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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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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이낙원의 9월29일] 쫄깃쫄깃하다는 말

9월29일, 11월28일 직접 찐 송편 선물과 첫 왕진
등록 2020-12-22 12:53 수정 2020-12-24 01:20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쥐고 흔든 2020년이 지나간다. 코로나19로 누구는 생명을 잃고 누구는 직장을 잃었다. ‘비대면’이 시대정신이 돼버린 세상을 거리두기, 모임 금지, 폐쇄와 봉쇄 같은 흉흉한 언어가 지배한다. 끝은커녕 진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전 지구적 유행’(팬데믹)이 사그라지더라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 숙이고 눈물만 흘린 2020년은 아니었다. 우리 삶을 더 높고 밝은 곳으로 밀어올리기 위한 싸움 또한 지속됐다. 장애나 성적 지향, 정치 성향,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말자며 ‘차별금지법’을,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자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여성을 무자비한 착취 대상으로 삼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을 사법의 심판대에 올렸다.
고난과 희망이 교차한 2020년, <한겨레21> 독자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한 취재원과 필자 19명이 ‘올해의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보내왔다. _편집자주
9월29일 화요일

쫄깃쫄깃하다는 말은 대단히 잘 만들어진 말이다. 어원을 알 수는 없지만 쉽게 추측할 수는 있다. 먼 옛날 누군가 쫄깃쫄깃한 음식을 먹으면서 만들어낸 말이다. 단어의 창작자가 한 명이 아닐 거라고 이 역시 ‘쉽게’ 짐작한다. 한 지방에서 발생해 분포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동시다발로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쫄깃쫄깃한 것을 씹으면서 거울을 보시라. 쫄깃쫄깃, 쫄깃쫄깃. 소리 내지 않고 먹기만 하는데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인간이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올해 추석에 다시 느꼈다. 송편을 한입 베어 물고 씹는데 너무나 쫄깃쫄깃하다. 거울을 보며 먹으면 더욱 실감 난다. 야, 이 단어는 진짜 잘 만들었다.

기가 막히게 쫄깃쫄깃한 송편. 추석에 고향에 못 갈 것을 아셨는지 환자 보호자 한 분이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외래로 오셔서 건네주셨다. 직접 손으로 송편을 빚어 찜통에 쪄서 비닐봉지에 담아 가져다주셨다. 외래 간호사 2명과 내 것 하나, 총 세 봉지를 들고 안심진료소로 찾아오셨다. 얼마나 감사한가.

20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침상 생활을 하는 아들의 병시중을 드는 어머니였다. 아들이 50살이 넘었으니까 어머니는 족히 70대 중반은 되었을 것이다. 아들은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외래진료를 받으러 와야 했는데, 며느리와 함께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오셨다.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까. 20년 전, 아들이 장성해 가정을 꾸렸고 어머니는 한시름 놓고 쉬어야 하는 시기였다. 갑작스레 아들의 뇌출혈이 있었고, 사지마비가 된 아들의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며느리가 일해야 해서 아들 가족은 다시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부모님은 간병인 역할을 해야 했다. 하루에 몇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끼니때마다 콧줄(레빈튜브·코에 삽입해 위까지 밀어넣은 튜브)로 유동식을 투여해야 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들에게 욕창이 생겼고, 가래를 제때 뽑아내지 못하면 폐렴이 생겼다. 이 생활이 20년째다. 그사이 아들은 몇 번의 폐렴으로 입원해 생사를 거는 싸움을 해야 했다.

6년 전 어머니가 내 앞에서 자신의 생애를 하소연하던 날, 나는 물었다. “그렇게 험한 세월을 지나셨는데 얼굴이 밝으셔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내가 미쳤지, 미친 척하는 거여.”

