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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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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청바지 입는 데 10분...옷 찾아 삼만리

비장애인 옷의 세계에서 장애인들의 ‘옷입기’ 고군분투기
등록 2020-10-31 13:33 수정 2020-11-03 23:18
임태욱씨(왼쪽부터)와 김동수씨, 함승연씨, 윤두선씨, 김영식씨가 10월2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자신들이 고른 옷을 입고 밝게 웃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임태욱씨(왼쪽부터)와 김동수씨, 함승연씨, 윤두선씨, 김영식씨가 10월2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자신들이 고른 옷을 입고 밝게 웃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7월 정부가 내놓은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 자료를 보면, 한국 장애인은 251만여 명이다. 이 가운데 중증으로 분류되는 이는 91만6천여 명(36.4%)이다. 그런데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증장애인 가운데 세련된 옷차림을 한 이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장애인 가구 소득이 전체 가구의 70% 수준으로 대체로 낮지만 과연 그 이유가 전부일까? 장애인한테 옷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겨레21>은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독립연대) 활동가를 비롯한 중증장애인 7명을 만나고 1명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어떤 이는 옷을 두고 “그 안에 들어가 숨고 싶은 동굴”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옷으로 인한 차별 경험을 가진 이는 “옷이 날개”라고도 했다. 인터뷰 끝에 다다른 곳은 한국 사회의 장애인을 향한 차별, 장애인의 몸과 그들의 욕구에 대한 무지, 복지제도의 구멍이었다. 옷이 이들을 빛나게 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_편집자주

올해 스물아홉 살로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임태욱씨는 “옷이 날개”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굳히기까지 2016년 그와 같은 장애인 친구 3명, 비장애인 친구 2명이 함께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 놀러 갔을 때 당한 차별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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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멋지게 빼입고

숙박업소를 예약하지 않고 간 첫날 임씨는 청바지와 셔츠 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작은 호텔 프런트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들어가 아무런 문제 없이 방을 구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 일어났다. 임씨처럼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친구가 반소매 티셔츠에 하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른 호텔에 방을 구하러 갔는데 “방이 없다”고 거절당했다. 청바지 같은 면바지는 멋은 나지만 화장실 용무 등이 급할 때 벗고 입기가 불편한 탓에,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 중증장애인이 많다. 하지만 친구들이 스마트폰 숙소예약 앱으로 그 호텔을 검색해보니 빈방이 여러 개 남아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가 난 일행이 호텔로 쳐들어가 따지자, 호텔 직원은 “(행색이 초라해) 노숙자인 줄 알았다. 언어장애까지 있어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했다. 임씨는 “그런 일을 세 번 정도 겪었다. 그 뒤로는 어디 갈 때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 멋지게 빼입고 가려 노력한다”고 했다. 중증장애인한테 옷이란 때로 차별과 멀어질 수 있는 날개이기도 한 셈이다.

임씨는 4년 전 부모에게서 벗어나 홀로 살기 위해 무려 한 달 동안 밥을 굶었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로 하반신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오른팔도 거의 쓸 수 없는 그의 첫 독립선언에 당황한 부모는 “절대 불가”라고 했다. 초·중·고 12년을 모두 특수학교 대신 경남 거제시 일반 학교에 다닌 임씨가 서울행 홀로서기를 선언한 까닭은 지방 도시의 장애인 복지와 생활 환경이 서울보다 10년 이상 뒤처졌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국가에서 배정받은 장애인활동보조 230시간에 거제시가 추가 배정한 시간은 50시간에 그쳤다. 같은 조건에서 서울시는 120시간을 줬다. “서울에 가서 장애인 복지와 정책을 배워 돌아와 거제를 바꾸겠다”는 게 그의 포부였다. 중증 신체장애에 언어장애까지 있는 큰아들의 느닷없는 독립선언에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던 부모도 결국 몰래 과자만 조금씩 먹고 한 달 동안 집밥을 거부하며 임씨가 벌인 단식투쟁을 이기지 못했다.

임씨는 2016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오피스텔에 홀로 둥지를 틀었다. 현재 직장인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독립연대)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데는 전동휠체어로 15분 걸린다. 기자가 꿈이던 임씨는 방송통신대 국문과에 진학한 데 이어 평택대 재활상담학과에 편입해 2018년 졸업한 뒤, 지금은 서강대 대학원 평생교육학과 석사과정 3학기에 재학 중이다. 박사학위까지 따는 게 그의 목표다.

