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최소로 행동하고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2021년 가성비 실천’을 제안한다. 2021년에 같이 갈 것은 무엇인가. 컵과 그릇 재사용, 전자제품 사후관리(AS)는 기본이다. 무기력한 자아와 몸도 조금만 고치면 꽤 쓸 만하다.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실천은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아픈 가족과 아픈 몸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2021년 ‘뉴트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는 시시해 보여도 만만하진 않다. 나와 가족, 일상과 미래, 공간과 환경을 바꾸는 첫 단추다. 일단 사흘만 넘겨보자._편집자주
2018년 여름 할머니가 낙상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할머니는 외상에 의한 뇌출혈 진단을 받고 꼬박 보름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요양병원 아니면 집, 선택의 기로에서 집으로 모시자 한 건 손자 도경민(33·가명)씨였다. 딸인 어머니와 갈등이 깊었던 할머니는 부모로서 못다 한 정을 그에게 베풀어줬다. 초등학교 시절 틈날 때마다 할머니 댁에 가서 밥을 먹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몇 밤을 자고 왔다. 할머니는 그런 그의 이부자리를 챙겨주길 좋아했다. ‘해오던 대로’ ‘자연스럽게’ 돌봄은 부모나 동생이 아닌 그의 몫이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3~6개월 이상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가능하다기에 마음을 접었다.
허리디스크와 무릎관절염으로 거동이 어려워진 할머니는 24시간 밀착 관리가 필요했다. 치매도 시작됐다. 창업 준비를 하던 그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주식투자를 전업으로 삼았다. 1년여간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삼시 세끼 밥을 먹여드리고, 기저귀 활용법을 익혀 대소변을 챙겼다. 도서관에서 노인 재활 관련 책을 읽고 활동보조에 필요한 자세를 익혔다.
“의무감으로 1년만 오롯이 투자해보자 생각했어요. 그다음 1년은 상태가 안정되면서 돌봄이 편해지니까 그냥 돌봄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할머니는 2020년 10월 폐렴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때때로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할머니한테 물을 드리다가, 물이 기도 쪽으로 넘어가서 몇 번 기침하신 적이 있어요. 찬물이 폐 쪽으로 넘어가면 심한 경우 폐렴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폐렴에 걸리신 게 아닐까….”
코로나19 확산으로 면회도 못 가고 영상통화도 한 달에 두 번 할 뿐이다. 2021년에는 할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시려 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생각할 겨를은 없다. 구직하기에는 시기상 늦었고 주식으로 수익 내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돌봄’이란 숙제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돌봄 주체는 장년일 수도, 여성일 수도 있다. 또 30대 청년이기도, 10대 청소년이기도 하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청년 케어러’ ‘청소년 케어러’로 불리는 이들이다.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코올·약물 의존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18살 미만 아동 또는 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교육과 취업, 생계라는 생애주기적 과제를 이행할 시기에 이들은 생애주기적 과제와 돌봄노동 사이 양자택일을 강요당한다.
이효빈(18·가명) 학생은 선천적 희귀병 카롤리병과 그 후유증을 앓는 어머니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홀로 간병했다. 엄마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학교나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 직행했다. 틈틈이 어머니의 약과 끼니 챙기는 일은 물론, 집안일에 손을 보탰다. 어머니 병세가 나빠져 응급실에 실려가면 효빈은 집에서 1시간 거리의 대학병원에 동행했다. 병원에서 효빈은 어머니의 보호자였다.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각종 서류에 서명했다.
학업이든 봉사활동이든 무엇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는 게 어려웠다. 중학교 과학 수행평가 때다. 팀장으로 수행평가 과제를 주도했지만 발표만 남겨둔 채 교실을 빠져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친구들에게 ‘몸이 너무 안 좋다’고 둘러대는 데 진땀을 뺐다. 어머니의 간경화가 악화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한 달에 많게는 두세 번 결석했다.
2020년 3월 어머니에게 간 이식 수술을 해준 효빈은 이제 자신을 돌보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뭔지, 내가 혹시 받은 상처가 있는지, 지난 과정을 쭉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를 위해 어떻게 살아갈 건지 생각해보고 싶어요.”
효빈은 ‘효녀’라는 칭찬을 듣지만 “어떤 틀에 자신을 가둬놓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2018~2019년 취업을 준비하며 치매에 걸린 아흔 살 할머니를 돌본 윤이재씨도 같은 경험을 털어놨다. “효녀는 계속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는 것 같았다.”(<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왜곡된 성 편견까지 더해지니 그 의무는 더 무거워졌다. 윤씨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며느리인 엄마도 돌봄은 처음인데 돌봄을 잘할 수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고, 그런 기대가 딸인 내게 내려왔다. 여성이니까 남동생보다 더 박애주의적일 거라는 기대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회보장 정책을 성찰하는 실마리고령화로 돌봄이 필요한 수요와 그 기간이 늘어난다. 반면 저출생과 가족 규모 축소, 이혼으로 인한 핵가족 파열로 돌봄 주체는 감소한다. 가족 돌봄을 기본값으로 두는 복지정책 아래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가족 구성원이 돌봄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생애주기적 과제를 이행해야 할 청소년과 청년도 마찬가지다. 권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팀장은 “자녀가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부모화’는 과도한 부담감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고 심하면 학업이나 꿈을 포기하게 한다”고 말했다.
9년여간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봐온 경험을 담아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펴낸 조기현씨는 영 케어러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다수가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이들을 돌보는 영 케어러는 돌봄과 부양을 더 이상 가족이 책임질 수 없다는 사회적 징후다. 시민적 돌봄을 세대 간에 주고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해야 할 시기다.”
영 케어러가 통계로 잡히지 않는 한국과 다르게, 일찍이 ‘영 케어러’를 정책 규범화한 영국과 일본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에서는 20여 년 전에 18살 미만 간병인을 영 케어러로 정의하고 민간 지원을 하고 있다.
영 케어러는 가족 중심 사회보장 정책을 성찰하는 실마리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돌봄을 자기 자신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돌봄은 누군가가 떠맡는 순간, 그 돌봄이 얼마나 지난한지 잊어버린다. 영 케어러는 가족에게 떠맡기고 외면해뒀던 돌봄을 낯설게 질문하게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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