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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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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이 집을 우리가 지었단 말입니까?

전종휘 기자 등 17명이 함께 8일 만에 만든 ‘농막’
작은 집을 지어보고 인생 집의 밑그림을 그리다
등록 2020-07-11 06:38 수정 2020-07-14 02:07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 40기생들과 스태프가 함께 지은 작은 집을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김진수 기자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 40기생들과 스태프가 함께 지은 작은 집을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김진수 기자

“돈 내고 노가다 하러 온 걸 환영합니다.”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십수 년 뒤 늘그막 영혼의 안식처가 될 집을 내 손으로 어떻게 지을까’라는 원대하고 행복한 상상을 하며 두 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내게 느닷없이 ‘노가다’라니…. 세상에 귀하지 않은 노동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집짓기를 배우려고 170만원 넘는 돈을 내고 왔단 말이다. 자연스레 27년 전 칼바람 몰아치던 강원도 철원의 신병교육대에서 조교가 던진 살벌한 첫마디가 떠올랐다. “버림받은 땅으로 군생활 하러 온 너희들을 환영한다.”

햇살 좋은 6월20일 오전 9시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 고익봉 2팀장이 해맑은 웃음과 함께 던진 첫인사말이 농담 혹은 거짓이 아니란 걸 여장을 풀자마자 깨달았다.

집짓기의 고갱이는 육체노동

작은집건축학교 40기 첫 일정은 문건호 교장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됐다. 우리가 7박8일 동안 건축학교에서 숙식하며 짓는 건 18.15㎡(5.5평) 크기 농막(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건축물) 수준의 작은 집이다. 농막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을 줄 알면 이를 확장해 더 큰 집을 지을 수도 있다. 실제 앞선 기수에선 이곳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집을 지은 이가 10명 이상 된다(34~35쪽 참조). 현장에선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공구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한다.

문 교장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은 2개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김태성 팀장이 지휘하는 1팀에 배정됐다. 우리가 짓는 농막은 바닥 패널 2개, 벽체 패널 6개, 지붕 패널 2개를 만든 뒤 이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른바 경량 목구조 공법이다. 곧바로 바닥 패널 조립 작업이 시작됐다.

조립할 바닥 패널 1개는 3012㎜×2884㎜(2.63평) 크기다. 2개를 이어붙이고 테두리에 판재를 덧대면 대략 3m×6m 크기가 돼 18㎡가량 면적이 나온다. 농막을 만들어 파는 업체는 주로 틀을 짤 때 쓰는 구조목으로 38㎜ 두께에 너비 140㎜짜리를 쓰는데, 건축학교에선 흔히 ‘235구조목’이라고 부르는 너비 235㎜짜리를 쓴다. 그만큼 벽체가 두꺼워지니 단열 효과가 좋고 더 튼튼하다. 이 정도면 집을 지어도 손색이 없다.

235구조목을 작업대로 나르고 자른 뒤 전동드릴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임팩트드라이버를 이용해 나무와 나무를 32~75㎜ 길이의 나사못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임팩트드라이버를 직각이 아니라 삐딱한 각도로 갖다 대고 회전을 시키거나 처음부터 너무 빠른 속도로 돌리면 나사못 머리가 뭉개지며 헛돈다. 그러면 나사못이 제대로 박히지 않고 나중에 빼내기도 어렵다.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러시면 안 되죠!”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 갑자기 긴장한데다 불편한 자세로 힘을 쓰며 반복하는 작업에 팔다리가 저린다. 아, 역시 생활 근육과 일 근육은 따로 있구나.

벽체 패널 제작 작업을 진행한 사흘째부터는 작업장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났다. 서울 유명 학원가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 올해 자신한테 휴식년을 주기로 한 김우곤(40)씨가 “너무 힘들어서 군대 온 줄 알았다”고 했다. 이를 들은 전직 요가 강사 조성식(44·가명)씨는 “전완근(손목에서 팔꿈치로 이어지는 근육)이 당긴다”고 말을 받았다. 옆에 있던 박영호(57)씨는 “집에선 열심히 일해도 안 피곤한데, 여기선 왜 이러냐”며 웃었다. 집짓기 DIY(Do It Yourself)의 고갱이는 육체노동이다.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 40기가 지은 농막의 외형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모습. 전종휘 기자

한겨레작은집건축학교 40기가 지은 농막의 외형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모습. 전종휘 기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왔다”

제아무리 필요한 생활용품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DIY의 시대라지만, 집처럼 거대한 구조물을 직접 지어보겠다는 목표를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40기 동기생들이 작은집건축학교의 이름처럼 규모가 작은 나무집을 지어 전원생활을 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꾸리겠다는 꿈을 갖고 달려온 배경이다.

