쯤 들어봐야 할 사실적시 명예훼손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죄를 비범죄화하더라도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사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도 살펴봤다. _편집자주

범죄자 네 명이 있다. 범죄자가 될 뻔한 두 명도 있다. ‘범죄자’라는 공통점을 빼면 여섯 명을 묶을 단어는 없다. 평범한 엄마고, 딸이다. 공무원이고, 직장인이다. 소비자고, 세입자다. 굳이 공통분모를 더 찾자면 일부가 범죄 혹은 갑질 피해자다.

평범한 시민들을 범죄자로 엮은 혐의는 ‘사실을 말한 죄’다. 친구에게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하소연한 죄,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죄, 직장 상사나 건물주의 괴롭힘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한 죄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자연스레 표현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국가는 형벌권을 작동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란 이름으로.

우리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은 허위 사실이 아닌 진실한 사실을 공공연히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게도 형사책임을 묻는다.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 즉 세평을 떨어뜨릴 만한 말이라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가리지 않는다. 표현한 사실의 진실성과 공익성을 따져 책임을 면해준다고는 하지만 그 기준은 엄밀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늘 표현하고 사는 시민 누구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여섯 명이 그랬던 것처럼.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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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허위적시’를 벗어나면 ‘사실적시’가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에 글 올렸죠? 명예훼손 신고가 들어왔으니까 조사받으러 나오세요.”

2020년, 경찰의 전화 한 통으로 평온이 깨졌다. 온라인 ‘대한민국 정보공개 포털’을 통해 고소장을 확인하는 데만 일주일 넘게 걸렸다.

비상식적인 수당과 인센티브 관행, 직원들 외모를 비하하는 상사, 폭언과 협박 등 직장 내 괴롭힘. 오지수(가명)씨가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뒤 기업정보 플랫폼 ○○○에 올린 ‘기업 후기’가 고소장에 적혀 있었다.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구직자들이 많이 보는 ○○○에 쓴 후기였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지수씨였다.

‘피고소인은 퇴사 후 고소인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중략) 마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전횡과 갑질을 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 회사는 퇴사한 지수씨가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소 내용을 반박하려면 후기가 진실임을 증명해야 했다. 변호사 비용이 부담돼 직장갑질119와 민주노총 법률원의 무료 법률 상담을 받아가며 입증 자료를 준비했다. 경찰로부터 ‘혐의 없음’(불기소) 의견을 듣기까지 꼬박 8개월이 걸렸다.

평온을 완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다. 운이 나쁘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를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소당하기 전까지는 그런 죄가 있는지도 지수씨는 몰랐다. “나는 진실을 말했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데, 고소인은 진실을 허위라고 고소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내 시간과 스트레스, 무의미한 수사로 인한 공권력 낭비는 누가 책임지는 건가요.”

명예훼손 고소·고발은 흔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를 통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명예훼손 고소·고발 건수는 2019년 2만296건이다. 2020년 1~11월에도 1만9137건의 고소·고발이 있었다. 10년 전인 2011년(9661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10년 전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형법상 명예훼손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2019년 앞지르기 시작했다. 고소·고발당한 이 중 15% 정도는 기소돼 재판으로 넘겨진다.

세부적인 통계는 없지만, 상당수는 지수씨처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문제적 표현’을 처음부터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고소인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같은 명예훼손이라도 표현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면 처벌 수위가 두 배 높아진다.

진실이라는 입증은 고소당한 사람이 해야 한다. 표현한 사실이 진실이거나 적어도 자신은 진실이라고 믿었다는 점을 증명하면 ‘허위사실적시’ 혐의를 벗을 수 있다. 그래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까지 피할 수는 없다. 공익성까지 입증해야 책임이 사라진다.

문제는 시점이다. 고소 초기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진실성·공익성을 인정받아 곧바로 혐의를 벗는 사람도 있지만, 검찰이나 법원에 가서야 어렵게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을 받는 사람도 있다.

손지원 변호사는 “진실을 적시함으로써 침해받는 ‘명예’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가질 자격이 없는 명예다. 그런 허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일반인이 수사 대상자가 되고 피의자가 된다. 일반인은 수사기관의 전화를 받는 것만으로도 위축되고, 조사받으러 가면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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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한 명에게 말해도 전파다

“우리 회사에 싱숭생숭한 일이 있다. △△△이 직원들에게 폭언과 성희롱 같은 일을 한 것 같다.”

2019년, 한마디 말에서 시작됐다. “요즘 잘 지내세요?” 회사 앞에 놀러 온 지인에게 “하소연하듯” 말했을 뿐이다. 이름도 ‘성’만 말한 것으로 중소기업 사장 강이든(가명)씨는 기억한다.

2020년, ‘한마디’는 고소장이 되어 돌아왔다. 성기를 노출하는 성희롱 사건 뒤 해고당한 △△△이 제기한 형법상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제307조 2항) 혐의였다. “△△△에게 최종적으로 말을 전한 사람부터 차례차례 고소를 당하다가 마지막에 나까지 온” 상황이었다. 일부는 △△△과 고소 취하를 합의했지만 이든씨는 합의 요구를 거부했다.

다행히 경찰 조사에서 이든씨는 자신의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했다. △△△으로부터 폭언·성희롱을 당한 직원들의 진술 덕분이었다. 그래도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제307조 1항) 혐의는 남았다. 법원은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든씨는 “명예훼손의 궁극적 목표가 전파성인데, 나는 지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를 했을 뿐”이라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법원은 한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전파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이 온라인이나 SNS에 한번 올라가면 그의 인격이 회복될 길이 없다는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한 판례다.

일관적이진 않다. 특정 사실을 가족에게 말해도 공연성이 인정되는가 하면, 반대로 기자에게 말했는데 아직 보도가 안 됐다는 이유로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서혜진 변호사는 “배우자나 다른 가족한테 말하는 건 대부분 괜찮은데 아닌 경우도 있다”며 “(전파한) 사람이 (또다시) ‘전파할 위치냐’에 따라 판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인터뷰는 2020년 12월15~31일 이뤄졌습니다. 여섯 명 가운데 일부는 추가적인 사실적시 명예훼손 고소를 우려해 신원이 완전하게 가려지길 바랐습니다. 일부의 신원을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참고 문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윤해성·김재현, 2018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과 비범죄화 방안’, 김성돈, 2019

‘명예훼손죄 비범죄화에 대한 비판적 검토’, 김형준, 2019

*“건물주 갑질 호소한 게 죄가 되나요?”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790.html

*표지이야기-'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운명은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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