그러나 어머니의 미친 척도 한계가 있는지, 아니면 내가 알아보는 건지 가끔 어머니 얼굴을 볼 때면 고단한 삶의 무게를 느낀다. 호탕하게 웃던 얼굴에서 이제는 애써 짓는 미소가 보이는 것이랄까. 나는 그조차 존경스럽다. 나의 멘털과 내공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송편을 씹는데,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고 가슴이 촉촉해진다. 아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생각하며 송편을 빚고 찌고 손수 가져다주신 손길이 아름답다. 이는 ‘미친 척’이 아니라 ‘인간인 척’이 아닐까.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작아지고 나에게 힘이 되는 분이다. 이것을 어찌 갚을까 싶다.

11월28일 토요일

오전근무가 모두 끝나고 퇴근할 준비를 할 무렵이었다. 간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 환자분 보호자의 연락이 왔는데요. 입안에서 콧줄이 꼬였는데 어떡하냐고요.”

쫄깃쫄깃한 송편을 전해주신 바로 그 어머니의 아들 이야기였다. 오전에 환자가 내원해 흉부 방사선 사진도 찍고 콧줄도 교체하고 약도 타갔다. 아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병원에 다녀갔는데,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콧줄이 말썽을 일으켰나보다. 콧줄은 코와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통해 위까지 도달해 있어야 한다. 입에서 콧줄이 꼬였다는 이야기는 콧줄이 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대로 유동식을 투여하면 자칫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서 질식할 수도 있고 폐렴이 생길 수도 있다. 콧줄을 재삽입하러 병원에 다시 오자니 도와줄 사람이 없고, 그냥 두자니 휴일인 오늘과 내일 환자를 온전히 굶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직접 전화를 받았다. 환자 아내 되는 분이었다. 본인과 환자 단둘이 집에 있다고 했다. 마침 내 퇴근 시간이었고, 환자 집은 병원 근처였다. 내가 가겠노라 했고, 보호자는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여 나는 생애 첫 번째 왕진을 하게 되었다. 레빈튜브와 시린지(주사기), 청진기, 콧줄 고정용 종이테이프를 챙겨 병원을 나섰다. 집 근처에서 전화하니 환자 아내가 외투도 안 걸친 채 뛰어나오 셨다.

우리는 손발이 잘 맞았다. 환자 아내는 간호사 역할을 했고, 나는 의사 역할을 했다. 레빈튜브 삽입은 인턴 때부터 수도 없이 해왔던 처치다. 나는 콧줄을 갈아 끼우고 입안에서 콧줄이 꼬였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준비해간 시린지로 공기를 주입하면서 청진기로 뱃속 꼬르륵 소리를 확인했다. 콧줄이 위장까지 잘 내려갔다는 신호다. 환자 아내가 능숙하게 종이테이프로 콧줄을 코에 고정했다. 환자가 할 수 있는 최대 의사표현은 미소를 짓는 것인데, 그는 나에게 진료받을 때마다 웃어 보였다. 오늘따라 환자는 웃지 않았다. 아마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은 금식하는 게 좋겠고 내일부터 경관식이(관으로 공급하는 액체 상태의 식사)를 해보라고 말한 뒤 나오려는데 환자 아내가 내 소매를 잡았다.

“아이고 선생님, 여기까지 오셨는데 죄송해서 어떡해요.”

환자 아내는 부산스럽게 냉장고를 뒤적이더니 단단하게 얼린 떡 한 봉지와 옥수수 한 봉지를 꺼내 종이봉투에 담았다. 형편도 어려운 분들이 뭘 또 그렇게 주려는지, 받지 않고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그건 또 예의가 아닌 듯해 종이봉투를 건네받았다.

“뭘 또 이런 걸 주시고 그래요.”

집 밖으로 나서는데 공기가 시원했다. 어려운 걸 하나 해결해드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벼웠고, 왠지 모를 에너지에 몸이 가벼웠다. 쫄깃쫄깃한 힘이 도는 느낌이랄까.

이낙원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

*이낙원 의사는 한국의 코로나19 발생 초기 제1303호(2020년 3월16일치)부터 4호 연속으로 ‘마스크 안 쓰는 호흡기내과의사의 바이러스 예방법’ 등 ‘코로나19 일기’를 연재했습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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