특히 정년을 눈앞에 두고 인생 2막을 설계 중인 장년층 동기들은 작은 집 DIY에 대한 포부가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내년에 공기업 정년퇴임을 맞는 임용재(59)씨는 퇴직 뒤 강원도 철원으로 귀농해 어릴 적 꿈이던 농사를 지으며 펜션을 운영할 계획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공기업 정년을 1년 앞둔 김영훈(59·가명)씨도 “미니멀리즘 차원의 작은 집을 내 손으로 꼭 지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태웠다. 보험설계사로 활동 중인 동갑내기 황현철(59)씨는 “젊은 시절 그림 같은 집에 대한 로망을 꿈꿔오다 이제 나이가 들어 한 가지씩 준비하는 차원에서 왔다”고 말했다. 64살로 동기생 가운데 최연장자인 황기태씨는 내년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텃밭이 있는 시골에 자그마한 집을 지을 계획이다. “얼마나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겠냐”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도시의 치열한 경쟁과 과잉 노동에 지친 이들한테는 내 손으로 집짓기를 배우는 시간 그 자체가 힐링이다. 제품 디자이너 박병걸(34)씨는 2019년 회사 인사팀에서 “연속 주말근무를 한 달 동안 계속하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을 정도로 일에만 매달려 산 자신한테 휴식을 주고 집짓기도 배우러 작은집건축학교에 왔다. 그는 “개인의 개성이 깃든 멋진 공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만든다는 것”이 집짓기의 매력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에서 살며 직장생활을 하던 중 “20년 동안 일만 하다 죽을 것 같아” 지난해 회사를 접고 경기도 양평으로 터전을 옮긴 김성오(55)씨한테 집짓기는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자 인생의 종착점까지 갈 터전”이다. 김우곤씨도 “주변 친구들을 봐도 30∼40대 직장인들이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힐링을 원한다. 도심 속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과 함께할 때 오는 힐링, 마음의 치유는 흙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에서 온 성충헌(54)씨는 집짓기 DIY를 이렇게 설명한다. “손님이 왔을 때 식당에서 밥을 사 대접하는 것과 손수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들어 한 끼 대접하는 것엔 차이가 있다. 자기 집을 스스로 짓는다는 건 경제적으로 절약하는 것 이상의 성취감과 함께 삶의 의미가 담긴 것이다.”

밀리미터의 세계, 물 샐 틈을 막아라

동기생 가운데 최연소자는 인근 제천간디학교 5학년(고2)에 재학 중인 전현호(17)군이다. 최연장자 황기태씨 손자뻘 되는 나이다. 3학년 때 논문 주제로 나무 위에 짓는 집, 트리 하우스를 다뤘을 정도로 집 짓는 데 관심이 많다. 이번에도 학교 수업의 하나로 학생 개인이 계획을 짜 3주 동안 학교 바깥에서 배움의 기회를 갖는 계기를 이용해 작은집건축학교에 왔다. 다른 이보다 이틀 먼저 와 자투리 자재를 이용해 정삼각형 모양 초소형 집을 혼자 지은 실력파다.

건축의 세계에서 적응해야 할 것은 일 근육에 그치지 않는다. 이 바닥에서 통용되는 생각의 근육도 단련해야 한다.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할 것은 단위다. 960, 6100, 6780…. 도면에 등장하는 수치는 하나같이 크다. 센티미터 대신 밀리미터를 쓰기 때문이다. 나무의 치수를 재고 자를 때 1㎜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1㎜ 차이 나게 잘라 10장을 합하면 결국 10㎜ 차이가 난다. 그 정도 틈이면 벌레는 물론이고 뱀도 기어 들어온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센티미터의 세계에서 온 이들이 머리로 이해하긴 쉬워도 적응은 다른 문제다.

첫날 팀장이 과제를 냈다. 목재를 자를 때 주로 쓰는 ‘슬라이딩 각도 절단기’를 이용해 목재를 262㎜ 길이로 잘라 오라고 했다. 이때 줄자로 정확한 치수를 잰 뒤 목공연필로 잘라야 할 자리를 정확하게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절단하는 순간엔 각도 절단기 톱날을 연필 선에 대고 잘라선 안 된다. 톱날도 두께가 있는 탓에 바로 선 위를 자르면 원하는 치수보다 1㎜ 안팎 짧아지는 오차가 나기 때문이다. 톱날을 연필 선의 바깥에 밀착해 절단 작업을 해야 한다. 저마다 조금씩 차이 나게 잘라온 결과물을 놓고 팀장은 “탈락”을 연신 외쳤다. “이 목재 길이가 얼마죠?” 팀장의 유도성 질문에 나도 모르게 “21.6센티요”라는 답이 튀어나왔다. “땡, 216밀리미터지!”

