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9, 8, 7, 6, 5, 4, 3, 2, 1.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찰나가 가르는 2020년과 2021년. <나의 캠핑 요리>의 저자 장진영씨는 경기도 가평의 한 텐트에서 그 찰나의 순간을 맞았다. 텐트 안엔 혼자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맞은편에 놓인 노트북 화면 속엔 저마다 술잔을 든 친구들이 화면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장씨와 친구들은 장씨가 피워놓은 모닥불을 함께 ‘불멍’(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멍때리기) 하며 2021년을 맞았다.
“10년째 캠핑을 다니며 크리스마스나 새해처럼 중요한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캠핑 장소에서 보냈다. 혼자 새해를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장씨가 말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장씨의 ‘캠핑 생활’은 또 있다. 테이블 위 음식이다. 친구들과 함께할 땐 조개구이·삼겹살·부침개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지만, 이젠 밀키트(Meal Kit·조리만 하면 되는 식사 세트)로 대신한다.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서로 도와 만들고, 함께 나눠 먹는 일이 즐거운 건데 혼자 오니 간편한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캠핑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캠핑장을 예약하는 게 쉽지 않자, 2020년 9월 경기도 가평의 캠핑장에 장박(기간을 두고 계약해 텐트를 쳐놓는 것)한 장씨는 2021년에도 혼자 텐트에서 머물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예정이다.
“망했다.” “뭘 하며 지냈는지 모르겠다.” 연말마다 내뱉던 후회 섞인 한탄이 2020년만큼 정확하게 들어맞은 때가 있었을까.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집에서 스스로 격리하며 보낸 ‘잃어버린 1년’이었다. 그렇다고 2021년도 한탄만 하며 맞을 수는 없는 법. 이 없으면 잇몸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는 이들의 ‘슬기로운 새해맞이 생활’을 공유한다.
이재훈(42)씨가 새해 일출을 본 곳은 ‘유튜브’다. 올해는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 가는 대신 집에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실제 현장에서 듣는 사람들의 탄성과 차가운 바람은 느끼지 못했지만, 구름 뒤로 빨갛게 모습을 드러낸 텔레비전 속 일출로 만족했다. “해맞이 인파를 막기 위해 강원도 일대 해변을 막는다고도 하고, 코로나 시국이라 굳이 정동진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 올해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북한산에 올랐다.
이씨가 ‘비대면 일출’을 본 것처럼, 비대면 송년 파티를 한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도 있다. 계원예술대학교 광고브랜드 디자인과 학생들은 2020년 12월 초 영상으로 송년 줌(zoom)파티를 벌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송년 비대면 파티 신청자 모집을 홍보한 뒤 구글로 참가 신청을 받았다.
신청자는 80명 가까이 됐다. 디자인과 학생뿐만 아니라 이들의 지인, 그리고 SNS 홍보글을 보고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예전에 유행한 줄무늬 티셔츠, 크리스마스를 연상하는 옷을 입거나 영상 배경을 크리스마스 이미지로 깔아 송년 분위기를 냈다. 팀을 나눠 문제를 맞히는 등의 게임도 했다. 빅뱅이나 티아라 노래 일부를 틀고 노래 제목 맞히기, 대사를 보여주고 드라마 제목 맞히기 같은 식이다.
파티에 참여한 강지우(22)씨는 “비대면으로 파티를 해서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느낌은 적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예상외로 재미있고 새로웠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최민서씨는 “대면 파티는 참여가 가능한 지역의 제한이 있는데, 비대면이라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지쳤는데 (파티를 기획해줘) 감사하다’는 후기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셀프 격리’한 ‘집콕 경력직’인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2020년과는 안녕(Bye)을, 2021년과는 또 다른 안녕(Hi)을 말하기도 했다. 김영진(35·가명)씨는 4년 전부터 매년 1월 초마다 가던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중계 행사에 올해는 가지 않았다. 닫힌 실내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대신 집안 대청소를 했다. 몇 년째 쌓아만 둔 작아서 못 입는 옷, 안 입는 옷 40벌 정도를 정리해서 ‘아름다운가게’에 보냈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아직 책장 정리 등이 남았지만 차근차근 정리할 것이다.” 김씨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킹크랩을 ‘주문’해 먹으며 애인과 집에서 보냈다. 보통 레스토랑을 갔던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원수현(38·가명)씨는 올겨울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에서 새해 일출을 보는 것도, 눈으로 덮인 덕유산을 오르는 것도 포기했다. 임신을 준비하는 터라 코로나19 감염을 더 조심하는 탓이다. 밖에 나가질 않으니 운동량이 현격히 줄어, 얼마 전부터 스태퍼(걷는 효과가 있는 운동기구)를 사서 집에서 운동한다. 무료할 땐 최근 결제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를 본다. 원씨는 “몇 주째 재택근무 중이라 집에 있는 게 휴가인지 근무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별일 없이 지내는 게 현재는 가장 잘 지내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나 원씨처럼 집에서 종일 머무는 사람이 늘면서 대형마트에선 식품 매출이 늘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전년 동기 대비 과일은 17%, 축산은 25%, 주류는 31.4% 매출이 증가했다. 특히 집에서 중요 이벤트를 할 때 자주 마시는 와인 판매량은 40% 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 조처로 가게들이 밤 9시에 문을 닫는 등의 영향으로 집에서 소비하는 식품량이 많아진 것으로 봤다.
2021년은 1953년 보신각 타종 행사를 시작한 이래 67년 만에 처음으로 타종 행사가 없었다. 현장에 모인 엄청난 인파, 함께 외치는 ‘카운트다운’, 그 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소리 지를 순 없었지만, 서울시 누리집에 가면 1월1일이 지난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 타종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처음’ 겪는 일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처음’을 만들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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