이처럼 나름 한고집 하는 임씨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때가 종종 있다. 친구들과 만나 함께 밥을 먹거나 놀러 갈 때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가 고민거리다. 그는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할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데, 트레이닝복 같은 것을 입고 나갔을 때는 사람들 시선이 따가울 때가 있다. 옷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10월18일엔 집 근처로 약속 없이 찾아온 친구들과 밥 먹으러 나갔다가,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한테 친구들이 던진 “너 환자냐”는 농담에 살짝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임씨는 청바지에 파란색 체크무늬 셔츠를 즐겨 입는데, 혼자 청바지를 입는 데만 10분 정도 걸린다. 뇌성마비 특성상 손이 경직돼, 셔츠 단춧구멍에 단추를 끼우는 일은 그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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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소년 장애인들 앞에 놓인 턱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함승연(23)씨는 예전부터 검은색 같은 어두운색 옷을 좋아했지만, 그와 단둘이 사는 안내견 담비의 흰 털이 묻는다는 주변의 지적에 주로 밝은색 옷을 입는다. 하지만 옷에 때가 탔는지, 혹여 속옷이 비치는 건 아닌지 알 길이 없어 늘 답답하다. “옷이란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라는 신조를 가진 함씨는 스스로 번 돈으로 담비와 단둘이 기차 타고 1박2일 부산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활동적이다. 함씨는 “고속버스터미널 상가나 지하상가 같은 곳은 옷 가격이 싸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선 장애인들이 옷을 사기 힘들다. 백화점에선 편하게 입어보고 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비싸다. 장애인들은 옷을 사는 데도 돈이 더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함씨가 가장 싫어하는 건, 집을 찾은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의 물건 위치를 바꾸는 일이다. 특히 옷장에 놓인 옷 순서를 바꾸는 건 질색이다. 그는 옷이 놓인 순서와 옷감의 감촉으로 옷을 살 당시 기억해놓은 옷의 색깔과 무늬를 기억해내는데, 순서가 바뀌면 헷갈리기 때문이다.

매일 경기도 김포 집에서 서울 용산구 독립연대 사무실까지 차를 운전해 출퇴근하는 척수장애인 하옥순(51)씨도 마음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씨는 19살이던 1988년 12월 일하던 회사의 천장이 무너져내리는 사고로 중추신경을 다쳐 하반신을 쓰지 못한다. 우선 옷가게에 가려 해도 휠체어가 넘어야 할 수많은 턱 앞에서 발길을 돌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수동이나 전동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이라면 모두 겪는 일이다.

특히 여성으로서 겪는 곤란함은 다른 사람한테 설명하기도 힘들다. 목 쪽에 가까운 척수를 다치면 장기를 받치는 근육이 힘을 잃어 배가 볼록 나오기 쉬운데, 남들은 “살이 쪘다”고 생각한다. 옷을 고르기도 만만치 않다. 몸에 딱 붙는 옷은 배가 나와 보이기 때문에 피한다. 요즘 나오는 여성 바지는 골반 쪽이 짧은 것이 많아 불편할뿐더러 앉아 있다보면 엉덩이 쪽 속옷이 드러나기 일쑤라 입지 않는다. 짧은 치마는 언감생심이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그로선 자칫 속옷이 보일까봐 신경을 계속 집중해야 한다.

수동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계속 굴리다보면 어깨 등 상체 근육이 발달하게 돼 어쩌다 예쁜 블라우스를 발견해도 구매를 주저하게 된다. 하씨는 “여성 척수장애인끼리는 서로 ‘어깨 깡패’라고 놀리곤 한다”며 “재작년 여름 온라인에서 예쁜 꽃무늬 블라우스를 샀는데 막상 입으려니 팔이 꽉 끼어 도저히 혼자 벗을 수 없어 결국 엄마한테 줬고, 작년에도 산 블라우스를 입고 벗기가 불편해 조용히 반품했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돈이 드는 일뿐이다.

서울 성심여고 3학년생인 김연정씨도 휠체어를 타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김씨는 “옷이란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멋 부릴 나이임에도 김씨는 주로 바지만 사 입는다. “치마 입고 예쁘게 꾸미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는 방바닥이나 휠체어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 치마가 짧으면 자칫 속옷이 보일까봐 안 사요.”

나도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싶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김동수(52)씨한테 옷은 아픈 기억이다. 삼 형제 가운데 둘째인 김씨는 10대 후반 무렵까지 새 옷을 입은 기억이 없다. 비장애인인 형과 동생은 늘 새 옷을 샀고 그는 형이 입던 옷만 물려 입었다. 김씨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만 지냈다. “형과 동생은 학교에 가니까 옷을 잘 입어야 하는데, 나는 장애가 있어 학교도 못 가고 옷도 이렇게 입는구나. 원래 그런가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옷의 중요성에 눈뜬 건 19살 때다. 한 대형 교회 장애인선교회에 우연히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상당수 장애인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맵시를 뽐내는데, 김씨와 몇몇 장애인은 추레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 비교되더라고요.” 그날 저녁 부모에게 “나도 그렇게 입고 싶다”고 얘기한 뒤에야 난생처음 새 청바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엔 한 대학의 장애인직업훈련학교 기숙사에 1년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같은 뇌성마비 여성 장애인한테 마음이 끌렸다. 그 여학생이 옷을 잘 입은 남자 장애인한테만 “옷 색깔 좋다,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옷을 잘 입어야 상대방의 관심을 받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는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기숙사에 들어올 때도 엄마가 자신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사다 준 옷을 입은 터여서 속상했다.