이런 정밀함은 곳곳에서 필요하다. 바닥과 벽체 등 패널이 완성된 뒤에는 ×자로 교차하는 양쪽 모서리의 대각선 길이를 잰다. 눈엔 정확히 네 개의 꼭짓점이 90도를 이루는 직사각형으로 보여도 대각선 길이를 재면 조금씩 다르게 측정됐다. 패널이 미세한 마름모꼴이라는 얘기다. 이대로 패널과 패널을 조립하면 맞닿은 부위에 작은 틈이 생긴다. 비뚤어진 집을 지을 순 없다. 이땐 나무망치로 패널 옆면을 두들겨 대각선 길이를 맞춘다.

<한겨레21> 전종휘 기자가 작업에 사용할 판재를 옮기고 있다. 작업장에선 안전을 위해 늘 안전모를 쓴다. 김진수 기자

<한겨레21> 전종휘 기자가 작업에 사용할 판재를 옮기고 있다. 작업장에선 안전을 위해 늘 안전모를 쓴다. 김진수 기자


전동공구의 치명적인 매력

집짓기라는 미지의 세계 작업을 하다보면 여러 차례 감동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중 가장 감격스러운 때는 셋째날(6월22일) 오후에 찾아왔다. 바닥판 위에 벽체 6개를 직각으로 세우고 다시 그 위에 평지붕과 경사지붕, 두 개의 지붕까지 얹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사흘 만에 18㎡ 넘는 면적에 다락방을 갖춘 집이 위용을 드러냈다. 엄청난 속도다. “각각의 패널이 단시간에 조립되면서 집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마치 어릴 적 플라스틱 모델이나 과학상자를 조립할 때 느꼈을 법한 성취감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박병걸씨)

이는 17명이 개미 떼처럼 한꺼번에 달려들어 작업한 덕이 작지 않겠으나, 작업 속도를 혁신적으로 단축한 전동공구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집짓기 DIY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 중 하나가 공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실력이다. 주로 기다란 목재를 올려놓고 손잡이가 달린 고속 회전 톱날을 아래로 내려 순식간에 잘라내는 고정형 각도 절단기, 들고 다니며 목재와 합판을 자를 수 있는 충전 원형톱, 금속재료를 자를 때 쓰는 그라인더 등은 모두 고속 회전하는 모터의 힘을 이용해 수공구로 할 때 걸리는 시간을 10분의 1 이상 단축해준다. 순식간에 나사못을 돌려 박아 구조목과 구조목, 구조목과 합판을 연결할 때 쓰는 임팩트드라이버와 이보다 더 큰 토크를 발휘해 합판에 구멍 등을 낼 때 쓰는 드릴이나 해머드릴도 마찬가지다.

이들 전동공구는 유용한 만큼이나 위험하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췄다간 고속으로 회전하는 톱날과 드릴 앞에 끼우는 다양한 비트가 작업자를 덮칠 수 있다. 작업장에선 안전이 최우선이다. 공기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1자 모양, ㄷ자 모양의 작은 못을 박는 타카는 큰 힘을 받지 않는 인테리어 시공 등을 할 때 쓰임새가 많으나 자칫 총구 방향을 잘못 잡으면 내 손에 못을 박을 수 있다. 실제 나는 10년 전 <한겨레21> ‘노동OTL’ 취재 당시 경기도 마석 가구공단 공장에서 작업 중 내 왼쪽 엄지손가락에 타카 못을 박아 공장장이 니퍼로 뽑아준 기억이 있다. 그때의 눈물 어린 배움이 지금 도움이 된다. 전동톱의 날은 어디서 돌고 있는지, 타카의 총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내 레이더망에서 놓치지 않았다.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

‘집의 뼈대가 서면 전체 공정의 7부 능선은 넘었다’는 내 예상은 착각이었다. 골조가 선 뒤에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단열과 방수, 상하수도 배관, 전기 배전, 바닥 난방 작업을 비롯해 인테리어를 마무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패널 작업보다 훨씬 디테일하게 접근해야 할 작업의 가짓수 자체가 많은데다 자칫 잘못 시공하면 나중에 벽이나 바닥을 도로 뜯어 재시공해야 할 수도 있다. ‘집 한 번 짓고 나면 10년 늙는다’는 세간의 말은 엄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집이 완성을 향해 나아갈 때마다 동기생들은 “신이시여, 정녕 이 집을 우리가 지었단 말입니까”를 되뇌었다. 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17명이 함께 먹고 자며 8일 만에 그럴듯한 작은 집 한 채를 완성한 데서 오는 성취감은 그만큼 컸다. 전현호군은 “뭔가 나무로 지으면 질이 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들어보니 충분히 멋있다.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여드레 교육만으로 나 혼자 집을 지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진 않는다. 알면 알수록 공부하고 겪어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경량 목구조 주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전체 구조는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어렴풋한 밑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며 집으로 가는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오른쪽 손목이 시큰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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