그는 27살 즈음 부모를 향한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 독학으로 갈고닦은 컴퓨터 조립 실력으로 다른 장애인 친구들의 컴퓨터를 손봐주고 스스로 용돈을 벌었을 때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 혼자 가서 스판덱스 청바지를 한 장 샀다. “비장애인들은 ‘그게 뭐 별거냐’라고 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엄청 역사적인 사건이었죠. 기분이 째졌어요.” 그때를 떠올리는 김씨의 표정이 환희로 가득 찼다.

전동휠체어 없인 이동할 수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 김영식(37)씨도 어릴 적 장애인시설에 있을 때 남자아이들끼리 옷을 돌려 입은 기억이 있다.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한 탓에 그 안에서 내 옷이라고 할 만한 게 따로 없었어요. 그냥 다 같이 입었죠.”

김갑선 제공

김갑선 제공

내 몸에 맞는 옷·신발 찾아 삼만리

독립연대에서 자립생활팀장을 맡은 김갑선(53)씨는 계절 가운데 겨울을 유독 좋아한다. 허리가 에스(S) 자로 심하게 휜 고도 척추측만 장애를 가져, 반소매나 얇은 옷을 입는 여름엔 자신의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김씨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얇은 점퍼나 조끼를 입는다. 겨울엔 두툼하고 펑퍼짐한 외투로 어느 정도 몸을 가릴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세로줄 무늬 옷이나 단색 옷은 입지 않는다. 신체 특징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는 체크무늬 옷을 선호한다. 특히 바지보단 윗옷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슴둘레에 맞춰 셔츠 등을 사면 옷의 위아래 길이나 팔 길이가 너무 긴 경우가 많다. 측만증이 생긴 중2 때 152㎝이던 키가 지금은 147㎝로 되레 준 탓이다. 오프라인 의류매장에서 옷을 사기도 하지만 주로 온라인쇼핑을 많이 한다. 매장에서는 사이즈에 맞춰 계속 옷을 바꿔 입어야 해 눈치가 보인다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옷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신발이다. “남자의 패션은 신발에서 완성된다”는 소신을 가진 그의 신발 사이즈는 235㎜다. 남자 신발은 250㎜ 이하 사이즈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여자 신발은 225㎜짜리도 있지만, 볼이 너무 작아 신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그는 요즘 235㎜부터 시작하는 남녀 공용 신발을 노린다.

온라인 세계를 부지런히 뒤지면 간혹 물건을 만날 수 있다. 240∼245㎜ 신발을 발견하면 사들인 뒤 깔창을 두어 개 깔아 신는다. 김 팀장은 발등을 조여 맬 수 있는 끈이 달리지 않는 신발은 사지 않는다. “내 몸에 맞는 옷이나 신발을 찾는 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틈만 나면 온라인쇼핑몰을 뒤지다 마음에 드는 옷이나 신발이 나오면 (절판 전에) 여러 벌, 여러 켤레를 일단 산다. 신발을 30켤레 이상 가진 까닭이다. 샀는데 잘 안 맞으면 반품하는 경우도 많다. 비장애인보다 비용이 두 배는 더 든다.”

장애인 지원에 의복 관련 항목 아예 없어

중증장애인은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하고 의복을 사고 입는 데 불편할뿐더러 이 과정에서 지출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거의 없다. 정부는 3년마다 장애인실태조사를 하는데 이때 장애로 발생하는 의료비, 교통비, 보호·간병비 등 추가 비용을 조사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 보고서는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은 월평균 16만5100원으로 나타나 장애인연금의 부가급여액 2만~8만원 및 장애수당 4만원의 2~4배에 이른다. 장애인연금의 부가급여나 장애수당으로는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추가 비용 조사에선 의복 관련 항목이 아예 빠져 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윤상용 충북대 교수(아동복지학)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추가 비용 조사 때 의복비를 따로 집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때 장애인 가구의 의복 관련 비용 등 추가 비용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해 수급자 선정의 문을 넓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두선 독립연대 대표는 “복지 정책이 대상자들 삶의 구체적이고 미세한 부분까지 개선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본질적으로 미약한 장애인연금 제도를 개선하면서 의복 관련 지원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표지이야기-장애인의 옷 찾아 삼만리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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